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호

‘재수’ 끝에 당선된 경기도지사 손학규

“중앙정부 정책 무턱대고 따라가지 않겠다”

  •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hwang@donga.com

    입력2004-09-01 13:5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경기도는 예산에서 서울시를 앞질렀고 내년 말이면 인구에서도 서울을 추월해 전국 최대의 지방자치단체가 된다. 전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경기도는 3월말 현재 인구 964만명으로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손학규 신임 경기도지사는 1970년대 유신 치하에서 10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했고, 영국에서 늦깎이 공부를 해 교수를 거쳐 정치에 입문했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3선 의원이 되었다. 보건복지부 장관 경력도 쌓았다. 경기도지사 자리는 그에게 더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한 전초기지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 여건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주지사를 하다가 대통령이 된 인물이 수두룩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주지사를 지냈고, 빌 클린턴 전임 대통령은 아칸소 주지사 출신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중앙 정치의 소용돌이가 너무 거세, 중앙을 떠나면 정치에서 소외돼 묻혀버리기 쉽다. 그렇다고 도지사가 중앙정치에 부단히 얼굴을 내밀다가는 도정에 소홀하다는 비난을 받기 딱 알맞다.

    아직도 월드컵의 여진이 남아있는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손지사를 만났다. 손지사는 수원 출신의 박지성 선수와 함께 수원공고에서 월드컵경기장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월드컵 기간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싹쓸이에 가까운 압승을 해, 도정의 견제와 균형을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됐다. 경기도를 예로 들면 도지사가 한나라당이고 경기도 의회 전체 의석 104명 중 90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31명의 시장·군수 중에서 24명이 한나라당 당적이다.



    이인제와 유사한 행로

    ―한나라당이 수도권 선거에서 압승한 요인은 무엇이라고 분석합니까. 대통령 아들 시리즈 덕을 본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이 정부에서 누적된 부정부패와 비리, 정책 수행과정에 대한 불신 그리고 외교적 실패의 영향이 컸습니다. 게다가 대통령의 아들 둘이 비리에 연루돼 국민 감정에 불을 붙였다고 할 수 있지요. 광역 자치단체 선거는 정치적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지사는 경기도지사를 하다가 대권에 도전한 이인제 민주당 의원과 경력이 비슷하다. 두 사람은 경기도내 선거구에서 비교적 순탄하게 내리 3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노동부 장관을, 손지사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한나라당은 정치 뿌리로 보면 민정계, 지역으로 보면 영남이 주류입니다. 정가 주변에서 흔히 ‘정치는 패거리 짓기’라는 말을 합니다. 손지사가 그랜드 플랜을 짜기에는 당내 세력이 미미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의 비전이나 파벌 개념으로 보면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정치의 시동을 걸려고 합니다. 과거처럼 파벌이나 돈 또는 지역에 기초한 정치는 이제 불식돼야 합니다. 이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 당이 국민으로부터 장기적으로 신뢰를 받자면 새로운 정치의 힘이 필요합니다.”

    ―‘미래연대’소속 젊은 의원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미래연대 의원들은 중진의원 중에서도 비교적 나를 가깝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여러가지 일을 함께 의논하고 있습니다. 국회에 있을 때 젊은 의원들과 함께 한·중포럼을 결성해 중국 시찰을 했습니다. 공통의 관심을 갖고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나라당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는 경선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합의됐습니다. 경기도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뿐만 아니라 당내 젊은 의원들 사이에서 이구동성으로 손학규를 후보로 내세워야 승리한다는 컨센서스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당내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돼야 한다는 암묵적인 의견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꿈을 꾸면서 중앙정치에 초연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중앙무대에 얼굴을 자주 내밀면 도정을 소홀히 한다는 비난을 들을 테고…. 딜레마일 것 같아요.

    “딜레마가 아닙니다. 경기도의 경쟁력을 키우고 경기도 주민의 소득과 삶의 질을 높이면 그것이 대한민국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전체 중소기업의 4분의 1, 첨단산업의 37%가 경기도에 있습니다. 경기도를 잘살게 하고 기업하기 좋은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곧 대한민국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지사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봅니다.

    정치의 개념이 바뀔 것입니다. 중앙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에 대한 국민적 염증이 왜 생겨납니까. 국민의 삶 또는 국가 경쟁력을 개선하는 일에 소홀하고 자기네들끼리 편 가르기하고 대권 싸움만 하니까 불신을 받습니다. 그런 중앙정치는 불식돼야 합니다.”

    햇볕정책은 계승해야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인 업적과 대표적인 실패를 하나씩만 들어보세요.

