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성공하고 싶은 당신 ‘다모작 인생’ 꿈꿔라

‘멀티형 인간’ 5인의 별나게 사는 법

  • 글: 허시명 자유기고가

    입력2002-12-02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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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 가지 일만 잘해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현대사회는 이제 다양한 능력을 지닌 전문가를 원하고 있다. 이른바 ‘멀티플레이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 당신 ‘다모작 인생’ 꿈꿔라
    우린 오랫동안 집단에 충실한 인간, 조직에 적합한 인간이 출세하고 대접받던 시절을 살았다. 거대한 조직일수록 ‘자기가 맡은 일만 똑똑히 하라’는 주문을 자주 들었다. 옆 사람이나 옆 부서가 무엇을 하는지, 바로 전 단계의 컨베이어벨트에서 무슨 제품이 밀려오는지 알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내 앞에 주어진 한 가지 일만 해내면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던 시절을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조직화된 인간들이 하루 아침에 조직에서 떨어져 나가는 세상이다. 기계에서 떨어져나온 부품 꼴이나 다름없다.

    만일 이 부품이 나사나 못 혹은 클립 따위가 아니라 ‘형사 가제트 만능팔’처럼 쓸모에 따라 다양한 변신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조직이 개인을 책임져 주지 않는 시대, 조직이 개인을 위해 약간의 희생도 할 수 없는 이 시대에 한 ‘개인’으로 살아가려면 조직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멀티형 자질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명장’ 거스 히딩크가 선수들에게 냄새만 쫓아가는 개처럼 맡겨진 일만 충실하게 하지 말고, 전체를 읽고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설정해 창의적으로 움직이는 ‘멀티플레이어’를 주문했듯이 말이다.

    동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멀티형 인간’의 전형적인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이승일] ”시간은 만들면 생긴다”

    성공하고 싶은 당신 ‘다모작 인생’ 꿈꿔라
    이승일씨(42)는 야후코리아 대표다. 야후 남아시아 총괄 사장도 겸하고 있다. 그는 이미 37세의 젊은 나이에 미국계 제약회사인 브리스톨메이어 스퀴브의 동남아 지역 사장을 맡으면서 전문 경영인 대열에 올라선 인물이다.



    그의 전문 분야는 마케팅이다. 그가 거쳐온 회사는 생활용품전문업체, 은행, 음료회사. 소독약회사, 제약회사, 온라인회사 등 다양하다. 야후에 오기 전 그가 근무한 곳은 홍콩에 있는 아시아온라인사. 아세안 및 인도지역 사장과 전체 총괄 부사장을 맡았었다. 이와 같은 고속성장은, 그가 글로벌한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시간 관리를 하면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매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성장 과정부터 남달랐다. 경북대 마케팅 교수였던 아버지가 1969년 유엔 국제식량기구로 옮기면서 아버지를 따라 네팔로 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다시 아버지를 따라 태국 방콕으로 옮겨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는 홀로 미국에서 다녔다. 그렇게 외국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방학이 시작되는 6월초쯤 한국에 와서 7월 중순까지 머리 깎고 교복 입고 한 달 반 가량 학교를 다니곤 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는 충암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편입해 설악산으로 수학여행도 다녀왔다. 그 이듬해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인생 행로를 잡아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중학 시절, 매일 저녁 숙제를 끝내고 나면 한 시간 정도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부터 마케팅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고 기업 경영인을 목표로 로드맵(경력지도)을 작성했다.

    일도, 공부도, 노는 것도 그는 국제 감각을 키울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그것만이 그를 키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겨울에는 신문 배달을 했고 여름엔 하루종일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았다. 연세대 재학시절 방학 때면 공사판에서 등짐을 졌다. 미국 대학원 유학시절에는 학내에서 청소부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성장과정을 알 수 있는 일화 하나. 한번은 청소부 아르바이트 6개월 동안 1000달러를 모아 10년 된 중고차를 산 적이 있다. 그 얘기를 들은 아버지가 너무 고생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면서 돈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 돈을 돌려보냈다. 부모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3가지 부업을 병행해야 했다. 컴퓨터 컨설턴트와 대학원 기술사 사감 그리고 조교까지. 다행히 컴퓨터 컨설턴트는 학내에서 보수가 가장 좋았다. 그렇다고 공부와 일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다. 목요일 저녁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포커도 치고 볼링도 즐겼다.

