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DJ·전두환 닮은꼴, 불교계 실망시킨 노태우”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의 쾌도난담

  • 글: 조성식 mairso2@donga.com

    입력2002-11-29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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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는 대의를 위해 참을 줄 아는 유능한 정치인
    • “이회창 후보 집권시 희대의 정치보복”은 소신발언
    • 공도 안 들이고 대통령 자리 후딱 차지하려는 사람들 있다
    • 김정일 답방, 반대할 이유 없다
    • 언론이 정권 창출에 공 세우는 건 옳지 않아
    • 仁村이 친일이라고? 그 시대 안 살아봐 하는 소리
    • 병풍, 두 아들 다 군에 안 간 게 문제, 하지만 5년 전 심판받은 일
    • DJ와 성품 가장 닮은 역대 대통령은 전두환
    • 노태우는 불교계에서 밀어 당선됐으나 실망만 안겨줘
    • 룸살롱 가 술 먹은 스님들, 타락했다고 보지 않아
    • 중노릇 해보니 불교라는 자유가 오히려 참 자유를 속박
    • 불교가 말하는 극락에는 들어가지 않겠다
    “DJ·전두환 닮은꼴, 불교계 실망시킨 노태우”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조계사는 법당 신축 및 보수공사로 어수선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고요함과 부드러움보다는 딱딱함과 근엄함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이 자리잡은 탓인지 절이라기보다는 관청이라는 느낌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은 소문대로 몹시 바빠 보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몇몇 노(老) 스님과 짧은 면담이 진행되는 동안 젊은 스님이 결재판을 들고 대기하고 있다. 온 종일 사람 만나고 행사장 가는 게 일이란다. 10분쯤 기다리자 차례가 돌아왔다. 스님의 얼굴은 온화해 보였고 눈빛은 그윽했다. 작은 체구였지만 강단이 느껴졌다. 속세 나이로 65세. 목소리에는 아직 힘이 넘쳤다.

    정대 스님은 인터뷰에 응하면서 스스로 내세운 두 가지 약속을 어겼다(?). 인터뷰를 30분만 하겠다는 것과 정치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인터뷰는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쯤 더 이어졌고 스님은 정치 관련 질문을 굳이 피해가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 방한, 국익 고려해야

    스님은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 김종필 자민련 총재 등 주요 정치인들에 대해 인물평을 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큰 파문을 일으켰던 문제의 발언, 즉 “이회창 후보가 집권하면 희대의 정치보복이 난무하지 않는다는 보장 없다”는 얘기는 ‘소신발언’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후보의 ‘장점’을 거론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일부 대선후보에 대해서는 “대통령 자리를 너무 후딱 차지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햇볕정책, 노벨상 로비의혹, 언론사 세무조사, 병풍 등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들에 대한 질문에도 거침없이 소신을 피력했다. 불교계 내부 문제로는 외교문제로 비화된 달라이 라마 방한 무산, 폭력사태를 낳은 해인사 청동대불 건립 논란, 스님들의 룸살롱 출입 사건 등이 화제에 올랐다.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종교의 기능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시대에 종교가 갖는 특별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특별한 의미는 부여할 수 없어요. 다만 종교가 교리에 충실하고 종교인들이 종교의 사명에서 이탈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자연스럽게 종교의 정신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불교가 천주교와는 공동행사를 자주 갖는 등 연대하는데, 상대적으로 기독교와는 대립하는 양상입니다.

    “가톨릭과 불교는 교리에서는 벽을 트지 못하지만 성직자로서는 트고 살아요. 그분들도 독신이기 때문에 서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 불교와 가톨릭은 다른 종교를 그렇게 심하게 공격하지 않아요. 자기 본분을 지키지. 그런 점에서 융화가 되지 않나 싶어요. 각자의 종교를 이해해 주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 방한을 반대하신다면서요?

    “반대한 적은 없어요. 찬성한 적도 없지만. 노벨평화상을 받은 티베트 불교 지도자로 방한한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내 말은 모시려면 충분한 여건을 갖춘 후에 모시자 그 말이에요. 왜냐하면 한 나라의 불교 지도자이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분인데 한국에서 모실 때 예의에 어긋난다거나 모시는 자세에 빈틈을 보인다면 바람직하지 않잖아요. 일부 신도가 나서서 될 일이 아니지요. 시간을 갖고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종교는 그런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들 하지만, 국익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어요. 중국 여행을 해보면 알아요. 중국 사람들이 그 문제에 상당히 신경을 써요. 젊은 분들은 불교가 왜 국가 눈치를 보느냐, 또 우리나라는 왜 중국 눈치를 보느냐고 비판하는데, 사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요. 마늘파동만 봐도 알잖아요. 몇십억달러짜리 수출을 못하게 되니. 국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야 해요. 청와대나 대통령이 반대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나는 대통령한테 그런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어요. 대통령은 거기에 대해 찬성이니 반대니 하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어요.”

