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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해수의 간이역 순례기

죽도록 그리우면 기차를 타라

  • 박해수 < 시인 > jockey@donga.com

죽도록 그리우면 기차를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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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아홉 나이로 이승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며 병아리 가슴털 같은 시심을 돋우려 다시 역을 찾아나선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간이역을 그것도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곤혹을 느끼면서도 주말에는 기차를 탄다. 때로는 등산열차를, 눈꽃열차를, 바다열차를 탄다.

그리운 사람과 그리운 사랑이 거기 그 역에 살고 있으니 역을 찾아나서는 결곡한 까닭은 잃어버린 시간과 잃어버린 추억을 찾기 위함이다. 간이역에 우두커니 서서 상큼하고 달디단 바람을 매만지며 유난히 눈 많고 추웠던 겨울을 생각한다. 그래도 풀섶 어딘가에 죽순과 쑥갓, 제비꽃이 함초롬히 피어 있고, 생명의 여린 숨결이 끈질기게 술래잡기하고 있었음이 그 얼마나 소중하고 애틋한 것인가. 이번 주말엔 휴대전화를 끄고 이슬이 소리 없이 뒹구는 세월의 영마루를 뒤에 남겨두고 바다가 있는 역을 찾아 길 떠나볼까.

문산역을 지나 장마루촌 장파리역에도 가본다. 오늘 그 역은 숨었지만, 전쟁 역시 늙은 소나무 옛 등걸 속에 숨었다. 그래도 역은 항상 ‘거기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역 순례에 나선 건 각각의 역들이 지닌 역 고유의 의미와 서정을 시로 담아내기 위해서다.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끊임없이 표류하던 시적 자아가 회색빛 도시 문명을 탈출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충동질한 탓이다. 물론 그동안 사라져버린 간이역도 많다. 이럴 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간 유년시절의 기억이나 군복무 시절의 추억, 여행에서 조우하는 그곳 사람들의 증언으로 되살리곤 한다. 현존하는 역들은 현장 답사를 통해 시의 생명력과 생동감을 돋운다. 전국에 흩어진 768개의 역들과 146개의 간이역은 10권 이상의 ‘역 시집’으로 간행될 것이다. 더불어 역에 얽힌 이야기와 시들을 모아 ‘역과 시가 있는 에세이’를 출간할 계획도 갖고 있다.

숱한 역들만큼이나 투영된 이미지도 역의 정경과 계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잔잔한 서정의 노래도 있고 삶의 깊은 수렁 속에 가득 찬 고뇌와 애환의 목소리도 스며있다. 하양역은 어머니의 야윈 젖가슴이었다. 목포역은 어머니의 애틋한 그리움처럼 다가왔다. 동짓날 밤이 깊어가는 조치원역에선 한 마리 새가 되었고, 스물넷 왜관 순심여고 교사 시절 자주 오갔던 왜관역에선 목련꽃 지는 슬픔에 젖어보기도 했다.

일 년 넘어 계속된 역 순례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역시(驛詩)의 직접적인 집필 동기가 된 것은 낡은 사진 한 장이다. 어머니가 처녀시절이던 1938년 1월 촬영한, ‘기차 철로 위에 선 부평(浮萍)의 몸을…’이라는 글귀가 쓰인 사진 한 장. 그 사진에서 나는 역 순례의 모태를 찾았다. 열아홉 살 어머니가 서있던 옛 기찻길. 그래서 역은 내 시의 고향이며 늙으신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어머니역이다. 무청, 배추잎, 상추, 쑥갓, 살구씨를 말리시던 어머니. 새마을호도, 무궁화호도 서지 않는 간이역처럼 어머니는 여든 중반을 넘어오셨다.



요즘 역들에선 늙은 역무원이 수기(手旗)를 흔드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듯 우리들의 망각 속에 쉽게 버려지는 것이야말로 어떤 존재를 가장 올바르게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완행열차를 타고 동촌역, 반야월역, 청천역, 하양역, 경산역, 청도역, 밀양역, 영천역, 신동역, 왜관역, 선산역, 인동역, 구미역, 지금은 없어진 고모역 등 대구와 가까운 역들을 지나노라면 사춘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과수원 사과꽃처럼 흩날리기도 한다. 중학교 2학년 때였을까. 한 여자 중학생을 따라 철둑길을 넘어 긴 평행선을 줄곧 따라가보기도 했다. 그땐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면, 무엇보다도 기차역 부근에 오면 슬픔과 고통을 먼 기적소리와 함께 날려보낼 수 있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보병학교가 있었던 광주의 역. 녹색 군복과 함께 내린 광주역. 극락교를 지나 완전군장에다 동장군과 함께 구보(驅步)로 내린 그 역이 바로 광주역이었다. 16주 훈련과 함께 행군으로 만났던 장성역, 나주역, 송정리역도 생각난다. 진눈깨비와 함께 섞어먹던 밥. ‘눈물 섞인 밥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옛말은 어느 정도 사실인 듯하다.

