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호

‘요지경’ 신흥도시 티켓다방

미성년 매춘, 감금, 착취… 법이여, 웃기지 마라!

  • 정호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4-09-03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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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시흥과 안산. 대형 공단을 낀 이들 신도시는 도시 중심부가 거대한 환락가다. 골목마다 두 집 건너 한 집은 티켓다방이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이들이 보온병을 들고 몸을 팔러나간다. 하루 14시간 넘게 ‘출장’을 나가도 빚을 감당할 수 없는 그들에게 근로기준법이니 청소년보호법이니 하는 건 ‘웃기는 얘기’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수역 근처의 한 모텔. 함께 간 사진기자와 방을 잡고 다방에 커피를 시켰다. 재떨이며 성냥곽에 다방 전화번호들이 널려 있었다.

    “○○모텔 305호에 커피 세 잔이요. 티켓 끊죠?”

    30대 후반인 듯한 목소리의 여성은 말꼬리를 흐렸다.

    “티켓영업은 안해도 차 ‘모텔 배달’은 되는데….”

    전화를 끊고 10분이 채 못돼 나타난 아가씨가 핸드백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앳된 얼굴이다. “안산에 티켓다방이 수두룩하다던데, 아가씨네 다방은 아닌가보지?” 하고 말을 걸었더니 얘기가 술술 풀려나왔다.



    커피 대신 여자 ‘배달’

    “아저씨들 되게 순진하네. 요즘 단속이 얼마나 심한데, 누가 전화로 ‘우리 티켓영업합니다’ 하겠어요? 아가씨랑 1대 1로 협상해야지…. 저요? 일주일 전에 안산 왔어요. 그 전엔 고깃집에서 서빙했구요. 아이 참, 나이는 왜 물어요? ‘민쯩(주민등록증)’ 보여줘요? 봐요, 1983년생이잖아요. 법대로 해도 아무 문제 없다니까. 여기서 돈벌어 대학 갈 거예요. 그럭저럭 벌 만할 것 같아요. 티켓 하는 애들이 돈은 빨리 번다지만 난 안할 거예요. 잠은 주인 아저씨가 얻어준 곳에서 자요. 방값은 30만원. 미성년자도 있냐구요? 당연히 있죠. 근데, 아저씨 혹시 경찰이에요?”

    티켓다방의 역사도 이제 10여 년을 넘어섰다. 대도시에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수도권 신도시와 지방 중소도시, 읍·면 단위로 내려가면 지금도 티켓다방이 널려 있다.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다방은 ‘휴게음식점’이다. 다방은 술을 팔지 않는 음식점이기 때문에 청소년이 부모의 동의서를 얻어 일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서비스업 중 하나다.

    휴게음식점인 다방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성한 사업형태인 배달업과 만나 만들어낸 독특한 윤락체계가 바로 티켓다방, 이른바 ‘티켓비’를 받고 업무 외적인 용무로 여성 종업원을 출장 보내 그 대가를 업주가 챙기는 일종의 변태영업이다. 커피와 차를 판매하는 애초의 목적과는 딴판으로 여종업원을 노래연습장이나 단란주점 등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차가 아니라 여성을 배달하는 ‘콜걸 시스템’인 셈이니 주객이 전도된 사업이다.

    티켓다방이 단속대상이 된 것은 미성년자 고용과 윤락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정부는 청소년의 성보호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다. 그러나 티켓다방의 경우 일상 속에 너무도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를 시행하지 않는 한 뿌리 뽑히기 어려워 보인다. 충북 옥천경찰서장 시절 티켓다방과의 전쟁을 치렀고, 서울 종암경찰서장으로 옮긴 후에는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대대적인 미성년자 윤락 단속을 벌인 경찰청 김강자 여성청소년과장이 규제주의(공창제)를 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9만5000명의 경찰력이 전국 곳곳에 흩어진 150만명의 윤락여성을 챙기기란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규제주의를 도입해 경찰의 관리 범위 안에서 윤락녀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해가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사정을 뻔히 다 알면서도 모든 성매매를 불법화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주의에 불과해요.”

