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도청 못하는 휴대전화는 없다”

도청방지 전문가가 털어놓은 ‘도청공화국’ 실태

  • 글: 안교승 도청방지 전문가·한국통신보안(주) 대표 r5000@lycos.co.kr

    입력2002-11-29 14:2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도청(盜聽)은 잊을 만하면 다시 부각되는 사회 이슈. 2년 만에 재연된 CDMA방식 휴대전화 도청 논란으로 인해 ‘도청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도청방지 전문가 안교승씨가 운영하는 한국통신보안(주)는 옷 로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의 특별검사팀 사무실을 비롯,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행사들의 보안작업에 참여했다. 최근 저서 ‘서울에는 비밀이 없다.-지금은 도청중!’을 출간한 안씨가 털어놓은 도청의 모든 것.
    “도청 못하는 휴대전화는 없다”
    휴대전화 인구가 2000만명이니 3000만명이니 하는데, 여기엔 상당한 허수(虛數)가 존재한다고 본다. 도청(盜聽)을 의식해 남의 명의를 빌려 휴대전화를 몇 대씩 가진 사람들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아마 수만명은 족히 될 것이다. 여기에 소유한 대수를 곱하면 수십만명의 허수가 존재할 것이라는 결론이 쉽게 나온다. 얼마전 비리혐의로 잠적했던 모씨는 12대의 휴대전화를 갖고 다녔다고 하니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도 통신보안을 위해 대(對) 도청 보안측정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365일 상시도청 감시장비를 설치하는 추세다. 보안점검중 도청장치를 찾아줬더니 “사실 이건 상대방이 왔을 때 그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우리가 설치한 것”이라고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말하는 고객마저 있을 만큼, 그간 도청과 관련해 많은 의식 변화가 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대형빌딩 통신실의 주요전화 단자함가운데는 누군가 엿들을 수 없도록 봉인 스티커로 도배한 곳도 적지 않다. 전신주에서 전화선로 보수작업만 하고 있어도 ‘혹시 우리 집 전화를?’하고 의심하는가 하면, 인근 주차장에서 사람이 타고 있는 차량을 보아도 혹시나 싶어 그냥 넘길 수 없는 게 오늘의 세태다.

    이처럼 불신은 극에 달해 있다. 누구나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에까지 미니카메라가 장착돼 원하는 모든 것을 즉석촬영해 무선전송할 수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전자계산기, 벽에 걸린 액자뿐 아니라 휴대전화까지 다시 봐야 할 지경이다.

    O양, B양이란 이름의 비디오테이프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화장실 가기 무서워 여성들이 미니 ‘몰카 탐지기’를 갖고 다니는 게 현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도청과 몰카의 위협에 묻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사회의 ‘도청 공포’가 마치 ‘도청 문화’처럼 뒤바뀌면서 시작된 시대적 산물은 아닐까. 더 나아가 ‘도청 신드롬’까지 생겨 대화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띌 때는 도청이란 것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하위문화로 자리잡았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서울은 ‘스파이 천국’

    한번은 모 수사기관에서 도청 실태 파악도 하고 곧 있을 대대적 단속을 위한 준비를 한다며 협조를 요청해왔다. 물론 특정사건을 해결하는 차원은 아니고, 그저 도청전파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춰 서울 시내를 한번 돌아보자는 것이었다. 대체 얼마만큼 도청행위가 자행되고 있기에 도청관련 사고가 끝이 없느냐는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했다.

    오전 10시 여의도 사무실에서 출발해 마포, 신촌, 남대문을 거쳐 강남으로 이동했는데 놀랍게도 그때 포착된 도청신호가 10여 개를 웃돌았다. 도청이란 것이 필요할 때 이뤄지고, 전화의 경우 통화중에만 전파가 발사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코 적지 않은 수였다. 그중엔 통화내용, 실내의 대화, 팩스 송수신신호까지 실로 다양하게 포함돼 있었는데 당시 수사관들이 용기백배했음은 물론이다.

    올해 국정감사 당시 경찰청장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답변에서 전국적으로 1400여 사설업자들이 도청을 자행한다고 보고했을 정도니 서울하늘이 도청전파로 어지러울 만도 하다.

    더 큰 문제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산업스파이들이다. 이들의 활동은 고스란히 국부 유출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국가경쟁력 상실이라는 엄청난 손실로 이어진다.

