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호

호박도장 때문에 후보등록 무효된 DJ

역대 재·보선 비화

  • 이기홍 베스트링크 대표 kihong46@hanmail.net

    입력2004-08-31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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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12월19일 실시될 제16대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인 8·8 재·보선이 숱한 정치적 의미와 기록을 양산하며 끝났다. 선거 당일 저녁에 당락이 판가름난 이번 재·보선은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대표 서청원)의 압승으로 끝났다. 새천년민주당(대표 한화갑)은 호남에서 겨우 2석을 건졌을 뿐이다. 미니총선으로 불린 이번 8·8 재·보선을 계기로 1948년 5월 이후 지금까지 54년 동안 실시된 재·보궐선거에서 화제가 됐던 각종 기록을 살펴봤다.

    제헌- 최초의 여성의원 임영신

    정원 200명을 뽑은 제헌국회에서는 아홉 차례의 재·보선이 있었다. 특히 충남 천안에서는 첫 당선자 이병국(李炳國)씨가 일찍 사망(1949.4.8)하는 바람에 1차 보선이 그해 6월10일 치러졌다. 투표 결과는 본선에 출마했던 김용화(金鏞化)씨의 당선. 그러나 김씨는 당선 2주일만인 그달 23일에 선거무효 판결이 내려지는 바람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2차 보선은 제헌 대에만 세 번 내리 출마한 이상돈(李相敦)씨가 당선됐다. 결국 천안은 제헌의원 3명을 배출한 셈.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보궐선거는 1948년 10월30일 서울 동대문갑에서 실시됐다. 이곳의 당선자 이승만(李承晩) 의원이 초대 대통령에 당선돼 의원직을 내놓았기 때문. 이 보선의 당선자는 홍성하(洪性夏)씨로 그는 5·10 총선 당시 전남 광산에서 낙선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경북 안동을 출신 정현모(鄭顯模) 의원이 경북지사로 발탁된 뒤 실시된 보선에서는 현직 상공부장관인 임영신(任永信) 대한여자국민당수가 출사표를 던졌다. 임장관은 미 군정청 수도경찰청장과 건국 후 초대 외무장관을 지낸 창랑(滄浪) 장택상(張澤相)을 이겨 화제를 모았다. 임장관과 창랑은 서울에 주소를 둔 원정 출마에다 성(性) 대결까지 펼쳐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 보선에서 객지 여인 임장관(고향은 당시 전북 금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이대통령의 입김(관권지원)과 임후보 자신의 화끈한 돈 씀씀이(자금살포)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 최초의 장관 경력 소유자인 임씨가 승리함으로써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금배지를 기록, 최초 경력 2관왕에 올랐다. 안동 보선에 낙선한 창랑은 두 달 보름여 뒤에 실시된 서울 종로을 보선에 도전했으나 이인(李仁) 초대 법무장관(현직)에 패배, 현직 장관에게 두 번 패배는 물론 제헌국회 ‘보선 두 번 낙선’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전남 목포의 보선 당선자 강선명(姜善明)씨는 부산 동래 출신으로 목포에서 지물포를 경영하면서 목포상공회의소 회두(지금의 회장)를 역임했다. DJ가 영호남 지역갈등 극복을 호소할 때 자주 인용하는 정치인이다.