    단속이 기고 있다면 성매매현실은 지능화해 날고 있다. 티켓다방도 공권력의 감시와 언론의 십자포화를 꿋꿋하게 견뎌내며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했다. 전국의 허가받은 다방은 5만개가 넘는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 업소들이 티켓영업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중 최소한 절반이 티켓영업을 하고 있다고 보고 한 업소당 평균 5명씩만 잡아도 전국적으로 12만여 명의 여성이 ‘티켓윤락’에 종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7월24일 서울지검 소년부(부장검사·박태석)는 수도권 신도시 주변의 티켓다방을 수사, 업주 9명을 구속했다. 검찰이 티켓다방 업주를 구속한 것은 과거에도 자주 있던 일이지만, 이 사건은 수도권 신도시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티켓다방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극명하게 보여줬다. 수사 대상지역은 시흥과 안산 일대. 검찰은 몇 달 전부터 이 지역에서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피해 여종업원들의 전화가 빗발치자 수사에 착수했다. 현장으로 출동한 검찰 단속반은 시흥시 시화지구와 안산시를 돌아보고 충격을 받았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환락가였기 때문이다.

    시흥 시화지구 정왕동에는 다방과 주점, 안마방, 모텔, 수면텔, 찜질방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흥업소들이 밀집해 있다. 단속반은 5개조로 나뉘어 단속에 들어갔다. 청소년의 윤락 사실만 확인되면 바로 잡아들일 수 있었는데, 당시 단속을 벌였던 검찰 관계자는 “물 반, 고기 반이더라”고 했다. 미성년자 윤락이 이뤄지는 불법업소가 발에 채일 만큼 많았다는 것. 비디오방에서건 노래방에서건 이른바 ‘연애’라 불리는 매춘이 아무 거리낌없이 행해지고 있었다.

    정왕동의 한 골목에는 30여 개의 다방이 몰려 있었다. 두 집 건너 한 집이 다방이었다. 다방의 구조 또한 독특했다. 겨우 두세 평 남짓한 조그만 방에 소파 한 조와 작은 싱크대를 설치한 게 전부였다. 여종업원들은 대부분 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보도방이나 다를 게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연행된 여종업원의 70%가 만 18세가 못된 미성년자들이라는 사실. 부모의 동의서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들은 하루 14시간 넘게 티켓영업에 내몰리고 있었다.

    검찰은 업주 9명을 청소년보호법과 윤락행위방지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2명에게는 감금죄가 추가됐다. 연행된 청소년 50여 명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불과 15개의 다방을 조사했을 뿐인데도 결과가 그랬다. 검찰 관계자는 “더 수사하고 싶었지만, 여력이 안돼 거기서 멈췄다”며 혀를 내둘렀다.

    정왕동에는 100여 개 이상의 다방이 있고, 시흥과 안산지역의 다방을 다 합치면 1000여 개에 달한다. 경찰은 이들 중 대다수가 티켓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왕동 B다방에서 만난 J양은 집이 서울 영등포에 있다고 했다. 두 달 전 시흥에 왔다는데, 21세라고 우겨댔지만 누가 봐도 10대 중반의 소녀였다. 험한 일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나이답게 천진스러웠다.

    “중학교 졸업하고 룸(살롱) 나갔어요. 일주일에 300(만원) 벌 때도 있었죠. 그런데 다 써버렸어요. 매일 머리 해야 하고 옷도 사 입어야 하거든요. 오래 못하겠더라구요. 만날 술 먹는 것도 장난이 아니고…. 그러다보니 일수까지 당겨 쓰게 됐어요. 그후 이곳저곳 옮겨다니다 시흥까지 왔죠. 여기에도 서울애들 엄청 많아요. 500 넘게 선불금 받아 썼는데, 업주가 악질이었어요. 두 달 일했는데 겨우 100 까지고 아직 400 남았어요. 벼라별 벌금이 다 있어요. 그래서 엊그제 다른 데로 옮겨 새로 선불금 받아 빚 갚았죠. 일이 힘드냐구요? 돈 쓸 시간도 없을 정도예요.”