    흔히 ‘서울은 스파이 천국’이라고 한다. 이 불명예스런 명칭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쓴 게 아니고 외신이 처음 붙인 것이다. 그만큼 서울엔 고급정보가 많고, 한편으론 스파이들이 활동하기 좋은 여건을 갖췄다는 뜻도 되는데, 남북 대치상황에 따른 특수성(이번에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한 것을 보라!)에다 미국·일본·러시아 등 열강들의 각축장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한국 주재 외국 대사관들이 치외법권지대임을 최대한 활용해 외교업무 외에 산업스파이의 거점이 될 수 있음도 경계해야 한다.

    최근 또 다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 휴대전화 도청 논란이 제기되었다. 2년 전 국정감사 당시 미국의 모 업체가 휴대전화 도청장비를 개발했다는 논란이 벌어진 이후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의혹이 다시 증폭된 것이다.

    사실 CDMA방식 휴대전화가 도청된다고 해서 무슨 천인공노할 일도 아니고, 오히려 국익을 위해서라도 CDMA방식이든 다른 그 어떤 방식이든 합법적 감청이 가능하도록 통로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국내 안보여건의 특수성과 조직폭력·마약·인질·유괴 등 강력범죄 수사의 경우 통신제한조치는 반드시 행해져야 하며, 이를 통해 더욱 능동적인 수사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이 대남 간첩에게 난수표 송신을 폐지했다고 하는데, 혹시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간첩활동에 최상의 보안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라면 조금은 다행스런 일일까.

    조금 다른 얘기지만, 최근 대북 이동통신사업 지원에 있어 북측 무선통신망에 CDMA방식 기술을 이전하고 그 설비를 우리측 주도로 구축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 이동통신기술은 누가 뭐라 해도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현대전(戰)에서 정보통신기술의 노하우를 적성 국가와 공유한다는 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바람직한 것일까.

    지금도 휴전선 인근엔 우리측 이동전화의 북향(北向) 전파 월경을 방지하기 위한 특정 설비가 구축돼 있다. 벌거벗은 뒤 적을 알면 무엇 하는가. 북측이 우리 통신망을 도청할 수 없도록 해야 하고, 우리는 그들의 통신망을 도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원칙이다. 손자병법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정말로 진지하고 깊이 있는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국내 어디서도 확인되지 못한 CDMA방식 휴대전화의 도청 가능 여부 논란에 대해 관련정보와 자료를 토대로 필자 나름의 견해를 정리하고자 한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문제에 대해 어느 한쪽에선 ‘무조건 가능하다’, 다른 한쪽에선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로 갈라지더니 수년째 논란을 거듭하면서 이젠 당사자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못 믿겠다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2000년 여름, 국내 보안장비 세일즈와 관련해 교류하고 있던 미국 뉴욕 소재 보안회사인 CCS사로부터 ‘CDMA 셀룰러 인터셉트 시스템(CDMA cellular intercept system) 모델 ****’란 자료와 가격(대당 33만5000달러)을 제시받은 후 고객들에게 먼저 이 사실을 정리해 발송했는데, 그 자료에 나타난 개요는 이렇다.

    도청장비 세일즈 제의한 외국업체

    이 시스템은 휴대용 CDMA전화기의 통화내용을 공중파에서 직접 가로챌 수 있는 것으로서, 특정 또는 불특정 디지털전화기의 채널별 대화내용을 제3자가 외부에서 모니터링(도·감청)할 수 있는 장비다.

    이 시스템은 특정 채널에 대한 모니터링시에도 네트워크에 간섭을 주지 않아 전화통화 당사자는 감도 저하 등 이상징후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이 시스템은 휴대형, 차량탑재형 두 가지 모델이 있다. 그리고 운영자 요구에 따라 채널수가 달라질 수 있고, 어디서 사용하는지에 따라 100∼1000가입자의 지정 및 2∼64채널의 동시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동시에 얼마나 많은 음성채널을 청취(모니터링)하고 녹음할 수 있는지는 옵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이 시스템은 소프트웨어 windows 95, windows 98, windows NT에서 작동된다.

