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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분석

너무도 無知한 언론이 미스터리 키운다

개구리소년 11년의 진실

  • 글: 김진수 jockey@donga.com

너무도 無知한 언론이 미스터리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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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단이 사인규명에 혼선을 불러온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유족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경찰 수사방향은 타살 쪽으로 급선회했다. 11년 전 단순가출로 예단, 부실한 초동수사를 벌였다가 국내 단일 실종사건으론 유례 없는 연인원 32만명을 동원하고도 사건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한 뼈아픈 경험을 반복한 것이다.

경찰은 “사인규명에 수사력을 총동원하겠다”며 지난 9월28일 대구지방경찰청 조선호 차장을 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하고, 수사본부도 유골 발견지 관할인 용산파출소에서 실종사건 초기에 수사를 맡았던 성서파출소로 옮겼다. 수사인력도 16명에서 45명으로 늘렸다.

그러나 외면에 비치는 이런 의지와는 달리, 경찰 수사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수사본부의 조두원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은 “‘사람에 의한 사망’일 것이라는 몇 가지 정황은 있지만 그것을 입증하는 과학적 자료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각계 전문가를 총동원해 반드시 사인을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사실상 법의학팀의 감정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제보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쯤에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사인을 타살 일변도로 보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저체온사 등 사고사에 대한 추론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다. 현 시점에 사고사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제기하면 백안시(白眼視)당할 정도다. 물론 옷매듭 등 타살 정황이 될 만한 것들이 전혀 없진 않다. 그럼에도 아이러니컬한 것은 법의학팀의 감정과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할수록 타살 의혹은 점점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책임의 절반은 언론의 보도태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이 부추긴 타살說



언론매체들은 유골 발굴 이틀째인 지난 9월27일 현장에서 탄두와 탄피가 발견되자 일제히 유탄 피격(被擊) 의혹을 제기하며 사인을 타살로 모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여기에다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으로 ‘30대 남자로부터 군생활 당시 어린이 5명을 총으로 쏴죽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전직 구두미화원 한모씨(43)의 제보까지 뒤이어 보도되자 타살 의혹은 한결 증폭됐다.

당시 한 공중파방송사는 객관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타살 확실시’ ‘피살 집중수사’ 등 자극적인 제목을 내보내는 선정성의 극치를 보였다.

지난해 8월 경북 청송군 보현산에서 한국호랑이 촬영에 성공했다고 호들갑 떨다 오보로 판명난 전력(前歷)을 지닌 그 방송사다. 이런 선정적 보도는 타살 의혹에 주관적 심증만 굳혀준, 경찰의 ‘저체온사 추정’에 결코 뒤지지 않는 예단이라 할 수 있다.

어찌됐건 언론이 타살 쪽에 더 비중을 두면서 인터넷에도 네티즌들의 온갖 추리가 난무했다. 각종 설(說)이 판치는 가운데, 심지어 경찰이 개구리소년 유골을 미리 발견해놓고도 ‘4억달러 대북 지원설’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 묘한 시점에서 터뜨린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그러나 유골 발견 당시 상황을 더듬어보면 그런 음모론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최초 발견자 최모씨(55)가 유골을 발견한 시각은 9월26일 오전 11시40분쯤. 신고를 받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시각은 낮12시20분. 경찰 연락을 받은 유족들이 현장으로 달려온 때는 오후 3시경. 당시 현장으로 가장 먼저 달려간 한 기자는 “경찰이 숨기고말고 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기자들 중 맨먼저 유골 발견 소식을 접한 건 우연이었다. 그날 오후 3시쯤 출입처인 달서경찰서에 있다 한 경찰관의 통화내용을 옆에서 듣고 알게 됐다. 나중에 들으니 경찰은 당초 하루 뒤인 9월27일 유골 발견 사실을 공개하려 했다고 한다. 발굴작업에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곧 다른 기자들까지 우르르 몰려왔으니 유골 발견 소식은 최대한 빨리 보도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경찰이 어떤 의도에서건 ‘공개 시점’을 조절할 여지는 없었던 셈이다.

타살 의혹이 커지면서 제보도 잇따랐지만, 대다수는 허위로 판명됐다. 유골 발견 하루 전 한 일간지에 ‘와룡산에 개구리소년 유골이 있다’고 제보한 정모씨(40·주거부정)의 경우 실제론 와룡산 위치조차 모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총기 살해설’을 제기했던 한씨의 제보도 마찬가지다. 그는 보병 제50사단(흔히 육군 50사단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이는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경찰은 10월9일 현재 70건의 신고 및 제보사항을 접수해 이중 신빙성 없는 52건을 종결하고, 18건에 대해서는 계속 확인수사중이다. 종결된 제보 사례 중엔 이런 것들도 있다.

‘부산 영도구 신선동 3가에 거주하는 최모씨가 테러에 의해 개구리소년이 납치됐다고 10월6일 신고’ ‘주거가 불분명한 이모씨가, 자신의 처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개구리소년들 중 한 소년의 엄마의 남동생이 돈문제로 싸우다 개구리소년을 죽였다고 10월8일 신고.’

물론 개구리소년 관련보도가 언제나 선정적으로만 흐른 건 아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만9년이 된 2000년 3월26일. 이날을 즈음해 당시 대구 달서경찰서 출입기자들은 해마다 그맘때면 한 꼭지씩 쓰던 개구리소년 유족 근황 기사를 더 이상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비록 달서경찰서내에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수사전담반(형사6반)이 있긴 했지만, 수사가 진척되지 않는데다 과거 온갖 허위제보를 확인 없이 보도한 사례들을 감안, 유족들의 가슴에 더 이상 못질을 해선 안된다는 선의에서였다. 더욱이 ‘개구리소년’이란 표현도 사건발생 이후 와전(訛傳)되던 것을 언론이 조어(造語)한 터였다.

최근의 보도행태가 사건발생 당시만큼이나 지나치다는 데 대다수 기자들은 공감한다. 한 사회부 기자의 토로. “솔직히 우리(기자들) 사이에서도 확률은 반반이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렇지 않은가. 확실한 목격자도 없고 물증도 없다. 누가 감히 사인을 단정할 수 있나. 그런데도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무언가 기사거리가 될 만한 게 있으면 안 쓸 수는 없다. 데스크 주문도 그렇고…. 자가증폭하는 셈이다. 그래도 집단피살 운운한 보도는 너무했다는 게 기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이제 답은 분명해진다. 개구리소년 변사사건(더이상 실종사건이 아니다) 해결에 있어 더욱 냉정하고도 과학적인 접근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접근은 사인규명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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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수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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