혼자 울고 싶은 날, 나는 기차를 탄다. 낙동강 철교를 지나 면소재지의 농촌 역을 찾는 것이다. 발길 닿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시를 쓰다 역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면 역 이름을 찾기 위해 잊고 있었던 역을 다시 찾는다. 39년 전 잊어버린 첫사랑도 간이역에 살고 있었고,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펜팔을 하던 추억의 소녀도 간이역에 살았다. 사랑을 잃어버린 개찰구와 기차표는 어디로 갔을까.

그렇다. 내 몫으로 남은 시간이란 이렇게 자그마한 간이역과 같으니 내 즐겨 간이역을 찾으련다. 이승의 것들도 언젠가는 간이역처럼 없어지거나 떠나고 말 것이라 생각하면 암연(然)이 수수(愁愁)롭다. 오늘도 고즈넉한 쓸쓸함이 논두렁길, 초승달, 명왕성 속에 살아 있듯 내가 사랑하는 것들도 간이역에 살아있다.

간이역에 살아 숨쉬는 것들

내가 즐겨 찾아간 역들은 급행이 잘 서지 않는 곳이다. 완행열차가 오래 서는 곳이다. 삶의 삽이 한 자루 꽂혀 있고 그 삽처럼 홀로 서있는 조그만 역은 문경역이다. 이곳에선 뼈마디 쑤시는 아픔과 함께 가슴 아린 아픔이 저탄창고와 막장 속에 숨어 있다. 건널목에 붉은 등이 켜지면 열차는 쏜살같이 사라지고, 연탄 한 장 새끼줄에 달고 가는 삶의 고달픈 하루가 있었다. ‘미로(迷路) 찾기’ 같은 삶과 달리 역에는 마침표가 없다. 단지 쉼표, 느낌표, 물음표, 말없음표만 있을 뿐이다. 역은 이렇게 현재진행형이다.

비 오는 주말, 게으름의 방문을 열고 나서라. 죽도록 그립거나 외로우면 기차를 타라. 기차를 타지 못하면 전철이라도 타라. 전철도 막차를 타면 역을 찾아가는 길처럼 고달픔과 함께 그리움을 만날 수 있다.

내 어린 날 삶의 한 일면은 대구역 철도 관사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를 그리워하는 추억이다. 친구의 집에서 처음 본 전축, 기차 장난감, 증기기관차의 모습은 내 마음에 아직도 남아있다. 긴 테이프가 있는 녹음기가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철도 관사에만 가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막연한 그리움이 생겨났다.

먼 하늘에 붉은 노을 사라지고/ 갈매기떼 길을 찾아날아들 때/ 이리저리 방황하며 나부낄 때/ 샛별 등대저만치서 빛납니다

초등학교 때 꿈을 키우며 부른 노래는 스무 살이 되고 불혹을 넘어 이순(耳順)이 될 외로운 아침이 되어도 잊지 못한다. 친구의 부음으로 문득 삶이 아파오면 솔순 이파리처럼 간이역은 가로등 같기도 한, 상가(喪家)의 깜박거리는 불빛처럼 쓸쓸한 역이 된다. 연착한 기차는 인생 지각생처럼 내 삶을 등뒤로 자꾸만 밀어낸다.

어둠의 끝자락에 매달려오는 기차는 고향 동구밖을 지난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1960년대 새마을 운동 얘기에 열이 올랐다. 미나리꽝엔 그때처럼 돌미나리가 새파랗게 총총 돋아나 있다. 동촌역에서 철길을 따라 대구역까지 걸어왔다. 푸른 스무 살 연애시절이 어느새 가슴에 다가와 있다. 솔숲 산에서 후두둑 내리는 소낙비를 맞으며 쏘다니다 철둑길을 걸으며 하루의 반나절을 꼬박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역에는 사람의 사랑과 숨결과 체온이 함께한 흔적도 남아있다. 역 주변엔 여인숙이 많았다. 여인숙은 씁쓸하게 젖은 날 젊은 시인의 눈물 같은 집이다. 새 이정표를 찾아 길 떠나며 하루를 묵어가는 쓸쓸한 잠자리가 있는 역은 삶의 포장마차 같은 곳이다. 바람처럼 왔다 다시 열차에 올라 어둠 속으로 떠나가는 길목엔 구절초 같은 사랑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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