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호

미국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행동하라

9·11테러 1년

  • 정리·성문홍 동아일보 논설위원 songmh@donga.com

    입력2004-09-06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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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라덴주의(Bin Ladenism)는 세계화의 산물이며 세계화에 대한 하나의 대응이기도 했다. 나는 오사마 빈 라덴이 다른 시대였다면 이번처럼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는 전세계의 추종자들과 교신하는 데에 위성전화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1990년대 이전에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물건이다. 인터넷 역시 빈 라덴의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파하거나 알 카에다 조직원을 충원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작년 11월 오사마 빈 라덴의 전기인 ‘성전(聖戰·Holy War, Inc)’을 출간한 언론인 피터 버겐(Peter Bergen)은 미국의 월간 ‘애틀랜틱(The Atlantic Monthly)’과의 인터뷰(2002년 1월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기본적으로 세계화와 이데올로기의 종식으로 상징되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사람이며, 국제 테러조직에 첨단적인 기업경영 기법을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다.” 버겐은 1997년에 이미 오사마 빈 라덴을 인터뷰해 미국 TV방송에 내보냈던 몇 안되는 서방 언론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작년 8월 출판사에 ‘성전’의 초고를 넘겼는데, 원래 이 책은 2002년 여름에나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운명의 9월11일 이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세계는 빈 라덴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어떻게 해서 그처럼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다각도로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적임자 중 하나였다. 작년 9 ·11 테러사태 이후 세계는 확실히 달라졌다. 앞으로 국제정치는 ‘9·11 이전’과 ‘9·11 이후’로 구분해 설명해야 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변화가 정확하게 어떤 성격인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다양한 설(說)이 분분하다. 지난 1년 동안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나왔지만 ‘9·11 이후의 세계’에 대해 총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논리 틀은 아직 제시되지 않은 듯하다. 여기서는 미국 언론과 학술지에서 9·11 테러가 세계정치 및 미국의 세계전략에 끼친 영향과 한반도 정세에 주는 함의를 다룬 논문을 세 편 발췌해 소개한다. 》

    9 ·11 이후의 세계 질서

    9·11 테러 이후 세계질서의 변화에 대해서는 지난 1년 사이 수많은 글이 쏟아져 나왔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1990년대 이후 줄곧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국제사회에 군림했다는 점에서, 이같은 논의는 대체로 미국 헤게모니의 향배와 관련해 21세기의 세계체제를 전망하는 내용이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존 아이켄베리(G.John Ikenberry) 교수 논문도 그 중 하나다. 미 조지타운대에 재직중인 아이켄베리 교수는 테러시대에 미국이 취해야 할 세계전략을 논하면서 향후 세계질서를 전망하고 있다(출처: Survival, 2001-2002 겨울호).

    세계 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기습 공격은 미국의 취약점을 전세계에 노출시키고 미 외교정책에 근본적인 재조정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작년 9월2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의회 연설은 미국이 공산주의와 싸울 것을 천명한 1947년 3월12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그리스와 터키 관련 연설에 견줄만한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9 ·11 사태를 탈냉전시대의 종막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미국에게 1990년대는 ‘신 경제’와 예산잉여, 지정학적 안정 등으로 순진한 자유주의적 낙관론이 가득찼던 평화와 번영의 시기였다. 그러나 9·11사태가 탈냉전시대의 종막을 가져왔다는 견해에 따른다면, 1990년대는 투쟁의 시기 중간에 낀 잠깐 동안의 휴지기에 불과하다. 그 10년간의 방황을 끝내고 미국은 마침내 자신의 대전략(Grand Strategy) 목표를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다.