    “남북교류의 진전이 현정부의 업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그 얘기도 하기가 힘들어졌지만…. 나는 공개적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고 나서 햇볕정책은 그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비난이 나올 때도, 나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서해교전에서 정부와 군의 대응은 분명한 잘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펴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고 개방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김대중 정부의 업적만 말하고 답변을 그만두길래 대표적인 실패에 관해서도 말해보라고 다시 채근했다.

    “대표적인 실패는 부정부패입니다. 아주 불행한 일입니다. 이 정부 초기부터 부정부패에 신경이 무디어진 상태에서 한풀이가 부정부패로 연결된 것 같아요. 이 점은 선거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선거 분위기가 점점 나아지던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 들어와 보궐선거, 4·13총선을 치르며 다시 과거로 회귀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포용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시각으로 보면 한나라당이 남북문제에서 지나치게 보수층의 정서 또는 과거의 냉전논리에 영합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남북문제에서 한나라당의 보수적 입장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불행히도 김대중 정부의 실패가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할 수 있는 사람들마저 돌려놨습니다. 중간층마저 반사적으로 우경화하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더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지요.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보수적인 정서에 영합한다기보다는 김대중 정부가 상대적으로 보수층을 두텁게 만들어버렸습니다.”

    특정 학교에 관한 이야기는 특정 지역에 관한 이야기만큼이나 조심스럽다. 자칫 잘못하면 선의의 사람들의 마음에 아린 생채기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세인의 관심이 쏠리는 사안을 덮고 지나가는 인터뷰는 팥소가 빠진 안흥찐빵이나 다름없다. 손지사는 경기고등학교 61회 졸업생이다. 이회창 총재는 49회니까 손지사의 12년 선배다.

    ―이회창 후보 주변에 경기고 출신들이 많습니까.

    “한현규씨를 정무부지사로 임명하면서 망설인 이유가 바로 한씨가 경기고 출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건설부 주변에서는 한현규 부지사의 능력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구동성으로 탁월하다고 얘기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양심에 거리낄 게 없고 꼭 그 사람이 필요해 선택했습니다.

    이회창 후보도 그런 고민이 있을 겁니다. 내가 경기고 나왔고 이회창 후보가 경기고 나왔지만, 나는 한번도 이회창 후보한테 고분고분한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대립각을 세워왔습니다. 199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경기고 선배인 이회창씨를 지지하지 않고 서울고를 나온 이수성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또 이회창 후보에 대항해 총재 경선에도 나갔습니다.

    이회창 후보의 심기를 거슬리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 한나라당이 장외 투쟁을 할 때 민생문제 해결하기 위해 무조건 원내에 들어가자고 주장했습니다. 당내 민주화를 위해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자고 누구보다 먼저 말문을 텄습니다. 이회창 후보 본인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후보 측근들은 심기가 불편했겠지요.

    경기고가 뭉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인재들이 많은 경기고 출신들이 선후배를 봐주다 보면 정말로 배타적인 사회가 됩니다. 그동안 경기고 출신들이 주체적으로 세력을 형성할 일이 없었는데, 이 정부 출범 후 이회창 총재가 탄압을 받는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경기고도 모여야 되는 게 아니냐’ 는 분위기가 일부 동문들 사이에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회창 후보는 동창회 근처에도 웬만하면 안 나오고 주변에서는 경기고 출신들을 의식적으로 배제합니다. 이회창 후보 가까이에 경기고 출신이 거의 없을 겁니다. 비공식적인 이너서클에도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경기고 출신이 많지 않다고 봅니다.

    경기고 출신 중에 고시에 합격해서 출세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사람을 쓰려고 보면 눈에 많이 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검찰에서 고위급 간부를 시켜야 될 후보군에 경기고 출신들이 많다고 해봅시다. 객관적으로 갑과 을 둘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둘 다 경기고 출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손지사의 출생지는 경기도 시흥이다. 손지사는 김영삼 정부 초기 광명시 보궐선거에 나서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지금의 광명시는 행정구역 상으로 시흥군 서면이었다. 손지사는 광명에서 내리 3선을 했지만 4년 임기를 한번도 채운 적이 없다. 15대 때는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사퇴했다. 4·13 총선에서 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을 지냈던 조세형씨와 격전을 치를 때 ‘임기 안 채우고 도지사 출마할 사람’이라는 비난이 나오자 임기를 채우겠다고 공약했다.

    ―여하튼 임기 채우겠다는 약속을 못 지켰습니다.