    특기할 만한 내용으로, 이 시스템은 이동통신사업자 등 외부인의 협조가 불필요하며 도청시스템의 독립적 운용으로 이동추적이 가능하여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자료엔 이런 내용을 포함하여 ‘아무쪼록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산업스파이의 정보획득을 위한 휴대전화 도청 공격에 대응하십시오’란 친절한 문구가 곁들여져 있었다. ‘세계적 타깃은 서울에 있습니다’라는 우리 회사의 슬로건처럼, 국내 첨단기술의 해외유출에 대비해 특정 정보를 고객에게 전달하고 주지시키는 것은 당해 기업의 보안업무를 맡은 필자로선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후 2001년 말에는 유럽에 소재한 모 보안회사가 CDMA방식 휴대전화 도청장비에 관한 방대한 자료와 함께 서울 방문을 희망한다고 전해왔다. CDMA방식 휴대전화 도청장비가 엄연히 존재함을 알려주는 그 회사의 용건은 그 장비를 서울로 가져와 시연회를 하려는데 세일즈와 관련한 제반사항에 협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술적 어려움을 말하는 여러 주장에도 불구하고 CDMA방식 휴대전화 도청장비의 존재 유무를 둘러싼 논란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지명도 있는 외국의 보안회사들이 있지도 않은 도청장비를 해외로 판매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

    실세 장관, 3부 요인, 검사장급 검찰간부, 경찰 고위층, 국회의원, 언론사 사장, 대기업 회장…. 이상은 모두 필자의 고객들이다. 아마도 한국사회의 VIP 가운데 도청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 들어 휴대전화로 상담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무조건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보안업무에 종사하는 관계로 휴대전화 번호를 노출시키지 않던 터여서 필자의 고객이나 지인(知人)을 경로로 해서 전화를 한 듯했다. 약속장소로 갔더니 장소를 옮기자는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이윽고 그를 만나서는 곧바로 조그만 벤치가 있는 인근 야외로 옮겼고, 거기서 인사를 나누게 됐다.

    “도청 못하는 휴대전화는 없다”

    보안업체 직원이 도청전파를 포착하고 도청장치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명함을 내밀고 상대로부터 건네받은 것은 엉뚱하게도 명함이 아니라 그의 휴대전화 번호와 이름이 적힌 어느 호텔의 메모지였다. 그런 후에야 상담이 시작됐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서로의 탐색전이 이어졌다. 보안구역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처음엔 그가 사정기관의 장(長)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서로 경계를 풀고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가자 그는 자신이 국무총리실 직원이라고 실토했다. 실내구조는 이렇고 출입관계는 저렇고, 전화회선은 또 이렇고 삼청동 공관은… 하면서 체계적인 보안측정을 위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보안측정 당일, 청사 근처의 민간 유료주차장에 예정대로 주차하자 약속된 시간에 안내자가 도착했다. 극비리에 추진하는 보안작업의 성격상 아무런 근거를 남기지 않는 출입이 우선 관건이었는데, 별도로 준비된 차량으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대상구역을 둘러보면서 사각지대를 파악하고 점검순서를 정하고, 집무실, 접견실, 회의실 등에 커튼을 드리우고 긴장을 늦추지 못한 가운데 수시간에 걸쳐 전구역에 대한 보안점검을 마칠 수 있었다. 집기 위의 각종 서류와 비품을 제자리에 정돈한 후 되돌아나올 때는 카펫의 발자국을 지워가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뒷문으로 철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업무를 수행하면서 도대체 누가 적(敵)인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부담감은 통상 기업체에서 보안점검을 할 때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불신, 아니 불안의 끝은 어디인가.

    안전지대는 없다

    한번은 출근길에 모 방송사 사회부 기자에게서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즉 대검 중수부에서 총풍 관련수사 중 수사내용이 유출됐는데, 다름아닌 국정원에서 그 신호를 포착해 대검에 알려줬다는 것이다. 검찰측은 당시 ‘그것은 피의자 조사를 하다보면 증거확보를 위해 녹음을 하기도 하는데 녹음기를 앞에 놔두면 피조사자들이 민감한 진술을 꺼리거나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조사실 책상 밑에 무선발신기를 몰래 부착하고 옆방에서 수신기로 녹음했다’고 답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자가 궁금했던 것은, 과연 한국 최고의 수사기관인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사항이 노출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인근 수백m 밖까지 전파 도달이 가능한 무선발신기를 사용해 피의자 조사를 했을까, 아니면 실제론 사건의 민감성에 따른 검찰과 당시 안기부측의 미묘한 역학관계상 오히려 수사정보를 빼내기 위해 국정원측이 도청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점은 사실관계 확인도 불가능할 뿐아니라 검찰에서 상당한 해명을 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으로 시끄러웠을 때도 당시 대검 공안부장이던 모 인사가 조폐공사 사장에게 별도의 휴대전화기를 건네주고 통화해온 사실이 알려져, 그 위치에서 그렇게 할 정도라면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켰었다.

