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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예술에 나타난 섹스와 죽음

“섹스는 위대한 행위예술, 죽음은 몸의 해체와 순환”

  • 문범강 < 화가·미 조지타운대 교수 >

예술에 나타난 섹스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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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미술 유학생 시절 생활비를 벌기 위해 미국집 머슴살이를 한 적이 있었다. 신문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집이 하필이면 게이 아저씨 두 사람이 사는 집이었다. 강한 호기심도 작용했지만 막상 다른 마땅한 곳을 찾을 수도 없어서 인터뷰할 때 “게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나한테만 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는 일”이라고 해버리고 그 집에서 살게 되었다.

꼬박 석 달 열흘을 두 게이 아저씨들과 같이 살면서 게이들의 생활과 그들의 사랑, 비애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두 게이 아저씨들을 인연을 맺고 있는 여러 게이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알게 된 게이들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인간적이었다. 지극히 보통 사람들이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남자면서도 한결같이 남자를 애인으로 두었다는 점이다. 애인을 위해 쏟는 정성은 애절할 정도였다. 그들도 질투하고 다투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게이가 아닌 나보다 더 순수했다. 뉴욕의 예술계와 패션계를 휘어잡는 일류들이 거의 다 게이일 정도로 게이들 중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많다. “매력 있고 쓸 만한 남자들은 다 게이니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뉴욕의 노처녀 친구인 아네트는 농담조로 한탄한다.

당신은 과연 이성만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이 글을 읽는 거의 모든 사람은 “물론이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것이다. 어떻게 동성을 사랑해? 그 짓은 구역질 나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게이와 스트레이트(straight·이성을 사랑하는 사람)와는 종이 한 장 차이도 나지 않는다. 물론 허튼소리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관습과 미풍양속이라는 늪 속에서 오랫동안 절어서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자신의 모습을 못 보고 있다. 우리 각자는 동성애의 성향을 다 지니고 있다. 단지 그 성향이 어느 정도 많은가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뉴욕 미술계의 악동이란 별명을 지닌 사진작가 앙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는 그의 전시 ‘성의 역사(History of Sex)’에서 동성애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도판 1). 이 사진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이제는 한국에서도 흔히 벌어지고 있는 게이들의 사랑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세라노의 또 다른 작품(도판 2)은 페니스에 오럴섹스를 하는 주체가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을 뿐 상황 설정은 동일하다. 이 두 작품은 섹스의 사회적 관습과 그 관습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으려는 작가의 선구자적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두 작품 다 오럴섹스를 당하는, 즉 서비스를 받는 주체가 흑인이란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반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주체는 백인 남녀다.



서구사회에서 핍박받는 흑인의 위치를 이 두 작품에서는 우월 위치 내지는 향유 위치로 전환하고 있으며 두 흑인의 시선에서 그 전환은 극치를 이룬다. 오럴섹스를 해주는 백인 남자를 내려다보는 흑인의 약간 화가 난 듯한, 지배자로서의 거만한 시선. 백인 여자가 베푸는 오럴섹스에 무관심한 듯 먼 수평선을 쳐다보는 흑인 남자의 아랑곳하지 않은 도도한 시선. 세라노의 이 두 작품에서 또 한 가지 특이한 시각은 이러한 오럴섹스의 상황이 은밀한 내부공간에서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푸른 하늘과 수평선의 대자연을 작품배경으로 설정해 오럴섹스에 신성함마저 불어넣고 있다. 즉, 늘 발생할 수 있는 친숙한 환경을 걷어치우고 동성애와 오럴섹스를 떳떳한 대자연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일상적 사고의 뒤통수를 친다.

동성애를 예술의 주제로 다루는 작가를 언급하자면 반드시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미국의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옵(Robert Mapplethorpe, 1956∼89). 그 자신 역시 게이로서 동성애를 다룬 걸출한 작품을 남겼다.

일상적 사고에 뒤통수

여기서 잠시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의 천재화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7∼1610)의 ‘토마스의 불신(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1∼02)’(도판 3)이라는 작품을 살펴보면서 메이플소옵에게 접근하고자 한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가 부활한 후 12사도들 앞에 나타났을 때, 성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나타난 성 토마스는 “내가 직접 내 손으로 예수의 상처 난 옆구리를 찔러보기 전에는 그가 부활했다는 소리를 믿을 수 없노라”고 천명했다.

