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노무현 대통령’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09-07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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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9일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만난 한화갑(韓和甲)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은 지쳐 보였다. 한대표는 “일은 많은데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자 피곤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된 4월27일 전당대회 이후 한대표의 행보를 보면 그가 왜 힘들어하는지 알 수 있다.

    대통령의 아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민주당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노풍’을 가라앉히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내 사정도 복잡하다. 대선후보 경선과 지도부선출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한순간 주류와 비주류가 바뀌는 과정에서 일부 최고위원들이 한대표에게 정면으로 반발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경선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당내 한 세력인 이인제(李仁濟) 고문계를 중심으로 중부권 신당설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내우외환(內憂外患) 그 자체다.

    대통령의 탈당으로 형식이 파괴되기는 했지만, 한때 여당이었던 정당의 새 대표이기에 나름의 포부도 거창하지 않을까. 의례적인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려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솔직했다. 한대표는 무엇 하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정치 환경에 화가 나 있는 듯했다. “대표비서실 구성하는 데도 최고위원회의와 협의하라 해놓았다”며 당헌 상의 집단지도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대표는 노후보의 정계개편론에 대해 “정권재창출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부도덕한 것이 아닌 한 무엇이든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민련과의 관계복원에 대해서는 “김종필 총재도 협력에 대해 뜻을 같이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대표는 사회 보는 사람”


    -한국 정당사상 당권과 대권이 분리된 것이 처음 있는 일이죠.

    “내가 알기로는 1971년에 대선 후보와 당수가 달랐었죠. 그런데 그때는 단일 지도체제에서 후보와 당수가 달랐던 것이고 지금은 아예 당헌 당규에 후보와 대표를 분리해 놨어요. 그러니까 당헌 당규에 규정해놓고 당헌대로 대표를 뽑고 후보를 뽑은 것은 우리 당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대단히 혼란스럽습니다.

    “내가 대표가 돼서 당헌 당규를 보니까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회 보는 일 뿐이에요. 최고위원 3분의 1이 회의소집을 요청하면 대표는 무조건 회의를 열어야 하고 최고회의 소집을 거부하면 득표순으로 다른 최고위원이 사회를 보도록 해놓았어요. 대표는 최고위원 11명 중 한 사람일 뿐이에요. 그리고 책임은 다 지게 되어 있지요. 심지어 대표비서실 구성도 최고위원회의에서 협의합니다. 대표가 비서 한 사람도 마음대로 임명을 못해요. 특보도 둘 수 있는데 최고회의 특보지 대표 특보가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대표의 권한을 없애느냐, 이걸 연구해서 만든 당헌입니다.”

    -한대표도 당헌 당규를 만들 때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참여했지만 대체적으로 논의해서 권한을 분산하자고 했지 축소심의하는 식으로 당무회의에서 조목조목 심의한 기억은 없어요.”

    -당헌 당규상의 모순점과도 싸워야 하지만 후보와 당대표가 다른 새로운 정당 구조와도 싸워야 할 처지입니다.

    “그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후보와 당 대표 사이에서 해야 할 일만 하고 해서는 안될 일은 안하면 되는 거예요. 어떻든 지금은 후보가 승리해야 정권재창출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금년 최대목표는 정권재창출이에요. 최고의 선을 위해 같이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후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당에서 조달해주고 당선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할 일만 하면 무슨 잡음이 있겠습니까.”

    한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을 사표로 삼아 정치를 시작한 인물이다. 정치적 스승 김대통령의 탈당사태는 한대표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5월6일 기자들 앞에서 담담한 목소리로 대통령의 탈당계를 읽던 한대표, 그러나 다시 그때의 일을 묻자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얘기 도중 목이 메이는 듯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했습니다. 대통령의 탈당을 보는 느낌이 남 다를 텐데요.

    “대통령께서 작년 11월에 총재직을 그만두실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연 홀로 설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후 우리는 자생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당을 떠나실 때는, 뭐라 할까, 어떻게 표현할까, 눈물이 나오려 하고, 완전히 내팽개쳐진 느낌이었습니다. 탈당 후 대통령을 우리가 어떻게 올바른 의미에서 보호해드릴 것인가 그런 생각도 했고, 어쩌다 대통령이 탈당하는 처지가 됐나 싶어 여간 착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총재직을 그만두실 때는 그래도 우리가 함께 호흡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단절돼버렸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서럽기도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으로 상당히 우울했습니다. 당 대표 자격이 아니라 내가 그분을 오래 모셨고 그분 밑에서 정치수업을 받은 사람으로서 소회를 말한 겁니다.”