    국회 정무위의 금융감독원에 대한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야당의 모 의원이, 특정기업 인수와 관련해 정권 실세에게 로비를 벌인 정황증거라며 국정원 간부에게서 건네받았다는 ‘도청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는 해외출장중인 당해 기업체 회장이 모 기업 인수와 관련하여 여권 실세의 요로에 로비를 지시하는 국제전화 통화내용과 이 회사 비서실에서 모 의원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는 국내전화 통화내용에 관한 것이다.

    사태의 추이에 따라선 매우 심각한 사안이 될 수도 있는 이 주장에 대해 여당측은 의혹을 폭로한 야당 의원이 개인적인 도청단을 운영하고 있는 것 아니냐, 국정원이 지금도 청와대와 여권을 도청하고 있다는 것이냐며 격렬하게 항의했고,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국정원은 여권을 상대로 더 광범위한 도청을 하고 있다’는 매우 흥미로운 주장과 함께 한반도가 뒤집어질 만한 관련자료를 추가로 공개하겠다고 했다.

    전현직 청와대 수석급 이상, 여당 최고위원급 이상 인사들에 대한 도청자료가 확보돼 있다는, 메가톤급의 이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그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의원은 한국통신엔 지금도 수십명의 요원이 국정원을 위해 도청업무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정말로 국정원에서 도청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됐건 고위층 인사들에겐 말못할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필자는 특정 VIP 외엔 개인고객을 상대로 영업을 하지 않지만, 간혹 “그러면 나 같은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고 호소하는 이들이 있어 몇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이전에 도청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거나 막연한 불안감으로 도청 공포에 시달린 나머지 중증의 노이로제를 겪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눈빛부터 달랐다.

    그중 수도권의 한 개인병원 의사는 오래 전부터 주변에서 끈질기게 자기를 미행·도청하고 더러는 폭행도 하는 등 지긋지긋하게 괴롭히고 있다며 찾아와 상담했다. 그가 점퍼 속에 방탄복을 착용하고 있기에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이젠 도저히 참을 수도 없고 버틸 힘도 없는 데다 그냥 있다가는 아무래도 제 명을 다 살지 못할 것 같아 남대문시장에서 방탄복을 구입해 외출할 때면 반드시 입고 다닌다고 했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예전에 조그마한 의료사고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피 말리는 일이 시작됐다고 했다.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증거확보가 어려운 등 나름의 문제가 있다고도 했다. 다른 직업도 아닌 의사가 그렇게 시달리고 있다는 데 그저 놀랄 따름이었다.

    지방에 사는 어느 신혼부부는 상당기간 도청을 당해오고 있다며 이미 몇 가지 종류의 간이형 도청 탐지장비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구입하는 등 도청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일전에 개인적 사유로 도청당한 적이 있었는데(그때는 사실확인이 됐다고 한다), 한동안 아무 일 없다가 언제부터인가 다시 도청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청 징후가 있을 때 욕설을 퍼붓고 나면 그 순간은 잠잠해지는 것으로 보아 상대가 원격 조작형 도청장비를 설치해 놓았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맞벌이 부부인 이들은 도청 노이로제 때문에 새로운 버릇이 생겼는데, 남편이 퇴근한 시간에 부근에서 조금이라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거나 이상한 감이 잡히면 천장과 벽을 향해 부부가 함께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해댄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무척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기에 상담을 했더니 벌써 닷새째 외출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쌀은 이미 사흘 전에 떨어졌고 이젠 라면마저도 동이 나 꼼짝없이 굶게 생겼는데, 집을 비우고 나가려니 누군가 도청기나 카메라를 하나 더 설치하거나 아니면 신고를 우려해 철수할지 몰라 보안회사에서 그것을 찾아내 제거해주기 전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직접 찾아가 봤더니 온 집안에 각종 센서 등 경보기가 설치돼 있고, 혹시 눈곱만한 카메라 렌즈라도 있을까봐 방안 구석구석과 천장, 심지어 형광등까지 포장용 테이프와 A4지로 도배해놓고 있었다.

