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호

“이회창 검증은 끝났다. 캐봤자 민주당 피곤할 뿐”

한나라당의 5대 의혹 태스크포스팀 전략

  • 김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4-08-30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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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풍(兵風) 공방이 요란하다. 김대업씨와 민주당의 공세도 가열차지만 막아내는 한나라당의 수성능력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이회창 후보의 5대 비리의혹에 대해 한나라당은 오래전부터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는 전언이다. 한나라당의 기민하고 날렵한 대응, 그 뒷면의 숨가쁜 얘기를 추적해 보았다.
    ”우리에게는 생존권의 문제다.”

    지난 7월 중순, ‘신동아’를 포함한 몇몇 언론이 김대업(金大業)씨의 증언을 토대로 1997년 대선 때 이회창(李會昌) 후보 측근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이후보 아들의 병역문제 은폐를 위한 대책회의를 갖고 조직적으로 근거자료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보도하자 한나라당 관계자가 절박한 심정을 토로하며 내뱉은 말이다. 이 관계자의 말이 있은 뒤 한나라당은 이들 언론의 편집장과 기자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정치권 전체가 지금처럼 병풍으로 시끄러워지기 직전이었고, 김대업씨 역시 자신의 목소리로 한나라당과 이후보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 직전이었지만, 한나라당 사람들은 병역비리 은폐의혹을 보도한 언론을 심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자칫 병풍이 확산될 경우 한나라당의 대선 전략에 치명적 타격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생존권의 문제’라는 말로 표현했던 것이다.

    한나라당 사람들의 걱정이 기우(杞憂)가 아니었다는 방증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7월말에서 8월초,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병풍을 소재로 치열하게 맞붙었다. 때마침 김대업씨가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와 남경필(南景弼) 대변인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병풍은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초대형 이슈로 몸집을 키웠다.

    재보궐선거라는 첨예한 대결이 벌어진 상황에서 민주당이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민주당은 연일 김대업씨의 주장을 근거로 한나라당과 이후보에 대해 파상공세를 펼쳤다. 민주당은 병풍을 포함해 그동안 제기됐던 이후보 관련 의혹들을 모아 ‘이회창 후보 5대의혹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세세한 반박논리와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등 기민하게 움직였다.



    한나라당이라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각각의 의혹에 대처하기 위한 일종의 대응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팀이 지난 8월초에 구성된 ‘민주당의 이회창 후보 음해공작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다. 줄여서 ‘민주당 정치공작진상조사 특위’로 부르는데 위원장은 강재섭(姜在涉) 최고위원이고 이주영(李柱榮) 의원이 간사를 맡고 있다.

    위원에는 박세환(朴世煥) 고흥길(高興吉) 심규철(沈揆喆) 이원창(李元昌) 의원과 원외의 은진수(殷辰洙) 위원장, 김정훈(金正薰) 이회창 후보 법무특보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외에 당 기조국과 법률지원단에서 실무를 맡아 특위 위원들을 돕고 사안별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이상은 최근 들어 외부에 드러난 대응들이고 이와 별도로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이후보의 사생활과 약점에 대한 보강작업이 꾸준히 진행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보의 한 측근 인사는 “지난 3월 빌라사건이 터지자 우리 내부에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급락하는 반면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급상승하면서 일순간 상황이 뒤집히는 것을 보고 1997년 대선 때의 상황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인 분위기에 휩싸였었다”고 말했다.

    물론 빌라게이트는 곧 수습이 됐고 그와 동시에 노풍이 가라앉으면서 이후보의 지지율도 회복됐지만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한번 빌라게이트와 같은 예상치 못한 돌발 악재가 터지면 이후보는 물론 한나라당도 끝장이라는 위기감이 당 전체를 감싸고 돌았다.

    이 측근 인사는 “누구보다도 당시 상황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이회창 후보 자신이었다”고 전했다.

    실제 이후보는 빌라사건 이후 자신의 사생활과 관련해 세세한 부분까지 측근들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미 여러 차례 따져보아 검증이 끝난 사안에 대해서도 당내 율사 출신 측근들과 치밀하게 검증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이후보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사생활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율사들의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아울러 예상되는 민주당의 이후보 사생활에 대한 공세에 대비해 사안별로 대응책을 세우는 작업도 진행했다고 한다. 그동안 드러난 이후보의 약점, 즉 아들들의 병역면제나 빌라문제, 세풍 등에 대해 예상 가능한 여당의 공격 내용을 검토한 뒤 그에 대한 방어 및 역공 전술을 마련하는 작업을 은밀하게 벌여왔다는 것이다.

