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호

대북사업 창구로 부상한 ‘범태’의 정체

북한 외곽조직인가 믿지 못할 컨설팅회사인가

  • 최영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yj@donga.com

    입력2004-08-31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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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태평양조선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 일명‘범태’는 북한이 대외사업을 하기 위해 새로 개설한 북한 정부의 외곽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모든 언론은 그렇게 보도했다. 통일부 관계자도 “최근 범태를 창구로 대북사업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 단체는 지속성이 있는 북한의 대남기구가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범태를 믿고 투자했던 한국 기업인들이 돈을 떼이고도 말을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 전말과 범태의 정체를 추적했다.
    최근 북한의 ‘범태평양조선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범태)’라는 비공식 기구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나 ‘민족경제인연합회(민경련)’등 공식기구보다 더 자주 대남사업에 나서면서, 이 기구의 정체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범태가 주목받게 된 것은 4월29일부터 평양에서 열린 아리랑축전 참관을 희망하는 한국관광객 모집 업무를 주관한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북한은 지난 3월1일 아리랑 축전과 관련한 사전 취재를 허용한다는 방침도 범태가 베이징에서 운영중인 조선인포뱅크의 인터넷 사이트 www.dprkorea. com를 통해 밝혔다. 3월 초 범태는 국내 벤처기업인 (주)훈넷과 합작으로 조선복권합영회사를 세워 남북한 최초로 인터넷 복권 및 카지노 협력사업을 추진했다. 범태는 각종 남북경협사업뿐만 아니라 남측 인사의 북한 초청 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다.

    미래연합 박근혜 의원의 방북도 북한측 초청 주체가 범태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대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약속했다는 9월 초순 남북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도 유럽코리아재단이 북측의 범태와 구체적 일정을 합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북한 대표하는 www.dprkorea.com 운영

    범태에 대해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북측과 사업을 하려는 경제인들이다.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북한실은 범태를 북한의 대외경제교류협력기관(정부, 외곽단체)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북한의 공식적인 경제기구인 △무역성 △국제무역촉진위원회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민족경제협력연합회와 같은 반열에 놓고 있는 것이다. 범태에 대해 KOTRA 관련자료는 ‘1999년 4월 베이징(北京)에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 미주 등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친북교역업자를 규합, 조직한 것으로 알려졌음. 기관의 성격이 모호하나 북한 당국으로부터 중국을 비롯 제3국내 각종 사업을 위임받은 것으로 추측됨. 2002년 3월 (주)훈넷과 합작하여 조선복권합영회사를 설립, 2002년 4월 베이징에서 제1회 조선컴퓨터소프트웨어전시회를 주최’라고 적고 있다.



    범태가 운영하고 있는 ‘조선인포뱅크(www.dprkorea.com)’는 북한을 대표하는 공식 인터넷 홈페이지로 알려져 있다. 1999년 10월10일 개설된 이 홈페이지는 협회소개, 뉴스 리포트를 비롯해 △공지사항(북한 소개) △법규집 △주요업체 소개(대외협력업체) △산업정보 △문화광장 등 15개 항목에 걸쳐 북한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 전반을 다루고 있다. 홈페이지 중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활동과 북한 소식을 곁들인 ‘뉴스 리포트’다. 대부분 노동신문 내용을 그대로 전재한 것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지도 활동을 사진을 곁들여 소개하며 북한 체제를 선전하고 있다. 산업정보란은 북한의 산업동향을 싣고 있다.

    이 정도라면 ‘아태가 지고 범태가 뜬다’는 말을 들을 법하다. 그러나 최근 범태가 진행한 사업은 곳곳에서 구멍이 나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 6월16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벌어진 연합예배 사건. 당시 한민족복지재단(이사장 최홍준 부산호산나교회 목사) 방북단 297명이 무비자 상태로 직항로를 이용해 북한에 들어갔다. 이 방북단을 북한에 데리고 간 초청자는 ‘범태’였다.