    그는 공 가지고 하는 운동은 거의 다 할 줄 안다. 농구, 야구, 미식축구, 배구는 수준급이다. 권투, 수구, 체조도 했다. 학부 공부할 때도 128학점을 이수하면 되는데 170학점을 땄다. 철학, 심리학, 문학 등 졸업과 상관없는 학점도 땄다. 그의 하루 취침시간은 4~5시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는 부지런히 살았다. 그는 “시간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시간을 철저히 아껴 썼다. 잠시도 멍하게 보낸 적이 없다. 자리에 누우면 곧바로 잠이 들었다. 때로 화장실을 가기 위해 새벽에 잠이 깼다가 다시 잠들지 못하면 곧바로 출근했다. 출근해보면 새벽 3∼4시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내 지독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 몰입했다.

    그는 직장을 6번 옮겼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6년 만에 한 번씩 옮겨다녔다. 그 과정에 용의주도하게 전문성을 강화시켜 나갔다.

    “처음 직장과 두번째 직장은 제가 직접 선택했어요. 대학원을 마치고 무려 14개 사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았는데, 마케팅 전문가가 되기 위해 브랜드 마케팅 분야에서 세계 첫손에 꼽히는 P&G 회사에 입사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아프셔서 6개월 만에 그만두고 한국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국 전에 ‘어떤 회사에서 근무할까’ 조사해봤어요. 그 당시 씨티은행이 소비자 금융 쪽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씨티은행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겠다’ 싶었지요. 은행장에게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했더니 흔쾌히 받아주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헤드헌터로부터 제의를 받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는 곳으로 움직였습니다. 헤드헌터들한테 전화를 많이 받는 편인데, 자기 철학이 뚜렷하지 않으면 돈을 더 준다는 쪽으로 얼마든지 옮겨다닐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얼마 안 가서 아무도 원치 않게 되죠.

    정말 잘하는 헤드헌터는 파트너 입장에서 회사와 개인을 배려해요.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헤드헌터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옮기기도 하고 내가 필요한 사람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직장을 옮겨다녔던 걸까. 언제 어떤 상황에서 직장을 옮겼는지 그에게 물었다.

    “내 목표, 내 경력을 위해서 더 배우고 더 크게 할 수 있는 곳이 보이면 옮겼죠. 하지만 3년이든 5년이든 소속된 회사에서 내가 이룬 성과에 대해 내 스스로 확실한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면, 또 그것에 대해 누구에게든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고, 결과를 보여줄 수 없으면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원한만큼의 분명한 성과를 이루어야만 다른 직장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직장이 곧 인생

    현재 야후코리아에는 금융, 쇼핑, 게임, 채팅 등 거의 모든 영역을 망라한 제품군 60개가 있다. 이 사이트 안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사이버 시장들이 열린다. 그만큼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일의 가능성이 많아진 것이다. 그래서 직장인들 중에는 인터넷을 통해 또 다른 일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저는 온라인에서 본업 이외의 다른 일을 찾는 것은 힘들다고 봐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고 무얼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현재 일에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일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목표를 바꾸거나.

    야후코리아에 부임해서 1년 동안 매일 아침 1시간 일찍 와서 직원들과 1대1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면담을 했어요. 그러면서 직업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 그만두라고 이야기했어요. 자부심이나 보람 없이 일한다면 불쌍한 노릇이니까요.

    물론 직원들이 대학 교육받았고 이 일 아니라도 먹고 살 길이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말한 거죠. 자기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직업을 두고 아침마다 투덜대고 힘들어한다면 본인이나 회사에 좋지 않다고 봐요. 인생의 목표를 새로 세우거나 직업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어느 한군데 직장에 다니면서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은 맛보기로 하면 몰라도 제대로 파악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본인의 마음을 정하는 것이 먼저고, 목표가 설정돼야 나아갈 길이 파악되죠. 어떤 점에서 고지식하고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겠지만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봐요.”

    그는 하나를 분명히 하지 않은 채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대단히 어설프다는 원칙론을 편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정확한 좌표다. 이번엔 인터넷이 노동 환경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물었다.

    “주5일 근무…. 인터넷 때문에 노동이 자유스러워졌다지만, 저는 오히려 노동이 강화됐다고 봐요. 24시간 일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일과 개인 생활 간에 균형을 잡는 게 절실합니다. 저는 아침 6시에 눈뜨자마자 이메일부터 확인해요. 사무실에 일찍 출근하는 편인데 제가 동남아 호주 쪽도 맡으니까 시차 때문에 일을 미리 시작하죠. 서울의 이른 아침은 미국의 오후니까 그때 미국 쪽과 통화하고, 오후 6,7시에 퇴근하는데 저녁 먹고 9시부터 다시 일을 해요. 인도 쪽은 그때 일을 하는 시간이거든요.