    제2대- 6 ·25로 의원 8명 사망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월5일에 실시된 2대 보선은 6·25전쟁으로 의원이 사망한 지역구 8곳에서 치러졌다. 부산무에서는 최원봉(崔元鳳) 의원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무려 23명이 등록했다. 중도에 3명이 사퇴했음에도 20대1의 높은 경쟁률(역대 보선 2위)을 보였다. 부산이 피란지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2대 총선에서 떨어진 제헌의원 4명(마포 김상돈(金相敦), 아산 서용길(徐容吉), 상주을 전진한(錢鎭漢), 울산을 김수선(金壽善)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충남 연기 보선에는 전남 영암에서 낙선한 낭산(朗山) 김준연(金俊淵)이 원정 출마했으나 고배를 들었고, 공주을에서는 초대 내무장관을 지낸 동산(東山) 윤치영(尹致瑛)이 함께 원정 출마한 유석(維石) 조병옥(趙炳玉)을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경북 달성은 대한국민당의 배은희(裵恩希) 목사가 대구에서 제헌의원을 역임한 동암(東庵) 서상일(徐相日)을 이겨 기염을 토했다. 전남 담양은 김홍용(金洪鏞) 의원의 사망으로 동생인 문용(汶鏞)씨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재임중 의원 사망으로 5곳에서 보선이 있었다. 전북 진안에서는 이복성(李福晟) 의원의 사망으로 보선이 치러졌는데, 완주갑에서 낙선했던 박정근(朴定根)씨가 진안으로 전지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박씨는 제헌 때 서울 중구에서 떨어지고 2대 때는 전주에서 27대 1의 경쟁(역대 총선 최고)을 뚫고 당선됐다. 국회의원 선거에 4차례 출마한 그는 매번 선거구가 다른 진기록을 세웠다. 진안 보선에서는 2대 때 달성 보선의 당선자 배은희 목사가 등록을 한 후 도중하차하기도 했다.

    경기 광주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선생이 유세 도중 급서(1956.5.5)하자 보선이 실시된 곳. 이 보선에서 해공의 아들 하균(河均)씨가 승리,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금배지를 단 첫 부자 의원이 탄생했다. 경기 고양에서는 이성주(李成株) 전 치안국장이 인근 마포에서 2대 의원을 지낸 오성환(吳誠煥)씨와 한국일보 출신의 언론인 유광열(柳光烈)씨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경남 산청에서는 3대 때 울산을에서 떨어진 안준기(安峻錡)씨가 전지 출마해 당선.

    DJ 등록 무효, 재선

    보궐선거는 없었고 선거무효 7건과 일부 선거무효 2건으로 모두 9차례 재선거가 실시됐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대통령은 3대 때 목포에서 처음 출마해 패배한 뒤 4대 때는 수복지구인 강원도 인제에서 출마하려 했다. 목포를 피한 것은 민주당 구파의 정중섭(鄭重燮) 의원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 인제에서 자유당의 나상근(羅相謹) 후보와 한판 승부를 겨루려 했으나 DJ의 등록이 무효가 되는 바람에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됐다. 등록무효 사유는 추천서 날인이 나무도장이 아닌 호박도장이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재선거가 치러졌는데, 자유당의 상대 후보는 인제경찰서장을 지낸 전형산(全亨山)씨로 바뀌었다.

    이 선거에서 지원 유세를 펼쳤던 운재(芸齋) 윤제술(尹濟述) 전 국회부의장의 회고.

    “산첩첩 인적적(山疊疊 人寂寂)한 곳에 예상했던 대로 자유당 정권이 행정조직을 동원, 유세장에 사람이 모이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군인들도 물론 외출이 금지됐다(당시는 부재자 투표 제도가 없었음). 나는 그냥 돌아갈 수도 없어 텅 빈 강연장에서 먼산을 쳐다보며 목청을 높였다. ‘산천초목아 들어라. 나는 너희들에게 민주주의를 외친다.’ 그러나 오직 산의 메아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운재는 기자들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이국 만리 외로운 땅에 아들을 남겨놓고 온 심정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이 재선거에서 DJ는 2만1000여 표 대 8000여 표로 대패했다. 당시 DJ의 한자 이름은 大仲이었다.

    경남 울산을에서는 3대 의원을 지낸 정해영(鄭海永·정재문 전 의원 부친) 후보와 김성탁(金成鐸) 후보가 일부 지역에서 맞붙었는데 김후보가 당선, 총선 승리를 지켰다.

    전남 보성은 세칭 닭죽사건을 겪은 뒤에 재선거가 치러졌다. 본선과 재선거에 나섰던 이정래(李正來)씨의 회고.

    “1958년 5월20일(4대 총선일) 저녁 개표하는 시간에 집에서 자고 있는데 참모가 깨우며 큰일났다는 거야. 그래 개표장으로 뛰어가보니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지 않았겠어. 개표 참관인은 모두 코를 골며 자고 있고, 뒷마당에서는 투표용지가 불타고 있었어. 진상을 알아보니 야식으로 끓인 닭죽에 여당측이 수면제를 넣어 참관인들에게 먹인 거야. 그리고 한쪽에선 자유당측에서 동원한 깡패들이 항의하는 야당 참관인들을 밖으로 집어던지고 있었어.”