    기독교신도가 대부분인 한민족복지재단측은 범태측과 6월16일 오전 10시 평양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연합예배를 열기로 합의하고 이를 방북합의문에 적시했다. 하지만 6월16일 당일 북한측은 “범태는 공화국의 공식단체가 아니므로 범태와의 합의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아리랑축전 참가를 위해 초청장을 발부했으니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비자를 내줄 수 없다. 돌아가라”고 주장했다. 이 소동은 방북단의 집단 금식 기도와 북측의 부분 양보로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되었으나 범태의 신뢰성에 크게 흠집을 냈다. 북측이 범태가 공화국의 공식단체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범태가 추진했던 대표적인 사업은 2001년 8월31일부터 9월3일 사이 베이징에서 열린 상품박람회와 올해 4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조선컴퓨터소프트웨어 전시회다. 하지만 두 사업 모두 제대로 치러지지 않았다. 베이징 상품박람회는 공작기계, 의류, 그림, 도자기 등 북한 상품들이 전시되었으나 상품 질이 조악했던 탓인지, 한국을 포함한 외국기업들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 기업들이 참여했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박람회를 통해서 신용장(L/C)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박람회 실무도 중국측이 대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태를 끼고 주문을 하더라도 상품에 문제가 있을 경우 클레임을 걸 수 있는 법적 보장책이 전혀 없었다. 조선컴퓨터소프트웨어 전시회도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범태가 주관한 것으로 알려진 아리랑축전 관광객 모집도 사실은 북한의 ‘국제여행사’가 실행하고 범태는 생색만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태가 한 역할은 한국언론의 베이징 주재 특파원을 모아놓고 한차례 설명회를 한 것 뿐. 실무는 중국 여행사들이 다 추진했다.

    또 범태와 유럽-코리아재단이 창구가 되어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미래연합 박근혜 대표의 방북도 사실은 범태와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범태 이도경 회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박근혜 대표의 방북은 나와 범태와는 아무런 관련없는 일이다”라고 인정했다.

    범태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이 단체의 이도경(55) 회장이 어떤 인물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태 이도경 회장이 북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전했다. 그러한 주장은 의외였다. 지금까지 나온 언론 보도에 비추면 범태는 북한의 공식단체이거나 외곽단체다. 그러나 이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도경 회장은 나름대로 능력있는 인물이나 비즈니스맨은 돈 관계로 그를 상대하면 안된다. 그와 상대해 돈을 떼이더라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가 운영하는 범태는 북한과는 아무 상관없는 구멍가게 수준의 대북 컨설팅회사다”고 말했다.

    정보기관 파일에 적힌 이도경 회장의 이력은 이렇다.

    ‘1948년생으로 본명은 이규성. 미국 시민권자로 알려졌고 영어에 능통하다. 가족관계는 본처가 호주에 살고 있고, 딸은 한국의 한 대학에 재학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중 교류가 처음 시작될 무렵부터 중국에 거주하며 군부를 상대로 중국내 인맥을 넓혔다. 북한 인맥이 넓다고 행세하며 북한측과 한국 사업가 사이에서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비즈니스를 해서 아무도 이익을 본 이가 없다.’

    베이징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베이징에서 여자 친구가 운영하는 일식집을 기반으로 북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린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수입원이나 북측과의 연계고리는 불투명하다. 그가 김정일 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과 연결되어 있고, 김정남이 범태의 실질적 지휘자라는 설이 있으나 확인된 바 없다. 처음에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북한을 서방기업과 연결시켜 주며 북한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에는 주로 나진·선봉에 한국기업을 유치하는 사업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베이징에 직원 30명이 넘는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 조선인포뱅크는 명색이 국가를 대표하는 사이트인지라 상당한 노력과 자금이 들어갔다. 여기에 북측의 자금은 전혀 지원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 현지에서 확인한 결과 이회장에 대한 평가는 비난 일색이었다. 베이징 유학생 1세대로 베이징에 10년 넘게 거주하며 사업체를 꾸리고 있는 박태영씨(가명)는 “범태의 이규성씨는 브로커일 뿐이다. 그와 사업을 한 사람 가운데 손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 단체의 내막을 파헤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조선족 사업가는 이회장과 관련해 “말로는 북쪽과 사업을 크게 한다는데,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별로 실속이 없는 것 같다. 이회장이 북한측과 상당한 선을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지만 그와 사업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취재과정에서 드러난 흥미로운 사실은 국정원이 이회장을 대북 에이전트로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국정원도 그의 사기행각 때문에 난처한 처지에 빠져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국정원과 국내 한 공중파 방송국 사업단이 관계된 사기 사건이다.

