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선고 20시간만에 사형시킨 정권 안보 조작극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관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 추적기

  • 글: 유보인 의문사위 조사1과 조사관 ybi@choi.com

선고 20시간만에 사형시킨 정권 안보 조작극

2/6
필자를 포함해 두 명의 조사관이 국방부 검찰단 문서고에 들어가 인혁당 재건위 관련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확인한 시점은 2001년 8월이었다. 서류에 쌓여 있는 먼지 두께가 27년이라는 세월을 말해주는 이 기록은 이때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분량만 해도 2만여 페이지였다. 정의평화구현사제단과 천주교인권위원회, 그밖에 사건 관련자들에 따르면 그동안 국방부는 이들의 기록열람 요청에 대해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해왔다.

의문사위에 이 사건 재판기록의 확보는 진상조사를 위한 전제조건이었다. 기록이 없으면 조사대상자조차 확정할 수 없고 사건 흐름을 파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기록 확보를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석 달이 흘렀다. 기록이 있을 만한 곳 가운데 남은 것은 국방부 밖에 없었다.

국방부에 기록을 요청하기에 앞서 의문사위는 사전준비 계획을 세웠다. 관련 기록을 요청하는 공문 한 장 달랑 보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문을 보냈다가 ‘기록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이 올 경우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조사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다. 물론 국방부가 그와 같은 답변을 보내올 것이라고 예상할 실제적 근거는 부족했고 또한 실지조사라는 최후 수단이 남아 있었지만, 군 대상 의문사를 조사하는 우리 위원회 조사3과의 경험은 담당 조사관이던 필자에게는 심각한 경고음이었다. 당시까지 3과가 군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지조사는 성과가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기록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 후 공문을 발송하기로 하고 곧바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확인 작업에 착수한 지 두 달 보름 만에 국방부 검찰단에 기록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공문을 보내 기록을 확인하고 사본을 복사하는 데 또 두 주일이 걸렸다. 기록을 입수해오기까지 정확히 6개월이 소비된 것이다.

기록을 복사하기 위해 검찰단에 갔던 첫날은 시간이 유난히도 느리게 흘렀던 기억이 난다. 일군의 고위급 장교들이 우르르 검찰단 문서고에 들어오더니 “위원회에 사본을 내줘도 좋다고 결재한 사람이 대체 누구냐”며 큰 소리를 치는 등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종료휘슬이 울린 이후였다.



이제 닥친 일은 기록의 분석이었다. 필자는 당시 최종길 교수 사건을 마무리하는 시점이어서 기록의 분류와 분석 그리고 피해자측에 대한 조사는 조현조 조사관이 전담하기로 했다. 방대한 문서기록을 분류한 후 이를 분석하는 데 다시 몇 개월이 흘렀다.

분석을 통해 조사대상자가 확정되었고 또 이들을 몇 개 그룹으로 나누었으나 문제는 증언을 해줄 제3자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때까지 고문, 문서 허위작성, 증거 조작 등은 기록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추정한 잠정적인 결론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육성으로 확인해줄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가혹한 고문이 광범위하게 자행됐다는 사실, 문서가 허위로 작성되고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것을 필자가 확신할 수 있었던 근거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일관되고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입수한 기록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순이 너무나도 많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중정의 당시 수사관들이 음으로 양으로 이 사건 해결을 도와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사건으로 사형당한 여덟 명을 비롯해 구속된 사람 모두 상고심으로 형이 확정되기까지 약 1년 동안 중정의 지시에 의해 면회가 일절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고문당한 사실을 증언해줄 사람은 본인들을 제외하고는 변호사와 교도관들 그리고 직접 고문을 하거나 목격한 수사관들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서울구치소에서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들을 담당했던 교도관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74년 당시 서울구치소에 근무하던 교도관들은 약 480명. 간단히 말해 공휴일을 제외하고 하루에 한 명씩 소환 조사한다 해도 2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소환조사 대신 탐문조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대일 접촉을 지양하고 집단접촉(grouping)을 시도했다. 접견과와 출정과 그리고 사동담당자들 중에서 근무기간이 긴 사람을 우선 선정하여 협조자를 찾는 한편, 한 번에 다수를 접촉할 수 있는 소모임을 만들어 증언 확보를 위한 교두보로 삼았다.

생각보다는 정보타깃(조사에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대상이나 그 대상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 혹은 자료)을 찾기가 쉬웠다. 거의 대부분의 교도관들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된 사건이며 매우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례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나서서 유용한 정보를 알 만한 사람을 소개해주고 심지어 연락처를 일일이 확인해 우리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2/6
글: 유보인 의문사위 조사1과 조사관 ybi@choi.com
목록 닫기

선고 20시간만에 사형시킨 정권 안보 조작극

댓글 창 닫기

2019/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