    “굳이 변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까 말한 대로 한나라당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경기도지사 후보로 지목되는 분위기가 1년 이상 지속됐습니다. 임기중 사퇴하고 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것을 심각한 오류라고 생각했다면 도지사 선거에서 그렇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 주지 않았겠죠. 광명 시민들이 적극적이고 열렬하게 축복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키워낸 손학규가 경기도지사가 돼 광명을 더욱 발전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경기도에는 잠만 경기도에서 자고 낮에는 서울에서 일하는 도민이 태반이다. 서울로 가는 출근길은 갈수록 막히는데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는 도로와 철도 건설은 거북이 걸음이다. 또 경기도는 인구가 광역시도 중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면서 교실과 교사 부족으로 교육환경이 열악하다.

    경기도 용인·고양 일대에서는 남(濫)개발도 심각하다. 경기도내 100여 개 지구에서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 도로와 상수도 등 사회기반시설과 학교 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건설업자들이 마구잡이로 허가를 받아 아파트를 건설하다보니 교통·환경·교육·상하수도 문제로 고통을 겪는 주민들이 많다.

    재수를 해서 지사가 된 손씨는 그동안 경기도 행정에 대해 얼마나 공부를 했을까. 경기도정에 관한 질문에는 공보관실에서 만들어준 자료를 자주 들여다보면서 답변했다. 방대한 경기도정을 꿰려면 선거용 벼락치기 공부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경기도 분할에 관한 논의가 오래 전부터 거론되고 있습니다. 경기도 인구가 1000만 명을 곧 넘어설 정도로 비대한 편입니다. 서울이 중간에서 가로막아 경기 북부와 남부는 서로 오가기 불편하고 지역의 특징이나 정서도 다릅니다. 임기중에 경기도 분도(分道)를 과감하게 추진할 뜻이 없습니까.

    “장기적으로는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봅니다. 경기도의 경쟁 상대는 대한민국 내 다른 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해 중국의 상하이(上海)권·베이징(北京)권·광저우(廣州)권, 일본의 도쿄(東京)권 미국의 뉴욕권과 경쟁관계에서 경기도의 위상을 찾으려고 합니다.

    경기도 북부지역은 군사시설 보호구역 등 여러가지 규제가 많아 발전에 제약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접경지역 지원법이 마련돼 경기 북부의 미개발 지역은 오히려 자산이 됩니다. 남북교류의 전진기지이고 안보 관광자원과 자연 자원이 풍부합니다. 그러나 지금 경기도 북부지역의 재정 능력으로는 독자적인 개발이 어렵습니다. 경기도 전체를 하나로 묶어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할 때 경기도 북부지역이 발전의 틀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의정부에 있는 제2청에서 거의 모든 행정 민원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서울이 중간에 가로막고 있다고 하지만 수도권 순환고속도로 같은 교통망을 만들면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의 교통 연결이 훨씬 순조로워질 것입니다.”

    ―남개발 문제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갖고 있습니까.

    “더 이상 남개발을 용인하지 않겠습니다. 기왕 남개발된 지역은 교통 교육 환경을 잘 정비해 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빠른 시일 안에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남개발이 여론을 타면서 국토 이용 계획에 관한 법률이 새로 정비돼 기본적으로 선(先)계획 후(後)개발로 제도가 바뀌었습니다.

    남개발은 한마디로 집만 지어놓고 생활기반 시설을 전혀 만들어놓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어떤 아파트 단지는 그 앞에 또 다른 아파트 단지가 생기는 바람에 진입로가 없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직주(職住)일치, 직장과 주거가 한 도시 안에 있어야 합니다. 집과 일터가 한 도시에 있고 그 안에서 문화생활도 누릴 수 있는 자족적인 도시 건설을 해나가야 합니다.

    경기도 전체의 개발계획을 크게 그려보려고 합니다. 서울은 완전히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수도권의 주택난을 경기도가 해결해야 합니다. 중앙 정부가 서울의 집값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만 달성하려고 하다보니 부작용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에 따라가다가는 경기도도 망하고 그것 때문에 수도권의 생활환경이 더 악화됩니다. 철저하게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오는 주택과 산업을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밑그림을 4년 임기 동안 반드시 작성해놓겠습니다.

    경기도민의 서울 출퇴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전철을 연장하는 방안을 강구하겠습니다. 분당까지 온 전철을 수원까지, 암사동에서 멈춘 철도를 구리 쪽으로 연결하면 그쪽 주민들의 출퇴근길이 훨씬 편리해질 겁니다.”