    -조계종에서 티베트 불교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전혀 없어요. 하지만 티베트 불교를 앞서가는 종교로 생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그분들이 수련을 잘하는 건 맞지만, 한국 불교도 우리 조계종단이 자주 분규에 휩싸이고 제 갈 길을 못 가서 그렇지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수행종교입니다. 참선하고 수행하는 건 한국 불교뿐이에요.”

    화제를 정치 쪽으로 옮겼다. 1999년 11월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한 후 정대 스님은 정치적 발언으로 몇 차례 세인의 구설에 올랐다. 이에 대해 불교계 안팎에서는 “종교인의 정치적 발언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론과 “종교 지도자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발언”이라는 옹호론이 맞선 상태다.

    -종교와 정치는 어떤 관계가 바람직합니까.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야 마땅하고 종교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지요.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 분리하는 것이 참 어려워요. 완전 중립을 지키고 사는 종교 지도자는 많지 않아요. 불교도 그래요. 중생이 국가의 울타리 안에 사는데 정치와 분리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요. 더군다나 우리 불교는 업무적으로 정부와 협조해야 할 사안이 많아요. 대표적인 것이 문화재 보호와 관리예요. 문화재는 불교 것만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에요.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협조하고 또 협조받을 수밖에 없어요.”

    2001년 4월17일 정대 스님은 김종호 자민련 총재대행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김종필 현 자민련 총재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이른바 팔랑개비론이 그것이다. 그 발언의 진의를 묻자 스님은 “정치 얘기는 안 하는 게 좋다”고 잠시 침묵했다가, 굳이 감출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입을 열었다.

    “정치인을 평가할 때 세력이 있다고 무조건 추앙하고 세력이 없다고 인간 됨됨이까지 깎아내리는 풍토는 사라져야 합니다. JP는 누가 뭐래도 어려운 시대를 넘긴 인물이에요. 암흑기에 새 정권이 탄생하는 데 가교 노릇을 한 분이고…. 정치인들이 욕심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분은 대를 위해 욕심을 버리길 몇 번이나 하셨어요.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자신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김용환 부총재 같은 분이 이탈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DJ와 애초 약속했던 내각책임제를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현 정권이 들어선 후 가만히 보니 내각책임제가 실익도 없는 데다 개헌할 시간도 없다 그 말이여. 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 거여. 김용환씨는 그것이 못마땅해 떠났지요. 그가 떠나면 얼마나 타격을 입는지 알면서도 대를 위해 감수한 거예요.

    정치인이 그만하면 됐지 거기서 얼마나 더 잘해요? 인물의 잘나고 못나고는 행적을 보고 평가해야지 세력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에요. 그분이 5·16을 일으키고 유신에 참여했지만 그때 상황은 이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정희 대통령도 말은 많지만 보릿고개를 넘기게 했기 때문에 유능하다는 평을 듣잖아요. 그 차원에서 JP도 유능하다는 거죠.”

    한나라당의 반발

    정대 스님의 정치적 발언 중 압권은 역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와 관련된 것이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해 1월19일 정대 스님이 조계사에서 민주당 김중권 대표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기자들도 참석한 자리였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집권하면 단군 이래 희대의 보복정치가 난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1997년 대선 때) 김영삼 대통령이 인기가 없자 사진피켓을 밟고 ‘당을 떠나라’고 쫓아내려 하고… 김광일 신상우 등을 공천 안 준 것 보라. 얼마나 독한 인물이냐.”

    언론이 이를 주요 뉴스로 크게 다루자 조계종 총무원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총무원장은 여야 누가 집권하든 정치보복의 악순환이 없어야 하며 여야 모두 상생의 정치를 제대로 해줄 것을 촉구한 것인데 진의를 오해했다”고 해명자료를 냈다.