    그러다보면 밤 12시까지 일을 해요. 토요일 오전에도 일을 하는데 그때는 미국이 금요일 오후이기 때문이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어서 그만큼 일에 빠질 수 있어요. 저는 그게 즐거워요.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고, 그에 따른 결과도 나오니까 자꾸 하게 돼요.”

    여러 가지를 동시에 추진하다보니 그의 옆에 있는 사람들이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한때는 비서를 3명이나 두기도 했단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세상 모든 일에 나눠주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에게 한 가지 일이란 의미가 없다. 그는 완벽한 멀티플레이어다. 하지만 전혀 다른 분야를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분야의 일을 다양하게 한다. 그것은 그가 여태까지 길게 보고 관리해 온 경력이 만든 그의 장이다.

    ◇ [전유성] 땡! 하고 맞은 순간 세상이 달라진다

    성공하고 싶은 당신 ‘다모작 인생’ 꿈꿔라
    인사동에서 전유성씨를 만났다. 그가 운영하는 찻집 ‘학교종이 땡땡땡’ 앞이었다. 널찍한 찻집 창틀에는 웬 덩치 큰 사람이 양반 자세를 하고 앉아 있었고 찻집 종업원은 색깔이 다른 짝짝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요상한 광경이었다.

    마침 운동화 만드는 사람이 재고 걱정을 하기에 팔다 남은 신을 마구 섞어 와 젊은 친구들에게 짝짝이로 나눠줬다. 그랬더니 좋다고 열심히 신고 다니더라는 것이다. 전씨는 “양말이건 신이건 꼭 똑같은 색깔과 디자인을 고집할 필요가 없지 않으냐”며 “짝짝이 신발을 유행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엉뚱하다.

    사람들은 전유성씨를 ‘개그맨’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처음 퍼뜨린 말이다. 물론 그에게 재미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잘 사는 인생이라면 재미있는 인생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해도 뿌리는 있다

    그의 직업은 무척 다양하다. 그는 영화와 연극 기획자, 광고카피라이터다. 그의 이름으로 쓴 책을 1백만권 넘게 판 저술가이기도 하다. 충분히 직업으로 삼을 만한 ‘개업하는 가게 이름 지어주기’와 ‘실업자 장사 아이템 만들어주기’는 취미로 하고 있다. 그리고 찻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3시간씩 전주 예원대 코미디연기학과에서 강의도 한다.

    그런 그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개그맨이라고 말한다. 다른 모든 것은 개그맨이라는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라고 했다.

    “책을 쓰고 기획하는 것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점에서 똑같은 가지예요. 대학에 가면 전유성 교수님이라고 소개하는데 달갑지 않은 호칭이죠. 그것은 개그맨보다 교수가 더 높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렇게 소개받으면 반드시 정정을 하죠.”

    그는 이영자의 삼겹살집 ‘영자나라 돼지만세’ 표인봉의 ‘소 잃고 열받아 차린 고깃집-이랴이랴’ 신촌의 볶음밥집 ‘접시밥당신’ 등의 상호를 지어주었다. 혹시 이름이 잘못돼 장사를 망쳤다는 원망을 들을까봐 두렵지는 않은지, 실제 원망을 들은 적이 있는지 궁금했다.

    “이름을 지으러 오면 내가 그러죠.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지 마라. 나한테만 물어봐라. 확신을 가지고 정말 장사가 되게끔 이름을 지어주마’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본 사람은 성공한 예가 별로 없어요. 물어보기만 하지 남의 말을 안 듣거든요. 나는 틀리든 말든 확실하게 대답해주거든. 동쪽이라고 판단되면 동쪽, 서쪽이라고 판단되면 서쪽이라고 말해주죠. 그 뒷일은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예요. 내가 가리켜 준 동쪽이 아니라면 서쪽으로 가면 돼요. 나는 그런 식으로 기준 하나를 만들어주자는 것이거든요.

    실제로 내가 지어준 이름으로 재미 못 봤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울산에 있는 보신탕집 이름을 ‘개요리 연구소’라고 지어주었더니 종업원들은 연구원 복장을 입고 서로 연구원이라고 불러요.