    “판교를 비즈니스 중심지로”

    판교신도시 계획은 논란을 빚다가 작년 12월 당정에서 벤처단지 20만평 주거용지 90만평으로 확정됐다. 그러나 손지사는 판교신도시가 비즈니스 중심으로 개발돼야 하며 아파트 개발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판교신도시 개발계획에 경기도가 참여해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주거단지에는 녹지 학교도 들어갑니다만 기본적으로 주택단지입니다. 지금 계획은 자족적인 도시 기능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판교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지역입니다. 서울과 접근성이 좋고 우수한 인력들이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자연환경이 뛰어납니다.

    얼마 전에 한화가 본사를 시흥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서울의 땅값이 비싸고 교통이 복잡해지면서 대기업의 본사들이 경기도로 빠져나오려고 합니다. 주거환경과 서울과 접근성, 정보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판교를 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들면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들도 들어올 것입니다. 외국 기업들은 종업원들의 주거환경을 중요한 조건으로 판단합니다. 포화상태가 된 서울 강남을 종합적으로 판교로 옮길 계획을 세워야지 집만 달랑 옮겨서는 안됩니다.”

    일산신도시는 러브호텔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아파트 단지의 턱 밑에 러브호텔 단지가 생기는 바람에 연일 주민들이 시위를 벌였지만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 대부분의 도시도 러브호텔 문제를 안고 있다.

    “러브호텔 허가가 나올 당시에 도시계획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을 기초단체에서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1월 경기도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해 주거 및 교육 환경을 저해하는 숙박시설을 규제하는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도시계획법 시행령도 이 같은 내용으로 개정됐습니다. 주거와 교육환경을 해치는 유해업소를 강력하게 단속할 것입니다. 규제할 건 해야 됩니다.”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의 부인이 건설업체로부터 인허가와 관련해 돈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또한 임 전 지사는 퇴출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인천·대구·전북·울산의 시장과 지사 출신들도 비리혐의에 연루돼 형사처벌 대기 상태에 있다. 재임중 돈을 받은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기다리고 있는 시·군·구청장은 부지기수다.

    ―공무원의 부패를 막기 위해 임기중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겠습니까.

    “법이나 제도를 아무리 고쳐도 공무원들 스스로 주인의식이 없으면 부패를 근절시키기 어렵습니다. 공사를 하면서 공무원에게 몇억원을 뇌물로 주면 원가에 반영됩니다. 결국 세금이 헛되게 쓰이고 부실공사가 벌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안하죠. 공무원 하나하나가 주인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방적인 명령과 지시에 무조건 따라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부여해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제도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규제나 심의에 관한 권한을 좀더 분명하고 구체화해야 합니다. 되면 되고 안되면 안되게 해야 합니다. 규제의 내용이 막연해 담당 공무원이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정비해나겠습니다.”

    ―교육행정은 교육감 소관이지만 도에서 예산 지원을 해주지 않습니까. 교실 및 교사 부족에 대해 어떤 복안을 갖고 있습니까.

    “지금 말한 대로 교육행정은 교육감 소관이지만 도에서 교육 지원 재정을 좀더 확대하려고 합니다. 특정 지역의 학생 과밀도가 심하면 그 지역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있겠지요. 교육발전기금을 조성해 교육지원을 늘리려고 합니다. 경기도에는 독자적인 교원양성 기관이 없습니다. 인천교대를 경인교대로 명칭을 바꾸고 경기도 안양에 분교를 세워 한 해 500명씩 배출하기로 합의했으니 교사 충원이 수월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2002학년도부터 성남·고양·안양·부천 등에 고교평준화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평준화를 시행하다보니 학생 배정과정에서 일대 혼선이 빚어져 교육감이 사퇴하는 사태가 있었다. 평준화 제도에 대해서는 아직도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명문고 출신들 중에는 평준화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손지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평준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입니다. 교육의 평등을 추구하는 국민들의 컨센서스가 이루어져 있고 오랫동안 그 방향으로 제도가 정착돼 왔으니 근간을 흔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입시 과열을 다시 원점에서 부추길 우려도 있고…. 그러나 시설 등 교육환경이 평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학생 배치를 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나쁜 학교에 배정 받은 학부모들이 반발하게 됩니다. 낙후된 학교의 교육환경을 개선해주고 평준화를 시행했어야 합니다. 준비가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평준화를 추진했다가 탈이 난 것입니다.

    특수 분야에서 수월성 교육을 추구하는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는 계속 늘려나가야 하겠지요. 대안학교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지역도 있습니다. 특수한 학교를 찾지 않더라도 자기 동네 어떤 학교에서도 자녀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경기 북부의 임진강 유역은 물난리와 가뭄을 번갈아 치른다. 임진강 유역은 1996, 98, 99년 거푸 대홍수가 발생해 232명의 인명과 1조600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홍수 뒤에는 얼마 안가 가뭄이 들어 소방차들이 실어다주는 물을 마셔야 했다. 정부는 이 지역에 한탄강댐 건설계획을 잡아놓고 있으나 환경단체의 반대가 강하다.