    귓속에 탑재하는 도청기?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이런 현실을 접하면서, 이 모든 것이 결국 사회적 불신이 심화되면서 생겨난 또 하나의 시대적 병리현상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사람도 있다. 한 통의 이메일이 날아들었는데, 그 가공할 내용으로 보아 아무래도 도청관련 공부를 너무 많이 했거나 SF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보낸 사람: 윤OO

    받는 사람: 한국통신보안(주)

    보낸 날짜: 2001년 7월10일 화요일 오전 11:52

    제목: 이런 도청기도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도청기는 그저 소리만 듣고 마는 것 같지만 내가 아는 도청기는 소리뿐 아니라…사람의 생각까지도 컴퓨터에 나타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 도청탐지업체의 말에 따르면 이런 도청기는 30∼40년 후에 나타날 것으로 알고 있다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벌써 나타났고 국내 도청탐지업체들도 이런 기계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는 도청기 중 가장 치명적인 도청기는 사람 귀에 들어가는 것인데 한번 들어가면 귀를 들어내지 않는 이상 빼내기가 곤란합니다…물론 특수장치로 귀에 탑재해 국내 의료장비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X-ray, 내시경, CT 등 모든 의료장비로도 감지하지 못합니다. 도청 컴퓨터를 잡아내지 않는 이상 평생을 도청기에 시달려야 합니다.

    이 도청기는 사람의 생각을 상대편 컴퓨터로 전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회상… 상상하는 모든 것이 컴퓨터에 나타나고 심지어 꿈까지 나타납니다. 사람의 신경수치까지도 컴퓨터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거리제한은 없습니다.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녹음됩니다…도청기를 만드는 일본에서조차 생산 자체가 불법인 도청기입니다. 물론 컴퓨터로 제작됩니다. 이 도청기에 적응하는 사람은 없고 그나마 살아 있으면 정신병자 혹은 폐인 정도입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큰소리로 말해도 주위 사람들은 모르며, 자기 귀에만 들립니다.

    이때부터 이 도청기를 탑재한 사람은 혼란에 빠지고, 자기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마지못해 상대방과 대화를 갖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생각이 상대방에게 들리기 때문에 생각으로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혼자 웃고 떠들고 혼자 화내고 상대방이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장난감 혹은 스트레스 해소 대상으로 가지고 놉니다…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 귀에 도청기를 넣는 사람이 없고 증거가 남지 않으므로 믿어 주는 사람도 없어(정신과 전문의도 환청으로 생각함) 혼자 고립감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도청기를 탑재한 사람이 몇 명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몰래카메라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귀에 도청기를 넣으면 무슨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려고 몰래카메라를 부착합니다. 보통 몰래카메라는 안경에 부착하는데(워낙 초소형이라 보이지 않음) 내가 아는 이 카메라는 눈에 부착하도록 설계돼 한번 안구에 부착하면 안구를 들어내지 않는 이상 상대방 컴퓨터에 영원히 나타납니다…그리고 잘 때 눈동자 위치까지 알아냅니다. 제가 아는 건 이 정도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도청 못하는 휴대전화는 없다”

    유선전화 도청 여부를 탐지하기 위한 선로분석 작업.

    중국 장쩌민 주석의 전용기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됐다는, 귀가 번쩍 뜨이는 뉴스를 접하고 보안전문가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도청을 위한 통신인프라는 어떤 것이었을까? 비행기 안이라는 특수환경에서 도청전용 통신망의 파악 없이는 찾아내기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발견했을까? 위성인프라를 사용했다면 한 가지 통신방식만을 고집했을까? 혹시 여러 종류의 도청장치를 설치한 후 일부만 운용해 교란작전을 편 것일까? 발견된 20여 개가 전부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궁금한 것이 한없이 많았지만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그저 깊은 밤 그보다 훨씬 멋진 상상으로 잠을 청할 수밖에.