    청소년들이 유흥업소로 유입되는 것은 돈과 잠자리 때문이다. 특히 가출 청소년들은 ‘돈도 벌고 잠도 잘 수 있는 곳’의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다. 먼저 자리를 잡은 친구들의 소개, 생활정보지 광고 등이 매개가 된다.

    “OO다방: 19세 이상. 숙식제공. 출퇴근 시켜드림. 5:5 능력(급)제. 선불가능. 가족 같은 분위기”

    지방에서 올라온 아이들은 서울과 가까우면서 집값이 싼 동네를 찾아 헤매다보니 수도권 신흥도시로 많이 밀려들게 된다. 가족들이 찾아내기 어려워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월 30만원 정도면 두 명이 충분히 쓸 만한 크기의 원룸을 얻을 수 있다.

    8월7일 안산경찰서로 연행된 한 티켓다방 여종업원도 가출한 미성년자였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어떻게 돈을 당겨 쓰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가게에 손님이 별로 없어 일하긴 편한데, 돈벌이가 안돼 빚을 못 갚고 있어요. 그래도 언니들과 노는 게 좋아서 그냥 붙어 있는 거예요.”

    빚에 찌들린 여성들이 처음 선택하는 곳이 미성년자도 취업이 가능한 다방이다. 하지만 부모 동의서가 무용지물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시청 같은 데서 단속하러 나와도 업소에만 들러 살필 뿐, 업소 밖의 차 안에서 대기중인 아이들까지 일일이 파악하긴 어렵다. 경찰에 잡혀온 티켓다방 미성년 여종업원들은 아예 부모 동의서가 없는 경우, 취업하기 위해 본인이 위조한 경우, 혹은 실제로 부모가 써준 경우 등 사례가 다양했다.

    티켓다방의 성매매도 돈 문제와 직결된다. 소비욕구가 높은 가출 청소년이나 젊은 여성이 신용카드를 돌려쓰다 보면 순식간에 200만∼300만원의 빚이 쌓인다. 그래서 “눈 딱 감고 몇 달만 고생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다방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티켓다방 윤락시스템의 초점은 선불금에 맞춰진다. 티켓다방 여종업원들은 대부분 선불금 때문에 다방 일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선불금 액수는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3000만원까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선불금은 ‘상품가치’에 대한 입도선매(立稻先賣)로 볼 수 있다. 업주들은 ‘상품성 있는’ 여성들에게 선불금을 안기는 식으로 고용계약을 맺는다. 선불금은 가불(假拂) 임금의 성격을 띠지만 현실에선 그렇지가 않다. 선불금에 붙는 이자가 웬만한 사채 이율보다 높기 때문이다. 여성은 몸을 담보로 고리의 사채를 빌려 쓰는 셈이다.

    다방에 취직하면 취업서약서, 근로계약서, 주민등록증 복사본 등을 요구하는데, 여기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게 차용증과 영수증이다. 연대보증과 각서까지 써야 한다. 선불금은 차용증을 써주고 받기 때문에 업주와 종업원은 민법상의 채권·채무자 관계가 된다. 이율은 보통 구두로 계약하는데, 한 달에 5부 이자를 뜯어낸 업주가 적발되기도 했다. 그래도 당장 빚에 쪼들리는 청소년들은 선불금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선불금 이율이 터무니없이 높은 것은 형편이 넉넉지 못한 영세 업주들이 사채를 끌어다 선불금을 조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윤락녀와 선불금은 톱니바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돈이 필요해 다방에 취업한 여성은 선불금을 받아 쓰고 빚의 사슬에 걸려든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도망을 치든지, 경찰에 신고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몸 가치를 높인 뒤 다른 유흥업소로 옮겨 이곳에서 선불금을 받아 빚을 갚는 길밖에 없다. 글자 그대로 팔려가는 것이다.