    “나도 그 지역에 가봤습니다.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그 지역의 용수공급과 홍수조절을 위해서 댐이 꼭 필요한 지에 대해 검토해보도록 지시했습니다. 주민들은 고향 땅이 매몰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탄강에는 아름다운 절벽이 많습니다. 건설교통부 계획대로라면 재인폭포 밑까지 수몰됩니다. 자연환경이 물보다 훨씬 더 귀한 자원일 수 있습니다. 제방을 보강하면 100년에 한번 오는 홍수 피해말고는 다 견딜 수 있다고 하거든요. 용수 공급을 위해 댐이 필요하다면 대규모 댐 대신에 조그만 댐을 여러 군데 만들어야 합니다.”

    광역교통체제 검토 필요

    손지사는 한탄강댐 건설과 관련해 환경단체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은 한번 금을 싹 그어버리면 되는 편한 행정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통하지 않습니다. 집단민원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됩니다. 모든 행정이 궁극적으로 주민을 위한 것일진대 이해관계가 걸린 주민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북한산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외곽순환도로 건설이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주민과 지역 사찰 스님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더 기울였어야 합니다.”

    ―대부분 상당수의 경기도민들이 아침이면 서울로 출근해서 저녁에 경기도로 퇴근합니다. 제가 사는 일산 신도시를 예로 들자면 승용차를 몰고 자유로로 나오면 출근 시간대에는 차가 거의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정체가 심한 편입니다. 건교부가 수도권 광역교통망 건설계획을 내놓았지만 계획대로 이루어지더라도 2006년에 겨우 도로 하나가 뚫린다고 합니다.

    “교통 전문가들이 수도권 교통이 도로 건설로는 한계에 부딪쳤으므로 도시 철도를 광역화하고 다각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자동차 교통을 위해서 도로를 더 뚫어야 하지요. 중앙정부와 서울 경기 인천이 함께 광역교통체계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합니다.”

    ―전체로 볼 때는 수도권이 너무 비대해 지역간의 균형을 잡아주는 노력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러나 경기도는 수도권 집중 억제 시책으로 피해를 당하는 측면이 있는데요.

    “대한민국 전체의 균형 발전 시책은 백번 옳습니다. 수도권으로 사람과 자원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수도권 집중 억제 및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인구과밀 억제라는 면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서울의 집값과 전세금이 올라가면 민심이 불안해지니까 정부는 그때그때 경기도에 아파트단지를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교통을 제대로 연결시키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도민들이 경기도에서 잠만 자고 서울로 일하러 들어가기 때문에 인구 분산 효과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주소 개념으로는 서울의 인구과밀은 좀 풀어졌지만 일 개념으로는 역시 꽉꽉 찬단 말이죠.

    수도권 정비계획법을 통해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다보니 수도권에 있는 공장을 멀리 경상도나 전라도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고, 광의의 수도권인 경기도 경계선만 살짝 넘은 충청도나 강원도로 옮겨갑니다. 대한민국 땅덩어리 안에서 벌이는 제로섬 경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중국 일본 유럽 미국입니다.

    특히 지식산업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도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굴뚝산업도 경기도에서 안된다고 꽉꽉 막아버리면 전라도나 경상도로 가는 게 아니라 중국으로 가버립니다.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서 땅값과 사람값이 비싸더라도 수도권에서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해야지, 수도권의 산업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수도권 정비계획법은 근본적으로 폐지해야 합니다.”

    ―수도권 공장총량제 규제에 대해서 경기도 기업인들의 불만이 아주 크죠.

    “용인 홍진크라운에서 만드는 HJC 헬멧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거기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더 만들려고 해도 공장을 단 한평도 못 늘립니다. 심지어는 직원 기숙사를 지으려고 해도 공장 총량제에 걸립니다. 쌍용자동차의 수출이 잘되고 있습니다. 평택 공장에 가보면 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자재를 쌓아놓고 있습니다. 창고를 지으려고 해도 공장총량제에 걸리기 때문이지요. 그 회사는 전라도나 경상도에 있는 회사하고 경쟁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세계하고 경쟁합니다. 경쟁력이 있는 회사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대신 세금을 많이 거둬 지방을 도와주면 될 거 아닙니까. 목포 대불공단 만들어놓은 지가 언제인데 지금도 텅텅 비어 있잖아요. 정부가 땅값을 낮춰주는 등 유인책을 써 기업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수도권의 경쟁력이 있는 산업체를 인위적으로 누르는 공장총량제는 바로 철폐해야 합니다.”

