2002년 5월호

요리를 잘해야 축구가 산다

신문선 SBS축구해설위원의 버섯생불고기

  • 글·최영재 기자 (cyj@donga.com) 사진·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4-09-06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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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섯생불고기는 샤브샤브와 한국식 불고기를 반쯤 섞어놓은 일종의 퓨전요리다. 불고기보다는 물이 많고, 샤브샤브보다는 물이 적다. 또 양념에 재운 고기 대신 생고기를 쓰는 점이 특이하다.
    요리를 잘해야 축구가 산다

    신문선해설위원 가족

    그가 하는 축구 해설을 듣다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축구공이 골문 근처에만 와도 손을 움켜쥐고 안절부절 못하고, 골이라도 들어가면 자리를 박차고 통렬하게 함성을 지른다. 공공 장소에서도 주위 눈치볼 것 없이 곁에 있는 사람과 어깨를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게 된다. 친한 사람이고 잘 모르는 사람이고 그 순간만큼은 안면몰수다. 이처럼 그는 세치 혀로 점잖은 사람들의 체면을 일거에 구겨버린다. 물론 한 30초 정도 계속되는 폭풍과 환희의 순간이 지나면 조금 계면쩍어진다. 하지만 그는 틈을 주지 않는다. 곧 개그맨 같은 엉뚱한 표현과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재담으로 배꼽을 쥐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토록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이 축구해설가 신문선(44)의 마력이다.

    월드컵을 한 달 남짓 남겨두고, 그는 이미 월드컵을 치르고 있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축구경기와 관련 없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컨디션 조절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런 긴장은 경기를 앞두고 있는 국가대표 축구선수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사람이 계속 긴장 속에서만 살 수는 없는 법. 적당하게 풀어주어야만 골문 앞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가족이다. 가족보다 더 편안하고 지친 심신에 활력을 주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 신위원도 마찬가지다. 온 기력을 월드컵에 쏟고 있는 지금, 그의 유일한 안식처는 가족이다. 가족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시간이 그에게 최고의 휴식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고 가족과 함께 즐기는 음식이 버섯생불고기. 버섯생불고기는 샤브샤브와 한국식 불고기를 반쯤 섞어놓은 일종의 퓨전요리다. 불고기보다는 물이 많고, 샤브샤브보다는 물이 적다. 또 양념에 재운 고기를 쓰지 않고 생고기를 쓰는 점이 특이하다.

    요리를 잘해야 축구가 산다

    쌍둥이 아들 키우는 재미는 신문선 부부에게 가장 큰 낙이다(왼쪽부터 승무 승민 아내 이송우씨)

    생고기는 양념에 재우는 고기보다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 육질이 더 좋아야 하는 것이다. 육류는 도살 후 바로 강직현상이 일어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고기 자체의 효소작용으로 연하고 맛이 좋아진다. 쇠고기의 숙성 기간은 4∼7℃에서는 10일 전후, 2℃에서는 2주일 정도 걸린다. 그러므로 신선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신문선 위원식으로 버섯생불고기를 만들려면 이처럼 숙성이 잘된 소 볼기살인 우둔살을 차돌박이처럼 얇게 썬 것을 구입한다.



    이 요리의 핵심은 육수다. 육수는 5인분 기준으로 진간장 1컵, 물 5컵 반, 황설탕·물엿·백설탕 각각 1스푼, 배와 양파·사과를 갈아 섞어서 1컵, 마늘·생강·참기름·후추·조미료 적당량을 잘 저어서 만든다.

    버섯은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 팽이버섯을 준비하는데, 표고와 팽이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느타리버섯은 손으로 죽죽 찢어놓는다. 다음은 채소 재료. 샤브샤브 요리처럼 쪽파와 미나리, 양파, 당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준비한다. 재료 준비가 끝나면 육수를 팔팔 끓인다. 육수가 끓으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고기, 야채, 버섯 순으로 조금씩 넣어서 익혀 건져 먹으면 된다.

