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자족경제’와 삶의 질 두 마리 토끼 잡았다

경상남도 거제시

  • 양영훈 < 여행작가 > travelmaker@hanmir.com

    입력2004-09-16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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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는 남해안의 수많은 섬 가운데 가장 크고, 우리나라 전체로는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그런데도 막상 거제도에 가보면 섬 특유의 한적한 분위기와 정서적인 단절감 따위는 거의 느낄 수 없다. 이 섬과 육지 사이의 견내량(見乃粱) 해협에는 한강다리만큼 거대한 규모의 신거제대교가 놓인 데다, 고속도로 못지 않게 시원스런 왕복 4차선 국도가 섬 깊숙한 곳까지 내달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속도로처럼 뻗은 국도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세계적인 규모의 조선소도 들어서 있다. 물론 거제도의 전지역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돼온 고현, 옥포, 장승포 등 북동부 해안지역의 풍경이 그렇다는 말이다.

    거제도 전체 인구의 산업별 분포를 살펴보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같은 2·3차 산업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섬이라는 지형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내륙의 공단도시 못지 않게 2차산업이 잘 발달했다. 그래서 거제시는 전국에서 자족기반이 매우 튼실한 지방자치단체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2·3차산업에 종사하는 인구와 산업시설은 대부분 북동부 해안지역에만 집중돼 있다. 그래서 그보다 훨씬 더 넓은 지역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깨끗한 바다, 따뜻한 인정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특히 거제도 서쪽의 거제만 일대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정한 청정해역으로 유명한데, 여기에서 생산·가공된 굴은 까다로운 검역절차 없이 전량 미국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거제시는 경제여건과 자연환경에 있어 사람 살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춘 도시다. 거제시의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도시의 경쟁력이 도농통합을 이룬 다른 기초자치단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경쟁력 전국 최고


    전국 232개(2001년 말 기준)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수도권이나 6대 광역시에 생활권이 포함된 지역이 아니면 해마다 인구가 감소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거제시는 1990년에 14만4000여 명이던 인구가 1999년에는 17만3000여명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1㎢당 인구밀도도 365명에서 433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일자리를 찾아서 거제도로 들어온 외지인이 적지 않았거나, 결혼한 뒤 분가한 거제 토박이들 중에 제 고향을 떠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제시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한국능률협회가 매년 전국 70여 개의 도시(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해온 ‘도시경쟁력 평가’에서 줄곧 최상위권에 들었다. 1997년에는 2위, 1998년에는 3위, 1999년에는 2위, 그리고 지난해에는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평가에서는 행정운용효율, 재정운용효율, 도시경쟁력, 기반시설, 도시생활의 질 등 10가지 항목을 지표로 활용했다. 거제시는 취업자 수와 기술집약적 산업 종사자 수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산업경쟁력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인구에 비해 문화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삶의 질도 높은 편으로 평가됐다.

    거제시가 전국 제일의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성장한 배경이 무엇인지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안정된 경제환경이다. 거제시 경제인구의 산업별 분포를 보면 1차산업이 20.2%, 2차산업이 40%, 3차산업이 39.8%으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2차산업의 비중이 가장 높다.

    거제시에는 두 곳의 국가산업단지(이하 국가산단)가 들어서 있다. 신현읍 장평리의 죽도국가산단과 거제시 아주동의 옥포국가산단이 그것이다. 수십, 수백개의 기업체가 들어선 여느 국가산단과는 달리 거제시의 두 단지에는 입주업체가 각각 한 개뿐이다. 장평리에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아주동에는 대우조선해양이 입주해 있다.

    입주업체는 각기 하나뿐이지만, 노동집약적인 조선업의 특성상 고용창출효과는 대단히 높다. 종업원 수가 죽도국가산단은 1만1000여 명, 옥포국가산단은 1만5000명에 이른다. 두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2만6000여 명이니 종업원 한 사람에 딸린 식솔을 2∼3명으로만 계산해도 17만 거제시민 중 적어도 7만∼10만명이 두 조선소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지역실정이 이렇다보니 거제시 전체의 경기도 조선업계의 경기동향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굴지의 재벌과 중견기업들이 연쇄도산하는 와중에도 조선업계는 호황을 누려왔다. 특히 거제시의 최대 기업인 대우조선은 모그룹의 해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지난해 업계 1위의 수주실적을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5월 현재의 수주잔량이 2년6개월치에 이른다.