    이 비행기는 미국 보잉사 767기종으로 시애틀 보잉공장에서 제작된 후 내장(內裝)이 텅 빈 채 중국에 인도됐고, 그후 텍사스의 내장전문 디자인업체에서 내부시설 장착을 완료한 뒤 다시 중국으로 인도됐다고 한다.

    중국당국의 엄격한 통제와 관리하에 제작된 이 전용기는 내장작업 당시도 중국관리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섰고, 중국군인들이 격납고를 감시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각국의 유력 언론들이 이런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데도 중국정부는 침묵을 지킴으로써 미국측이 도청기를 설치한 것인지, 중국 내부의 파워게임과 관련한 권력암투에 의한 것인지 그 배경에 대한 의혹만 증폭됐다.

    글로벌시대의 도청세계

    2001년 9월 세계 정치·경제의 심장부인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 대한 초유의 테러사태로 전세계가 경악하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중동지역에 전운이 긴박하게 감도는 가운데, 급기야 미국의 딕 체니 부통령이 “지구촌 테러 분쇄를 위해 테러 용의자가 사용하는 모든 전화와 컴퓨터 등을 도청하는 등 테러와의 전쟁 수행을 위해선 비열하고 더러운 정보전술에도 의존할 것”이라 천명했다. 사실 9·11테러에 대한 미국의 보복공격이 미처 시작되기도 전, 세간에서는 알 카에다 조직의 정세 파악을 위한 통신 도청이 있을 텐데 과연 그 수단과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 눈길이 쏠렸다.

    아무리 최첨단의 정보수집 능력을 갖고 있다 해도 스스로 노출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으므로 이런 기회를 지켜보다보면 뭔가 단서를 잡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 반 흥미 반이었던 것이다. 얼마전 자국 영해에서 북한선박을 격침했을 때나 우리 군의 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서둘러 발표하는 등 호들갑을 떨며 자신들의 정보능력을 은연중 과시하고 또는 본의 아니게 노출하는 상황을 맞았던 일본과는 그 격이 크게 다를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언론 보도과정에 상당한 수준의 통신망 도청활동이 외부에 알려지는 등 일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무선통신망이 매우 뒤떨어진 수준이었던 관계로 통신망 장악에 관한 한 마음껏 요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프간 내부의 교전상황을 미 중부군사령부가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미국의 위력적인 첨단 정보망을 통해 아프간 군의 동태는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미국은 알 카에다에 대한 통신 도청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 그들의 통신망 자체를 무력화하는 전파차단 및 교란활동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다시 긴박하게 전운이 감도는 대 이라크 공격에서 미국은 또 어떤 첨단장비를 선보일지 자못 기대되기도 한다.

    부시 미 대통령이 도라산을 방문했을 때 미 육군과 공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상과 하늘에서 완벽한 정보분석으로 휴전선 일대의 움직임에 면밀히 대처했겠지만, 그와 별도로 미국의 보안당국과 경호요원들은 도라산 인근의 모든 통신망을 마비시키는 필수조치의 하나로 주파수 홉핑 기술을 이용해 그들만의 특수 무전기 주파수 대역을 제외한 모든 무선망을 교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같은 대역의 불량 주파수를 발사해 이동통신망의 데이터 체계를 파괴하여 통신이 정상적으로 연결될 수 없도록 하는 강제적인 전파차단 방법으로, 대 테러작전이나 VIP 행사 등에서 불요불급한 통신을 억제하기 위해 작전에 필요한 특정 통신망의 주파수 대역을 제외한 전 대역에 이런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조치는 단순히 통신망을 무력화하는 차원을 넘어 원격조작형 폭발물도 사전에 그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전파교란 기술이다.

    전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월드컵경기가 막바지에 이르러 대구에서 한국 대 터키의 3·4위전이 있던 날, 우리 영해에서 북한군이 무력도발을 감행해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바로 서해교전이다.

    정보·보안요원들은 평소에도 전 주파수 대역에 대한 통신감청을 실시한다. 그것은 적성 국가의 통신이용에 대한 교신분석(주파수, 전파형식, 통신시간, 통신횟수, 수신강도 등을 종합분석해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로 재가공하는 작업)은 물론 아군 통신망의 보안위규 사항을 감시하는 것을 포함, 수집된 암호자재의 해독 등 사실상 전대역 전분야에 걸쳐 이뤄진다.