    티켓다방에 들어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은 계속 늘어나게 마련이다. 매춘산업의 교묘한 착취구조 때문이다. 빚이 없는 상태로 티켓다방에 들어와도 빚더미에 올라앉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는 상식 밖의 근로조건을 강요하는 각서와 구두계약에서 비롯된다.

    7월 말 서울지검에 구속 기소된 다방 업주들은 종업원들에게 “계약기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선불금은 물론 선불금의 30%를 위약금으로 지불한다”는 각서를 강요했다. 뿐만 아니라 결근 하루당 30만원의 벌금(속칭 ‘올비’)과 지각 1시간당 3만원의 ‘영업비’를 부과하는가 하면 재료비와 미수금도 기본적으로 종업원들에게 물렸다. 업소 주인은 “종업원들이 게을러서 생각다 못해 만든 내부 규칙”이라고 항변하지만, 하루 결근비가 30만원이라는 것은 종업원 한 사람이 하루에 그 정도 수익을 주인에게 안겨줌을 의미한다.

    성매매 여성을 지원해온 한소리회 김미령 국장은 “이런 영업행태는 성매매 업소의 오랜 관행이라 새로울 게 없다”며 “문제는 성매매 여성들이 안고 있는 빚의 구조에 무관심한 채 단지 채권·채무 관계로만 일을 처리하는 경찰의 의식에 있다”고 질타한다.

    8월5일 안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진한 화장에 몸매가 드러나는 옷차림을 한 10대 중반의 가출소녀 2명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4개월 전 경남 진주에서 상경, 안산의 티켓다방까지 흘러들어 갔다가 가족의 신고로 경찰에 인계됐다.

    “티켓은 안 나가고 배달 심부름만 했어요. 정말이에요. 쟤는 빚이 없지만 저는 300만원 있어요. 같이 있던 친구가 도망을 갔는데, 저랑 맞보증을 섰거든요. 강제로 티켓을 하라곤 않았지만 눈치는 많이 줬어요. 언니들이 말도 안하고….”

    다방에 취직한 아이들이 처음부터 윤락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출장영업’을 안 나가려고 저항도 해본다. 하지만 현실은 이들이 언제까지나 ‘소신’을 지킬 수 있을 만큼 녹록하지가 않다. 지난 6월 시흥의 K다방과 J다방 업주 차모씨는 전모양(16)에게 “선불금 250만원을 빨리 갚지 않으면 섬 사창가로 팔아 넘기겠다”고 협박해 결국 티켓영업에 나서도록 강요했다. 이런 사례는 여성단체에 접수되는 피해신고의 대다수를 차지할 만큼 보편적이다.

    적지 않은 선불금과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빚은 업주의 회유와 협박이 어렵지 않게 먹혀들게 한다. 티켓영업을 하지 않고 차 배달만 나가서는 빚을 감당할 수 없다. 더구나 주변에선 티켓영업으로 돈깨나 벌었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차를 배달시킨 남성이 현금을 내보이며 매춘을 요구하면 마음이 자꾸만 흔들린다. 손님에게 받은 팁 중 티켓비로 업주에게 시간당 3만원을 주면 나머지는 자기가 챙길 수 있기 때문에 티켓영업은 빨리 돈을 모을 수 있는 지름길로 인식되곤 한다.

    경찰이 티켓다방 수사에서 가장 난감해하는 대목은 윤락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윤락녀 스스로 신고한 사건이 아니면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들은 경찰 진술에서 윤락 사실을 부인한다. 윤락 자체가 불법이라 윤락을 조장한 업주나 윤락을 한 여성이나 똑같이 처벌받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성매매 행위 등 방지법’엔 이런 모순을 개선하는 내용이 반영될 것이라고 하지만, 성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된 상황에서 법이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지켜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규제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설명이다.