    조선업계의 호황에 힘입어 거제시는 올 1·4분기에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네번째로 많은 액수의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했다. 같은 기간의 수출액은 14억1775만달러로 경상남도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2위(1위는 창원시)에 올랐다. 거제시의 재정자립도는 여느 기초자치단체들의 10%대를 훨씬 상회하는 33%에 이른다. 또한 주택보급률은 101%, 상수도보급률은 78%, 도로포장률은 88%, 자동차 보유대수는 1.2세대당 1대나 된다.

    그러나 경제수준이 높다고 해서 삶의 질도 반드시 높은 것은 아니다. 삶의 질을 향상하려면 경제적인 조건 못지 않게 정서적인 환경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청정한 바다와 수려한 자연을 품은 거제시의 정서적 환경은 매우 양호한 편으로 볼 수 있다.

    거제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자. 먼저 14번 국도를 타고 동남부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와현, 구조라, 학동몽돌, 함목, 명사해수욕장 등이 줄을 잇는다. 북쪽의 장목면 해안을 따라가는 58번·1018번 지방도로변에도 덕포, 흥남, 농소몽돌, 구영, 황포, 물안해수욕장이 연이어 나타난다. 시종 풍광 좋은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 거제도의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다.

    특히 남부면 홍포마을에서 여차마을 사이의 해안도로는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답고 상쾌한 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을 만하다. 대병태도, 소병태도, 가왕도, 다포도, 매물도 등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닷가를 따라 가파른 벼랑길이 이어지는 코스다. 수십길 높이의 가파른 절벽과 원시림처럼 짙푸른 숲,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해안 가까이에 오롱조롱 떠 있는 섬들의 어울림이 가히 환상적이다. 더욱이 이 길은 노면이 울퉁불퉁하고 왕래하는 차량도 많지 않은 흙길이라 태고연한 자연미와 한적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물빛이 맑고 수심이 깊으며 갯바위가 많은 거제도의 해안에는 바다낚시 포인트도 즐비하다. 거제시 어디에서나 차로 10∼20분만 달리면 몽돌해변을 소요하거나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다.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 야트막한 고갯길을 하나 넘어서면 뜻밖에도 첩첩산중에 들어선다. 거제도에는 섬답지 않게 최고봉인 가라산(585m)을 비롯해 계룡산(555m), 옥녀봉(554m), 노자산(565m) 등 해발 400∼500m급의 봉우리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거제도에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관광명소도 적지 않다. 그중 남부면 갈곶리의 거제해금강은 거제도의 수려한 자연풍광을 대표해온 절경이다. 한때 거제도를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해금강을 구경하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적이 있었다. 적어도 1995년 구조라해수욕장 남쪽의 작은 섬에 외도해상농원이 처음 문을 열기 전까지는 그랬다.

    본래 ‘갈곶도’라 불리는 거제해금강은 섬 전체가 깎아지른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무인도다. 그러나 깎아지른 암벽 끝에는 수백년 동안의 모진 비바람과 해풍을 견뎌온 노송이 우뚝하고, 섬 머리께의 울창한 숲에는 희귀 난초를 비롯해 700여 종의 식물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대양에서 쉼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절벽 곳곳마다 십자동굴, 부엌굴 등의 해식동굴과 용트림바위, 촛대바위, 신랑신부바위 같은 기묘한 형상을 빚어놓아 북녘땅의 해금강 못지 않은 절경을 이룬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해금강이라 불리기 시작했고, 1971년에는 강릉 소금강계곡의 뒤를 이어 명승(名勝) 제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몇해 전부터 거제해금강을 제치고 거제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외도해상농원은 외도(外島, 밖섬)에 들어서 있다. 행정구역상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에 딸린 외도에는 원래 8가구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뭍으로 나가 살기를 소망하던 주민들은 현재 이 섬의 주인인 이창호씨에게 땅을 팔고 모두 뭍으로 떠났다. 이창호씨 내외는 25년 동안 피땀 흘려 이곳을 국내에서 으뜸가는 해상농원으로 탈바꿈시켰다.