    우리 군과 미군의 방공망이 필수적으로 운영되어 1분당 수∼수십회전하는 거미줄 같은 마이크로웨이브 스캐너가 작동하는 레이더 기지에선 하늘에서의 초계비행에 대해 첩보수집을 하고, 국방부 통신망 및 각 군별 통신망, 예하부대 단위별 유·무선 통신망이 쉴새없이 가동된다.

    그런 한편으로 대개의 경우 작전 상황실에서는 관할 작전구역 또는 극동지역 일부까지 한반도 전체에 대한 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영공의 초계비행이 차질 없이 수행되고 있는지, 적의 비행활동 상황은 어느 수준이며 특이사항이 감지되지는 않는지에 대한 제반사항들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번 서해교전에서처럼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 모든 통신망은 정보수집을 위한 특별 탐지활동과 아군 통신망의 보안체계를 발령된 경계 수준의 상위급 보안망으로 전환하게 된다. 통신시 적의 도청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비화장비를 사용해야 함은 물론 기존 통신망의 예비 주파수 활용 등 운용에도 변화를 주어 적에게 노출되기 쉬운 망을 피하며, 경우에 따라 정보통신망 운용정보에 혼선을 줌으로써 고도의 교란전략을 수립하기도 한다. 암호자재 사용에 있어 평문과 암호를 혼용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수칙이 다시 한번 강조되기도 한다. 평상시 활동에 비해 더욱 강화된 보안활동이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 북한통신 감청부대장의 블랙북(대북첩보 일일보고서) 내용이 폭로돼 베일에 가려졌던 그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긴 했지만.

    세계는 지금 ‘ON AIR’

    인공위성을 통한 글로벌 모니터링 시스템에 의해 지구상 어느 구석도 빠짐없이 도청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매개체 없이 맨땅의 개인을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기간통신망을 사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건물내의 소곤거리는 소리까지 도청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그러나 유·무선통신망 등 기간통신망을 사용한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올해초 수년째 교류하고 있는 유럽의 한 보안회사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실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전세계 90여 개국의 정보·수사기관에 보안장비를 공급하는 그 회사는 역으로 각국 정보기관에서 애용한다는 첨단 도청장비들을 모은 전시실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그간의 친분으로 그곳에서 한 가지씩 도청도 해보고 도청장치를 찾아내는 시험운용도 해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비행기 티켓 값은 족히 한 셈이다.

    그중 디지털방식의 한 모델은 수십m 거리에서 도청된 음성신호를 아주 특수한 사용 주파수대 및 전파형식의 무선으로 전송받아 기간통신망으로 재전송할 수 있었는데, 각 구간에서 다른 방식의 암호화과정을 거치고 있어 초기에 도청신호 유무를 감지하기도 까다롭지만 전송구간에선 그 신호가 도청신호인지 여부를 특정의 방법이 아니고는 전혀 알 수 없는 기술이었다.

    전송을 할 수 있으니 전세계 어디에서든 수신이 가능한 이 장비는 컴퓨터를 통해 원격지 도청장치의 스위치와 볼륨을 조작할 수 있고, 수신 및 녹음 그리고 발·착신번호, 통화시간 등 관련 데이터가 빠짐없이 기록되고 있었다. 인공위성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고민할 게 많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례였다.

    도청은 사용되는 기술이 많고 응용하는 유형도 많은, 창과 방패의 끝이 없는 싸움이어서 영원한 결론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도청방법인 음성도청 유형을 몇가지 소개할까 한다.

    “도청 못하는 휴대전화는 없다”

    각종 유·무선 도청탐지장비들.

    ●유선마이크로폰: 가장 고전적이고 초보적인 직접도청 방식. 초소형 고감도 소자가 시중에 널리 보급돼 있는 데다, 선로거리가 멀어지면서 나타나는 손실을 보상해주는 프리앰프 회로를 채택해 수백m의 원거리에서도 양질의 음성을 유선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무선송신기: 도청을 원하는 구역에 설치한다. 이때 전파형식에 의해 세분되는 각각의 유형이 있는데 변조방법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뉜다. 특이한 것은 같은 송신 출력이라 하더라도 사용되는 주파수 대역에 따라 도청신호의 도달거리가 달라진다는 점. 예를 들어 방송 주파수대 80Mhz의 송출신호보다 통신용 주파수대 420Mhz의 송출신호의 도달거리가 훨씬 멀다.