    9·11사태와 부시행정부가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은 향후 세계정치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그 영향은 기본적으로 서구 중심적인 국제질서를 강화하고 강대국 사이의 결속을 더욱 굳히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1990년대의 국제정치가 성취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강대국들 사이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협력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냉전시절의 양극체제는 세계의 지정학적 구도에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은 채 미국의 일극 체제로 바뀌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부시 행정부의 연합 전략도 이같은 협력관계 구도를 강화하는 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럽과 일본 미국이 이같은 질서의 핵심이다. 만약 러시아가 서구에 좀더 가깝게 접근한다면 국제사회에는 강대국들이 동맹적 파트너십과 협력적 안보관계로 서로 긴밀하게 엮어진 ‘의미 있는 실체(critical mass)’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중국까지 국제체제로 통합하는 전략적 궤도를 따라준다면, 앞으로 상당 기간 강대국들은 세력 균형을 이루고 안보 라이벌 관계가 아니라 포용(engagement)과 조화(accommodation)가 지배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일방주의에서 실용주의로

    9·11테러 사태가 부른 일차적인 여파로 부시 행정부가 중도적인 외교정책을 지향하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애초에 부시 행정부 내에는 국제질서와 미국의 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철학이 불편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동맹과 다자간 협력, 상호 이득이 되는 법칙과 제도를 강조하는 실용주의적 접근방법이 한 갈래였고, 군사적 우위와 선별적인 포용, 미국의 독자 행동에 무게를 두는 일방주의적 접근방법이 다른 한 갈래였다.

    집권 후 최초 6개월 동안 부시 행정부는 강경하고 일방주의적 성향에 치우친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일련의 국제조약과 협정을 거부했고,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천명했으며, 일방적으로 ABM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미국이 테러리즘에 대항하기 위한 세계적 연대를 구축할 필요가 생기면서 완연히 달라졌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다른 강대국과의 협조체제가 과거보다 훨씬 절실해졌다. 따라서 초기의 일방주의는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미국적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법한 오늘날 국제질서의 핵심은 미국이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과 맺은 두 가지 거대한 ‘거래(bargain)’다. 그중 하나는 냉전시절 이래로 만들어진 ‘현실주의적’ 거래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파트너에게 안보 우산을 제공하고 미국의 시장과 기술에 대한 접근을 보장해준다. 그 대가로 나머지 국가들은 미국의 안정적인 파트너로 남아 미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할 때 외교적·경제적 지원과 후방 병참 역할을 맡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가진 힘의 불명확성을 전제로 한 ‘자유주의적’ 거래다. 여기에 따르면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은 상호간에 합의된 정치·경제적 시스템 내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수용한다. 이에 대해 미국은 파트너와의 연합을 제도화해 스스로를 파트너에 구속하고, 이런 관계를 장기적으로 강화해나간다.

    다시 말해 미국은 자신의 힘이 위협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억제하는 대신 나머지 국가들은 미국적 시스템에서 살아가기로 동의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두 가지 ‘거래’는 1940년대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탈냉전 질서를 뒷받침하는 데에도 유용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중요한 거래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워싱턴이 어떤 방법으로 전쟁을 수행하느냐는 점이다. 국제적으로 자신의 명분을 뒷받침하는 협력지향 전략은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하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일단 군사력을 사용할 때 그것을 정당화해주고, 여타 나라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이 연대에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미국과 강대국의 안정적 협력

    많은 관측자들은 냉전이 끝날 때 세계정치는 드라마틱하고 불안정하게 소용돌이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구소련이 붕괴하고 국제적으로 권력의 배분이 크게 변동하던 시절에도 미국과 그 파트너들은 안정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국제질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강대국 사이에 심각한 전략적 라이벌관계나 경쟁적인 세력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같은 질서체제의 핵심 구성원은 유럽과 북미, 동아시아의 민주화된 산업국가들이다. 이 국가들은 안정적인 정부와 자유로운 사회, 그리고 발전된 시장경제를 갖고 있으며 안보동맹과 경제적 상호의존, 그리고 다양한 다자간 제도로 이어져 있다. 1990년대 내내 군사적 기술적 경제적 우위를 강화해온 미국은 이러한 질서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강대국 사이에 안정적인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결론은 아니었다. 일련의 현실주의적 분석은 세계가 강대국간의 라이벌 관계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대국들이 외부의 공동 위협에 맞서기 위해 뭉칠 필요를 느끼지 않는 한 그들은 국제체제의 본질인 무정부상태를 지향하는 경쟁적인 전략을 펼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독일과 일본은 미국 및 나토와의 종속적인 안보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해 재무장할 것이며 결국 헤게모니를 위한 다극적인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탈냉전시대는 동맹관계가 격변하고 강대국간의 갈등이 첨예화하는 19세기 후반기와 비슷한 양상이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보협력,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의 파트너들이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아래 머무는 경향은 냉전의 유물이 되고 만다.