    이 닭죽사건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에 보도돼 더욱 유명해졌다. 이 재선거에서 자유당은 안용백(安龍伯)씨 대신 4대 총선 때 서울 용산에서 패배한 황성수(黃聖秀)씨를 내세웠고, 민주당은 또 다시 이씨를 출마시켰다. 결과는 여당의 금품공세를 이겨내지 못한 야당의 대 참패(5만4000여 표 대 6000여 표). 경북 영일을은 환표 사건 등으로 재선거(김익로(金益魯) 당선)와 재재선거(김장섭(金長燮) 당선)가 각각 있었다.

    4대에는 특히 당선 재결정 판정이 내려진 지역구가 3곳이나 있었다. 대구의 최희송(崔熙松)과 임문석(林文碩), 경산의 김동석(金東碩) 의원이 이순희(李淳熙), 이우줄(李雨茁), 김우동(金雨東) 의원의 잔여 임기를 채웠다.

    공민권 제한 7곳, 일부 선거무효 3곳, 대통령과 서울시장 취임, 사직, 사망 1곳 등으로 모두 14개 선거구에서 재·보선이 실시됐다. 윤보선(尹潽善) 의원의 대통령 취임으로 궐원이 된 종로을은 보선에 강한 전진한 후보가 장군의 아들 김두한(金斗漢) 후보를 물리치고 처음으로 보선 2승을 기록했다.

    역대 재·보선 사상 최대의 경쟁률을 보인 경기도 이천은 무려 24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백두진(白斗鎭) 전 국무총리가 처음 의정 단상에 섰다. 그는 이 지역구 선거에서 얼마나 혼이 났던지 그후 4선을 더 쌓았지만 전국구(7, 8대)와 유정회(9, 10대)로 일관했다.

    강원도 인제는 4대 보선과 5대 총선에서 DJ에게 패배를 안겼던 전형산 의원이 공민권 제한으로 물러남에 따라 보선이 치러졌다. 이 보선에서 당선된 DJ는 3일 후에 5·16군사쿠데타가 터지는 바람에 등원은커녕 선서도 못하고 말았다. DJ의 의원 경력은 6선이지만 이처럼 5대 때는 당선만 됐지 활동은 전혀 하지 못했다.

    홍천은 제헌부터 5대까지 내리 5선을 질주해온 이재학(李在鶴·5대 옥중당선) 의원이 공민권 제한으로 물러나자 아들 교선(敎善)씨가 대를 이었다. 경기 옹진의 재선거 당선자 장익현(張翼鉉)씨는 역대 재보선 최저득표 1위(1477표)라는 기록을 세웠다. 역대 총선 최저득표 1위는 5대 옹진의 손치호(孫致浩)씨로 1058표를 얻어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제6대- 김두한 의원의 인분 투척 사건

    5개 선거구 의원들이 한일협정 비준에 항의하는 뜻으로 의원직을 내놓았고 전북 부안 이병옥(李炳玉) 의원에게 일부 선거무효판결이 내려져 모두 6곳에서 재·보선이 실시됐다.

    서울 서대문갑구에서는 김재광(金在光) 의원의 후임으로 이번 8·8보선 광주 북갑에서 당선된 김상현(金相賢)씨가 처음 출마해 승리했다. 당시 그의 기록상 경력은 ‘아이크(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내한 환영 국민대회장’.

    서대문을은 전북 김제 출신인 운재 윤제술의 뒤를 이어 전북 순창 출신인 홍영기(洪英基)씨가 국회 부의장을 지낸 조경규(趙瓊奎)씨를 물리쳤다. 조씨는 간첩죄 혐의를 쓰고 사형 당한 민족일보 조용수(趙鏞壽) 사장의 숙부다.