    -탈당을 앞두고 대통령으로부터 언질을 받지는 않았습니까.

    “신문 기사를 보고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을 했는데 탈당 전날 박지원 비서실장이 ‘내일 아침에 발표가 나간다’고 얘기해줬습니다.”

    -김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민주당에서는 아무도 만류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야당에서는 ‘위장탈당’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의 탈당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정권 말기 대통령의 당적이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에 이어 세번째입니다. 시기적으로 이번이 좀 빨랐어요. 업적을 자랑하고 국민들의 박수 속에서 탈당했으면 더 돋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게이트에다 자제들이 신문에 오르내리는 상황이기에 탈당을 결정하신 대통령도 마음이 무겁고 착잡하실 겁니다. 당에서도 선거를 앞두고 불가피한 것 아닌가 하고 이해하는 분위기입니다. 탈당은 대통령이 당을 도와주고 한편으로는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대국민 각오 표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야당이 위장탈당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입니다. 평소 야당은 대통령의 탈당을 얼마나 주장했습니까. 그런데 막상 탈당하니까 또 음모라고 합니다. 이번에 한나라당 부산집회에서 노무현 후보에 대해 발언한 것 보세요. 노후보가 ‘대통령의 넷째아들’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피가 다르고 성(姓)이 다른 사람을 아들이라고 합니까. 상대를 그렇게 폄하할 수 있습니까.”

    -여러가지 문제가 꼬여 있어서인지 착잡해 보이는군요.

    “예, 솔직히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요. 어떻게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나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이어 한대표는 대통령의 아들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현상이 되풀이되는 데 대해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한국적 정치문화와 생활방식에서 비롯됐다고 봐요. 자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리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대통령 아들을 그냥 놔두지 않아요. 과거, 대통령 아들을 청와대에서 관리했다는데 현 정권 들어 모든 것이 민주화돼 당사자들도 그런 간섭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거의 관리를 안했잖아요. 대통령 아들은 외롭습니다. 친구를 만날 수도 없고, 특히 김홍걸씨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늘 혼자 외롭게 지냈어요. 그러니까 누가 잘해주면 고맙게 생각하고 빠져들기 쉽지요. 그런 식으로 주위 사람들이 홍걸씨를 활용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시절 홍걸씨를 자동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왔습니다. 험악한 세상이니까 안전을 위해서 그랬죠. 대통령이 감옥살이하다보니 집으로 찾아오는 친구가 없었어요. 최규선 같은 사람이 끝내주게 비위를 맞춰주니까 이 사람이야말로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따라다닌 거예요. 그 사람이 부정한 생각으로 자신을 꼬인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겠지요.”

    -누군가는 주변에서 홍걸씨를 관리하고 통제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러지 않아도 본인이 최규선이를 안 만난다고 약속하고서는 또 만났다고 해요. 대통령께서 홍걸씨에게 이 문제로 화를 내니까 ‘최규선이와 어울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누가 그럽디다. 대통령은 아들을 그렇게 믿었는데 이런 사태가 나니까 너마저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며 꽤 섭섭해 했다는 겁니다.”

    한대표와 인터뷰를 한 직후 민주당은 노무현 후보가 참석하는 의원 워크숍을 열어 ‘아들게이트’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당초 워크숍은 5월17일로 예정됐으나 노후보의 일정 때문에 연기됐다. 민주당의 워크숍 소식에 정가에서는 “민주당이 아들문제를 정면 돌파하려 한다”는 술렁거림이 일었다. 14일 오후 추가 전화인터뷰에서 한대표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며 확대해석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회의를 해봐야 안다. 개인적인 의견도 아직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당적이탈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아들 사태가 민주당으로서는 악재입니다. 지방선거가 한 달 남았습니다. 지금쯤 당이 일사불란하게 선거체제로 가고 이런 이슈에도 대책이 나왔어야 하지 않나요.

    “우리가 잘한 것을 국민들에게 선전할 겁니다. 잘한 것 얼마나 많아요. 경제발전도 그렇고요. 야당이 발목 잡지 않았다면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을 겁니다. 솔직히 경제를 망친 정당이 누굽니까. 민주당이 이만큼 세워놓았으면 ‘뭘 해드릴까요’하고 나왔어야 국익을 위해 일하는 정당 아닙니까.”