    손지사는 영어마을 조성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 마을을 영어생활권으로 만들어 슈퍼마켓 여관 호텔 우체국 파출소 은행에서 영어만 쓰게 한다, 영어 원어민 교사나 다국적 기업 직원들에게는 그 나라 수준에 맞는 주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영어마을은 영어 점수 높이기 캠프가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중화학공업 제품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곧 한계를 드러낼 것입니다. 굴뚝산업에서 벗어나 물류와 서비스산업을 꽃 피게 하려면 우리가 유럽의 네덜란드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인적자원밖에 없습니다. 21세기에는 과학기술과 서비스산업으로 나가야 합니다. 서비스 인력의 기본은 언어입니다. 히딩크 감독이 텔레비전에 나와 영어하는 걸 들어보면 영국 사람에 조금도 뒤지지 않습니다.

    어떤 나라 사람도 와서 의사소통에 어려움 없이 생활하고 비즈니스할 수 있는 영어마을이 성공하면 중국어마을·일본어마을도 만들 수 있겠지요. 내가 재임 기간에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재임중에 입주가 시작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후보지로는 어디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자연환경이 가장 좋은 곳에 만들려고 합니다. 외국의 고급 인력들이 선호하는, 조건이 좋은 주거환경입니다. 미국에도 워싱턴 주변에 첨단 IT산업이 들어서고 있는데 주거환경이 좋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경기도에는 갖가지 규제로 개발되지 않아 쾌적한 자연환경을 지닌 곳이 많습니다. 영어마을은 공해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부가가치를 생산해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영어마을 조성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본격적으로 구성할 계획입니다.”

    ―중국어마을 같은 경우는 차이나타운하고 같이 개발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것도 좋죠.”

    상수원 오염 용인 않겠다

    ―취임사에 상수원 보호를 위한 중복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기 동부지역에 대해 근본적인 규제 개혁을 검토하겠다고 했던데요. 동부지역 주민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팔당상수원의 물을 먹고 사는 경기도민과 서울·인천 시민들은 싫어하거든요.

    “동부지역의 규제를 일방적으로 완화하지는 않겠습니다. 동부지역 사람들도 먹고살 거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상수원에 오염을 가하는 어떠한 행위도 결코 용인하지 않겠습니다. 상수원을 더욱 정화시켜 나갈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환경을 훼손하거나 오염시키지 않는 소득증대 사업이 무엇인지를 찾아봐야지요.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영어마을 조성 같은 것을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관광자원이나 자연환경을 즐기러 오도록 해야지요.”

    ―행정경험은 보건복지부 장관 1년이 전부인데 방대한 경기도정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까.

    “행정경험만으로 도정을 꾸린다고 한다면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할 필요도 없겠지요. 연공서열 순으로 행정경험 많은 사람이 도지사를 하면 됩니다.

    도지사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들 경기도의 그 많은 일을 어떻게 혼자 다 합니까? 결국은 공무원들이 하는 겁니다. 행정 능력을 갖고 있는 공무원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한을 배분하고 자율적인 힘을 실어 주어야 합니다. 물론 방향과 비전은 도지시가 제시해야 합니다.”

    ―선거 캠프에서 도청으로 몇 명이나 데려 왔습니까.

    “우선 정무부지사를 안 데리고 왔죠. 선거 캠프에 행정경험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만 도지사를 하면서 경기도의 커다란 기본설계를 제대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경제 내지 건설 분야의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때마침 아주 우수한 건설부 공무원이 있다고 해 만나보니 경기도 발전에 대한 비전이 저와 똑같았고 건설 분야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건설부 안에서도 신망이 좋더군요. 그 사람이 마침 청와대 비서관으로 재직중이어서 청와대에 요청을 했던 거지요.

    여비서와 기사 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현재로는 구체적으로 인사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는 퇴임 직전에 도청 간부 19명에 대한 전보 및 승진 인사를 했다. 행정자치부에서도 잔여 임기중에 불필요한 인사를 하지 말고 꼭 필요하면 후임 당선자와 협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손지사는 취임 후 17명은 그대로 두고 두 여성정책 관련 국·과장만 원대 복귀시켰다.

    ―경기도청에 임창열 지사 사람으로 생각되는 사람들도 많을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은 물먹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겠어요.