    미국의 안보 시스템이 무너지는 또 다른 시나리오는 유럽과 미국에서 지정학적 야망이 바뀌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세계질서 안정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존재일 수 있으나 미국 유권자들은 이 점을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거나 미국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찰스 쿱찬(Charles Kupchan)은 미국이 세계의 보호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식이 미국민 사이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이 변화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헤게모니의 커다란 떡갈나무는 지난 수십년간 꾸준히 성장해왔다. 세계에는 아직도 그 떡갈나무의 존재를 원하고 거기서 이득을 얻는 나라들이 많다. 그런 미국의 존재 탓에 대안적인 질서체계가 나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들도 많다.

    그렇지만 그 떡갈나무는 지하의 수분공급, 다시 말해 미국민의 지지를 전제로 한 것이며, 언제라도 말라버릴 수 있다. 독립적인 안보역할과 독자적인 리더십을 추구하는 통합된 유럽의 부상은 다가오는 갈등에 추가 요인이 될 수 있다.

    두번째 분석은 현존하는 경제구조 변동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세계가 1930년대로 되돌아갈 것이며, 열린 다자주의 대신 경쟁적인 지경학적(geo-economic) 지역주의가 대두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럽과 아시아는 각각 미국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지역적 경제질서를 좇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은 더욱 정치화할 것이며 무역갈등이 높아지고 세 개의 주도적인 지역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각 지역별로 독자적인 자본주의의 성격 때문에 더 거세질 것이다.

    예를 들어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은 인위적인 냉전의 굴레가 벗겨지고 난 뒤 일본은 궁극적으로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추구할 것이며 이는 태평양 지역에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소개한 탈냉전시기에 대한 비전은 한결같이 분열과 갈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런 우울한 전망이 현실에 가깝게 다가온 것은 아니다. 공동의 위협으로서 구소련은 사라졌지만 1990년대의 미국과 일본은 여전히 동맹관계를 강조하고 있고, 독일과 다른 유럽국가들은 국방비를 줄여나갔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군사력 태세를 변화시키겠지만 미국과의 동맹에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러시아와 중국은 말로는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에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서구 지향적인 세계체제에 통합되는 길을 열심히 찾고 있다.

    9 ·11 테러를 경험하고 난 뒤 미국 내에서는 향후 세계전략과 관련한 다양한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주로 강경파의 주장이 해외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미래의 미 군사력에 대해 ‘포린 어페어즈’ 2002년 5/6월호에 기고한 글이 비근한 예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해 보다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한 논자들을 외면하면 안된다.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Jr.) 하버드대 교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당장은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지 몰라도 종국에는 냉철한 이성적인 속삭임이 현실에 반영될 가능성이 더 큰 법이다. 이 글은 나이 교수가 최근에 쓴 저서 ‘미국 힘의 패러독스(The paradox of American Power. 2002)’를 발췌해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다시 발췌 정리한 것이다(출처 : International Affairs, 78,2. 2002).

    미국은 앞으로 어떤 대전략을 가져야 할 것인가. 이 논의를 시작하려면 우선 미국의 힘과 세계적인 공공재(global public goods)간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한편으로 미국의 힘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효과적이지 못하다. 미국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미국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남아 있을 게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 미국은 국제질서를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유지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국경 바깥까지 국가이익을 넓혀야 할 두 가지 명확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국경 밖의 일이 미국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이나 테러리즘, 마약, 교역, 환경문제 등 다양한 사안에서 외국 정부와 기관에 영향력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2001년 9월에 보았듯이 아주 가난하고 격리된 나라조차도 미국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크게 보면 국제질서 자체가 공공재다. 누구나 쓸 수 있으되 다른 나라가 그 소비를 줄일 필요가 없는 것이 공공재의 개념이다. 예컨대 작은 나라도 자신이 속한 지역의 평화, 항해의 자유, 테러리즘 규제, 자유 무역 등 공공재를 누릴 수 있다.