    이어서 한대표는 작심이라도 한 듯 한나라당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한나라당 쪽에서는 이회창씨 측근이 최규선씨로부터 20만달러를 받았다는 진술이 검찰조사과정에서 나왔다고 하자 검찰을 정치검찰이라고 하는데, 야당만 봐주고 여당을 죄면 진짜 검찰이고 야당에 대해 불리한 얘기하면 정치검찰이라는 말입니까. 이런 식의 발상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하니까 이번 악재가 우리한테 고통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아무튼 잘못된 것은 사과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지요. 그러나 대통령 아들 문제 등은 당에서 잘못한 것이 아니에요. 결국 좋은 후보가 선거에 나가면 극복될 거라고 봐요.”

    -아들 문제가 불거지면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도 떨어지고 있는데요.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는 답보상태가 될 수밖에 없어요. 국민경선을 통해 노무현 후보가 떴습니다. 경선 때는 매주 지지도가 올라갔어요. 진짜 구경할 만한 이벤트였거든요. 그런데 도중에 후보들이 모두 사퇴하고 특히 이인제 후보가 사퇴하니까 흥미가 없어졌어요. 조정국면에 들어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지지층이나 우리 정책이나 우리 주변에 무슨 변화요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야당이 노무현 후보를 공격하면서 ‘DJ 넷째아들’이라고 했는데 이런 데 넘어갈 국민 없어요. 국민들도 이제 네거티브 정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방선거 때 훌륭한 후보 내고 정책으로 승부할 겁니다.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우리 장점으로 대결할 겁니다.”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한때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12대4로 민주당이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노풍이 일면서 수도권에서도 민주당이 약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야 민주당의 승리라고 봅니까.

    “우리가 말하는 승리는 현상유지 그 이상입니다. 수도권에서는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승리해야지요. 인천과 강원도 중 한 곳에서라도 이기면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호남과 수도권의 두 곳, 여기에 인천과 강원도에서 승리를 추가하면 승리라는 전망이군요. 승리를 자신합니까.

    “자신감을 가져야죠. 희망사항일 수도 있지만 자신감을 갖고 나서야지요. 국민경선을 거치면서 국민들은 많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정치인들만 모르고 있었어요.”

    -노무현 후보는 부산 경남 울산 등 PK지역에서 한 군데 이상은 이긴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노후보는 그쪽에 치중하고 있는 느낌인데요, 한대표의 말씀을 듣자니 영남 쪽은 포기한 듯합니다.

    “그건 아니지요. 영남은 당에서 직접 나서서 하는 방법도 있지만 내가 대표가 되기 전에 노무현 후보가 그 지역에 대한 발언을 했어요. 노후보가 영남지역 대표성이 있으니까 당에서는 그 발언을 인정해준 거예요. 그러니까 그건 노무현 후보가 해결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에서 해결해야 할 몫만 얘기한 거예요.”

    정치권은 정계개편론으로 떠들썩하다. 한화갑 대표도 이 격랑을 비켜갈 수 없는 처지에 있다. 한때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을 대표하는 그이기에 정계개편에 대한 한대표의 생각은 다가올 정치권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후보는 정계개편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의 뒷받침 없이 노후보 혼자 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노후보는 내가 대표되기 전, 즉 경선 때부터 이 문제를 거론했어요. 그러나 그때는 우리 당에 중심이 없었어요. 대표도 대행이고 사무총장도 대행이고, 무슨 결정을 책임지고 내릴 사람이 없었어요. 당내경선을 통해 표를 얻으려니까 정계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울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러나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는 당과 협의해야 합니다. 저는 정계개편이 필요하다고 봐요. 하지만 과거처럼 ‘야 우리 당 같이하자. 수가 부족하니까’ 이것이 아니에요. 역사발전 과정에서 국익을 위해 내 위치가 어디냐, 정치인 스스로 그것을 결정하라 이겁니다. 노무현 후보의 대선 당선을 위해 내가 힘을 합치는 것이 국익에 보탬이 된다면 노후보 주변으로 오라 이겁니다. 노후보 주변으로 오는 것이 국익에 보탬이 안된다면 안와도 좋다 이겁니다.”

    -정치인 각자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민주당 당명으로 당장 선거에 나설 경우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결국 민주당이 기득권도 포기하는 큰 폭의 정계개편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있습니다.

    “아까 말한 그런 기준이라면 언제든지 노무현 후보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드는 것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정권재창출에 필요한 것이라면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것이 아니라면 뭐든 할 생각입니다.”