    경찰이 ‘함정수사’를 벌인다면 윤락 사실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는 불법행위다. 따라서 제보를 받고 현장을 덮치는 고전적인 방법만이 유일한 수단이다.

    8월○일, 시흥경찰서 여성청소년계에선 건장한 남성이 티켓영업과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었다. 경찰은 그가 업주인 다방의 여종업원으로부터 티켓영업을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사장은 좀체 시인하지 않았다.

    “내가 티켓영업 시킨 적 없다니까요. 자기네들이 퇴근하고 나가서 한 거지…. 나는 한번도 티켓비를 받은 적이 없어요. 150만원씩 월급을 줬을 뿐입니다.”

    참다못한 경찰이 냅다 소리 질렀다.

    “이것 봐! 정왕동 다방들이 전부 티켓영업하는 거 세상이 다 알아.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고 빨리 진술하고 끝내자고. 2개월 영업정지 먹고 나서 다시 하고 싶으면 당신 맘대로 해!”

    주인은 금세 꼬리를 내렸다.

    “…네. 저 티켓비 받은 적 있습니다.”

    티켓다방 업주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려 했지만, 대부분의 업주들이 자신은 뒤로 빠지고 업소엔 ‘바지사장’을 앉혀놓고 있어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자신이 사장이라고 주장하는 몇몇 이들 역시 윤락이 이뤄진다는 데 대해서는 극구 부인했다. 윤락 사실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와는 상관없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취업계약서에 “근무시간에 손님과 외출·외박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기도 한다. 물론 업주가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둔 장치다.

    미성년자 윤락행위가 적발되지 않는 한 업주가 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기껏해야 영업정지 3개월 정도다. 한 도시에 윤락을 일삼는 수백개의 티켓다방이 번성할 수 있는 것은 미성년자들이 다방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게 하는 성산업 구조와 허술한 법체계에 기인한다.

    1999년 청소년보호위원회는 티켓다방을 레드존(청소년 출입금지 업소)으로 지정, 19세 미만의 청소년을 고용해 성접대 행위를 알선할 경우 중형을 받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티켓다방이 곧 자취를 감출 것으로 예상됐으나 상황은 엉뚱하게 변질되었다. 티켓다방과 보도방이 결합한 것이다. 업주들은 얼굴사장을 내세워 영업에 나섰고, 미성년 종업원들은 차에서 대기하며 배달을 기다리게 된 것.

    단란주점이나 유흥주점처럼 술을 파는 업소는 일정한 시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공간의 제약이 있어 불법행위를 단속하기가 비교적 쉽다. 이른바 ‘2차’라고 불리는 업소 외 영업에 대해서는 컨트롤하기가 어렵지만, 적어도 이런 업소에 미성년자를 취업시켜선 안된다는 사회적 인식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다. 업소로서도 미성년자를 고용했다가 영업정지라도 받으면 상당한 금전적 손해를 감수해야 하므로 굳이 모험을 감행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다방은 사정이 다르다. 시설규정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시청이나 구청에 신고만 하면 영업이 가능하고, 설사 윤락행위가 적발되어 영업정지를 당해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다니며 다시 가게를 열 수 있다. 업소에 시설이랄 게 없으니 접었다, 폈다 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더구나 법적으로 미성년자를 고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들이 차 심부름한다는 명목으로 취업하기에 안성맞춤인 조건을 갖췄다.

    이런 여건 때문에 티켓다방은 미성년자를 ‘훈련’시켜 유흥업소로 팔아 넘기는 ‘성매매 여성 공급기지’ 노릇을 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다방에서 ‘세상 물정’을 익힌 아이들이 그 다음 단계에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한 경찰관은 “어떤 사람들은 다방의 배달행위를 완전히 금지시키라고 하는데, 만일 그렇게 되면 다방 여종업원들이 대거 자장면집에 취직하게 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단속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선불금을 받아 쓰기 위해 티켓다방에 들어온 여성들은 대개 비슷비슷한 경로를 전전한다. 티켓다방에서 유흥주점으로, 거기에서 술에 찌들린 생활에 지쳐 사창가로, 사창가에서 ‘성매매 프리랜서’인 마사지업소로,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 퇴폐이발소나 ‘여관바리’ 신세로….