    지난 8월초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이른바 5대의혹 사건에 대한 정치공세를 강화하고 나서자 이에 대응하는 대책위원회를 만들었지만 물밑에서는 지난 3월 이후 꾸준히 대비책을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현재 이후보와 대책위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는 사람은 유승민(劉承旼) 여의도연구소장이다. 유소장은 누구보다 이후보가 신임하는 전략가.

    대책위에서 여당의 공세에 대비한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 이후보의 사생활과 관한 의문사항이 있으면 유소장에게 전하고, 유소장은 이후보에게 문의한 뒤 답을 얻어 대책위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후보와 대책위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보의 법무특보인 김정훈 변호사도 이후보의 일상적인 자문에 응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준비에도 불구, 김대업씨의 고발로 시작된 여권의 공세는 대단한 파괴력으로 한나라당을 압박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느끼는 부담은 병풍에 대응하는 당의 분위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8월7일, 재보궐선거 바로 전날, 이회창 후보는 아들 병역비리 의혹문제에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하늘에 두고 맹세컨대 내 아내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불법이나 비리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후보는 이어서 “만약 아들이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불법이나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있다면 나는 대통령 후보는 물론 깨끗하게 정계를 떠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그가 꺼낼 수 있는 최강의 카드를 공개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안팎에 적지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후보가 저렇게까지 얘기했는데 믿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한 의원은 “이후보의 발언만큼 분명한 게 없지 않느냐. 이제부터는 민주당의 공격에 자신 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보 기자회견의 의미를 반대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대업씨의 폭로공세에 위기감을 느낀 한나라당과 이후보가 최강의 카드를 꺼내듦으로써 사태 확산을 막으려고 한다는 해석이 그것. 실제 병풍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을 보노라면 이번 ‘위기’를 제대로 넘기지 못할 경우 대선에서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비장감이 묻어나고 있다.

    8·8재보궐선거 결과를 놓고보면 배수진을 치듯 과감하게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후보의 전략이 일단 주효했던 것 같다. 호남지역 두 곳을 제외한 11곳에서의 승리는 병풍에 맞서는 한나라당의 적극전술에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 성향 유권자들이 호응한 결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조여드는 공세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지난 8월5일 한나라당은 김대업이라는 전직 의무 부사관의 폭로전에 맞서기 위한 별도의 대책반을 꾸렸다. 그것이 바로 ‘김대업 정치공작 진상조사단’이다. 조사단장은 이재오(李在五) 의원이다.

    이재오 의원은 불과 몇 달 전까지 한나라당 원내총무를 지냈던 ‘거물급’ 재선의원. 원내총무직을 맡으면서 누적된 피로도 풀기 전에 이의원이 진상조사단의 대표로 다시 일선에 나섰는데 이는 그만큼 한나라당이 김대업 폭로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게 당 안팎의 시각이다. 이의원은 8월5일부터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한 탓에 한여름 감기를 앓는 등 고생을 하기도 했다.

    조사단원의 면면을 보면 한나라당의 일전불사 의지를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다. 한나라당이 자랑하는 저격수들이 모두 조사단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형근(鄭亨根) 홍준표(洪準杓) 김문수(金文洙) 의원 등 이름만으로도 민주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일당백의 재선급 공격수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밖에 최연희(崔鉛熙) 원희룡(元喜龍) 심규철 의원 등 패기 만만한 초선 의원들도 김대업 조사단원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김대업씨의 연고지가 대구 중구인 까닭에 대구 중구 출신 백승홍(白承弘) 의원과 대구 출신 전국구 의원인 이원형(李源炯) 의원도 조사단에 힘을 보탰다. 원외 지구당 위원장인 은진수 안홍렬(安鴻烈) 변호사 등도 조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사단원에는 율사 출신들이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홍준표 정형근 원희룡 심규철 의원과 은진수 안홍렬 위원장 등이 모두 법조인 출신들인데 김대업씨의 행적 조사가 사실상 사건수사를 방불케 했다는 점에서 이들 법조인 출신들은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중당 출신으로 원기왕성한 이재오 김문수 의원의 활약도 율사 출신 못지않았다고 한다.