    용산은 5대 종로 보선에서 대패한 김좌진(金佐鎭) 장군 아들 김두한씨가 한국독립당 소속으로 출마해 3대 때 의정활동을 함께했던 최영철(崔榮哲) 후보 등을 이겼다. 김씨는 6대 원내 활동중 본회의장에서 정일권(丁一權) 국무총리 등이 앉아 있는 국무위원석을 향해 인분을 뿌리는 전무후무한 사건을 일으켰다.

    모두 7곳에서 재·보선이 있었으나, 충남 부여와 전남 화순, 보성을 제외하면 그 사람에 그 얼굴이 그대로 의원직을 이었다. 부여는 JP가 민주공화당을 탈당, 의원직을 상실하자 형 김종익(金鍾翊)씨가 동생의 뒤를 따랐다.

    6·8 부정선거 여파로 재선이 실시된 고창은 총선 당선자 신용남(愼鏞南)씨가 대중당(당수 서민호(徐珉濠) 공천으로 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신씨는 당초 7월1일에 개원한 7대 국회에서 10일 동안 의정 활동을 펴다 그만둔 뒤 다시 단상에 올라 한 대에 두 번 당선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화순도 6·8부 정선거 대상 지역으로 같은 고향(화순군 춘양면 석정리) 출신인 양회수(梁會璲)씨와 기세풍(奇世豊)씨가 총선과 재선거에서 맞붙어 1승1패를 기록했다.

    7대의 일곱 차례 재선거 중 세 군데에서 연속 입후보해 3패한 인물도 있다. 전남 구례가 고향인 황성(黃成)씨는 경남 창녕과 화순·곡성, 나주 세 곳에 얼굴을 내밀었으나 모두 패배해 한 대에 최다 재·보선 출마기록을 보유.

    제8대- 박준규, 부자 4패 끝에 1승

    1971년 10월 유신으로 임기가 단명으로 끝났다. 따라서 보궐선거는 단 한차례 있었다. 경북 달성·고령에서 총선 당선자 김성곤(金成坤) 의원이 항명 파동의 회오리 속에 의원직을 잃자 8대 총선 당시 서울 성동에서 정운갑(鄭雲甲) 의원에게 패배한 박준규(朴浚圭)씨가 고향 달성으로 원정 출마해 4선에 성공했다. 박의원의 경우 제헌과 2대 때는 부친 박노익(朴魯益)씨가, 3대와 4대에는 자신이 출마했으나 조재천(曺在千)씨 등에게 패배, 고향에서 부자 4패 끝에 1승을 올렸다. 박의원은 현재 지역구 당선만으로 9선을 쌓은 찬란한 기록을 갖고 있지만, 3패라는 기록도 함께 갖고 있다.

    제9대- 유신체제 비판 정일형의 사직

    유선체제에서 중선거구제를 채택, 한 선거구에서 2명을 뽑았다. 2명의 의원 중 1명이라도 재임중이면 재·보궐선거가 실시되지 않았다. 그래서 2명씩을 뽑은 9대부터 12대까지 4대에 걸쳐 재·보선은 단 한번 9대 종로·중구에서 치러졌다.

    이 지역 출신인 정일형(鄭一亨) 의원이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발언으로 의원직을 내던지고,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한국일보 사주 장기영(張基榮) 의원이 사망해 보선이 있었다. 그 결과 사상검사 출신인 오제도(吳制道) 변호사와 정의원 아들 대철(大哲)씨가 새로 금배지를 달았다. 정의원은 현재 5선(9, 10, 13, 14, 16대)이다.

