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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성공학

“仙蔘으로 인삼 종주국 되찾겠다”

진생사이언스 박정일 공동대표

  • 장인석 < CEO 전문 리포터 > jis1029@hanmail.net

“仙蔘으로 인삼 종주국 되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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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삼정이 어떤 까닭으로 인삼이나 산삼보다 효능이 월등히 좋을 수 있을까. 항암작용이나 항산화작용 같은 약효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선삼정도 원료는 어차피 원형삼(인삼)인데, 똑같은 재료를 어떤 방법으로 가공했기에 인삼에 없는 약효가 생겨난 것일까.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인삼이나 산삼은 생으로 먹는 것보다 오랫동안 달여서 먹는 것이 훨씬 효험이 큽니다. 오래 달이면 원형삼에 있는 성분이 변해 새로운 성분이 생기거나 원형삼에는 아주 작았던 성분이 커집니다. 바로 그 원리를 이용한 거지요.”

박교수는 백삼과 홍삼을 예로 들었다. 밭에서 캐낸 생인삼을 수삼이라 하며, 수삼을 건조시킨 인삼을 백삼, 수삼을 증기로 찐 다음 건조시킨 인삼을 홍삼이라 한다. 똑같은 인삼이지만 수삼과 백삼, 홍삼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수삼보다는 백삼이, 백삼보다는 홍삼의 약효가 훨씬 좋다. 홍삼은 수삼이나 백삼에는 없는 특이성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성분이 홍삼의 효능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박교수는 홍삼의 특이성분에 유의했다. 백삼에 없는 이 특이성분이 무엇인지 알아낸다면 홍삼의 약효가 강한 이유를 밝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이성분의 정체를 밝힌다면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홍삼도 어차피 백삼을 가공한 것이니 백삼을 가공하되 홍삼과는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홍삼에 들어있는 특이성분을 더 많이 함유하게 만든다면 홍삼보다 훨씬 약효가 좋은 ‘그 무엇’을 얻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선삼은 ‘콜럼버스의 계란’



박교수가 고온·고압의 특수기술을 이용해 인삼을 가공하자 홍삼에는 극히 미량만 들어있는 성분인 진세노사이드의 함량이 크게 늘어났다. Rg3 Rg5 Rk1 등의 항암성분이 주요 물질로 들어차게 된 것. 이중 Rg3는 중국에서 이미 항암제로 개발됐으며, 혈관내피세포에서 산화질소가 나오도록 유도, 혈관을 확장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진세노사이드-Rk2 Rk3 Rs3 Rs4 Rs5 Rs6 Rs7 등의 신물질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이는 인삼에 들어있는 진세노사이드-Rb1 Rb2 Rc Rb 등을 고온·고압으로 가공하자 변환된 것. 이들 신물질이 약효를 크게 증가시켰는데, 박교수는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인삼을 ‘신선들이 먹는 인삼’이란 뜻에서 선삼이라 이름지었다.

박교수는 “선삼 개발의 원동력은 콜럼버스의 계란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라고 말한다. 그때까지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인삼연구가 이뤄져 왔지만, 대부분 홍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홍삼의 효능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지, 새로운 가공법을 만드는 데까지 생각을 넓히지는 못했던 것이다.

인삼에 관한 기록은 BC 33년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AD 483년에는 중국의 학자 도홍경이 ‘신농본초경’이라는 저서에 인삼을 ‘상약’으로 분류하고 그 약효를 기술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인삼 중에서도 백제에서 난 것을 중하게 쳤다. 고려의 인삼은 크기는 커도 약효가 연해 백제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돼 있는데, 이때 백제 인삼이란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인삼(지금의 고려인삼)을 뜻하며, 고려 인삼은 고구려, 즉 한반도 이북에서 생산된 인삼을 가리킨다.

신라 문무왕은 당의 지원군을 얻기 위해 사신을 파견하면서 인삼 200근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만큼 당시 인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품으로 은 대신 무역의 결제수단으로 사용될 만큼 귀했다. 그후 1080년 고려 문종 때 자연생 인삼을 가공, 홍삼을 제조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1392년 고려 공양왕 말년에는 인삼의 인공재배가 성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인공적으로 재배한 인삼과 구분하기 위해 산에서 나는 자연생 인삼을 ‘산삼’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1907년 전매법이 발효되면서 인삼은 이 법이 폐지된 1996년까지 사실상 정부의 독점사업이었습니다. 한국담배인삼공사는 주로 홍삼을 팔아왔는데, 이 때문에 관련 연구도 거의 홍삼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머물렀지요.”

하지만 1980년대부터 홍삼 연구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전매사업이다 보니 신제품 개발에 쏟는 정성이 소홀했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연구비도 원활하게 지원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학자의 사고는 온 사방으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녀야 하는데, 홍삼 캔 속에 갇혀 있으니 새로운 것이 나올 수가 없었지요. 연구비 나올 데라곤 홍삼밖에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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