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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 국가원수와 맞담배를 하느냐”

  • 이만섭·전 국회의장

“네가 어찌 국가원수와 맞담배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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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결정적으로 아버님의 건강을 상하게 한 사건이 바로 동아일보 필화사건이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한 달도 채 못된 6월3일 오후, 청와대에서는 윤보선(尹潽善) 대통령의 특별 기자회견이 있었다. 윤대통령은 “군사정권은 9월의 유엔총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조속히 민간인에게 정권을 이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이게 문제의 기사였다. 모든 언론은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아예 그 기사를 빼버리거나 은폐해버렸는데 동아일보만이 당당하게 1면 톱으로 다뤘던 것이다.

혁명정부는 윤보선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을 동아일보가 국민과 군사정부 사이를 이간시키기 위해 꾸며서 썼다며 문제를 삼았다. 결국 나는 혁명정부의 ‘포고령을 위반한 죄’로 13일 오후 구속돼 서대문경찰서에서 서빙고 육군형무소로 이감되었다.

내가 수감되자, 아버님께서는 큰 충격을 받으셨다. 특히 아버님께서는 내 죄명이 혁명정부의 ‘포고령 위반’이라 중형을 받는 것이 아닌가하고 크게 걱정했던 것이다. 아버님은 사나흘에 한번씩 대구에서 면회를 오셨는데 그때 큰 충격을 받아서인지 얼굴에 병색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렇게 두어 달 고생하고 8월 초 내가 풀려났으나 아버님께서는 충격을 이겨내지 못해 결국 속병이 들었으며 2년 뒤 환갑을 한 해 남긴 채 눈을 감으시고 말았다. 모두 내 탓이었다.



공군사관학교 퇴교사건이나 동아일보 필화사건은 나로서는 부끄럼 없는 소신에 따른 행동이었으나 아버님으로서는 혹시 내 자식이 잘못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아버지께서는 인자하시면서도 무척이나 엄하신 분이셨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와 한방을 썼는데 내가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꾸벅꾸벅 졸 때면 아버지께서는 나를 꼬집으며 한 겨울에도 밖에 나가서 찬물에 세수를 하고 다시 공부를 계속하라시며 야단을 치곤 하셨다.

‘정직하라’ ‘겸손하라’

이런 아버지의 엄하심은 내가 정치에 입문해서도 여전하셨다.

1963년 가을 나는 민족의식이 강하고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의 집념이 강한 박정희(朴正熙) 국가최고회의의장에 공감하여 동아일보를 그만두고 공화당에 입당, 그해 대통령선거 유세반 연사로 나섰다.

나의 연설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50만이 넘는 인파가 대구 수성천 양쪽 강둑을 가득 메운 가운데 연단에 오른 나는, 내가 왜 공화당에 입당하게 됐는지, 왜 박정희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지 목청을 높였다.

내 연설은 대성공이었다.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자 박의장은 내게 “대웅변가요” 하면서 담배를 한 대 권했다. 기자 시절 마주 앉아 담배를 피운 적이 있었던 난 무심코 받아 피웠다. 그날 대구 유세를 마친 후 문안인사차 대구시 서문로 본가에 들른 나는, 아버지로부터 호된 야단을 맞았다.

“네가 어떻게 감히 국가 원수와 함께 맞담배질을 할 수가 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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