    라디오 광고까지 했는데 개요리 학원인 줄 알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더군요. 최근 어느 낙지집 이름을 ‘낙서금지’라고 짓고 가운데 ‘서’자와 ‘금’자를 작게 해서 낙지를 부각시켰어요. 낙지 머리에는 낙서를 잔뜩 해놓은 캐릭터를 만들고. 그리고 도시락 전문집으로 ‘도시의 즐거움-도시락’이라고 했더니 유명해졌어요. 방송에서 이름짓기가 취미라고 얘기했더니 사람들이 찾아와요. 그러나 내 취미니까 돈은 안 받아요.”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생각을 파는 직업을 갖다 보니 아이디어 회의를 밥먹듯이 한다고 했다. 1999년에 펴낸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는 책에서는 ‘허락 안 받고 마음대로 그냥 써먹어도’ 된다면서 아이디어 272개를 공개했다.

    전씨는 일, 혹은 노동을 무엇이라고 여길까.

    “취미는 좋아서 하는 것인데, 취미가 직업이 되고 돈까지 되는 게 제일 좋다고 봐요. 라디오 분해하는 것이 좋으면, 라디오 수리점을 하는 거죠.” 말 보따리를 풀기 시작한 전씨는 대화가 편했는지 슬쩍 말을 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점수에 맞춰서 학과를 지망하는 웃기는 사회야. ‘나는 건축과를 가고 싶은데 점수가 안돼요’ 그게 말이 되나. 가고 싶은 과를 가서 떨어지든지 붙든지 해야지. 코미디를 하고 싶은 애들이 어디 가서 뭘 배워야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코미디연기학과가 잘 생겼다고 봐. 개그맨 콘테스트에 2000명이나 몰리는데 체계적으로 배우면 그만큼 도태될 확률이 적어. 그런데 개그맨 사회는 웃기는 것만 하는 게 아니야. 다양한 영역이 있지.

    개그맨이 되려다가 못 되고 구성작가가 되거나 PD가 되거나 매니저가 될 수 있어. 꼭 웃기는 일만 하려고 하다가 실패하면 절망하고 고급 룸펜이 되는 거야. 딴 직업을 갖지 못하고 ‘언젠간 불러주겠지. 나이 먹어 되는 경우가 있으니, 나도 나이 먹으면 될지 몰라’ 하고 헛된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 거야.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게 된 것만으로 만족할 줄 알거나, 그도 아니면 꿈의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어. 빨리 빨리 일을 찾아하면 필요한 사람이 돼요. 나도 탤런트 하려다가 실패하고 개그맨이 된 사람이야. 그렇지만 만족해.”

    그는 노는 것에 대해 몇 마디 덧붙였다.

    “(예전엔) 그냥 논다고 하면 안 좋은 걸로 여겼어. ‘쟤 놀던 애야’ 그러면서 ‘양아치’ 취급을 해. 그런데 이제는 잘 논 것이 재산이 되는 시대야. 돌아다니고 역마살 낀 사람, 예를 들어 한비야는 책을 써서 돈을 벌잖아. 게임을 잘 한 사람은 프로게이머가 되고. 정말 열심히 일한 개미는 도태됐어. 실컷 놀던 애들은 어디 가서 백댄서가 돼 있는데 말이야. 일이 다양해진 거라구. 어느 나라에 갔는데 수도 시설이 없어. 수도가 없으면 수도 고치는 놈, 땅 파러 다니는 놈, 요금 받으러 다니는 놈, 요금 고지서 디자인하는 놈, 인쇄하는 놈이 없어. 직업이 다양한 나라가 잘사는 나라라고 생각해.”

    룰을 만드는 자가 게임에서 이긴다

    그가 ‘모든 승부에서 100퍼센트 이기는 방법’을 공개하겠단다. 솔깃해져서 다시 그의 말에 귀기울였다.

    “백남준 아트비디오에서 본 내용인데 자기가 룰을 만들면 100퍼센트 이긴다는 거야. 사실이 그래. 난 밖에 나가서 고스톱을 치면 대부분 돈을 잃어. 그러나 우리집에서는 내가 다 따. 내가 룰을 만들었거든. 두 장 남았을 때 치고 받지 못하면 피를 한 장 받아. 광 값을 달라고 두 번 말하면 안 줘. 억지를 세 번 부리면 3회 정지야. ‘미국놈 지갑을 주웠네’ ‘빈 집에 소 들어가네’ 같은 흔한 말을 쓰면 피를 한 장씩 뺏어. 복잡하잖아. 내 룰에 따라오려면 잃는 수밖에 없어. 사람들이 룰에 적응하느라 바쁘니까.

