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하늘과 맞닿은 환상의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

  • 김선겸

    입력2004-09-16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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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맞닿은 환상의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

    카라코람 산맥에는 웅장한 빙하가 많기로 유명하다.만년설로 뒤덮인 호퍼 빙하를 굽어보는 사람들.



    수많은 고봉과 빙하로 이루어져 있는 카라코람 산맥은 오랫동안 인간의 발길을 거부했던 험준한 지역이다. 그러나 자연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는 결국 이곳에도 길을 만들었다. 중국의 카슈가르에서 파키스탄 카슈미르를 연결하는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바로 그것이다. 해발 3000∼5000m 고도에 위치한 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경이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출발지인 카슈가르는 중국에 속하지만 인종과 언어가 한족과 전혀 달라 오히려 중앙아시아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요일마다 이 도시는 활기에 넘친다. 서역전에도 등장했을 정도로 유명한 일요시장이 열리기 때문. 일요일 아침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당나귀 수레에 물건을 싣고 장으로 모여들어 걷기도 힘들 정도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토요일에 카슈가르에 도착해 일요시장을 보고 다음날 아침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파키스탄으로 넘어간다.

    매일 낮 12시경에 출발하는 한 대의 버스가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다. 중국과 파키스탄을 오가는 상인들과 여행자들은 모두 이 버스에 몸을 의지한 채 험준한 산맥을 넘는다. 버스가 카슈가르를 벗어나면 곧이어 눈 덮인 힌두쿠시 산맥이 시야에 들어온다. 1년 내내 만년설이 덮여 있는 힌두쿠시 산맥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 타쉬쿠르칸의 적막한 밤



    하늘과 맞닿은 환상의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넘나드는 트럭들. 파키스탄인들은 트럭을 매우 호화롭게 치장한다(왼쪽). 여행자들의 포근한 휴식처 카리마바드의 야경

    끊어진 도로를 덜컹이며 힘겹게 돌아가는 버스 왼쪽으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돌산이 보이고 계곡에는 강물이 시원스레 흐르고 있다. 버스는 화장실이 급한 사람들을 위해 몇 차례 정차할 뿐 쉬는 법이 없다. 그렇게 7∼8시간을 달린 자동차는 해가 질 때쯤이나 되서야 타쉬쿠르칸에 도착했다. 해발 3600m 지점에 위치한 이 도시는 중국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워낙 험한 길이라 여행자들은 모두 이 도시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다시 출발한다. 온통 적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타쉬쿠르칸에서 여행자가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객고를 달래려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면 가뜩이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 고산병 증세가 더욱 심해지므로 빨리 잠을 청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깨어나 보니 이미 다른 여행자들이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중국측 이민국은 타쉬쿠르칸에서 3∼4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3∼4시간씩 걸리는 수속을 받다보면 진이 다 빠진다.

    하늘과 맞닿은 환상의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

    여행자들이 낙석으로 인해 유실된 길을 살펴보고 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워낙 험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왼쪽). 파키스탄 카슈미르의 훈자에서 만난 아이들. 아이들의 서구적인 얼굴이 이채롭다. 훈자에서는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당시 정착한 그리스 병사의 후예들을 찾아볼 수 있다.



    4시간 만에 수속을 마친 버스가 다시 길을 재촉했다. 버스가 고도 4000m가 넘는 곳에 이르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파키스탄인이 두통 증세를 호소했다. 고산병 증세였다. 그는 괴로운 듯 계속 이마를 조아리고 있었다.

    몇 시간 후 버스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최고점인 중국과 파키스탄의 경계에 도착했다. 해발 4900m 지점에 위치한 국경 주변은 너무나 아름답다. 눈부신 설산이 푸른 하늘 위로 솟구쳐 있고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이 조그만 연못을 이뤄 은빛 물결로 반짝인다. 파키스탄의 국경검문은 여권조사만으로 간단하게 끝났지만 경치에 반한 여행자들은 버스에서 내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버스가 파키스탄 영토로 넘어가자 바로 쿤제라브 패스(Khunjerab Pass)가 시작된다. 쿤제라브는 ‘피의 계곡’이란 뜻으로, 오랜 옛날 산적이 이 길을 넘던 대상과 수도승을 상대로 약탈을 자행해 늘 피가 계곡에 흘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하늘과 맞닿은 환상의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

    캬슈가르 시장에서 양고기 꼬치를 굽는 모습. 양고기 꼬치는 카슈가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왼쪽). 카슈가르의 노천시장 모습. 카슈가르는 중국 영토이지만 중국과는 인종이나 종교, 언어가 전혀 다르다.

    이 계곡은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하이라이트다. 꼬불꼬불한 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의 한쪽은 수십m의 낭떠러지이고, 다른 한쪽 산자락에는 바위덩어리가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듯이 위태롭게 걸려있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쿤제라브 패스를 통과하면 장수마을로 유명한 훈자와 서스트에 당도한다. 수만년 전에 생긴 빙하를 비롯해서 아름다운 계곡과 산이 많고 순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많은 여행자들이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실질적인 종착지로 삼는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자연의 제약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하듯 보여주는 길이다. 문명이 발달하기 훨씬 전부터 혜초나 법현, 현장법사 등의 구도승과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이 길을 개척했고, 그것이 토대가 되어 오늘날의 도로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넘을 때는 철저히 자연과 동화되어야 한다. 자연을 이겨낸다는 오만함이 아니라, 자연의 숭고함을 깨닫고 그들과 하나가 되고자 할 때 또 다른 길이 보일 것이다.

    하늘과 맞닿은 환상의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

    카리마바드에서 경작한 감자를 수확하는 아이들(왼쪽).노천시장에서 면도를 하고 있는 서양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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