    노태우(盧泰愚) 정부의 5공청산 과정에서 대구의 정호용(鄭鎬溶) 의원이 사직하고 문희갑(文熹甲)씨가 등원했다. 문씨는 민선 2기 대구시장을 역임했다. 1989년 4월의 동해 재선거는 당시 민정, 민주, 평민당 등 3당이 총력전을 펼쳤으나 총선에 당선됐던 홍희표(洪熙杓)씨가 다시 당선. 이 재선거 여파는 통일민주당 서석재(徐錫宰) 사무총장의 후보 매수사건으로 이어져 결국 서씨는 14대 때 유죄가 인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13대 재·보선의 하이라이트는 전남 영광·함평의 선거. 이곳 출신 서경원(徐敬元) 의원이 밀입북 사건으로 의원직을 잃게 됨에 따라 선거가 치러졌다. 황색 깃발의 평민당은 경북 칠곡 출신의 이수인(李壽仁) 영남대 교수를 내세워 지역감정 해소라는 명분을 내걸었고, 여당인 민정당은 “DJ는 막대기만 심어도 싹이 트느냐”며 맞섰으나 결과는 평민당의 완승. 함평·영광 20개 읍면의 선거책임자를 현역 국회의원(평민당)과 지구당위원장(민정당)으로 선정해 불꽃튀는 접전을 펼쳤으나, 부자 6선인 조기상(曺淇相)씨의 석패로 끝났다. 당시 민정당 최고의원 박태준(朴泰俊)씨가 현지에서 칠산바다개발 공약을 발표, 조씨의 아호는 한때 칠산(七山)으로도 불렸다.

    제14대- 공직자 재산공개로 4명 유탄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실시된 공직자 재산공개로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金在淳), 박준규 의원 등 네 명이 유탄을 맞았다. 의원 사망 4명. 형의 선고 2명.

    부산 동래갑에서는 현 국회의장인 박관용(朴寬用) 의원(11대부터 내리 6선)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옮기자 강경식(姜慶植)씨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부산 사하에서는 서석재 의원의 유죄판결로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박종웅(朴鍾雄) 의원이 빈자리를 메웠다.

    강원 명주, 양양은 김문기(金文起) 의원의 뒤를 최욱철(崔旭澈) 의원이 이어 받았는데, 최씨는 16대 10·25보선에서 최돈웅(崔燉雄) 의원에게 패배, 보선 1승1패를 기록. 대구 수성갑은 유죄가 확정된 박철언(朴哲彦) 의원의 자리를 부인 현경자(玄慶子)씨가 물려받았다.

    제15대- 이회창 · 노무현 · 박근혜 등장

    의원 변동이 가장 많았던 국회다. 사망과 사직, 당선무효가 각각 6건, 피선거권 상실 3건 등 모두 21곳에서 재·보선이 실시됐다. 현재 여야의 16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거나, 출마 가능성이 있는 후보 3인이 15대 재·보선에서 당선된 공통된 경력을 갖고 있어 이채롭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홍준표(洪準杓) 의원의 선거무효로 실시된 송파갑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이명박(李明博) 의원이 사직한 종로에서, 미래연합의 박근혜(朴槿蕙) 의원은 김석원(金錫元) 의원의 사직으로 공석이 된 대구 달성에서 각각 금배지를 추가했거나 새롭게 달았다.

    이후보는 15대 전국구 진출과 지역구 재선거를 통해 등원, 한 대에만 두 차례 등원해 의원선서를 두 번 하는 아주 진기한 기록을 세웠다. 작년 10·25 보선 구로을에서 민주당 김한길(金漢吉) 후보도 이런 기록을 세울 뻔했으나 패배로 좌절됐다. 이후보는 작년 10월의 동대문을 재선거에서 홍준표 의원을 공천, 서로 지역구를 챙겨주기도 했다.

    노후보는 13대 때 부산에서 당선될 당시 인연이 있었던 한석봉(韓錫奉) 후보와 종로 보선에서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포항북에서는 박태준 전 포철회장이 민주당 총재인 이기택(李基澤)씨, 신한국당 이병석(李秉錫)씨 등과 3파전을 벌였으나, 박 전회장의 압승.

    광주 동에서는 신기하(辛基夏) 의원이 대한항공기 괌 추락사고로 숨지자 1997년 12월18일 대통령 선거일에 보선이 실시됐다. 국민회의 이영일(李榮一) 후보가 전날 한나라당 김용욱(金容煜) 후보가 사퇴하는 바람에 우리나라 재·보선 사상 첫 무투표 당선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신의원과 이의원은 동향(함평)에다 고교 선후배(광주일고)이기도 하다. 수원 팔달은 현재 한나라당 대변인인 남경필(南景弼) 의원이 부친 남평우(南平祐) 의원의 자리를 이어받은 곳.