    한나라당은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불교계를 의식해 정면대응은 자제했다. 권철현 대변인은 다음날 공식논평에서 “정대 큰 스님이 실언을 했지만, 이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당내에서는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목요상 정책위원회 의장은 당 3역 회의에서 “종교지도자는 초연해야 한다. 편향된 인신공격 발언은 기본적으로 자세가 틀린 것”이라며 “종교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정치 발언이나 하고, ‘와전됐다’고 거짓말이나 하고…”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김무성 수석부총무는 “망언에 가까운 발언”이라며 “불교계가 살아있다면 개혁차원에서 정화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당사자인 이회창 후보는 선영이 있는 충남 예산 수덕사에 내려가 법장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동안 정대 스님으로부터 몇 번 좋은 말씀을 들었는데, 본의는 아닐 것”이라고 애써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공식일정을 중단함으로써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15대 대선 때부터 불교계에 정성을 쏟아온 부인 한인옥씨도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나 뵌 김에 여쭤보겠습니다. 당시 이후보 관련 발언의 진의가 궁금합니다.

    “진의는 무슨…. 내가 본 대로 말한 거지. 국민 여론도 그랬고. (이후보가) 잘 나간다니까 무서워 아무도 말을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라도 한마디 해줘야겠다 싶어서…. 당신도 하고 싶은 말 다 하는데 나라고 왜 말 못해요? 그 어른이 대쪽판사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대쪽같이 살아온 분이고. 그런데 너무 과격하게 나가니까 국민들이 질식을 해요. 요새는 얼마나 부드럽고 온화해졌습니까. 그렇다고 이후보를 대쪽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온화해 보여도 강직하고 대쪽 같은 분이라는 건 국민이 다 알아요. 결과적으로 내가 해를 끼치지는 않았어요. 이득을 준 거지. 개인적으로는 친해요. 그분의 장점은 아주 천진하다는 거예요. 교활하지 못해요.”

    -스님의 말씀이 오히려 약이 됐다는 거지요?

    “할 소리는 아니지만, 그 후 많이 부드러워지셨더라구. 부드러워지면 좋은 분이에요, 그분도.”

    -당시 이후보가 많이 섭섭해했지요?

    “섭섭하라고 한 얘기지. 난리가 났었잖아요.”

    -그 후 두 분이 따로 만나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할 기회는 없었습니까.

    “그런 얘기는 안 해도 (무슨 뜻인지) 다 알아요, 정치 지도자쯤 되면. 사람 속에서만 평생 사신 분이에요. 대법관이 밤낮 하는 일이 재판인데 누가 나쁜 놈인지 좋은 놈인지 눈만 보면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내가 악의에서 한 말인지 아닌지 그것을 분간하지 못할까요? 나는 거기에 대해 변명 한번 한 적 없어요. 요새는 만나면 웃어.”

    -한인옥씨가 지난번에 “하늘이 두쪽 나도 집권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었지요.

    “아들 문제 때문에 하도 당하니 그런 소리를 한 거예요. 사람들이 너무 시시콜콜해진 것 같아. 좀 넉넉해야지.”

    말이 나온 김에 노무현 정몽준씨 등 대선후보들에 대한 인물평을 요청했다. 정대 스님은 “총무원장이 그런 얘기하면 구설에 오른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일반론이라도 말씀해 달라”고 하자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청와대에 가는 것은 하늘이 결정하는 거예요. 내가 숙명론자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천하명장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끝에 가서는 신불의 뜻에 맡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인력으로 가는 자리가 아닙니다. 노력도 많이 해야 하고 복도 많이 지어야 하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지나가다 줍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대통령 자리를 너무 후딱 차지하려는 데 문제가 있어요. 대통령은 국민들한테 헌신적으로 봉사해야 하는 자리예요. 부단히 노력하고 심혈을 기울여야 해요. 그런데 공도 안 들이고 그냥 주워 먹으려는 풍토는 안 좋아요. 많이 참고 때를 기다리는 자가 이기리라고 봐요.”

    스님은 “이회창 후보가 적임이라는 말씀인가요? 5년 전에도 아깝게 떨어졌잖아요?”라는 ‘유도성’ 질문에 선문답을 하듯 에둘러 답변했다.

    “대통령 하고 싶으면 공을 들여야지. 하다못해 면장을 하려 해도 면민들한테 공을 들여야 하는데. 무식한 말로 막걸리도 사서 돌리고 접촉을 해야지.”

    햇볕정책은 당연한 국민과제

    정치인들에 대한 얘기는 뒤에 틈을 봐 다시 하기로 하고 일단 접었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안 되는 만큼 자칫 다른 쪽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끝날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들과 관련한 질문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햇볕정책 탓에 남남갈등이 생겼다고 하고 언론에서도 이를 부각시킵니다. 원장 스님께서는 햇볕정책을 지지하십니까.

