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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달러 탕감해주시오. 그러면 미국을 돕겠소”

9·11 테러에서 토라 보라 전투까지 핵심 5인이 털어놓은 아프간전쟁 막전막후

  • 글: 정리·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30억달러 탕감해주시오. 그러면 미국을 돕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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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군정 실력자

1999년 무혈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무샤라프 장군은 ‘PBS 프런트라인’인터뷰에서 9·11테러 뒤 파키스탄이 아프간전쟁에 휩쓸려 들어가는 과정에 얽힌 비화들을 공개했다. 그는 당시 파키스탄이 미국 편에 붙어 영공과 군사기지들을 미국에 개방할 경우 국내 정세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다. 무샤라프의 최대 관심은 아프간전쟁이 파키스탄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파키스탄 정보부(ISI) 책임자를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에게 두 차례 보내 설득작업을 폈다. 그로선 미국 편에 서는 게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험에 성공했고, 경제적 실리란 반대급부를 챙겼다.

9·11테러 바로 다음날 국무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는 당시 워싱턴을 방문중이던 파키스탄 정보부 책임자 아흐마드 마흐무드 장군, 워싱턴 주재 파키스탄 대사 로흐디를 만나 앞으로 미국이 벌이게 될 ‘테러와의 전쟁’에서 파키스탄측의 협조를 구했다. 이슬라마바드 주재 미국대사 웬디 챔벌린도 무샤라프를 방문, 아미티지 부장관과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 무샤라프의 증언.

미국, 무샤라프에 7개항 요구

“ISI 책임자 마흐무드 장군으로부터 아미티지 부장관과 접촉했다는 보고를 받은 9월12일 저녁 나는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고, 그 다음날도 하루 종일 회의를 열어 앞으로 정책 가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놓고 대책을 숙의했다. 9월14일에는 주요 군 지휘관들을 소집해 의견을 나눴다. 그런 뒤 9월15일 각료회의에서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을 둘러싼 문제들에 부딪쳐 있다. 이것들은 단지 모험일뿐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당시 무샤라프는 미국측의 7개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겠다고 이미 답변한 상태였다. 9월13일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은 마흐무드 ISI 정보국장에게 7개 요구사항을 내밀었고, 그날 오후 파월이 무샤라프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측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겠다는 언질을 받았다.



7개 요구사항은 첫째, 알 카에다의 파키스탄 국경 월경(越境)을 파키스탄측에서 막고 오사마 빈 라덴 지원을 중단할 것. 둘째, 파키스탄 영공을 미군이 사용하게 해줄 것. 셋째, 해군기지와 비행장을 사용하도록 해줄 것. 넷째, 각종 정보를 신속히 제공할 것. 다섯째, 9·11테러를 비난하고, 미국에 대한 파키스탄 국내의 비판여론을 막아줄 것. 여섯째, 탈레반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고, 파키스탄의 탈레반 지지자들이 아프간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막아줄 것. 일곱째, 탈레반 계속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한다면, 탈레반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할 것 등이었다(편집자).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마흐무드 ISI 국장에게 7개 요구사항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이 사항은 협상할 여지가 없는 것’이라 말했다. 이와 관련한 무샤라프의 증언.

“미국측이 내민 7개 요구사항은 일종의 패키지로 우리쪽에 건네졌다. 파키스탄 영공과 군사기지를 미군이 사용하게 해달라는 요구와 병참지원, 정보협조 및 교환 등 3가지가 중요했고 나머지는 비중이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나는 이를 받아들였고, 어느 쪽 영공과 기지들을 미군이 이용할 것인지, 병참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세부적 사항들이 논의됐다.”

그즈음 무샤라프는 부시 미 대통령과도 통화를 했다.

“나는 파키스탄의 전략적 자산을 보호하는 데 관심이 있고, 그것은 특히 인도와 관련돼 있다고 부시 대통령에게 강조했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인도와 이스라엘이 파키스탄을 해치려고 공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9월18일 무샤라프는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와도 전화통화를 했다. 그것은 무샤라프가 199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처음 나눈 대화였다. 그 통화에서 블레어 총리는 아프간전쟁에서 영·미 두 국가에 협조하기로 한 무샤라프의 결단에 고맙다는 말을 했고, 무샤라프는 자신의 결정이 고심 끝에 나온 것임을 밝혔다.

탈레반 설득 위해 세 차례 밀사 파견

“30억달러 탕감해주시오. 그러면 미국을 돕겠소”

지난해 12월 아프간 동부 토라 보라 산악지대에서 전투를 벌인 뒤 임무교대를 위해 산을 내려오는 반탈레반 무자헤딘 전사들.