    중간에 도망을 치는 일도 있지만, 한번 선불금의 고리에 걸려들면 여간해선 빠져 나오기 힘들다. 법이 ‘돈 안 갚고 도망친 채무자’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낮기 때문. 300만원을 받고 티켓다방에서 일하다 500만원을 받고 다른 다방으로 옮겨가고, 1000만원을 받고 유흥주점으로 또 옮겨가는 것이다. 이동은 여성이 원한 것일 수도 있고, 업주가 원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선불금은 계속 늘어나고 차용증도 갱신된다.

    이렇게 새롭게 씌어지는 차용증은 또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탕치기’라는 게 있다. 선불금을 받은 여성이 업소에 나가지 않고 잠적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업소 여성들은 처음엔 빚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다가 빚이 1000만원 단위를 넘어가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죽어라고 뛰어봤자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조건 아래선 좀체 돈이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손에 돈을 좀 쥐어도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씀씀이가 자꾸 커진다.

    도망가도 잡혀온다

    결국 이런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가족들의 도움을 얻거나 혹은 탈출하는 것이다. 정부는 “성매매 과정에서 여성 종사자들이 진 빚은 원천 무효”라고 홍보해왔고, ‘불법 원인’에 의한 미성년자의 채무는 변제의무가 없다지만, 현실은 그처럼 도덕적이지 않다. 지금도 각 경찰서 조사계에는 ‘탕치기’ 관련 고소·고발사건이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한 경찰관은 이렇게 털어놨다.

    “이런 사건의 경우 경찰은 관련 채무가 윤락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그럴 경우 정황을 충분히 고려하라고 교육받습니다. 그렇지만 선불금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습니다. 본의 아니게 성매매 여성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생겨나죠.”

    업소 여종업원이 ‘빌린 돈’ 1000만원을 갚지 않고 도망을 간 사건이 고발됐다고 하자. 고발 당시에는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민사상 손해가 문제가 되지, 그 빚이 어떤 돈인지까지 확인하긴 어렵다. 업주가 대리인을 내세워 고발하는 경우도 많은 데다, 채무 내용을 하나하나 조사해가며 출석요구서를 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채무자인 피해여성은 이미 자취를 감췄으므로 경찰은 당연히 그녀에게 기소중지 처분을 내리고 이 여성은 전국에서 수배에 들어간다. 주민등록증을 말소하지 않았다면 그 여성은 언젠가는 경찰에 잡혀 업주와 마주앉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업주도 할 말은 있다. 업주로선 선불금이든 몸값이든 자기 업소에서 일하겠다고 약속한 ‘근로자’에게 돈을 미리 지불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인력이 하루도 일하지 않고 도망을 간 것은 사기의 목적으로 남을 ‘기망(欺罔)’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만일 그 여성이 비슷한 전과가 있다면 사기혐의를 좀더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탕치기’는 성매매 여성들이 선불금이라는 사슬을 역이용하는 수법이 되기도 하지만 그 피해는 전체 성매매 여성들에게 돌아간다. 성매매 여성은 어떻게든 선불금을 갚지 않고는 이 세계를 탈출할 수 없고, 탈출했다 하더라도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 시스템 안으로 돌아오게 되는 기묘한 형태로 성산업은 유지된다. 따라서 선불금을 근절하지 않고는 이런 피해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관련 여성단체들의 지적이다.

    시흥의 한 티켓다방에서 일하는 여종업원은 “월 300만원쯤 버는데,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도 안된다”고 했다.