    미니 총선으로 불릴 만큼 한날에 13곳에서 실시됐다. 결과는 한나당의 압승. 이번 보선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는 6선에 도전한 광주 북갑의 김상현 의원. 그는 6대 때 서울 서대문 보선에서 첫 금배지를 단 후 지금까지 여섯 차례 선거에서 승리했다. 처음과 끝의 보선이 선거구가 달라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01년 2월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씨는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16대 국회에 들어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게 된 데 대해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당선 소감을 피력했다. 아호 후농(後農)은 고은 시인이 ‘후광(後廣·김대중 대통령의 아호)’의 뒤를 잇는 농사를 지으라는 뜻에서 지어준 것. 김씨는 전진한씨에 이어 두번째로 재·보선 2선을 기록했다. 앞으로 그의 정치 반경이 어떻게 그려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광명 전재희(全在姬) 의원은 16대 때 전국구로 진출했는데 이번 보선에 나가느라 전국구를 내놓았다. 이회창 후보에 이어 한 대에 두 번 등원과 두 번 의원선서라는 기록을 세웠다. 전의원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다닌다. 첫 여성 행정고시(13회) 합격자, 첫 중앙부처 여성국장, 첫 여성 민선시장 등이다. 1998년 15대 광명을 보선에선 민주당 조세형 후보에게 1300여 표 차로 석패, 보선 전적은 1승1패다. 그의 별명 ‘빗자루 시장’은 초대 민선시장 시절 아침마다 빗자루를 들고 나와 시민들과 함께 청소를 해 붙여졌다. 지금도 광명 시민들은 전의원보다 전시장으로 즐겨 부른다.

    1996년 4월 15대 총선에서 일합을 겨뤘던 북제주의 양정규(梁正圭) 후보와 홍성제(洪性齊) 후보는 이번 보선에서 다시 만났으나 630여 표 차이로 양씨가 승리했다.

    지금까지 대별로 재보선 기록을 살펴봤다. 이제 주제별로 화제의 기록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연인원- 4년 동안 114명

    지난 1948년 5월 제헌국회가 개원된 이후 이번 선거에 이르기까지 재·보궐선거로 금배지를 단 연인원은 모두 114명이다. 대별(代別)로 보면 15대가 21명으로 가장 많지만 16대가 현재 16명을 기록하고 있어 남은 기간 동안 경신할 공산이 크다. 4·19 후의 5대는 14명, 14대는 11명을 각각 배출했다.

    선거구- 종로 5회로 역대 최다

    서울 종로는 제헌국회를 비롯해 5, 9, 15, 16대에 걸쳐 모두 5차례나 실시돼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재보선이 치러진 지역이다. 단연 으뜸이다(표1 참조). 다음은 지금의 대구 달성으로 3차례(표2 참조). 특히 달성은 김성곤·석원 부자가 보선 사유를 제공한 것이 이채롭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다선 의원은 9선으로 김영삼 전대통령(3, 5, 6, 7, 8, 9, 10, 13, 14대)과 박준규 전국회의장(5, 6, 7, 8, 9, 10, 13, 14, 15대), 김종필 자민련 총재(6, 7, 8, 9, 10, 13, 14, 15, 16대) 등 3명이다. 그러나 재보선을 통해 최다선인 재선에 성공한 정치인은 전진한(2대 부산무·5대 종로)씨와 김상현(6대 서대문갑·16대 광주북갑) 민주당 고문 등 2명뿐이다. 김고문의 경우 보선으로 정치 입문, 보선을 통해 정치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셈.

    여성- 임영신 현경자 박근혜 전재희

    제헌부터 16대까지 치러진 재·보선에서 여성 당선자는 모두 4명이다. 안동을의 임영신(제헌), 대구 수성갑의 현경자(14대), 대구 달성의 박근혜(15대), 이번 8·8보선의 광명 전재희(16대) 등이다(표3 참조).

