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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승’ 이명재 전 검찰총장 영욕의 10개월 뒷이야기

  • 글: 장택동 taecks@kdaily.com

‘수도승’ 이명재 전 검찰총장 영욕의 10개월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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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큰 사건들을 처리하면서도 피의자들의 불만을 사거나 정치적인 논쟁에 휘말리지 않아 그의 수사능력은 더욱 빛났다. 이 전총장과 함께 일했던 한 검사는 “피의자를 추궁할 때에도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자세였고 겸손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신(修身)에는 더욱 철저했다. 서울고검장으로 재직중이던 지난해 1월 아들 종원씨가 결혼을 했는데 검찰 주변은 물론 비서실 직원들에게까지 전혀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서울고검장을 사퇴한 것도 뜻밖이었다. 이 전총장보다 선배인 신 전총장(사시 9회)이 총장으로 내정된 상황이었기에 굳이 물러날 이유도 없었다. 후배 검사들도 “이번만은 잘못 판단하신 것 같다”며 한사코 말렸지만 “후배들이 나아갈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아름다운 퇴장’을 하자고 다짐해왔고 이를 실천할 때가 왔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수사능력과 인품을 높이 평가한 김기춘(金淇春) 전 법무부장관으로부터 ‘당대 최고의 검사’라는 찬사에 가까운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만큼 그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검찰총장보다 컸던 것이 사실이다.

8개월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이 전총장의 취임사는 듣는 사람이 전율을 느낄 정도로 의지에 차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검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문이다. 먼저 “검사가 활동하기 때문에 시민이 평온을 누린다”는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의 말을 인용하며 검찰의 자성을 촉구한 뒤 “진정한 무사(武士)는 추운 겨울날 얼어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어선 안 된다”는 ‘무사론’을 설파했다. 얼핏 검사의 기상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지만 ‘검사가 정치권 근처에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 훗날 정치인에게 수사기밀을 알려준 혐의로 검찰 선후배인 신 전총장과 김대웅(金大雄) 전 광주고검장을 기소하게 되는 기구한 운명을 예고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어 이 전총장은 “하늘을 나는 기러기는 무리를 지어 날아가면서 집단 양력이 생겨 멀리 오래 날고 위엄을 갖춰 어떤 난폭한 조류도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치권의 압력에는 단합으로 맞서라는 주문이었다.



취임식이 끝난 뒤 한 젊은 검사는 “오랜만에 전의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고 반겼다. 이후 ‘정치적인 사건’과 ‘검찰 내부 문제’는 두고두고 이 전총장을 괴롭히고 발목을 잡았다.

한나라당과 신경전

그의 첫 고비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검사장급 고위간부에 대한 인사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주변에서는 각종 설이 난무했다. 정치권에서 인사에 개입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흘러나왔고 특히 서울지검장 자리를 놓고는 ‘어느 당은 누구를 밀고, 다른 당은 누구를 지지한다’며 구체적으로 실명이 거론됐다. 이런 와중에 유임이 확실시됐던 최경원(崔慶元) 법무장관이 1·29개각에서 물러나면서 인사를 둘러싼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난산 끝에 2월5일과 9일 단행된 검찰 인사에서 이 전총장은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대검 중수부장 재직 시절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호흡을 맞췄던 김종빈(金鍾彬) 전 법무부 보호국장을 대검 중수부장으로, 서울지검 특수1부장 시절 휘하에 있던 박만(朴滿) 전 대검 공안기획관을 수사기획관으로 각각 배치하면서 총장의 직속부대인 대검 중수부를 안정시켰다.

또 각종 선거를 앞두고 가장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서울지검장과 대검 공안부장 자리에 경기 여주 출신의 이범관(李範觀) 전 인천지검장(현 광주고검장)과 충남 서산 출신의 이정수(李廷洙) 전 대전지검장을 각각 기용, 지역문제를 해결했다. 각종 게이트 수사를 맡았던 간부들에 대해서는 문책성 인사를 단행, 취임 인터뷰에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묻는 것이 조직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말한 것을 실천했다. ‘이명재 검찰’이 본격 출범한 것이다.

차정일 특검팀 해체와 함께 대검 중수부에서 김대통령의 차남 홍업씨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서 이 전총장은 본격적인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3월22일 특검팀은 활동시한 만료와 함께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홍업씨의 고교동기인 김성환씨가 평창종건 등과 90억원대의 자금거래를 했으며 이 가운데 10억여원 상당은 통상적인 거래성 자금으로 보기 어렵다. 계좌와 자금은 김성환이 단순히 관리만 했을 가능성이 있어 자금 출처 및 사용처 등에 대해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누가 보아도 이는 ‘김성환씨의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홍업씨를 수사하라’는 강한 촉구였다.

아울러 특검팀은 이수동(李守東)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가 지난해 대검의 이용호씨 수사 당시 수사정보를 들었다는 의혹과 관련, “신 전총장과 김고검장의 공용 및 개인전화에 대한 발신 및 착신 통화 내역 모두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이 있고, 이수동씨 본인에 대한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혀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 수사라는 숙제도 안겼다.

특검팀으로부터 수사자료를 넘겨받은 대검 중수부는 4월1일부터 후속 수사에 착수한다. 이 무렵 서울지검에서는 ‘최규선 게이트’가 터져나온다. 최씨는 체육복표 사업 등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기자회견을 통해 “홍걸씨에게 수만달러를 용돈으로 줬다”고 스스로 밝힌다. 사상 유례없는 ‘현직 대통령 두 아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홍걸씨에 대한 수사는 당초 예상보다 쉽게 풀려나갔다. 미국에 유학중이던 홍걸씨는 5월16일 검찰에 자진 출두했고 검찰은 홍걸씨를 최씨와 함께 기업들로부터 36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홍업씨에 대한 수사는 쉽지 않았다. 세상물정에 밝지 않았던 홍걸씨와 달리 홍업씨는 아태재단 부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나름대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글썽한 홍걸씨의 검찰 출두 광경을 지켜본 국민들 사이에는 ‘두 아들을 모두 구속하는 건 너무하지 않으냐’는 동정 여론이 일고 있었다.

청와대에서도 홍업씨만은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5월말 홍업씨의 측근 유진걸씨가 조사를 받던 도중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자 청와대에서 민정비서실 소속 박아무개 과장을 보내 ‘강압수사’ 여부를 조사한 것이 단적인 예다. 홍업씨 소환 시기를 놓고도 말이 많았다. 월드컵 기간에 홍업씨를 소환할 것이냐를 놓고 검찰에서 ‘가능한 한 피하겠다’는 견해를 밝히자 한나라당에서 이 전총장에게 항의 전화를 걸었고 이 전총장이 “월드컵 기간에도 소환할 수 있다”고 해명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한편에서는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가 한 시사주간지 인터뷰에서 “검찰에도 특권주의와 엘리트주의에 젖어 소위 이회창 체제를 지원하는 세력이 있다”고 발언하는 등 양당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토록 정치권에서 민감하게 다뤘던 홍업씨 소환은 결국 월드컵 한국-이탈리아의 16강전이 벌어진 다음날인 6월19일로 정해졌다. 소환 사흘 뒤인 21일 홍업씨도 구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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