    “지지 정도가 아니라 나는 국민과제로 여기고 있어요. 왜냐. 이산가족이 아닌 사람은 몰라요. 남 얘기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이산가족 심정을 한번 생각해봐요. 햇볕정책은 좋으니 싫으니를 떠나 밥 먹는 일처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 해요. 예전에 재벌고위층과 사회지도층 인사 몇 사람과 함께 국경 지대에 여행을 갔었어요. 이북에 어떻게 선을 대서 그쪽 땅 흙 3㎏을 갖고 왔어요. 그걸 전부 나눠 갖더라고요. 눈물을 흘리며. 다 실향민이었거든요. 집에 가져가 화분을 만들었어요. 그 사람들 마음이 그토록 아파요. 햇볕정책 이전에 인간의 도리로서 해야 할 일이에요. 그걸 이 정부가 해낸 거예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퍼주는 것도 그래요. 조금 여유가 있다면 같은 민족끼리 나눠 쓰면 좋지 않습니까. 우리도 남의 것 많이 얻어 먹었잖아요.”

    -햇볕정책의 방법에 대해 말이 많지요. 최근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은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4억달러를 건넸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글쎄요. 돈이 오간 건 모르겠지만 조금 시정할 점은 있습니다. 지금 남한엔 이상한 풍조가 있어요. 북한에 아직 못 가본 사람은 뭔가 처진 사람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요. 특히 재계 인사들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서 그래요. 안 갔다온 사람들은 마치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것처럼 열등의식을 갖고 있어요. 이건 잘못된 현상이에요.”

    정대 스님은 “종교인들도 북한 갔다오는 데 두 당 얼마씩 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서 냉면 한 그릇 먹고 비포장도로 먼지 쐬고 오는 데 두 당 얼마씩 내야 해요. 그쪽에서는 그게 외화벌이예요. 김정일 한번 만나는 데 얼마씩 준다는 게 정해져 있어요. 아마도 사회 지도층 인사 치고 맨입으로 김정일 면담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이런 건 지양해야 돼. 이북 방문하는 것도 국가가 주도해 지원해야지. 이북 갔다온 사람이 선민대접 받는 풍토가 생겨선 되겠어요?”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에 반대하시진 않지요?

    “왜 반대해요? 우리 대통령도 갔다 오셨으니 그쪽도 와야지. 우리가 민주국가이고 김정일도 외국 귀빈인데 못 올 이유가 없죠. 이데올로기로 경쟁하던 시대도 지났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방북해 북한으로부터 일본인 납치사건 시인과 사과를 받아냈잖아요. 우리도 그동안 북한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찮습니다.

    “납치당한 일본인 10명 가운데 5명은 현지에서 죽고 5명은 돌려보내졌다는데, 우리는 속초에서 얼마나 많은 어부가 끌려갔어요? 우리가 그동안 보인 성의를 봐서라도 그 사람들을 돌려보내야죠. 뒤늦은 감이 있긴 해도 정부에서 총력을 기울여 해결해야 해요. 이북에서도 협조해야죠.”

    스님은 남북 문제에 대해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었다.

    “흔히 전쟁비용보다는 북한이 잘 살도록 지원해주는 비용이 적게 든다고 해요. 그런데 이북이 골 비었습니까. 전쟁 안 합니다, 이제. 나는 그렇게 봐요. 그쪽 사람들도 생명에 애착이 있어요. 김정일이 전쟁하자고 죽음의 길로 끌고 간다 한들 그대로 따라갈 만큼 우매한 사람들도 아니고.”

    현 정부에서 햇볕정책 못지않게 국론분열 시비에 휘말린 것으로는 지난해 7월 실시된 언론사 세무조사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종교계 7대 종단 대표들은 세무조사를 지지하는 듯한 성명을 발표해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동완 총무가 주도한 이 성명서엔 각 종단 대표의 이름이 들어갔는데, 정대 스님도 포함돼 있었다.

    -언론세무조사 지지성명이 문제가 됐었죠? 정대 스님이 동의했네 안 했네 해서.

    “나는 동의한 적이 없어요.”

    -사전에 전화해서 동의를 구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통화도 없었고. 난 반대했어요. 그런 일은 나서는 게 아니라고. 자기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거예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원칙이야 언론이라고 성역일 수는 없으니 하긴 해야지. 하지만 한국 정치 상황에서 언론이 성장하는 과정에 국세까지 다 물리면 언론다운 언론이 창출되기 힘들어. 뻔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은 또 언론이 재력도 좋아지고 보호도 받다 보니 제 갈 길을 안 가는 것 같아.”

    -어떤 점이 문제입니까.