    부자- 부친 자리 물려받은 남경필

    아버지가 지켰던 지역구와 의석을 재보선으로 아들이 물려받아 부자 승계가 이뤄진 첫 사례는 3대 때 나왔다. 해공 신익희 민주당 후보(의원 신분)가 1956년 5월 이리역 부근 호남선 열차에서 급서하자 아들 하균씨가 대를 이었다(표4 참조).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4·19의거 후에 실시된 5대 민의원 선거에서 강원도 홍천의 이재학(제헌∼5대)씨는 자유당 공천을 받아 옥중 당선의 영예를 안았으나 공민권 제한으로 임기중 탈락했다. 하지만 아들 교선씨가 바통을 이어받아 부자 보선 인수인계 제2호를 기록했다.

    유신 시절 종로와 중구에서 동반 당선된 정일형 의원이 유신체제 철폐를 주장하다 의원직을 내놓게 되자 아들 대철씨가 이어받아 지금까지 5선을 기록중이다. 최근에는 15대 때 경기 수원 팔달에서 부친 남평우 의원의 사망으로 아들 경필(현 한나라당 대변인)씨가 대를 이어 재선중이다.

    부부- 남편 유죄로 배지 단 현경자

    부부가 동시에 당선된 사례는 없고 남편이 의정활동을 펴다 도중하차하자 부인이 낭군의 뒤를 이어 의정단상에 선 경우가 딱 한 차례 있었다. 14대 때 대구 수성갑의 박철언 현경자 부부가 주인공이다.

    형제간에 의원을 많이 배출하기로는 전남 담양의 김씨 3형제가 단독 수위. 동생인 문용(汶鏞)씨가 제헌의원 선거에 입후보함으로써 3형제 중 가장 먼저 정계 진출을 시도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2대 때는 맏형 홍용(洪鏞)씨가 출마해 당선됐다(표5 참조).

    그러나 곧 6·25가 발발, 홍용씨는 북한군에게 학살당하고 그에 따른 보선에서 동생 문용씨가 당선돼 남은 임기를 채웠다. 막내인 성용(星鏞)씨는 3선(6, 7, 9대)을 쌓았다. 이들 3형제가 한번의 재·보선 경력이 있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이회창씨의 친외삼촌이다.

    현역 최다선 기록을 갖고 있는 김종필 총재는 7대 때 모든 공직을 사퇴하면서 의원직도 탈당으로 잃었다. JP의 선거구인 충남 부여는 그의 형 종익(鍾翊)씨가 보선을 통해 물려받았다. 종익씨는 8, 9대까지 이 지역을 지켰다.

    성공한 보선, 실패한 보선

    1948년 5월10일 제헌의원 선거 이후 지금까지 54년 동안 우리나라 의정이 우여곡절을 거듭해온 것과 같이 국회의원 54년사도 영욕과 다양한 사연들로 점철됐다.

    2002년 8월8일 현재 금배지를 달았거나 달고 있는 선량은 2276명(헌정회 집계)이다. 이들 가운데 대통령에 선출된 의원이 있는가 하면, 48시간 의원도 있고, 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의원도 있어 인간사의 부침을 실감케 한다. 총선을 통해 의정단상에 오르는 일이 금배지의 첩경이지만 생각지도 않은 재·보선에서 생명수를 얻은 의원도 있다.

    지금까지 재·보선을 통해 금배지를 단 인물은 모두 112명(연인원은 114명이지만 전진한, 김상현씨가 각각 두번 당선됐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재·보선에서 1승1패(4대 인제 재선거 낙선, 5대 인제 보선 당선)를 기록했다. 재·보선을 통해 새롭게 등장했던 정치인은 제헌의 이인(종로), 2대 배은희(달성), 5대 조윤형(趙尹衡·양주), 7대 김종필(부여), 8대 박준규(달성), 14대 손학규(孫鶴圭·광명), 15대 박태준(포항), 이영일(광주), 조세형(광명), 한광옥(구로), 이태섭(李台燮·수원) 등이다.

    한편 쟁쟁한 네임밸류를 갖고도 재·보선에서 나뒹굴었던 인사도 다수 있다. 제헌 보선 때 두 번 떨어진 장택상(안동·종로)을 비롯, 조병옥(2대 공주), 서상일(2대 달성), 김준연(2대 연기), 김상돈(2대 부산), 조경규(6대 서대문), 임흥순(任興淳·6대 서대문), 임철호(任哲鎬·7대 부여), 이기택(14대 포항)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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