    1998년 초 이 방송사 사업팀은 북한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마땅한 대북 채널을 찾고 있었다. 사업팀은 당시 청와대 직원 김아무개씨와 국정원 직원 최아무개씨를 통해 이회장을 소개받았다. 방송사 사업팀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은 이회장을 국정원의 베이징 연락책이라고 소개했다. 또 청와대에 있던 김아무개씨도 대북사업을 하려면 이회장을 만나라고 추천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을 통해 이회장을 알게 된 방송사 사업팀은 1998년 10월경, 베이징에서 다시 이회장의 중개로 북한에서 나온 공작원 이수진씨(30대 중반)를 만났다. 이회장은 방송사 사업팀에게 이수진씨를 대북사업을 성사시켜줄 사람이라고 추천했다. 북한 공작원 이수진에 대한 검증은 이회장을 방송사에 소개한 국정원 직원이 해주었다. 모든 작업이 정비되었다고 생각한 방송사는 해당 사업에 상당한 예산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수진은 북한으로 들어간 뒤 감감무소식이었다. 이회장은 이수진이 북한에서 철직(좌천)되어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만 얼버무렸다. 이회장은 그 뒤로도 계속 말을 바꾸며 방송사와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방송사 사업팀은 2000년 경까지 이도경 회장을 만났으나 시간과 예산만 날리고 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회장은 휴대전화 번호도 바꾸고 사무실도 이리저리 바꾸면서 방송사 사업팀을 피했다. 막대한 손해를 본 방송사는 최근에야 대북프로젝트를 포기했다.

    방송사 사업팀의 한 관계자는 “이회장은 말을 자주 바꾸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권모술수에도 아주 능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 방송사에 대한 감사가 곧 진행될 것이다. 우리 사업팀은 대북사업 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만 한다. 나는 현재 회사 인사위원회 징계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박태영씨는 “이 방송사 말고도 이회장에게 사기를 당한 국내 언론사가 또 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각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대북사업을 벌이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사기를 당하고도 별 말이 나지 않은 것은 피해자들이 사기당한 것을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부잣집이 도둑을 맞고도 소문날까봐 신고도 못하는 것처럼, 사기당한 한국의 언론사와 여러 기업체들이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도경씨의 행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6월 초순부터 접촉을 시도했다. 간신히 베이징 사무실의 전화번호를 확보해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이회장과 통화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며칠 동안 전화를 건 끝에 간신히 통화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는 “아리랑축전 관광객을 데리고 평양으로 들어가니, 갔다온 뒤 다시 연락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7월 들어 다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그와 연결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다. 전화를 받은 범태 직원의 응답은 “조국에 출장가고 없습네다”가 전부. 한 달 내내 전화를 걸어서 그와 직접 통화한 것은 세 차례였으나 그럴 때마다 그는 “다음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대북 브로커들이 궁지에 몰릴 때 흔히 쓰는 방법이 연락하면 전화를 받지 않고,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심하면 사무실까지 옮기는 것이다. 그가 보인 반응이 그 전형적인 수법이다.

    뾰족한 수가 없어 8월3일 무작정 베이징으로 날아가 범태 사무실을 방문했다. 범태 사무실은 베이징의 리도호텔 뒤 리도플라자 3층에 있었다. 이 건물은 베이징에서도 가장 임대료가 비싼 건물로 건물 마감재는 윤이 나는 인조대리석이었다. 범태 사무실이 있는 3층 바닥엔 고급 카펫이 깔려 있었다.

    이날 역시 이회장을 사무실에서 만날 수 없었다. 프런트 직원에게 메모를 남기고 나온 뒤, 8월8일 오전 다시 방문했다. 마찬가지였다. 영어와 중국어밖에 하지 못하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언제 돌아오는지 알 수 없다. 연락을 취할 수도 없다”고 못박았다. 사무실 입구에서 범태에 관한 최소한의 홍보자료라도 달라며 옥신각신하다가 겨우 회의실로 안내를 받았다. 최고급 탁자가 길게 놓이고 가죽 의자로 채워진 깔끔한 회의실 벽에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 사진이 걸려 있었다. 10여 분 뒤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한 직원이 나왔다. 자신을 심아무개 경리라고 소개한 그는 “범태의 직원은 45명 정도인데 그 중 절반은 조선족이고 절반은 한족(漢族)이다. 주로 하는 업무는 대북 컨설팅과 홈페이지 제작이다. 이도경 회장은 한 달 가운데 절반 정도 출근한다. 아리랑축전 때문에 매우 바빴다.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범태와 이 단체의 이도경회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일단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대북접촉이나 사업의 파트너로 삼기에는 그 정체가 너무나도 불투명하다.

    한 북한 전문가는 “남북 관계를 잘 풀기 위해서는 중간 브로커가 사라져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빨리 투명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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