    곰곰 생각해 봐. 우리도 다른 사람들 룰에 맞추느라 정신 없지 않은지. 그리고 남들 가는 대로만 가면 중간은 간다는데 그건 통행금지 시절에나 맞는 말이야. 통금이 해제된 뒤에는 입체적으로 변했어. 남들 가는 대로 가면 도태돼. 남들 가는 대로 가지 말고 자기 길을 가야돼. ‘모난돌이 정 맞는다’는 거지 같은 속담이 개성을 죽여놨어. 정 한 번 맞으면 어때, 땡 하는 순간에 세상이 달라 보이는데. 여태까지는 달라 보이는 것을 못 보게 했어.”

    그는 늘 세상을 뒤집어보고 비틀어본다. 그러면 세상이 더 잘 보여 유쾌했던 적이 많다고 한다. 태교음악이 좋다면서도 음악회에 아이들을 못 데려오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어린이가 울어도 화내지 않는 음악회’를 기획했다. 입장료 100원짜리 콘서트를 열어 고스란히 적자를 떠 안았다. 그러나 콘서트는 성공적이었다. 좌석은 80석인데 한번에 200명이 몰려왔고 15일 동안 3000명이 관람했다. 또 연극을 기획하다가 늘 제목 회의에 골머리를 썩은지라, 아예 ‘제목 없으면 어때’라는 연극을 올렸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이 기획한 줄거리 없는 영화 ‘몽타운’의 총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는 “내가 앞서가는 것인지 뒤서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이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신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그는 자기식대로 살아왔기에 지금의 자리에 유쾌하고 당당하게 서게 된 것이다. 생을 잘 사는 비결 치고 너무 속시원하고 간단하지 않은가.

    ◇ [구본형] 부자 떠돌이와 가난한 떠돌이의 차이

    성공하고 싶은 당신 ‘다모작 인생’ 꿈꿔라
    구본형씨는 변화경영컨설턴트로 통한다. 자기가 붙인 직함인데 그 직함이 세상에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어느 누구든지 변화경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컨설팅을 한다면 구본형씨의 아류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 ‘월드클래스를 향하여’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떠남과 만남’ 그리고 최근 ‘사자같이 젊은 놈들’ 등 그가 펴낸 책들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15년 동안 IBM에 소속된 월급쟁이에 불과했던 구씨.

    그 인생의 ‘화려한’ 변화는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을까. 변화 경영 코드를 전문 분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차별성이죠. 자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가 개인의 브랜드입니다. 대학 학부 시절에 역사학을 하면서 역사 속의 변화에 관심을 가졌어요. 영국혁명,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은 굉장히 역동적입니다. 시나 소설을 읽어도 변화에 관심을 뒀어요. 직장에서 제도나 문화를 바꾸는 개혁과 혁신 부서에서 근무하다 보니 그런 관심이 변화경영과 잘 맞아떨어졌죠. 20년 직장생활에서 80% 정도를 변화와 혁신을 총괄하는 업무를 봤습니다. 경영의 영역은 광범위하지만 나한테 잘 맞는 영역은 ‘변화 요소를 어떻게 구성하고 효과적인 변화를 유도할 것인가’였죠. 나는 경영학 속에서 그 고리를 잡고 나선 것입니다.”

    그가 ‘1인 기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가진 멀티형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다. 경영과는 다소 엉뚱한 방향에서 출발한 것이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결국은 인간학

    “인문학이 모든 것의 기본이에요.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자기 영역에서 새로운 분야를 만들 수 없을 겁니다. 미술이나 경영이나 혼자 설 수 없어요. 그 바탕이 인문학이죠.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사건이 역사고 상상이 문학이고, 정신적 산물이 신학이고 철학인데 이것과 연관되지 않고 어떻게 인간과 관계된 경영을 할 수 있겠냐는 거죠. 한 회사의 경쟁력은 소속된 직원이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얼마만한 열정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것을 관리 개발하려면 인간에 대해 모르면 안 되죠. 일례로, 잭 웰치는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자기 시간의 반을 사람에게 투자해요. 그것을 통해서 성공한 사람이죠.”

    그의 일주일을 들여다보면 환상적이다. 남들은 주5일제 근무를 하느니 마느니 하는데 그는 주3일제 근무를 하고 있다.

    “방송과 강연, 약속을 3일 안에 다 집어넣어요. 그래서 3일은 롱데이예요. 2일은 가족과 놀고 2일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시간으로 남겨두죠. 강연은 하루에 한 번. 일 주일에 세 번, 한 달이면 10번 정도 합니다. 그 10번을 3대7로 나눠서 3은 학교나 시민단체 같은 공적인 기관에서 사회 참여 차원에서 강연하고 7은 기업에서 비싼 값 받고 강연합니다. 전자는 봉사 개념이고 후자는 비즈니스 개념이에요.”