    김대업씨와 한나라당의 전면전은 지난 7월30일 김씨가 한나라당 서대표와 남경필 대변인을 고발하며, 동시에 기자회견을 갖고 이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정면으로 제기하고 나서면서 본격화됐다. 당시까지도 한나라당에서는 앞서의 민주당 정치공작 진상특위가 다른 사안과 함께 병풍도 포괄적으로 관리하고 있었으나 조사단이 뿌려지면서 병풍(兵風) 문제는 조사단이 전담하는 식으로 역할분담이 마무리됐다.

    진상조사단은 결성과 동시에 활발하게 움직였다. 김대업씨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 간헐적으로 드러나면서 한나라당은 김씨의 사생활과 관련한 정보 수집과 이를 증명할 자료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사단이 결성되자마자 김씨의 연고지인 대구로 내려갔다. 8월6일 아침 대구에 내려가 그날 중으로 연고지에서 김씨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이 예정된 일과였다.

    이 과정에서 조사단은 하마터면 김씨의 행적을 놓칠 뻔했다고 한다. 이재오 의원의 전언.

    “우리가 알고 있는 김씨의 대구 집 주소로 찾아갔습니다. 아파트 경비원과 인근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그 집에는 농협직원들이 사는데 지금은 출근하고 사람이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철수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벨을 눌러봤더니 안에 사람이 있는 겁니다. 세입자였는데 임산부여서 출산휴가를 얻어 마침 집에 있었던 거죠.”

    세입자는 집주인 김씨 부부가 이민을 가 얼굴도 못 보고 중개인과 전세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사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김씨 부부는 각각 이 집 앞으로 주소지 등록을 해놓고 있었고, 김씨의 부인은 대구시내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처럼 조사단은 자칫 포기하고 넘어갔으면 발견하지 못하거나 만나지 못할 뻔한 증거와 증인을 두번 세번 거듭 확인하는 과정에서 확보할 수 있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신중함 덕에 짧은 시간 동안 상당한 증인과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조사단은 전광석화같이 움직였다. 대구 조사가 끝나자마자 조사단은 서울로 날아와 지난해 김씨가 구속 수감돼 있던 서울구치소로 찾아갔다. 조사단이 김포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일부 조사단은 “늦었으니 서울구치소는 내일 가자”고 했으나 이재오 의원을 비롯한 몇몇 의원들은 “공무원들의 퇴근시간인 6시까지만 도착하면 충분히 조사가 가능하다”며 서울구치소 방문을 강행할 것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방문 강행파의 판단이 옳았다. 조사단은 서울구치소에서 김씨가 2001년 4월6일부터 2002년 3월31일까지 수감돼 있던 지난 1년 동안, 무려 149회나 출정을 했고 109번 면회를 했으며 43번이나 서신을 발송했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사단이 밝힌 이런 정황들은 김씨가 피고인 신분으로 또 다른 피고인의 범죄수사에 참여하는 초법적 지위를 누렸다는 근거로 활용됐다. 또 이번 사건 조사를 맡은 서울지검 특수1부가 당시 수감자 신분이던 김씨를 적극적으로 병무비리수사에 참가시켰던 바로 그 부서라는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국민들이 김씨 증언의 진실성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런데 서울구치소에서 김씨의 출정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소란이 있었다. 6시 가까스로 서울구치소에 도착한 조사단은 곧바로 구치소장실을 방문, 김씨의 재소자 접견기록과 서신, 그리고 출정횟수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구치소 관계자는 “자료를 준비해놓을 테니 저녁식사를 하고 오라”고 했다.

    저녁 8시, 식사를 마치고 조사단원들이 구치소로 돌아왔을 때 구치소측은 “자료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필요하니 내일 제출하겠다”며 입장을 바꾸었다. 조사단은 크게 반발했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일부 조사단은 돌아갔다.

    끝까지 남은 사람은 이재오 김문수 심규철 의원 등 세 사람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 사람은 한때 시국사건으로 서울구치소를 들락거렸던 경력이 있는 의원들이었다. 율사 출신 조사단들이 다 떠나간 뒤에도 세 사람은 밤 11시까지 소장실에서 ‘농성’을 하며 버텼고 마침내 김대업씨의 구치소 관련 자료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이밖에 국군대구병원에서 김대업씨와 함께 근무했다는 군의관 출신 현직 이비인후과 의사를 만나 국군병원 근무 당시 김씨의 행적에 대한 증언을 청취하는 등 조사단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이재오 조사단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됐다.