    -당헌 상 대표가 가진 권능이 미약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대표가 주동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습니까. 정계개편을 하려면 지도부간 합의가 있어야 하고 당원들의 동의도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큰 폭의 정계개편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권재창출에 보탬이 된다는데 거부할 최고위원이 누가 있겠습니까? 거부할 당원이 누가 있습니까? 안그렇습니까?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고위원이 되려면 한 달 이상 숨 가쁜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이렇게 얻은 기득권을 최고위원들이 쉽게 포기하려 할까요.

    “기득권 포기라는 말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합리적으로 처리해서 기득권을 꼭 포기할 상황이라면 가만히 있어도 스스로 포기하게 돼요. 그걸 유도해야죠.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는 인상을 줘서는 안됩니다. 기득권을 내놔라 하기에 앞서 이것이 옳은 일이니 같이하자고 얘기해야죠. 그래서 이 일을 이루는데 기득권이 장애가 된다면 대의를 위해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거예요. 이것이 정도예요.”

    -실제 민주당에 오겠다는 정치인들 중에는 지금의 민주당에는 안 간다, 조건이 있어야 간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분들 소개해주세요. 내가 한번 만나보게.”

    -당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한대표가 직접 나서 외부인을 설득할 용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 그럼요.”

    인터뷰 다음날인 5월10일 한대표는 서울시지부 필승결의대회에서 “노무현 후보의 정계개편론에 찬성하며 대선승리에 보탬이 된다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날 인터뷰에서 기득권 포기라는 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것과 달리, 전향적인 태도였다. 14일 전화인터뷰에서 한대표는 “노후보의 정계개편론이 당과 유리된 느낌이어서, 적극적으로 노후보의 정계개편안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한대표는 또 5월10일,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 설득작업을 벌였다. 경선사퇴 이후 사실상 방관자의 자리로 물러난 이인제 고문의 자곡동 집을 예고도 없이 찾아가 이고문을 만난 것이다. 한대표는 이고문과 만난 직후 민주당 서울시지부 필승결의대회에서 “이고문과는 당 발전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이고문이 백의종군의 자세로 모든 선거를 돕기로 했으며 당의 요청이 있을 때 수용하기로 했다”고도 말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만났죠. 자민련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자민련이 공동정부에서는 철수했지만 기본 정신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이 관계를 복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복원이라는 것이 정권에 참여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공동정부를 탄생시켰던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 끝까지 협력하자는 겁니다.”

    -지방선거에서도 자민련과 협력할 계획인가요.

    “방법을 찾고 있고 협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방안을 마련하고 있나요.

    “아직 그것까지는 말할 수 없어요.”

    -그 뜻에 대해서는 김종필 총재도 인정했습니까.

    “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방선거에서 현상유지가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충청권에서 민주당이 자민련과 협력한다면요.

    “우리 당내 사정도 대단히 복잡합니다. 후보를 안냈을 경우 충청지역에서 당의 존립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합니다.”

    -노무현 후보의 등장과 관련, 한국정치는 노무현 후보 전(前)과 후(後)로 나누어진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요.

    “노무현 후보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주변에 고향사람이 없습니다. 대부분 정치인이 고향사람 중심으로 정치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고향사람들은 (노후보를)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노후보 주변은 전부 타향사람이에요. 노후보는 국회의원이 아니에요. 현역 의원이어야만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규칙이 깨졌어요. 노후보는 계보 정치인이 없어요. 또 어느 정치지도자 밑에서 수업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독자적으로 했어요. 한국의 정치행태를 전부 타파한 거예요. 그래서 노무현 이전의 정치행태와 노무현 이후의 정치행태로 나누어야 한다는 겁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국민의 변화 욕구를 감지하지 못할 때 노후보는 노사모 등을 통해 국민의 변화욕구를 읽어내 이를 대변했어요. 노무현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겁니다.”

    한대표는 “이건 어디까지나 내 판단”이라고 전제한 뒤 그가 바라본 노무현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노무현 후보 주변에 미남 미녀 탤런트들이 있어요. 하지만 노무현 후보는 미남이 아니에요. 얼굴 보고 표를 준다면 내가 더 많이 얻을 겁니다. 노무현 후보 주변에 박사 석사들이 많아요. 외국 유학 다녀온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노무현 후보는 대학 나온 사람이 아니에요. 노무현 후보주변에 돈 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노무현 후보는 재벌이 아니에요.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대선후보로 만들어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대리만족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이것을 ‘다수지향적 대리만족’이라고 표현합니다. 노후보의 지지기반은 서민인데 서민 아닌 사람도 가세했어요. 40~50대도 있지만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20~30대가 노사모예요. 그러니까 절대 다수예요. 그래서 정권재창출은 확실하다 이겁니다.”