    “언론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해요. 어느 언론이 정권 창출에 공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얘기예요. 예전에 대선 막판에 어떤 분이 신문 칼럼에 ‘김대중이냐 김영삼이냐, 양자택일하라’고 주장하더라고요. 그런 논평을 쓰면 안 돼요. 호남이냐 영남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닙니까.”

    정대 스님은 “요즘 언론이 기업화하는 경향이 있고 사주들은 기업주가 된 것 같다”며 언론의 ‘정신’이 퇴색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평소 언론에 관심이 많은지 스님은 스스로 얘기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좀 심한 것이, 어떻게 인촌(仁村)이 친일입니까. 그건 인촌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예요. 지금의 잣대로 보면 다 사립대 재벌이지. 다들 학교를 재벌기업화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인촌은 그런 의미에서 고려대를 인수한 게 아니에요. 동아일보도 그런 뜻에서 세운 게 아니에요. 그분은 번 돈을 다 민족을 위해 썼어요. 그런데 그 양반이 일본을 위해 한마디씩 한 게 있어요. 그것을 두고 지금의 자로만 재서 친일 아니냐고 말해요. 인촌을 알지도 못하는 젊은 사람들이. 무슨 소리하고 있어. 인촌은 친일 아니에요. 그 시대를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인촌이 일제하에서 경성방직으로 부자 된 것을 두고 말이 많은데 그것도 실상을 잘 몰라 하는 소리예요. 당시는 태극기 그리면 징역 갈 때여. 그런데 그 양반이 경성방직 광목 끝에 태극 마크를 넣어서 내놓았어요. 민족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민족혼을 불어넣기 위해. 동아일보 세울 때도 고생했어요. 총독부 애 먹이려고 원래는 총독부에 더 가깝게 지으려고 했어요. 총독부에서 건물 못 짓게 하려고 터 파려는 사람에게 얼마나 압력을 넣었는데. 그래서 거금 들여 그 터를 샀어요. 동아일보 해서 돈 벌려면 모 신문처럼 했겠지요. 좀 달라, 같은 언론이지만. 인촌을 친일이라고 얘기한 광복회 사람들, 자기네가 항일투쟁이라도 했나.”

    -올해는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의혹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지 않습니까. 비리의혹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는 것이지요.

    “군대를 갔다왔다면 좋았는데…. 문제는 하나만 안 간 게 아니라 둘 다 안 갔다는 데 있어요. 국민들도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해를 하는 것이고. 하지만 5년 전에 한번 거른 문제예요. 그때 심판을 받았거든. 재론하지 않는 게 좋아요. 녹음테이프가 조작됐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도 곧이 듣지 않아요. 어느 골 빈 사람이 지금 서슬 퍼런 한나라당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겠어요. 또 하나, 경상도에서는 (병역비리의혹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회창 찍겠다잖아요. 민심이 그래요. 아들 문제는 피차간 거론하지 않는 게 좋겠어. 자식 키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나처럼 그 꼴 보기 싫으면 출가해 중이 돼버리든가. 정치권에서 신사협정을 맺었으면 해.”

    -김대중 대통령도 아들들 문제로….

    “내가 보기엔 큰일도 아니여. 아들은 아들이에요. 왜 아들까지 걸고 넘어지냐, 이 말이에요.”

    호남 정권의 과욕

    -현 정권은 시간이 흐를수록 도덕적으로 붕괴하는 양상입니다. 초기에 각종 개혁정책과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실망하고 개탄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대통령 중임제를 하면 많은 문제가 해소되리라고 봐요. 단임제는요, 아무리 유능한 대통령이라도 막판에 일 나요. 임기 중반만 넘어서면 다들 후계 구도에 눈독을 들여요. 정치적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중임제가 필요해요.”

    -이 정권에서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인사편중 아니었습니까.

    “호남이 차별받아온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김대통령이 집권한 후 요직을 호남이 싹쓸이한 건 바람직하지 못해요. 별 소리 다해도 그동안 받은 설움은 보상 안 돼요. 그럼 양보했어야지. 통계를 보면 호남 인구가 영남 인구의 3분의 1이에요. 김대통령 집권만 해도 양해해준 건데, 거기에 사람까지 다 차지하려 든 건 과욕이었어요.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김대통령 직계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해요. 방계 사람들이 그런다는 거예요. 어쨌든 통계만으로 보면 말 듣게 돼 있어요. 경상도 정권에서 너무 했다고 하지만 그건 세상이 다 아는 것 아니요. 소외되고 설움받아온 지역에서 힘들게 집권했으면 참아줬어야지. 우리가 너무 당했으니 우리가 다 해먹겠다고 하면, 악순환이지.”