미국의 묵인 아래 무샤라프는 아프간에 밀사들을 보냈다. 아프간 탈레반 체제로 하여금 오사마 빈 라덴을 추방하라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때 모두 세 차례 밀사를 보냈다. ISI 책임자 마흐무드 장군이 내 친서를 품고 아프간에 두 번 다녀왔고, 내무장관이 한 번 다녀왔다. 친서의 요점은 아프간 평화를 위해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기라는 것이었다. 아프간 현실을 직시하고 그를 넘겨야 아프간 사람들의 고난을 덜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왜 아프간 사람이 아닌 인물(빈 라덴) 하나를 놓고 아프간 사람 전체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으려 하느냐는 게 밀사를 보낼 때마다 거듭된 내 메시지의 골자였다.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의 응답은 ‘유엔 경제제재를 풀어달라. 경제적 지원을 원한다. 이를 수락하면 빈 라덴이 다른 나라로 가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엔 그런 응답은 탈레반의 완고함을 드러낸, 전혀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마흐무드 장군과 단독대면에서 물라 오마르는 한때 유연한 자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끝내 빈 라덴을 넘기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샤라프는 마지막으로, 파키스탄의 이슬람 종교지도자 대표들을 물라 오마르에게 보냈다.

“어쨌거나 전쟁을 막기 위해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아주 실망스러웠다. 오마르는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의 법정에서 빈 라덴을 심판하자’는 비현실적 제안을 했다. 그것이 오마르가 보인 최대한의 양보라면 양보였다.”

탈레반을 설득하는 한편으로 무샤라프는 부시 미 대통령을 설득해 전쟁을 막아보려 했다.

“당시 부시는 매우 화가 나 있었다. 9·11 테러로 인한 피해를 떠올리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나는 전쟁을 피할 수만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하고 말했다. ‘만약 미국이 전쟁을 피하는 조건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원한다면, 그의 아프간 추방으로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구태여 군사작전을 펼 이유가 없지 않으냐…’ 이런 얘기였다. 그러나 탈레반 쪽에서 ‘빈 라덴이 9·11테러와 관련이 있다면 그 증거를 제시하라’며 계속 빈 라덴을 감싸고 돌아 더 이상 우리 쪽에서 활용할 대화창구는 닫혀버린 셈이었다.”

단절된 탈레반과의 대화

아프간 공습이 시작되기 며칠 전 무샤라프는 미국측으로부터 “공습이 시작될 것”이란 귀띔을 받았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10월7일 공습이 개시되기 2∼3일 전쯤 그런 사실을 알려왔다. 당시 나는 파월 미 국무장관,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등 미국측 사람들에게 군사작전은 가능한 한 빠르고 짧게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쪽 사람들은 ‘짧다면, 얼마나 짧게?’라고 되물었다. 그런 질문에 나는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직업군인으로서 짧다는 게 며칠, 몇 주, 또는 몇 달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전쟁은 가능하면 짧은 시일내에 끝내야 하고,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공습을 한다면 정확하게 목표물을 타격해야 한다는 점을 늘 강조했다.”

아프간 공습이 시작되고 1주일 뒤 파월이 파키스탄을 방문, 무샤라프와 마주 앉았다. 당시는 아프간전쟁으로 탈레반 체제가 무너진 다음의 구도에 관심이 옮겨갈 때였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파월 장군(무샤라프는 파월을 ‘장군’으로 불렀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첫째, 전쟁 뒤 아프간에 (내전이 또다시 벌어지지 않고) 평화가 오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둘째, 아프간에 들어설 새로운 권력체계는 다민족인 아프간 인구 구성비를 반영해야 한다. 셋째, 아프간에 이웃 국가들과 잘 지낼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 이는 아프간전쟁의 군사적 전략, 아프간전쟁 뒤의 정치적 전략, 국가재건 전략과 맞물려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파월 장군에게 처음에는 군사전략이 우선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전략이 더 중요해진다는 점을 강조했고 장군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무샤라프가 인구 구성을 반영한 아프간 새 정부를 강조한 것은 아프간에 대한 파키스탄의 영향력을 잃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탈레반 체제를 지지해온 파슈툰족은 아프간 인구의 38%를 차지하는 최대 부족이다. 탈레반군에 맞섰던 북부동맹군은 타지크족, 우즈베크족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그동안 파키스탄이 지지하던 탈레반이 무너지고 북부동맹이 주도권을 잡을 경우, 파키스탄의 아프간내 영향력은 심각하게 줄어든다-편집자).

두 사람은 다음날 다시 40분 동안 회담했다. 무샤라프의 증언.

“그 자리에서 나는 아주 솔직하게 그리고 직선적으로 파키스탄이 미국에 협조하는 대가로 챙겨야 할 사항들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파키스탄의 채무 탕감, 재정적 지원, 시장개방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당신이 우리를 정말로 돕고자 한다면, 이 3가지 사항을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파월 장군은 ‘당신이 바라는 바를 내 이마에다 적어 놓았다’고 선선히 말했다. 그래서 지금도 때때로 파월 장군 부인은 ‘당신 이마에 뭐가 적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웃음)”

아프간전쟁에 협조하는 대가로 무샤라프는 파키스탄의 국제채무 30억달러를 탕감받기 원했고, 미국은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합의된 것은 없다. 다만 미국은 2003년 회계연도에 2억2000만달러를 파키스탄에 지원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이 1억3500만달러를 지원하게끔 영향력을 행사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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