    신문선 해설위원의 고향은 지금은 시(市)가 된 경기도 안성 일죽면 고은리. 안성은 쇠고기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신위원 또래가 그렇듯, 그도 어릴 때 쇠고기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가 1년에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은 설날, 생일날, 추석날, 아버지 생신날 등 네 번 뿐이었다. 그것도 고기는 조금 넣어 무와 배추를 넣고 푹 끓인 쇠고기국이었다. 국을 끓여야만 적은 고기로 여러 식구가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불고기는 꿈도 꾸지 못했다. 축구선수로 성장한 탓인지 누구보다 배가 빨리 꺼지고 고팠던 그의 어릴 적 소원은 소 불고기를 실컷 먹어보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올 때 고깃집에서 풍기는 그 불고기 냄새는 맡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 것이다.

    불고기에 대한 그의 간절한 소원은 1977년 연세대에 축구선수로 입학하면서 풀렸다. 연세대는 고려대와 매년 9월에 축구·야구·농구·럭비·아이스하키 등 5종목으로 정기전을 치른다. 양교 운동선수는 이 정기전을 위해 7월부터 합숙훈련에 들어가는데, 신위원은 이때에 비로소 쇠고기를 배불리 먹게 된다. 국가대표로 뽑혀 나가는 것보다 정기전에서 라이벌 대학을 누르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양교 선수들은 이 기간에 사력을 다해서 훈련을 한다.

    또 양교 선배와 학교 당국은 선수들에게 고기를 무제한 공급한다. 그래서 선수들은 이 기간만큼은 불고기를 아예 커다란 대야에 쌓아놓고 먹는다. 신위원은 양교 정기전을 준비하면서 연대 캠퍼스 안에 있는 청송대와 총장 공관에서 교수님, 선배님과 둘러앉아 배가 터지도록 먹던 불고기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에게 불고기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배고픔이 묻어있는 음식이다.

    사실 스포츠와 요리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운동선수가 에너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원인 음식 섭취와 배설, 충분한 수면,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중에서 요리가 가장 큰 변수다. 운동선수는 무엇보다 잘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축구선수 생활을 했던 신위원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축구 해설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몸의 모든 사이클을 그라운드에서 뛰는 현역 축구선수에 맞추고 있다. 축구 해설을 하려면 선수들과 똑같이 90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시선이나 생각을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선수들의 동선을 기록하고, 모니터도 보고, 쉴새없이 입을 놀려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이다. 경기 전날이나 당일 음식을 잘못 섭취하면 그날 경기 해설을 망칠 수밖에 없다.

    축구를 분석하면 그 나라의 민족성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그가 축구해설가로서 요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요리를 통해 민족성을 분석하고, 이 민족성을 통해 축구 특성을 따진다. 그는 대표팀 경기 중계를 하러 외국에 나가면 반드시 해당국가의 박물관과 재래시장을 방문하고, 전통요리를 맛본다. 이 세 가지를 섭렵하고 나면 그 나라의 축구 특성이 나온다는 것이다.

    가령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라는 다혈질이고 화끈한 축구를 하며, 더운 음식을 싫어하는 나라는 지구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신위원은 이렇게 축구에 요리를 대입하여 꼼꼼히 살핀 뒤에 90분 경기를 해설할 밑원고를 쓴다. 요리뿐만 아니라 문학과 역사, 음악도 살피지만, 가장 큰 힌트를 주는 것은 요리다.

    그는 히딩크 대표팀 감독을 요리사에 비유했다. 요리사는 정해진 시간에 손님의 입맛에 맞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식탁 위에 차려내야 한다. 히딩크 감독도 5월31일 개막하는 월드컵 본선에 대표팀 선수들을 잘 훈련시켜 국민들의 입맛에 맞게끔 축구를 펼쳐야 한다. 축구는 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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