    -그런 얘기를 김대통령에게 해준 적은 없습니까.

    “그런 얘기는 안 해도 다 알아요. 그걸 모르는 지도자가 아니에요.”

    스님은 김대통령에게 연민을 느끼는 듯싶었다.

    “의외로 보기보다는 정이 많은 분이에요. 저런 분이 민주화투쟁할 때는 어떻게 그리 독했을까 싶을 정도로 온순한 분이에요. 절대 독한 지도자가 아니에요. 볼 때마다 느낍니다.”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에서 노벨상 로비의혹을 제기했는데요.

    “심했어요. 내가 가서 보니 노벨상은 로비해서 타는 상이 아니더라고요. 로비로 뚫리는 상이라면 명맥을 이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권위를 지키면서 성장해올 수 없어요. 못 탄 쪽에서 자꾸 시빗거리를 만들어 그렇지. 안 건드려야 할 부분을 건드린 거예요.”

    -시상식 때 참석하신 거죠?

    “외국에 가보니 김대통령이 동양의 인물로 추앙받는 게 사실이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왜 저런 지도자를 불신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DJ·전두환 닮은꼴, 불교계 실망시킨 노태우”

    정대 스님은 노벨상 로비의혹 제기에 대해 “좀 심했다”고 말했다.

    스님이 “청와대에 더러 들어가 격의 없이 얘기한다”고 하기에 김대통령 관련 질문을 더 던졌다.

    -김대통령이 너무 똑똑해 남의 얘기를 잘 듣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너무 잘 들어 탈이에요. 특별한 고집이 없어요. 옥고를 치르고 고생을 많이 해 인생무상을 깨달은 건지 그렇게 피나게 독하게 살려고 하지 않아요. 한나라당에서는 거짓말을 잘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내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다 만나봤는데 그런 점에서는 전두환 대통령과 가장 비슷해. 전대통령은 단순하고 헛소리를 안 혀. 집권할 때 어렵게 해서 그렇지 좋은 분이에요. 아주 솔직하고. 물러나서도 사람들이 많이 따르지 않습니까.”

    -노태우 전 대통령은요?

    “논평 안 하는 게 좋지.”

    -종교계에서 역대 대통령들을 어떻게 보는지는 일반인들의 관심거리인데요.

    “노대통령은 불교계가 지원해 당선된 대통령이에요. 그때 불교계는 불교신자가 대통령이 되면 불교를 상당히 지원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건 잘못된 일이에요. 불교계가 밀었다고 불교 좋은 일만 하면 불교 대통령이지 국가 대통령입니까. 공평하게만 해주면 다행이지. 그런데 그 어른은 공평하지도 못했어. 오히려 박정희나 전두환 대통령이 더 공평했어요. 김대중 대통령도 특정 종교에 편향된 분이 아니에요. 기대한 만큼 안 도와줬다고 노대통령한테 불평들을 해요. 친분 있는 스님들과 사찰들이 많이 지원했거든요. 그런데 그 양반이 뭣을 도와줘도 화끈한 맛이 없으니 도와준 표가 안 나요. 그분도 마음이 모질진 않았어요.”

    얘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우려했던 바와 달리 스님은 인터뷰 중단을 선언하지 않았다. 스님도 평소 품고 있던 생각을 이 참에 훌훌 털어놓고 싶은 것일까. 화제를 불교계 내부 문제로 돌렸다.

    -정화개혁회의 쪽에서 종단운영 투명화와 사찰회계 공개, 재가불자의 사찰운영 참가 등을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스님께서도 종단운영 공개 등을 약속하셨는데요.

    “50년간 싸워온 종단이라 한번에 다 해결하지 못해요. 그런데 인사만큼은 제가 투명하게 했어요. 그것 때문에 싸움 난 일은 없어요. 과거에는 본사 주지 임명하는 데 한 달 가량 걸렸는데, 제가 맡은 후로는 하루 이상 걸린 적이 없어요. 빠를 때는 30분 만에 해요. 재정 문제는 이제 못 속여요. 요즘은 총무원에 돈이 없어요. 각 본사가 여유가 있지.”

    -지난해 6월 해인사 청동대불 건립을 두고 시끄러웠지요.

    “불교에서는 절을 위해 시주하는 것이라면 절을 망치지 않는 한 받아들여야 해요. 시주자가 그 조건에서 원하는데 왜 그 불사를 안 해요? 지금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있어요. 시주자가 10억인가 얼마를 내고 그후 잔액을 주기로 했는데, 고인이 돼버렸어요. 후손들은 그런 유언 없었다고 지원 못 하겠다 하고. 조계종의 일부 개혁 인사들이 그런 돈을 왜 그런 데다 쓰냐고 하지만, 다른 용도로 쓴다면 시주자가 안 내는데? 개혁한다고 무조건 새 바람만 일으키는 것이 좋은 게 아니여. 보수를 바탕으로 해야지.”

