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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박수룡의 화필기행 붓 따라 길 따라

소록도, 미어지는 한으로 빚은 슬픈 아름다움

  • 민병욱·박수룡

소록도, 미어지는 한으로 빚은 슬픈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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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인의 말은 맞았다. 푸른 산과 논 사이를 구불구불 돌며 갓길의 야생화가 적절히 운치를 더해주는 아스팔트 국도. 그게 50년 전에는 끝없이 붉은 황톳길이었다는 것이다. 칠팔월 땡볕 속에 거길 걷노라면 그야말로 천형을 받는 듯 시뻘건 해와 흙이 사람조차 붉게 물들이며 턱턱 숨을 막히게 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통과의례랄까. 나환자들이 세상의 멸시를 피해 조금 나은 삶과 치료를 위해 소록도에 가려면 숨막히는 더위 속 붉은 황톳길을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지는” 아픔도 이를 악물고 견뎌야 했다. 붉은 길이 야속하고 쨍쨍 내리꽂는 해가 미워 병든 몸과 마음을 사무치도록 원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처럼 가도 가도 끝없는 길이 이젠 번듯한 국도로 변모했다. 새로 4차선 도로를 내려고 산을 깎아낸 현장이나 각지게 구획한 논 사이의 좁은 농로 정도에나 붉은 황토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곳에 닿기까지의 혹독한 통과의례 - 턱턱 숨막히는 황톳길 발품을 생략한 소록도는 그럼에도 찾는 이에게 치료와 안식을 줄 것인가.

고흥반도의 서쪽 끝 녹동항에서 소록도까지는 배로 5분, 직선으로 600m 거리다. 헤엄을 쳐도 30분이면 닿을 수 있지만 보통사람들의 출입은 얼마 전까지 엄격히 통제됐었다. 한센병(나병)이 거의 전염되지 않고 완치가 가능한 데다 발병률도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하자 당국은 소록도에 일반인 출입을 허용했다.



그렇다고 해서 관람객들이 섬 전체를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기 사슴의 절반 상체에 해당하는 부분은 병사지역, 하체 쪽은 직원지역으로 구분해 방문객의 병사지역 출입을 금한다. 이곳에서 투병 요양중인 800여 명의 환자들은 자조적으로 자신들이 있는 곳을 유독지대, 관광객들이 둘러볼 수 있는 곳을 무독지대라 부르기도 한다.

유·무독지대의 경계선으로 삼은 길이 글 첫머리에 소개한 ‘수탄장’이 섰던 곳이다. 1960년대까지 철조망이 쳐있었으나 모두 철거했다. 한때 눈물과 탄식, 비통의 현장이었던 그곳은 이제 소록도가 자랑하는 솔 향기 은은한 숲길이 되었다. 섬 안을 도보로만 이동할 수 있는 관람객들은 이 수탄장 근처에서 종종 사슴들과 마주치곤 한다.

소록도 사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숲길을 걷다 문득 시선을 느껴 고개를 들면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사슴의 눈과 마주친다. 뒷발에 힘을 주고 가슴을 당당히 편 희디 흰 사슴이 다소 붉은 기가 도는 큰 눈망울을 껌벅인다. 다가가려 하면 슬그머니 시선을 거두고 뒷걸음질하듯 숲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모습이 단아하다.

소록도병원에서 8년째 근무하는 김정희씨는 섬에 사는 흰사슴과 꽃사슴들은 나환자들과 닮은 점이 많다고 얘기한다. 우선 수줍음이 많고 신체 접촉을 꺼린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그리운지 지나가는 이들을 힐끗힐끗 동경의 눈으로 지켜본다는 것이다. 마음이 여리고 남을 배려하며 조용히 사는 것도 빼닮았다고 설명하는 김씨의 표정도 역시 사슴과 닮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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