    “빚 갚고, 벌금 내고, 옷 사입고, 재료값 내느라 200만원은 그냥 나갑니다. 남은 100만원도 방세 내고 유흥비로 금세 사라지죠. 그나마 이 정도라도 만져보는 경우는 10명 중에 3명도 안될 거예요. 이 바닥도 경쟁이 치열해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돼요. 어쨌거나 능력껏 수입을 올려서 주인과 5대5로 나누니까 죽어라고 뛰어야죠. 외박도 남들보다 많이 나가야 될 테고…. 진짜 돈 버는 건 주인이죠. 계산 한번 해보세요. 아가씨 5명이 하루 종일 번 돈의 반을 뚝 떼어가니 그게 얼마겠어요.”

    그러나 시흥 정왕동의 한 젊은 다방 사장은 얘기가 달랐다.

    “다방은 이렇게 작아도 돈 들어갈 데가 좀 많은 줄 압니까. 이것도 사업이라고 이곳저곳에 꽤 투자를 해야 돼요. 더러는 선불금 떼먹고 도망가는 애들도 있고…. 웬만한 액수로는 쓸모 있는 여자애 하나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차린 지 얼마 안돼 문 닫는 다방들이 수두룩해요.”

    경찰과 티켓다방 주변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사업을 1년만 착실하게 해도 아파트 한 채는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철저히 지하경제화한 현금장사다보니 누구도 정확한 수입규모를 알지 못한다. 올해 초 군산 개복동에서 일어난 윤락가 화재사건을 보면 이런 지하경제의 실상을 다소나마 파악할 수 있다. 10여 명의 윤락여성이 감금상태로 몸을 팔며 빚을 갚아나가는 동안 업소 주인은 단 몇 년 만에 호화 저택과 외제차를 보유한 10억원대 이상의 재산가가 됐던 것이다.

    티켓다방의 경우 단순하게 계산해봐도 하루 평균 12번 배달을 나가는 여종업원이 버는 돈은 20만원 정도. 한 달이면 600만원이고 이를 주인과 5대 5로 분배하면 주인은 여종업원 1명당 한 달에 적어도 3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종업원 4명을 데리고 장사하는 업주라면 월 1200만원선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차 재료값 등 웬만한 부대비용은 여종업원이 부담하며, 주인은 세원(稅源)이 노출되지 않으니 세금 걱정도 없다.

    여종업원들이 이렇듯 소중한 ‘돈줄’이다보니 이들에 대한 감시도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철저하게 이뤄진다. 나이가 아주 어린 종업원의 경우 업주의 집에 기거하게 하면서 출퇴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비슷한 또래끼리 함께 자취를 시킨다. 이들로 하여금 맞보증을 서게 해 서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게 만든다. 그래도 도망을 가면 보증을 선 종업원에게 빚을 전가한다. 업주는 모든 비용을 전가시켜 손실을 보전하여 여성만 관리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카맨(오토맨)’으로 불리는 남자 종업원이 여종업원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을 감시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루 14시간. 오후 1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쉬지 않고 차 배달과 홍보, 그리고 티켓영업을 하려면 엄청난 체력과 인내를 요구한다. 이는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청소년은 하루 7시간 이상 노동하지 못하도록 돼 있지만, 늘 그랬듯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노예제도를 연상케 하는 티켓다방의 고용실태는 우리 사회 인권의식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청소년들은 터무니없는 고용조건과 구두계약을 강요받으면서도 이런 게 불법행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청소년 보호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법에 무지한 데다, 가정과 학교에서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조건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만이 옳다고 배웠기에 초래된 비극”이라고 분석했다.

    티켓다방은 위법이지만 그곳에서 불법행위를 하는 여성들도 근로자라는 사실은 대법원 판례에서도 확인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티켓다방 업주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거나 피해여성에게 보상을 해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한 여성단체 실무자는 이렇게 말한다. 더구나 고용계약서 한번 써보지 못한 청소년에게 지원되는 국가·사회적인 지원이란 가정으로 돌려 보내는 일 뿐이다. 문제를 계속 덮고만 있는 셈이다.