    “누가 보더라도 임기를 며칠 남겨두고 행한 선심성 인사였고 원칙을 흐린 인사였지만 전부 백지화하면 억울한 사람이 생길 테니까, 현저하게 원칙을 위배한 인사만 바로잡고 나머지는 행정자치부의 감사결과를 지켜보고 나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임창열 지사의 비서실장이 제 비서실장으로 그대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개인 임창열씨의 비서실장이 아니라 경기도지사의 비서실장으로서 일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정을 수행해나가면서 자세히 지켜보다가 인사의 필요성이 생기면 그때 해야겠지요.”

    한나라당은 이념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은 정당이다. 오른쪽에는 김용갑 정형근 같은 의원도 있고 왼쪽에는 이부영 의원 손학규 지사 같은 인물이 있다. 이부영 손학규 같은 인사들이 한나라당의 극우 이미지를 탈색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있다. 실제로 손지사는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에 전업했던 사람이다.

    손지사는 1965년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6·3 데모의 여진이 남아있던 시기에 서울대에 입학해 1학년 때부터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민족주의비교연구회가 강제 해산된 뒤 그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후진국문제연구회를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2학년 때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 규탄 데모를 주동하다가 무기정학을 당했다. 무기정학 중에 다시 학원자유화운동을 하다가 또 무기정학을 맞았다. 함께 무기정학을 당했던 사람들 중에는 송태호(전 문화체육부 장관) 이태식(외무부 차관보)씨 등이 있다.

    무기정학 당하고 나서 한때 강원도 한백탄광에 가서 석탄을 캤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소설가 황석영씨와 자취하면서 구로공단의 목공장에 취직했다. 그러다 박형규 목사의 권유로 빈민운동에 뛰어든다.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청계천 판자촌에서 빈민운동을 하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가 갖고 있던 책 몇 권을 문제 삼아 반공법으로 걸었으나 강신옥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2심에서 무죄판결로 풀려났다.

    감옥에서 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김관석 목사 밑에서 교회와 사회위원회 간사 일을 했다. 교회는 본래 보수적인 색채가 진하다. 운동권 동지들 중에는 교회 일을 하는 것은 보수세력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혹평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야당과 언론도 침묵한 유신체제에서 민주화운동을 위해 기독교와 천주교라는 우산은 매우 유용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는 KNCC가 진보적인 방향으로 물줄기를 트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 시절 그는 박형규 김관석 목사의 핵심 참모였다.

    “박형규 목사가 빈민선교 빈민운동 조직으로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를 만들어 위원장을 하다가 구속돼 문동환 목사가 위원장 대리를 했어요. 초대 총무가 권오경, 2대 총무가 김동완, 그리고 제가 평신도로서 유일하게 3대 총무를 했습니다. 내 후임인 4대 총무가 허병섭 목사라고 지금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총무를 할 때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책을 쓴 이철용(전 국회의원)씨를 스태프로 받았습니다.

    감옥에는 두 번 가봤고 중앙정보부·시경분실·경찰서 같은 데 끌려가기는 밥먹듯이 했습니다. 1979년 부마사태가 났을 때 진상 조사를 한다고 부산에 내려갔다가 잡혀 보안대에서 사흘간 죽지 않을 만큼 고문을 당했습니다. 박대통령이 죽지 않았더라면 내가 사형을 받거나 장기수가 되었을 겁니다. 서울에서 정보부 대공수사단장이 수사관들을 이끌고 비행기로 급히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나를, 부마사태를 배후 선동한 연결 고리로 삼으려고 했겠지요.

    1975∼77년에는 수배자로 도망을 다녔습니다. 원주 과수원, 합정동 철공소 등에 숨어 막일하고 용접하느라 어머니 임종도 못했습니다. 내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이 되지 않은 것은 1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덕이죠. 감옥에서 나와 결혼을 했는데 이철 유인태 유홍준 서중석씨 등이 결혼식장에서 민청학련 모의를 했다고 공소장에 나왔어요.”

    2000년 조영래 변호사 10주기 기념 세미나에서 손지사를 만난 적이 있다.

    “조영래 김근태는 고등학교 동기이고 민주화 동지입니다. 조영래는 법대, 나는 문리대 대표 주자였고 김근태는 후발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삼총사라고 불렀습니다.”

    ―운동을 하다가 중단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절정이던 4월경에 영국으로 공부를 하러 간 계기는 어떤 거였습니까.

    “1979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1980년 서울의 봄이라고 하는 상황이 전개됩니다. 그때는 모두 민주화가 바로 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도 데모하느라 공부는 별로 안했고, 졸업한 뒤로 10년 동안 운동만 하다보니까 머리가 완전히 텅 비었습니다. 지식이 완전히 소진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속이 들어차야 뭘 하지요. 그래서 책을 읽어 충전을 하겠다고 영국에 갔습니다.