    만약 이같은 공공재의 최대 수혜자가 이 공공재를 균등하게 나누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떠맡지 않는다면, 다른 작은 나라들이 그런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다자가 포함되는 집단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최대 수혜자가 그 책임을 맡고 다른 나라들이 무임승차하더라도 그 반대의 대안은 존재하기 어렵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이와 관련해 미국을 ‘필수불가결한 나라’라고 표현했다. 미국은 무임승차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세계 공공재를 주도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 미국은 ‘하드 파워(hard power)’와 ‘소프트 파워(soft power)’ 두 가지 모두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소프트파워와 관련해 미국은 의회의 자기절제를 비롯해 경제와 환경, 사법체계 를 국내에서 잘 정비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은 미국을 하나의 모범으로 보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미국이 전세계적인 필요보다 자신의 국내 이해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미국에 대한 존경은 금세 실망과 경멸로 바뀔 것이다. (중략)

    미국의 대전략은 일차적으로는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세계에 공공재를 제공하는 일이다. 미국은 이런 전략을 통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공공재 자체에서 얻는 이익도 있겠으나 공공재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얻게 될 정당성이라는 이익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은 19세기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대영제국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당시 영국은 세 가지 공공재를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첫째는 유럽 주요국가들 사이의 세력균형이었고, 둘째는 개방된 국제경제체제 촉진, 셋째는 항해의 자유나 해적 규제 등 국제적 공공재 유지였다. 이러한 것들은 현재 미국이 처해있는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다. (중략)

    오늘날 세계 공공재와 관련해 미국이 취할 전략은 ①주요지역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②개방된 국제경제를 촉진하며 ③국제적 공공재를 보존하고 ④국제법과 제도를 유지하고 ⑤경제발전을 지원하고 ⑥국제연대를 소집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로 정리할 수 있다.

    2001년 9월의 갑작스런 모닝콜로 미국인들은 냉전 이후 10년간 유지했던 평온한 자기만족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미국이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테러리스트가 미국의 힘을 파괴하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에는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미국은 너무 오만하게 행동하지 않는 한, 우월한 지위를 심각하게 도전받지는 않을 것 같다.

    가까운 장래에 미국에 도전할만한 실체는 유럽연합이다. 물론 이 경우도 유럽연합이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견고한 연합으로 거듭나고 대서양을 사이에 둔 양측의 관계가 나빠진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유럽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미국의 외교정책에 상당한 실책이 뒤따를 경우에만 그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미국에 그같은 도전이 없다고 해도, 군사력의 의미가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줄어든 세계적인 정보화시대에서는 유럽이 경제적, 초국가적 장기판에서 미국과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과 군사적으로 균형을 이룰 힘은 없다고 해도 공동보조를 취해 미국의 목표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는 있다.

    프랑스 비평가 도미니크 모이시가 말했듯이 “세계화시대라고 해서 미국을 빼놓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다양한 행위자가 새로 나오면서 미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다.”

    미국은 팍스 브리태니카의 역사에서 국제사회에 공공재(public goods)를 제공하는 전략을 배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 호주 분석가의 말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만약 미국이 자신의 카드를 잘 활용하고 독주자가 아니라 연주회 지휘자처럼 행동한다면, 팍스 아메리카나는 적어도 팍스 브리태니카가 아니라 팍스 로마나처럼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헨리 키신저가 주장한 것처럼 미국 앞에 놓인 역사적 시험은, 미국의 압도적인 파워를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으로 바꿀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와 영국이 그들의 시대에 성취했던 위대함이다.

    테러시대, 미국의 한반도전략

    우리에게 궁극적인 관심사는 9·11 테러를 경험한 후 ‘달라진 미국’이 향후 한반도 상황에 어떤 정책을 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작년 초에 집권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대북 강경노선을 견지하고 있는데, 그런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북한 운명과의 함수관계에 관한 논의다.

    여기에 소개하는 빅터 차(Victor Cha) 교수의 글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테러 이후 달라진 미국의 대북전략을 흥미롭게 분석했다. 빅터 차 교수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현재 조지타운대 교수로 재직중이다(출처 : ‘포린 어페어즈’ 2002년 5/6월호).