    그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하는 방법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우선 많이 놀아야죠. 제 경우는 여행을 많이 해요. 여행은 모든 사람이 즐거워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로의 초대지요. 나를 묶어 맨 일상에서 떨어지고 자기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간격이죠. 여행은 일상과 비일상의 간격, 현재와 미래의 간격, 꿈과 현실의 간격, 한 공간과 공간의 간격인데 그게 정신적인 여유라는 생각에서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여유가 없으면 하나의 논리에 자기를 집어넣고 돌려 다양성을 상실하게 될 겁니다. 저는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일과 취미 양립할 것

    그는 ‘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노동의 개념이 많이 바뀔 겁니다. 사람들은 앞으로 일을 심각한 형태로 바라보지 않을 거예요. 여태까지는 대학 졸업하면 당연히 취직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성숙한 인간이고 장가도 들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일은 우리 생활에 뗄 수 없는 경제적인 기반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시간에 매여 있고 조직의 지시 명령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이제 일과 취미가 양립할 겁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 떨어지면 일하러 가고, 살 만하면 그림을 그리거나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그러다 생계가 어려워지면 다시 어떤 일이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취미와 연결된 것을 하거나 일 자체를 항상 있어야 하는 상존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인생을 즐기려하고 일과 놀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하죠.”

    그렇게 일을 즐기려 하거나 일과 놀이를 겸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당장 경제적인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 ‘투잡스족’도 생겨나는 게 현실이다. 그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 물어보았다.

    성공하고 싶은 당신 ‘다모작 인생’ 꿈꿔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일에만 전념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휴식과 놀이를 즐길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직업에 유연성이 생기면서 ‘내가 만일 해직당하면 어떻게 될까’ ‘나이가 들어 정년퇴직하면 어떻게 될까’ 걱정하죠. 예전에는 자식이 부모를 책임졌지만 이제는 자기 몫은 자기가 챙겨야 합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라면 돈을 벌어야 하죠. 앞으로는 내가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테니까요. ‘햇빛이 날 때 건초를 말리겠다’ ‘내가 일할 기회가 생기면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밤에 또 다른 잡을 갖고 그 사이사이에 다단계 영업을 하고. 다단계 영업을 하는 사람은 70~80%가 전업이 아니에요. 다 직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대기업은 이를 막고 있지 않은가. 직업 윤리 강령에 배치되는 점도 있다. 다단계 영업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다단계 영업은 기업들과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직무에 몰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기업에서도 이런 일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업을 갖지 말라. 지금부터 네트워크 영업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지만 어떻게 감시 감독할 것인가. 감독하는 게 옳은지도 생각해봐야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또 다른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거죠.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도대체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엔 마누라를 일터로 내보내는 가장은 무능의 상징처럼 여겼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단 말이죠. 그래서 한 가계로 봐서도 훨씬 일을 많이 하는 세상이 되었어요. 이제 사람들은 빨리 자립하고 싶어합니다.”

    전문성이 밥 먹여 준다

    아직은 조직 인간이 대접받고 또 안정된 생활을 구가하고 있는 시대다. 그는 앞으로 프리에이전트(1인기업가)가 얼마나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을까.

    “빨리 갈 겁니다. 왜냐면 사회 변화는 하나가 정리되고 다른 것으로 옮겨가는 게 아니거든요. 삼겹살처럼 소비산업 지식산업들이 복합적으로 혼재하는데 어떤 층이 주류를 형성하느냐의 문제일 뿐이죠. 앞으로도 정통적인 조직 인간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 봅니다. 프리에이전트가 많아지고 선호도가 높아지고 케이스도 많아지겠지만, 변화가 모든 사람에게 쉬운 건 아니죠.

    미국 경제와 비교하면 산업발전 속도는 많이 떨어지지만 네트워크 시대라 시간적 갭이 많이 줄었어요. 고용 측면에서 보더라도 IMF 5년 이후에 우리 사회가 미국보다 더 단기고용구조로 이동하고 있어요. 장기고용구조의 지표를 한 회사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비율, 1년 미만 근무한 비율, 3년 미만 근무한 비율 등의 수치로 따지는데 샘플을 채취해 보면 우리가 미국보다 15년 이상 근무자가 적고 1년 미만 근무자가 많습니다. 평생 직장에서 강제적 반강제적으로 퇴출되고 그 뒤로 새로 직원을 뽑으면서 그런 지표들이 생겨난 거죠.