    청동대불 건립비판, 뜻은 옳지만…

    -당시 청동대불 건립 반대운동을 주도한 수경스님의 기고문을 저도 읽어봤는데, 불교계의 물질숭배주의, 물신화를 경계한 것 아닙니까.

    “그건 옳은 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개혁하는 데, 포교하는 데는 돈을 내놓지 않아요. 태국에서 라마4세 때 에메랄드 사원 짓는다고 얼마나 비난했습니까. 또 일본에서 막부시대에 동조궁(東照宮) 짓는다고 얼마나 난리가 났었습니까. 국민 혈세 뜯어 짓는다고. 하지만 오늘날 동조궁이 얼마나 국익에 보탬이 되고 있습니까. 태국에서는 외화의 3분의 2가 에메랄드 사원을 통해 들어옵니다. 그때그때 역사적으로 떨어지는 과제를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막을 순 없어요. 세상 안 살아본 사람들 얘기예요.

    개혁은 그런 게 아니에요. 모순된 것을 바르게 잡아주는 것이 개혁이지 시대를 역류하거나 근본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에요. 뜻은 옳아. 하지만 뜻만 갖고 삽니까. 기복불교라고 비판하지만 알다시피 기복을 전제하지 않으면 사찰에 옵니까. 젊은 사람들도 도 닦으러 오라 하면 안 와.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복 준다고 해야 오지. 그 과정에 신앙심이 고취되는 거야. 부처님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어. 우선 현세를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해야 와. 오면 내세도 일러주고 바르게 사는 법도 가르쳐 주는 거지. 젊은 스님들은 비판에 앞서 먼저 수행부터 철저히 해야 합니다.”

    지난 5월 해인사는 청동대불의 높이를 33m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애초 계획한 것보다 10m 낮은 높이다. 해인사에 따르면 이 공사에는 약 60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새로운 시주자를 찾는 대로 불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지난해 유명 사찰의 주지 등 몇몇 스님들이 룸살롱을 드나든 것이 문제가 됐죠. 타락으로 봐야 합니까.

    “룸살롱 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타락이라고는 안 봐요. 이렇게 자유분방한 시대에 독신생활하는 것도 생각해줘야지. 세속 사람들은 자기네가 하루라도 없으면 못 사는 것만 스님들에게 지키길 요구해요. 정말 불교를 위해 안 된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자기들이 못 지키는 것을 스님들을 대타로 내세워 지키려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거예요. 이제 그 스님들 거기에 안 가요. 언론에서 떠들어대니 말을 좀 듣겠어요?”

    -징계는 안 했습니까.

    “그걸 뭐 징계해요. 술 한잔 먹은 걸 갖고. 나도 총무원장 내놓으면 한잔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 나는 간경화 때문에 16년 동안 술 한잔 못했어요. 세상이 말세가 된 건지 세속에서 존경받는 분들이 의젓하게 계율이나 지키는 중은 만나려고 하지도 않아요. 같이 한잔 먹고 뒹굴기도 해야 속에 있는 얘기도 하고. 세상이 혼탁하니 종교계도 혼탁해요.”

    주변에서 듣던 대로 소탈하고 직설적이고 ‘인간적’이다. 스님 얘기에서는 속세에 초연한, 불교의 고고한 모습을 찾기 힘들다. 세상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세속과의 인연을 구도의 방해물로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그의 지극한 효심만 봐도 그렇다. 그는 출가한 후에도 어머니를 모신 것으로 유명하다. 신륵사 용주사 등 여러 절에서 주지를 지낼 때 그는 늘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보살폈다.

    “어머니를 속이고 출가했어요. 출가한 지 6년 만인가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곁에 두고 모셨지요. 그걸 두고 효도했다고들 하는데, 조병화 시인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걸 보니 내가 한 효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세울 일이 못 돼.”

    -일반적으로 출가하면 세속의 연을 끊지 않습니까.

    “세속의 연은 의도적으로 끊는다고 끊어지는 게 아녀. 나는 거짓말 안 혀. 하지만 절에서 만난 세속인들과는 인연을 맺지 않아. 신도 집에 가 밥도 안 얻어먹고. 그게 편해.”