    ●캐리어 도청: 음성신호를 비교적 낮은 주파수에 실어 AC 전력선을 이용해 전송하는 방식. 집무실, 호텔 등 특정 목표장소의 내부 전원공급용 AC 벽콘센트에 고감도 마이크와 도청 모듈을 설치한 후 동일 빌딩내 안전성이 확보된 수신 포스트에서 이미 설치된 호실별 채널을 선택해 한 개 또는 다수의 도청신호를 필요한만큼 엿듣는다.

    ●집음형 수신장치: 도청을 원하는 구역에 발신기를 설치하지 않고도 일정거리 밖에서 대화내용을 엿들을 수 있다. 한 손에 마이크가 달린 접시를 들고 머리엔 헤드폰을 쓰고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는,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한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나 서울 시내처럼 복잡한 도심에선 필요한 음성 외에 인근의 잡음이 같이 증폭돼 오히려 잡음이 더 크게 들리는 경우가 있어 현실적으론 사용이 불가능하다. 골프장 등 주변 잡음이 비교적 적은 교외에서는 200∼300m쯤 떨어진 거리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밀착형 증폭마이크: 초고감도 밀착형 마이크를 이용하거나 시멘트못 형태의 변형된 마이크 소자를 활용해 콘크리트벽, 바닥, 천장, 덕트 등을 통해 실내의 음성을 증폭하는 도청방식. 최근의 장비 성능은 50cm 두께 콘크리트벽 내부의 음성을 엿들을 수 있을 정도다.

    ●레이저 도청: 도청대상 빌딩의 특정 유리창을 타깃으로 정해 레이저 빔을 발사한 후 되돌아오는 반사신호에 실린 유리창의 진동에서 추출한 음성성분을 분석·수신하는 방식. 스파이영화에 가장 자주 나타나는 메뉴지만, 실제로 그런 장비가 국내에 들어와 사용되고 있느냐 하는 점 때문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9·11테러 후 국내 정보·수사기관에서 도입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은 후 분위기는 바뀌었다.

    최근 출시된 장비의 성능은 약 3000피트(914m) 거리까지 도청이 가능하다. 서울 시내 빌딩 밀집지역에서는 어디든지 마음만 먹으면 도청할 수 있는 셈. 실내에 도청장치를 설치하지 않고 외부에서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정보획득이 가능한 특수성 때문에 보안점검 단계에서 그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전파 반사형 도청: 이 방식의 도청장치가 과거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에 설치돼 수년간 미국의 주요정보가 구소련측에 고스란히 유출된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최근엔 더욱 개량된 최첨단 모델이 일선(?)에서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다.

    건물 신축시 레미콘 자재를 퍼부을 때 목표지점에 특수 칩을 숨긴 뒤 바로 이 지점에 전파를 쏘아 반사치를 구해 음성을 도청하는 일종의 레이더형. ‘패시브 리플렉터’라고도 불리는 이 장치는 사용되는 배터리의 소모기간이 짧게는 수십개월에서 길게는 10여 년간 유지된다.

    우리나라는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도청기의 사용은 물론 제조, 수입, 도소매, 소지, 광고행위 등을 일절 할 수 없게 돼 있다. 수사기관이라도 적법 절차에 따라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야만 엄격하게 제한된 범위내에서 감청을 실시할 수 있다. 만일 이를 어기면 통신비밀보호법 제17조 규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돼있다.

    도청은 계속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보안검색 중 적발된 도청장치는 모두 불법이다. 그 구입경로는 주로 세운상가,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통신구매, 외국출장길에 은밀히 가지고 들어오는 것 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에서는 도청기를 판다고 은근히 고객에게 접근하지만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 전자제품 상점에서는 각양각색의 도청기를 진열해놓고 판매한다. 마치 우리나라 휴대전화기 판매업소처럼 점포가 많은데,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놀랍고 기발한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는 일본에서는 도청 자체를 불법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도청 마니아도 많다고 하니 우리와는 다른 세상임을 실감하게 된다. 성능에 따라 다르지만 가격은 대개 3만∼20만엔 남짓 한다. 홍콩의 전자제품·카메라 점포에서도 도청기를 판매하는데 시장 규모에 있어 일본보다는 작은 편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