    -얼마전 ‘대학생 64명 중에서 60명이 노무현을 지지하더라’는 예를 들어 노무현 현상을 설명한 적이 있었죠.

    “그건요, 조순승 박사가 대학 강의를 하는데 64명 학생에게 물어봤대요. 그랬더니 60명 정도가 노무현을 지지한다고 하더래요. 왜 그러냐니까, 첫째는 미군철수를 주장했고, 두번째는 가난한 사람을 돌봐줄 것 아니냐, 그리고 세번째는 민주화투쟁을 했다는 겁니다. 노무현 후보가 우리처럼 감옥 간 적이 없고 또 가난한 사람 편이라는 것은 서민편이라는 얘기니까 옳지만 미군철수를 주장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겁니다. 노무현 후보의 공약을 진보성향의 잘 다듬어진 정책으로 당에서 다시 조립해야지요. 예를 들면 부자 돈 가지고 가난한 사람 도와주자는 것은 소득 재분배의 원칙이니까 조세제도나 예산제도로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어요. 이렇게 재조립해내야 한다는 겁니다.”

    -반미문제는 어떻게 할 건가요.

    “노무현 후보가 말한 반미는 한국에 대한 잘못된 미국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이지 미국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선후보와 당대표가 분리된 최초의 사례라 개념이 잘 서지 않는데 후보와 당대표는 어떤 관계인가요.

    “당헌에 규정된 대로죠.”

    -후보의 당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한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말인가요.

    “좌우간 표를 얻는 데, 당선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어디 가서 후보를 앞세우고 후보를 추켜세워야 한다면 서슴없이 그렇게 할 것이고, 어디 같이 갔을 때 후보가 우선해야 한다면 잘 모시고 우선으로 할 겁니다.”

    권노갑 고문과 한화갑 대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말이 많다. ‘양갑 갈등’으로 두 사람은 사실상 결별단계에 이르렀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최고위원 경선 결과를 두고 동교동 구파를 대표하는 권고문과 신파를 대표하는 한화갑 대표 사이의 경쟁에서 한대표가 승리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대표는 ‘과거의 동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경선 직후 권노갑 고문이 진승현씨로부터 5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김옥두 의원이 아파트 특혜분양의혹으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동교동계 구파의 몰락이라 할만한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몰락이라는 말은 잔인한 표현인 것 같군요. 몰락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실체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권노갑 고문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현재 행위 때문이 아닙니다. 김옥두 의원도 몇 년 전의 일이 문제가 됐습니다. 특히 김옥두 의원의 경우 그의 행위가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 하는 차원이지 범죄는 아닙니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일은 문제도 안돼요. 민주주의가 만개한 사회니까 이런 것도 드러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의원의 행위를 범죄시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아요. 다만 도덕적으로 타당했냐를 따질 수 있을 뿐이지요.

    권노갑 고문에 대해서도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양반이 잘못한 것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는 말입니다. 한보 사태 때 권고문은 검찰에서 스스로 금품수수를 시인했어요. 정태수씨는 5000만원 줬다고 했는데 이 양반은 1억5000만원 받았다고 했어요. 양심대로 한 것이죠. 그런데 권고문은 이번에는 안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재판에서 밝혀지겠지만 과거 행동으로 볼 때 나는 그의 말을 믿습니다.”

    -동교동 구파 측 사람들은 ‘권고문과 김옥두 의원의 행동이 범죄가 아니라면 당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어요. 그런 문제까지 옹호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다만 (검찰에 조사받으러) 갔는데 억울하지 않게 해달라고는 했어요. 기자들의 물음에 대답할 때 말입니다. 아파트 계약했다 해약하고 계약금도 그대로 돌려받는 것은 계약자가 봐주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그러나 그 행위의 당사자가 정치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 거예요. 당에서 옹호해주지 않는다며 섭섭해 하겠지만 당으로서는 당의 입장이 있는 거예요. 개인이 당을 위해 헌신한 것은 얼마든지 옹호해줘야 하지만 재산권 행사를 하다가 문제가 된 것을 당에서 어떻게 옹호해줍니까? 김옥두 의원이 비록 같은 식구이긴 하지만…”

    -지금도 김옥두 의원과 같은 식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식구죠. 이번 경선 때 지구당에다 김옥두 의원 꼭 찍으라고, 나하고 둘을 찍으라고 지정했어요.”

    -지구당 대의원들에게요.