    “윤락사건의 경우 피해보상 권리를 찾기 어려워요. 가령 불법적인 도박판에서 딴 돈을 내놓으라는 요구로 비쳐질 수 있거든요. 화대 차원이 아닌, 불법계약 및 노동에 대한 피해보상이 중요한데 단 한번도 보상이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지난번 군산 윤락가 화재 사망자에 대해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으니 죽어야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죠.”

    성매매 여성은 단속에 걸려 대질심문에 들어가면 대개 서둘러 합의하고 조용하게 일을 끝내기를 원한다는 게 경찰청 여성청소년계 남재도 경위의 이야기다. 근로기준법을 따질 상황이 아니라는 것.

    “대부분의 사건은 당사자 간의 합의로 끝납니다.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여성은 없어요. 업주를 무서워하기 때문이죠. 적극적으로 처벌을 원해 구속되더라도 대개 2년 안에는 풀려나오거든요. 그러니 피해여성은 진상을 밝히기를 꺼리고, 숨어 지내려 합니다. 경찰도 그들의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들 모두를 보호해주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시흥, 안산, 일산, 군포, 안양, 월곶 등 경기도 일대의 몇몇 신도시들은 공통점이 있다. 도시를 둘러싼 아파트 숲 한가운데엔 으레 상업지구가 있고, 이 지역은 예외없이 거대한 성산업이 형성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겉모습은 휘황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고리의 빚에 짓눌려 하루하루 고통스레 버텨내는 접대여성들, 이들의 땀과 눈물로 살찐 업주들, 그리고 힘겨운 노동을 통해 번 돈을 하룻밤 유흥을 위해 날려버리는, 일상에 지친 노동자들의 삶이 있다. 이들은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 형식은 철저하게 폭력적이다.

    한 경찰관은 “그렇게 단속을 해도 티켓다방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사회적 수요가 있기 때문”이라며 “경찰이 이들을 단속하는 것은 벌금을 통해 세금을 걷는 의미밖에 없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안산과 시흥의 티켓다방 수사를 지휘한 서울지검 박태석 부장검사는 “지금으로선 다방의 설립요건을 강화하고,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더라도 단속을 강화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토로했다.

    다방에서 만난 한 여성은 “이 업종은 다른 조건 필요 없이 좋은 사장을 만나야 잘 풀릴 수 있다”며 제비뽑기 식의 운명론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성매매가 불법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자신만의 최선의 방법인 듯했는데 어떠한 반론도 불가능했다. 인권이 최우선이 돼야할 민주국가에서, 150만이나 되는 성매매 여성들이 단지 좋은 주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행운을 빌어야만 하는 비참한 현실인 것이다.

    최근 민주당 조배숙 의원 등 74명의 의원이 연대 발의한 ‘성매매 행위 등 처벌 및 방지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제출됐다. 성매매 알선자와 청소년성보호법 위반자를 최고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법안이다. 피해여성 보호를 위해 1회에 한해 자수자의 형을 면하고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있다. 그러나 과연 현실의 벽이 이 법에 담긴 선의를 수용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당장 이 법의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과 국회 통과를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거대한 악은 오히려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행위는 사람들의 암묵적인 동의 내지 협조가 만들어낸 사기극이다. 티켓다방의 청소년 성매매도, 다 알면서 눈을 감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19세 이상. 숙식제공. 출퇴근 시켜드림. 5:5 능력제. 선불가능.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선전문구는 모두가 눈을 뜨면 원래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19세 이하라도 좋다. 잠자리 책임져 주는 대신 꼼짝 못하게 감시한다. 출퇴근도 시켜주지만 그것도 감시하기 위해서다. 네가 몸을 팔아 벌어오는 돈의 절반 이상은 내가 먹는다. 선불금 주면서 빚도 늘려주겠다. 어때? 참 ‘가축 같은’ 분위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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