    4만7000평에 이르는 외도해상농원은 발길 닿는 곳마다 선인장동산, 화훼단지, 비너스가든, 천국의 계단, 코카스가든, 놀이조각공원 등의 테마정원으로 정성스레 꾸며져 있다. 낯선 수목과 화초들이 가득한 정원에는 지중해풍의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머나먼 이국 땅의 어느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비수기, 성수기 가릴 것 없이 주말과 휴일만 되면 외도해상농원을 구경하려는 외지인들이 줄을 잇는다. 덩달아 거제도의 6개 관광유람선 업체들도 외도를 찾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해진다. 거제도의 관광유람선 업체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외도해상농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거제시에는 그밖에도 민간이 운영하는 관광명소와 휴양시설이 몇곳 더 있다. 그중 동부면 구천리 일대의 5000여평 부지에 들어선 거제자연예술랜드는 국내 최대의 난(蘭) 전시장 중 하나다. 그밖에도 옥포동에는 우리나라 고대와 중세의 각종 유물들이 전시된 거제박물관이 있고, 동부면 영월리의 2만여 평 부지에 조성된 문화관광농원은 30여 개의 객실과 야외영화관, 야외수영장, 레스토랑 등을 갖춘 대형 관광농원이다.

    민간시설은 아니지만, 거제시 산하의 시설관리공단에서 직영하는 거제자연휴양림도 빼놓을 수 없다. 동부면 구천리 노자산 기슭의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이 휴양림에는 야영장, 통나무집, 방갈로, 체력단련시설 등이 들어서 있어 주로 가족단위의 휴양객이 많이 찾는다. 숲이 좋고 도심과 가까워 평일에도 이용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 덕택에 전국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휴양림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거제시의 풍부한 관광자원에 비해 편의시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시 전체를 통틀어 보면 관광호텔이나 모텔, 장급여관 등 숙박업소의 수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대부분 고현, 옥포, 장승포 등지의 시내에만 집중돼 있다. 관광명소가 많은 동남부 해안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그동안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많았다. 그래서 관광단지의 개발은 물론 건물 신축도 맘대로 할 수 없었다.

    거제해금강을 끼고 있는 남부면 갈곶리의 경우 숙박시설이라고는 이름만 ‘호텔’인 낡은 여관 하나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민박집들이 전부다. 최근에 규제가 완화되면서 장급 여관 수준의 시설을 갖춘 민박집이 하나둘씩 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그래서 거제시는 국립공원 관리권을 이양해 달라고 중앙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와 함께 해금강 집단시설지구와 장목관광단지 개발, 동백테마공원과 조선테마공원의 조성, 거제타워와 홍포·수산 전망대의 건립 등을 장기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근래에는 한국전쟁 당시 거제포로수용소가 자리했던 신현읍 일대에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관을 세우고 당시 수용소의 일부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또한 거제시는 장목면과 부산 가덕도 사이를 ‘거가대교’로 연결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왔다. 거제도는 원체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데다 고속도로 IC까지의 거리도 멀어 한번 찾아가려고 마음먹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부산, 마산, 진해 등 인근 도시들과의 해상교통이 비교적 잘 발달해 있다. 특히 부산항과 거제도를 연결하는 쾌속선의 출항지는 고현, 옥포, 장승포 등 세 곳이나 된다. 하지만 뱃길은 기상 악화에 따라 수시로 끊기기 때문에 육로에 비해 안정적인 교통로가 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거가대교 건설계획이다.

    거가대교는 오는 10월에 착공해 2007년에 준공되는 것으로 최근 건설계획이 확정됐다. 너비는 왕복 4차선이며, 길이는 서해안고속도로의 서해대교(7.3㎞)보다도 더 긴 8.2㎞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침매터널(미리 육지에서 제작해 바다에 가라앉힌 터널) 3.7㎞, 사장교 2.2㎞, 현수교 2.3㎞로 설계된다. 문제는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공사비인데, 국비(5500억원)와 민자(9500억원)를 유치해 사업비로 충당할 계획이다. 거제시는 거가대교와 함께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거제도까지 연장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고속도로가 거제도까지 연장되면 거가대교를 통해 부산으로 왕래하는 길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사실 거제도, 특히 남부와 서부해안의 때묻지 않은 해안절경에 매료된 외지인의 입장에서는 거제시의 이런 눈부신 변화가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인구가 밀집한 도심과 거대한 산업시설을 지척에 두고도 이처럼 자연 그대로의 풍광을 간직한 곳이 거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경제적 여건과 자연환경이 균형과 조화를 이룬 거제시의 현재는 적잖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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