    “예.”

    -뜻밖입니다.

    “뭐가 뜻밖이에요. 나는 김옥두 의원을 그렇게 생각해요.”

    대화의 주제가 돌연 최고위원 경선으로 흘러갔다. 대통령 후보경선에 온통 관심이 쏠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고위원 경선을 둘러싸고 민주당도 적잖은 몸살을 알았다. 루머가 난무한 것은 물론, 돈과 관련한 잡음도 그치지 않았다. 한대표 자신도 돈과 관련한 소문에 적잖게 시달렸다.

    -박상천 최고위원은 ‘대표를 뽑는 선거여서 이번 최고위원 경선에 금품수수가 심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한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있는데요.

    “누구를 겨냥했다는 그 말은 안합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 쓴 순서대로 표가 나왔다’ 고 주장한다던데 그 말한 분의 지역구에 나는 가보지 않았어요. 지구당을 다 돌 수는 없잖아요. 허허허…. 이협 의원은 한푼도 안썼는데 5등 당선했으니까 다섯번째로 돈을 많이 쓴 사람입니까? 6등을 한 추미애 의원도 돈 한푼 안 썼는데 여섯 번째로 돈을 많이 쓴 사람입니까? 227명 지구당위원장 가운데 160여 명이 서명해서 나더러 최고위원 경선에 나와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주동적으로 일했던 분들이 선거비를 거둬가지고 썼어요. 나도 거기서 타서 썼어요. 그러니까 나야말로 공짜로 최고위원이 된 사람이에요. 이런 선거는 대한민국 정치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돈을 많이 쓴 후보 가운데 낙선한 사람도 있다는데….

    “그러니까 나쁘게 말하면 적반하장이고 좋게 말하면 표를 못 얻고 낙선한 데 대한 화풀이를 당선된 사람들한테 하는 거예요. 이거 솔직한 얘기예요. 내가 증거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누구라고 말은 안해요. ‘어떤 후보가 돈을 얼마나 주던데 이거 양심선언할랍니다’ 하고 전화한 사람도 있고 만난 사람도 있어요.”

    -차제에 경선비용이 얼마였다고 공개할 용의는 없습니까.

    “그것은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지난번에 김근태 최고위원도 양심선언했잖아요. 어떤 정치인이든 정치자금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사실대로 말하면 정치자금법 위반이 되고, 가만있자니 정치자금법 위반한 데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렇습니다. 민주주의가 좋은 점도 많지만 돈쓰기 경쟁을 유발하는 측면도 있어요. 미안한 얘기지만 유권자나 당원들이 그걸 기대하는 경우도 있어요.”

    -대표최고위원 당선 직후 민주당보와의 인터뷰에서 매달 당의 세입세출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는데….

    “한달 단위로 할 생각입니다. 5월에 얼마 썼다면 6월에 공개할 생각입니다. 당보에 실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할 겁니다.”

    -대표 판공비도 받지 않고 후원금으로 충당하겠다고도 했는데 무슨 얘기입니까.

    “그렇게 선언을 했어요. 매달 대표가 쓰는 돈이 수천만원입니다. 원외지구당이 120~130개 되는데 내 판공비를 원외지구당에 나눠주려고 합니다. 대표가 당원들에게 얻어 쓰는 것은 정치자금법에서도 문제가 안돼요. 당원들이 당에 헌금하는 데는 한도가 없어요. 그래서 진짜 여유 있는 사람들더러 대표실에 꽃값이 밀렸으니까 보태달라, 그렇게 할 생각이에요.”

    마지막으로 “한화갑식 민주당은 DJ의 민주당과는 어떻게 다르냐”고 물어보았다. 동문서답(東問西答)이었다.

    “과거에는 이런 것을 옹호해도 정치적으로 통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안통해요. 그만큼 세상이 맑아졌다는 얘기예요.”

    자기 스타일을 찾기에는 한대표를 둘러싼 정치환경은 여간 험악한 것이 아니다. 당내 반발에다 후보 따로 당권 따로라는 달라진 제도에 적응하느라 여유가 없었던 것도 한 이유였으리라. 여유가 없다면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인터뷰의 또 다른 묘미라는 생각에 질문을 바꿔보았다.

    -맑아졌다, 이것이 한화갑 스타일의 민주당이라고 봐도 됩니까.

    “딱히 한화갑 스타일의 민주당이 아니라 지금 국민이 원하는 바가 그렇다는 겁니다.”

    솔직하면서도 고지식한 한화갑 스타일의 대답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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