    올해 1월2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한반도에 대한 새 정책을 발표해 관측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날 밤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은 대테러 전쟁의 단계에 대해 설명했는데, 거기에 북한과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문제 대목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중략)

    부시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악의 축’ 논리와 미국이 추진하는 실제 대북정책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견해에 따르면, 간극은 김정일을 끌어 안으려고 애썼던 빌 클린턴의 노력을 부시대통령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겼다. 아니면 최악의 경우 미국이 대테러전쟁의 다음 국면에서 북한 정권을 붕괴하는 코스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가 잘못된 관점이다.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는 포용정책을 무분별하게 내다버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또 실제로는 클린턴이 간 길을 따라가면서 말로만 자신을 클린턴과 구별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 연두교서를 자세히 검토해보면 부시팀이 전임자의 정책과 쌍둥이도 정반대도 아닌 독특한 대북 접근법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혼란스러운 먼지가 걷히고 나면 사람들은 이 새로운 전략이 북한의 복잡한 현실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강경포용정책(Hawk engagement policy)’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부시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전략은, 전통적인 대북 접근법과 견줄 때 실천적 측면보다는 철학적 측면에서 더 큰 차이가 있다. 이 전략은 물론 남한의 햇볕정책과는 다른 것이며, 단기적 정책 실행보다는 정책의 전제와 논리, 잠재적 결론 면에서 차이가 더 크다.

    클린턴 시절의 일부 관리들도 그랬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포용정책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고 상호신뢰를 높여 불안정을 없앴다고 본다. 그러나 강경포용정책은 반대로 포용정책이 장래에 징벌하기 위한 전 단계라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강경파들은 북한이 협조적인 자세로 나오리라는 전망에 회의적이며, 오히려 포용정책을 통해 평양의 허세를 부추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햇볕정책의 목표는 남북한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는 것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강경포용정책의 목표는 통일, 혹은 그 이후 한반도를 어떻게 미국의 대전략에 가장 잘 부합하도록 하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부시팀은 자신의 대북전략이 클린턴 시절과는 다른 5가지 요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①제네바 기본합의의 이행 개선 ②북한의 미사일 생산과 수출에 대한 검증 가능한 통제 ③재래식 전력에 대한 접근 모색 ④북한과의 타협에서 상호주의 강조 ⑤동맹들과의 긴밀한 협의 등이다. 재래식 전력에 대한 관심 빼고는 모두 1999년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제시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 청사진에서 논의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을 보는 부시의 시각과 클린턴의 시각 사이에는 보다 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부시의 강경포용정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과 나란히 놓고 볼 때 좀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전략은 북한의 위협적인 태도가 북한의 불안정한 안보상황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냉전시절의 보호자로부터 버림받고 경제적으로 파산했으며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굶주리고 있는 북한은 안보와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안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용정책은 북한의 안보상 불안을 줄여 줌으로써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끝낼 수 있다고 본다.

    부시의 강경포용정책은 여러 면에서 이같은 논리를 깨뜨리고 나선다. 이 정책은 외교의 유용성을 인정하지만, 포용정책은 북한이 감추고 있는 진짜 악의를 드러내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북한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개발해 한반도에서 미군을 쫓아내고 남한 정권을 뒤집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본다. 강경포용정책의 목표는 이같은 북한의 의도를 단기적으로는 협상을 통해 좌절시키면서 동시에 다음 단계로서 징벌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중략)

    부시팀은 평양의 김정일 정권이 기본적으로 비열하다고 생각한다. 평양은 자신의 주민을 굶기고 스탈린적인 기준에서 봐도 심한 강제수용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가 중히 여기는 거의 모든 가치를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테러전쟁 상황에서 북한 정권을 직접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은 미국의 이해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 같은 시도는 취약하기 짝이 없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할 뿐 아니라 미 군사력을 유혈 낭자한 수렁 속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대중 정부와 클린턴 행정부가 추구한 포용정책만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당장은 서투르게 보일지라도, 부시 행정부는 전임자의 정책보다 효과가 클 수도 있는 새로운 포용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이 전략을 좀더 능숙하고 일관성 있게 구사할 수 있게 되면, 부시 비판자들도 결국 이 전략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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