    박대통령이 죽기 이전에는 신원조회가 떨어지지 않아 외국에 나갈 수가 없었지요. 박대통령이 죽자 이때다 하고서 유학을 추진했는데 참 어려웠어요. 중앙정보부 종교담당 쪽에서는 풀어줬는데 대공수사 쪽에서 마지막까지 안된다고 틀어쥐었습니다. 출국 예정 며칠 전까지 안된다고 해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우리가 기를 펴고 살 세상이 왔는데 어디 나가느냐고 말리는 동지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니 그 공을 따먹을 생각은 없고 속 좀 채워야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결국 영국에 갔는데 서울의 봄이 5·18 광주 사태로 역전되는 상황이 도래했지요.

    처음에는 1년 정도 책을 보겠다고 나갔다가 재미를 붙여 공부를 더하게 됐고 내친김에 공부를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처음부터 박사학위 하려고 나간 게 아니었군요.

    “처음에는 1년만 충전할 생각으로 나갔다가 점점 늦깎이 공부에 재미를 붙여 석사학위를 하고, 박사학위를 등록했습니다. 학문의 바탕도 없이 나가 우리 나이로 마흔둘에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학위논문 준비가 돼갈 때 김관석 목사한테 끌려들어와 기독교 사회문제연구원장을 맡았습니다. 얼마 전에 작고한 이우정 여사 후임으로 원장에 취임했습니다. 기독교 사회문제연구원에서 권인숙양 성고문을 폭로하는 책을 찍어내 압류당하기도 했어요. 그걸 하다가 영국에 들어가 논문 쓰고 학위를 받고 들어와 교수 생활을 한 거죠.”

    1년 강사를 하다 인하대와 서강대에서 각각 2년, 3년씩 교수생활을 했다. 부인(이윤영)은 그가 교수생활을 하던 초기까지 약국을 꾸렸다. 그가 민주화 투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부인의 수입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손지사가 요즘 좌우명으로 삼는 말은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한다. 당나라 말기 대표적인 선사인 임제 의현이 남긴 말로, 어디 가서든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뜻이다.

    김영삼·최형우와의 인연

    ―최형우 전 의원과 가깝게 지내는 편이었지요.

    “최형우 의원이 사무총장을 할 때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최형우 의원이 공천을 주었다’고 하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최형우 의원이 처음에는 나를 싫어했죠. 최의원이 공천하려던 인물이 따로 있었습니다. 사무총장이 되고 나서 첫 보궐선거니까 권한을 행사하려고 했겠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뜻밖의 사람을 검토해보라고 해 언짢았을 겁니다.

    일단 그 양반이 사무총장을 할 때 내가 국회의원이 돼 그분으로서는 특별한 애정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최형우 의원으로서는 손학규라는 참신한 인물을 옆에 두고 이미지 보강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최형우 의원 계보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최의원한테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는 돈에 대한 자세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인의 꿈입니다. 최의원이 ‘나는 YS의 가신이 아니고 정치적인 동지’라며 ‘그 양반한테서 배운 중요한 교훈은 돈에 대한 자세’라고 말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돈을 자기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돈 욕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언젠가 ‘손의원, 정치인으로서 꿈을 갖지 않으려면 정치하지 말고 대학교수로 그냥 돌아가시오’라고 하더군요. 정치인은 모름지기 꿈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최의원을 피상적으로 보고 심하게 말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손지사는 여기서 더듬거리며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대충 짐작이 가는 이야기였다. 정치는 꼭 아는 것 많고 학식 높은 사람이 잘 하라는 법도 없다.

    “여하튼 최의원으로부터 중요한 두 가지 정치철학을 배웠습니다. 이 분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나서 아직도 말을 못하는데 가끔 찾아뵙고 있습니다.”

    ―정계로 이끌어준 김영삼 전 대통령도 가끔 찾아가나요.

    “도지사에 당선된 뒤 집사람과 함께 김영삼 전 대통령 내외와 식사를 했습니다. 1998년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을 열흘 앞둔 2월 중순쯤 청와대로 인사를 가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보고했더니 말리더군요. 임창열씨가 후보로 거론되기 전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상대방이 누구건 IMF 경제위기에 민주당이 새로 집권하려고 하는 상황에서는 당선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김대통령 예측이 들어맞았던 셈이다. 손지사는 그때 의원직만 날리고 도지사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러나 지명도를 높여놓고 두번째 출마를 위한 기반을 닦아놓았으니 반드시 실패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