    구조조정이 일시적이 아니라 상습 경영활동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 회사 평균 근무연수가 더 짧아질 겁니다. 그 사이에 많은 떠돌이가 생겨날 것입니다. 그 떠돌이들이 부유하게 살 것이냐 아니냐는 전문성에 의해 결정될 겁니다. 전문성이 없으면 임시직을 전전하면서 고용직보다 복리후생에 취약하고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거죠. 하지만 전문성이 있으면 엄청 많은 부를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가진 재료로 요리하라

    ‘프리타’는 일본에서 생겨난 신조어로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 ter)’의 합성어다.

    최근 일본에선 하고싶은 일을 하고 또 놀고 싶을 때는 직장을 그만두고 노는 일명 ‘프리타’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특정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전문성’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몇 가지를 기억하고 그대로 하게 되면 매우 빨리 체계적으로 전문가가 될 수 있죠. 유망 직종이 무엇이냐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내게 가장 잘 맞는 직종이 무엇인지가 중요하죠. 자기를 전문화하는 좋은 방법은 자신의 장점에 집중 투자하는 겁니다. 내가 가진 재료로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재료로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없습니다. 고시는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전문성을 갖지 못한 이들이 가는 길입니다. 자격증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사람에게 주는 사회적인 인정에 지나지 않죠. 하나는 최대한이고 하나는 최소한입니다.

    지식 사회는 카지노 원리와 같아서 딴 놈이 다 가져갑니다.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과 대다수의 일반수준 사람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사회에서 자기 브랜드를 높이는 방법은 글을 쓸 줄 알면 글을 쓰고 말 잘하는 사람은 말을 통해서 자기를 부각시키는 겁니다.”

    변화 혁신 전문가라지만 그의 인상은 무척 부드럽다. 역사 속의 혁명에 관심을 가졌다지만 시나 소설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 힘 같다. 인문학으로 출발해 경영학에서 이름을 얻은 그에게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도 허튼 말 같다.

    그를 만나 보니 역사와 문학, 경영과 철학, 스포츠와 음악을 넘나들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것을 브랜드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말로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진정한 생명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조영남] 누릴 게 많은 세상, 한 가지 일만 하면 재미없다

    성공하고 싶은 당신 ‘다모작 인생’ 꿈꿔라
    자타가 인정하는 팔방미인, 멀티형 인간으로 꼽히는 인물로 조영남씨가 있다.

    그가 가수이면서 방송인이라는 사실은 시골 백 살 노인도 안다. 게다가 그는 1973년에 첫 전시회를 연 이래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화가면서 ‘놀멘놀멘’ ‘예수의 샅바를 잡다’ 같은, 눈에 띄는 책을 펴낸 저술가다.

    그의 세계는 음악, 미술, 신학, 건축, 영화, 문학까지 그 영역이 무척 넓다. 차라리 광활하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 같다.

    그를 만난다는 생각만으로도 내가 다 자유로워졌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바쁠 텐데 그는 인터뷰 요청에 별 망설임이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그가 한 대답은 이랬다.

    “자장면 사줄 테니 지금 와.”

    낮 12시에 전화를 걸고 오후 2시에 청담동 그의 집으로 들어섰다. 그림들이 거실 벽에 기대 켜켜이 서 있었다. 그는 작업중이었다. 가나화랑에서 경매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뿔테 안경 18개가 놓여 있었다. 안방에는 30여개의 안경이 더 있다고 했다. 내 눈에는 비슷비슷한 뿔테인데 그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

    조영남씨는 그림을 그리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습니까.”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생각없이 던진 것이 실수였다. 그는 그런 질문은 정치인에게 정치를 언제부터 했냐고 묻는 거나 다름없는 우문이라고 했다.

    사실 그의 그림 실력은 이제 전문 화가 수준이다. 화투장을 소재로 한 그의 독특한 그림들은 미술계에서 동양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신선한 시도라고 평가받은 바 있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여전히 화투장 그림을 그렸다. 그는 스스로 화수(畵手)라는 직함을 만들었다. 그 직함을 소개한 ‘조영남씬 천재예요!’라는 책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서점에 깔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굶나 봐라

    그의 글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감칠맛 나게 읽힌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물었다.