일주일 후에 예수는 성 토마스에게 자기의 상처 부위를 손으로 만져보라고 하면서 장엄한 메시지를 전했다. “나의 부활을 목격은 못했지만 그 사실을 믿는 모든 이에게 신의 은총을!” 상처가 그대로 드러난 예수의 오른쪽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후벼파듯 확인하는 성 토마스의 제스처를 표현한 이 작품을 보는 관람자는 오른쪽 옆구리를 스치는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아픔까지는 아닐지라도 예수의 몸에 난 상처의 쓰라림이 관람자에게 매우 강렬하게 전달되고 있다.

이 강렬한 아픔은 3세기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메이플소옵에게 와 닿았다(카라바조와 메이플소옵의 비교는 난해하기로 정평이 난 미술평론가 데이비드 히키(David Hickey)의 관점이다). 메이플소옵은 카라바조가 표현한 아픔의 경험을 남성의 페니스로 옮겨 호모섹슈얼리티의 아픔으로 재해석했다(도판 4). 소변과 정액이 분출되는 페니스의 요도 속으로 새끼손가락을 쑤셔넣고 있다. 요도 내부의 세포조직의 섬세함과 새끼손가락의 직경을 감안할 때 행위자의 아픔은 직접적이다.

이 작품을 보는 관람자는 간접적으로 그 아픔을 전달받지만 리얼리티의 충격은 결코 만만치 않다. 메이플소옵은 자신의 충혈된 페니스를 움켜잡고 있는 흑인 남자 손의 제스처에서 동성애란 자연스런 개인의 성향이므로 사회의 온갖 질시 속에서도 놓아버릴 수 없는 본성임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사회 속에서 아픈 경험을 겪어야 하는 게이의 현실에 대한 예술적 고발이기도 하다. 300여 년 전 제작된 카라바조의 명화에서 얻은 영감을 살아있는 21세기 현실의 이슈로 탈바꿈시킨 메이플소옵의 시각은 고정되지 않은 예술가의 깨어있는 의식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몸에 대한 아픈 경험이 앙드레 세라노의 사진작품(도판 5)에서는 페미니즘과 연결된다. 예술세계에서 여성만이 지닌 내밀한 경험(female intimacies)을 여성의 시각으로 표현할 때 페미니즘의 정신을 고수할 수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예술적 접근은, 직접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여성 자신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고 승화되어야 한다.

여성만이 겪는 체험은 큰 범주로만 묶어도 상당한 수에 이른다. 초경과 월경, 첫 섹스 경험, 임신과 그 과정, 그리고 출산, 사산의 경험, 여성 생식기의 내밀한 구조에 대한 배려, 성적 오르가슴의 이해, 여성다움의 직·간접 강요, 사회적 성차별, 여성에 가해지는 성폭행, 불임의 문제, 자식에 관련되는 에너지, 남성의 지속적인 성적 공격에 대비한 삶, 유방의 문제, 남편 가족과의 관계, 남편으로부터의 폭행, 여성의 고등교육과 비효용성, 비만과 체격의 문제, 허영과 패션의 문제.

여성 체험의 직·간접 표현으로 접근하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다면 세라노의 작품은 과격한 페미니즘이다. 여성의 손뿐만 아니라 팔뚝까지도 남성의 항문 속으로 깊이 삽입시켜 무거운 아픔을 경험케 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가 여성이 아닌 남성의 입장에서 본 공격적인 페미니즘으로도 보인다.

세라노의 다른 작품(도판 6)에서는 공격적 페미니즘이 절정에 이른다. 바닥에 누운 남자의 머리채를 움켜쥔 채 남자의 벌린 입에 여성은 서서 방뇨를 한다. 이에 비하면 미국 사진작가인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 )의 접근은 여성만이 펼칠 수 있는 페미니즘의 내밀성에 충실하고 있다. 셔먼이 집요하게 추구해온 ‘여성’은 나약한 여성상이 아닌 오브제로서의 여성상이다. 오브제로서의 여성은 섹스가 주제일 경우 섹스의 대상이 아니라 섹스에 가담하는 남성과 동등한 주체자로 등장하고 있다.

패션이 주제일 경우 여성이 허영의 대상이 아닌 자기표현의 적극적 연출가로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자기 작품의 모델로 사용하고 있으며(도판 7, 무제 1994) 그녀 작품에 나타난 그녀 자신은 외부적 변신(화장과 분장 도구에 의한)의 다양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고수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여성 본질의 내밀성을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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