    김씨의 행적에 대한 한나라당 조사단의 활동 소식이 알려지면서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김씨와 구치소에 함께 있었던 수감자들의 증언을 확보했는데 김씨가 아침 일찍 구치소를 나가 다음날 새벽에야 들어오곤 했으며 그의 몸에서 술 냄새와 담배 냄새,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는 증언도 그 가운데 하나다.

    김씨의 신상에 관한 정보도 여러 경로로 입수됐다. 그가 소년원 유치경력의 소유자라는 사실, 삼청교육대에 다녀왔다는 정보도 들어왔다.

    병무비리로 구속돼 김씨에게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는 인사의 제보도 있었다. 김씨의 개인 재산에 대한 세세한 정보도 속속 입수됐다. 민주당의 병역비리조사특위 위원장인 천용택 의원에 관한 제보도 있었다. 천의원이 김대업씨와 특수 관계에 있다는 정보들도 속속 답지했다. 이런 정보는 조사단에 참가한 의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접수됐는데 조사단 전체회의에서 면밀한 검토작업을 거쳤다.

    조사단장인 이재오 의원은 “조사단에 속한 의원 개개인이 정보에 관한 한 탁월한 능력을 갖춘 분들이다. 각각 자신들의 정보망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 뒤 매일 조사단 전체회의에서 이를 공개 검증한다. 중요한 사안을 추려 집중조사한 뒤 그 결과를 언론에 공개하는 식으로 조사단 활동을 벌여왔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수사권도 없는 우리가 2~3일 조사했는데도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검찰도 우물쭈물하지 말고 신속하게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담이지만 이의원은 조사단 활동을 하면서 검사 출신 의원과 운동권 출신 의원 사이에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서 적지 않은 시각 차이를 느꼈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의원들은 혐의가 있는 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데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운동권 출신 의원들은 혐의점이 없더라도 의심이 가는 대목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파헤쳤습니다. 이번 조사의 경우 이처럼 의심스러운 부분을 빠뜨리지 않고 파헤친 우리들의 노력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오 의원의 별명은 ‘만주대법관’이다. 법관을 능가하는 수사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듣지만 법관 출신은 아니라는 뜻에서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다는 것. 이처럼 검찰 출신을 능가하는 이재오 김문수 의원의 수사 솜씨는 지난해 7월 국회법 날치기 통과 파문 때 이미 한번 드러난 바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과 자민련이 국회법을 날치기 통과시키려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과 김종호(金宗鎬) 부의장에 대한 삼엄한 ‘자택연금’을 실시했다. 이미 이만섭 의장은 날치기 통과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 따라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종호 부의장이 날치기 의사봉을 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그의 서교동 자택에 인력을 집중해 감금작전에 돌입했다.

    7월25일 오후 1시반쯤, 김종호 의원은 거실에 진을 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눈을 피해 부엌 옆 다용도실에 몰래 숨어들어갔다. 40여 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의원이 시켜준 자장면을 먹고 난 뒤 일부는 소파에서 눈을 붙이고 있었고, 나머지는 TV골프중계를 보며 쉬느라 눈치를 못챘다.

    다용도실 창문 방충망을 뜯고 옆집과 사이에 난 좁은 골목으로 뛰어내린 김의원은 미리 연락해둔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실 2층 쪽방에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최병렬 의원 등 거실을 지키던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집안 어디에도 김의원이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의원들은 부산하게 수색작전을 펼쳤고,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졌으나 김의원은 행적은 묘연했다.

    김의원의 탈출을 확인한 한나라당 의원들 대부분이 철수했지만 이재오 의원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자신의 과거 ‘도주경험’에 비춰볼 때 절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의원은 일단 집안의 경계를 풀고 당직자 등 감금에 참가했던 인력을 외곽지역으로 배치한 채 자신은 김의원이 탈출한 것으로 보이는 골목길 입구에 자동차를 대기시켜 놓고 감시에 들어갔다. 3시간쯤 지났을까. 중개사 사무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미는 김의원을 발견했다. 현장을 지키던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의원이 다가가 김의원의 팔짱을 양편에서 잡아챘다.

    이 사건은 한나라당 역사상 손꼽히는 무용담인데 김대업 사건을 다루는 이의원 등의 활약을 보며 당시를 기억하는 당직자들이 적지 않다.