    어느 어머니인들 그렇지 않으랴마는 그의 어머니는 자식이 출가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자식은 어느날 도망가버렸다. 세월이 지난 후 자식을 찾아낸 어머니는 자식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그도 그런 어머니를 외면하지 못했다. 30년 이상 그렇게 모셨다. 어머니는 자식이 주지로 있는 절에 와서 방 하나를 얻어 살기도 하고 한동안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돌아가신 지 오래 됐어요. 내가 주지를 하고 행정에 나선 것도 어머니 때문이었어요. 한때 일본에 건너가 공부할 계획도 세웠는데, 어머니 떼어놓고 갈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절에 남아 있다보니 공부를 제대로 못했어요.”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마음속에 번뇌의 바람이 인 것일까. 진작에 했어야 할 얘기를 꺼낸다. “이제 그만합시다.” 못 들은 척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정치 얘기 못지않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의 길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건 없어요. 그런데 다시 태어나면 나는 이 길 안 가요. 신도들 들으면 오해하겠지. 저 놈 소신도 없이 살았구나 하고. 그렇지만 난 두 번 다시 이 길 안 가요. 왜냐 하면 견성성불해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속박 없는 대해탈을 뜻하는 것인데, 내가 중 노릇 해보니 불교라는 자유가 나를 속박하더란 말이지. 종교라는 자유가 오히려 나를 속박했다니까.

    참선해 성불하면 속박을 벗는다고 하지. 그런데 참선으로 성불하는 사람이 몇이나 돼.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후 지금까지 성불한 사람이 10명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게 어려워. 거기에 내가 어떻게 끼여들겠어요. 종교라는 테두리에 얽매여 실상 내 자유만 속박하고 살았어요. 그래서 다시 태어나면 종교라는 미명하에 자유마저 속박하는 길은 안 가겠다 이거요. 자유인이 돼 살겠다 그 말이지. 천이고 만이고 물어보면 다시 태어나면 이 길을 가야 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못 가겠어요. 미안하지만 안 갈라 그래. 두 번 갈 길이 못 돼. 이 길을 가느니 대자유 대해탈의 길을 가겠어요.”

    “여편네, 불교 잘못 믿었구나”

    기자는 머릿속에 큰 울림이 이는 것을 느꼈다. 과문한 탓인지, 종교인에게서 이토록 인간적인 고백을 들어본 적이 없다.

    -참선 수행에 정진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이 남지 않습니까.

    “참선은 좀 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주력(呪力)은 좀 해요.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내가 주력으로 지탱해요. 잠을 두 시간밖에 안 자고 버텨요. 오래 할수록 힘이 나지. 주력이 참선보다 더 힘을 발휘하거든. 그런데 그것이 잘못되면 해까닥하지. 서의현 스님(조계종 총무원장 역임)이 그런 경우예요.”

    스님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상투적이긴 하지만, 영원히 풀지 못할 갈증과도 같은 질문이다. 바로 ‘마음에 평안을 얻는 방법’.

    “평안을 얻는다는 생각도 없이 사는 게 제일이여. 뭣을 해야 마음에 평안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여. 참 행복은 많이 소유하고 누렸다고 해서 절대 오지 않아. 구두 닦는 사람은 열심히 구두 닦는 게 행복이여. 그 외 무슨 행복이 있겠어요. 극락? 극락이 행복 주는 줄 압니까. 불교에서 이르길 극락에 가면 금 같은 궁궐에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생전 늙지도 않는다고 해요. 그러면 지옥보다 못한 거지. 거기서 어떻게 살아. 금도 밤낮 보면 누런 쇳덩어리지 뭐가 좋아요. 인간은 고(苦)가 있어야 행복이 있는 거야. 시련이 없는 세상엔 행복이 없어요. 시련 없는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해요.

    30년 동안 나를 따라 다니는 불자가 있는데 대학생 아들이 작년에 뭔 사고가 나서 죽었어요. ‘아이고 아이고 부처님. 하필이면 우리 집이고 우리 자식입니까’ 하면서 웁디다. 그러면 우리 자식은 안 되고 다른 집 자식은 당해도 괜찮다 그 말이여? 그래서 내가 ‘아이고 저 놈의 여편네 불교 잘못 믿었구나’ 했지. 그런데 그것이 그 불자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여. 한국 사람들이 다 그래. 한국 종교의 현주소예요. 세상에 얽매여야 하기에 당할 건 당해야지. 그게 피하겠다고 피해집니까. 그런 걸 이기고 사는 마음 자세가 행복이고, 열심히 사는 게 행복이에요. 순리에 따라 사는 게 좋고. 이제 그만해도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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