    민주당이 제기한 이회창 후보의 5대 의혹이란 병역비리의혹을 비롯, 안기부 자금을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의 총선 선거자금으로 썼다는 의혹과 국세청을 동원, 선거자금을 모금했다는 세풍의혹, 그리고 빌라게이트와 최규선씨의 20만달러 정치자금 전달의혹 등이다. 이 가운데 치열한 현안으로 떠오른 병풍은 ‘김대업 정치공작진상조사단’을 중심으로 당력을 모아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나머지 4개 사안에 대해서는 민주당 정치공작진상조사 특위 내에서 위원들 사이에 역할을 나누어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위 간사인 이주영 의원은 “이미 5대 의혹은 그 내용이 알려진 사안들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자료를 축적해왔고 저쪽(민주당)에서 사건을 부풀릴 때마다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우리는 깨끗하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번 병풍만 해도 김대업의 사기극에 민주당이 놀아났다는 사실이 곧 밝혀질 것이다. 따라서 병풍의 실체가 공개될수록 오히려 역풍이 돼 민주당이 피해를 입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치공작 진상특위가 주목하는 사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안기부예산 횡령의혹인데 이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 특위는 안기부예산 횡령 의혹에 대해서는 안기부의 계좌에는 과거에도 안기부 예산 이외의 자금이 들락거렸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한나라당이 안기부 예산을 횡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나갈 계획이다. 특위는 김현철씨의 대선 잔금이 ‘세기문화사’ 명의의 안기부 계좌로 들어가고 나간 자료 등 과거정권의 사례들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시했다. 안기부 계좌에서 나왔다고 그 돈이 곧 안기부예산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게 특위의 주장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일이 풀려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측에서도 다른 어느 사안보다 안기부예산 횡령의혹에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봐야겠지만 안풍(安風)의 핵심은 한나라당이 여당시절 국가예산을 횡령해 선거자금으로 썼다는 사실이다. 만약 법원이 이를 인정한다면 선거자금을 받은 대부분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장물취득 혐의를 받게되는 셈인데 그럴 경우 정치권에 지각변동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그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안풍에 대한 한나라당의 전술은 법원의 판결을 최대한 늦추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일단 지난 7월30일로 예정됐던 판결을 늦추는 데는 성공한 상태. 앞으로 한나라당은 율사 출신들의 힘을 빌려 판결 저지에 총력을 쏟을 계획이다.

    빌라게이트에 대해 특위측은 “더 이상 밝힐 것도 드러날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주영 의원은 “민주당에서는 이회창 총재가 자신의 돈으로 빌라를 구입했음에도 명의신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믿는 국민들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풍(稅風)과 관련, 민주당은 이종걸 의원 등 조사단을 이석희씨가 있는 미국에까지 파견하는 등 힘을 쏟고 있다. 이재오 의원은 “세풍은 현재 재판 진행중인 사안”이라며 “재판중인 사안에 더이상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석희씨 송환문제에서 볼 수 있듯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한나라당 측의 물밑 대응도 대단히 치밀하다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대부분의 사안이 방어적 차원의 대응이라면 설훈(薛勳) 의원이 폭로한 최규선 자금 20만달러 수수의혹은 오히려 한나라당 측이 적극 공세를 펼치는 사안이다. 이재오 의원은 “설훈 의원이 아직까지 20만달러 수수에 대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검찰조사와 구속만 남은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주영 의원은 “20만달러 수수설 사건조사를 맡은 곳이 서울지검 특수1부로 김대업씨를 조사하고 있는 곳이다. 그동안 충분히 조사할 수 있었음에도 아직 검찰조사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최규선 김희완씨 등 사건 관계자들이 모두 구속돼 있어 조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음에도 진전이 없다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다. 설훈 의원은 반드시 명예훼손으로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록 민주당 쪽에서 5대의혹 사건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으나 세세한 사안을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를 키울수록 민주당이 더 피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력한 대응으로 민주당의 의혹제기 자체가 허구라는 것을 즉각 보여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현재 분위기라면 12월 본격적인 대선국면에 접어들기 직전까지 여야 후보는 오차범위 이내의 지지율 격차로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여야 모두 국민의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약점도 많다는 얘기다. 최근 6개월 사이 여야 후보들의 지지율 부침에서도 이런 현상은 뚜렷이 나타난다.

    오차범위 내 접전으로 최종 승부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후보의 사생활과 관련된 사안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선거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후보 진영은 검증에 검증을 되풀이하고 있다. 과연 이후보는 민주당이 쳐놓은 5대의혹이라는 부비트랩을 무사히 빠져나가 최종 승리의 주역이 될 수 있을까. 5대의혹을 둘러싼 여야간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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