    “나는 글 쓰면서 상대방하고 말하는 것을 상상해. 말로 할 땐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의 노하우는 그거 하나야.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그러던데 나는 그렇게 안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게 어려운 줄 몰라.”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많았다. 그래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소리가 ‘재주가 많으면 조석이 간 데 없다’ ‘팔방미인은 배고프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말을 수긍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반박할 거리도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두고봐라, 내가 밥을 굶는지. 돈을 꾸러오는지 보여주겠다’는 생각만 다졌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삶은 뭇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어떻게 하면 다양한 재주를 가질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때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다 타고나야 해.”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는 미술부장을 했다. 가수로 성공하고 난 뒤로는 이제 영영 화가가 되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만 해도 편견이 심해서 가수는 노래 부르는 것만 해야지 다른 분야를 넘보는 것은 마땅치 않게 여겼다. ‘니가 다 해먹냐’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그림 그린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집에서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어느 날 그림을 아는 사람들이 와서 보고 전시회를 해도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전시회도 하게 되고 ‘어영부영’ 화가가 됐다. 그는 이를 두고 “자꾸 그림을 그려놓으니까 어느 날 숨길 수 없을 만큼 되어버렸고 이게 세상에 드러나자 순식간에 알려지게 됐다”고 했다.

    그는 아티스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직업이라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벌이를 할 수 있으니까 환상적이란다. 그런데 그는 다분히 운명론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예술가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신이 점지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적인 기질은 연구하고 연마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슬쩍 견해를 수정한다.

    “나는 예술가의 표본은 아냐. 내 주위에 있는 놈들하고 비교할 때야 아티스트지 내가 진정한 아티스트인지는 나도 몰라요. 재주 없는 사람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이 세상에 나만 아티스트를 하련다는 게 아냐. 누구나 연마하면 나와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나와 비슷하게는 되지 않겠냐는 거지. 실망할 것 없어.”

    그는 이렇게 뒷문을 살짝 열어놓는다.

    “사람이 타고난 게 없다고 생각하면 가난해지는데요” 내가 다시 물었다.

    “누구에게나 못 타고 난 게 있어. 나는 달음박질을 못해. 그것을 투덜댈 필요가 없어. 느려도 뛰면 되는 거야. 불만스러워하는 만큼 불행해지는 거거든. 노래를 잘 못해도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즐기면 되는 거야. 누구나 잘살 수 있는 재주는 있어. 주제 파악을 하면 돼. 주제 파악을 못하면 생은 구렁텅이에 빠지는 거야.”

    -너무 많은 일을 하면 정신이 없지 않습니까.

    “정신이 나가면 내가 하겠어? 전혀. 이렇게 얘기하다가 방송국 가면 그림 그리던 것 잊어버리고 가수가 돼. 집에 오면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예전부터 분리를 잘 했지. 가수하면서는 극도로 그림 얘기를 피했고 미술 쪽으로 오면 가수라는 것은 싹 잊어버려.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굉장히 신경을 썼어. 그렇게 운영했기에 성공했다고 봐. 내 스스로 두 개의 장르에 대해서 별도의 정체성을 심어준 거지. 그 전략이 성공했다고 봐.”

    그는 앞으로 팔방미인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이 시대는 모든 사람이 르네상스맨이 돼야 해. 많은 문화정보가 흘러나오는데 그런 정보를 향유하려면 누구나 다 팔방미인이 돼야 해. 지금 이 세상이 얼마나 좋아. 예전엔 정보가 많지 않아서 한 가지 일만 하기에도 벅찼어. 지금 나는 이야기하면서 그림 그리잖아. 휴대전화가 있으니까 대여섯 여자와도 동시에 연애를 할 수 있는 세상이야. 누릴 수 있는 문화 예술이 오죽 많아. 가능하면 모두가 르네상스 인간이 돼야지. 그러나 한 가지 것만 하겠다는 사람은 그렇게 해. 말리지는 않겠어. 그렇지만 르네상스맨이 되어야 인생을 즐길 수 있어.”

    ‘투잡스’에 대해서도 그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 분야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행복한 거야. 그 사람은 내버려두자 이거야. 그런 사람은 시비 안 해. 그런데 말야, 한 가지만 하면 아마 재미없을 거야. 벤처회사 일만 하면서 행복하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벌이하는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덜 문화적이고 동물적으로 보여. 한 가지 일만 하는 사람은 솔직히 무지하게 재미없을 것 같아. 지금은 예전하고 달라. 예전엔 부산에서 서울 오는 것 자체가 문제였어.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서 앉아서 글이나 읽고 막걸리나 마신 거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잖아.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인 코드가 많아진 시대에는 이를 잘 흡수할 수 있는 르네상스적인 인간이 돼야 한다고.”

    조영남씨는 멀티형 인간으로 글 쓰고 정치하는 김영환, 김한길씨를 꼽았다.

    -한 분야에서 천장을 뚫고 정상에 올라서면 서로 통하는 건가요. 한 분야에서 능통했기에 다른 분야로 넘어가기 수월했고 기회도 주어졌다고 보십니까.

    “정확해. 한통속이야. 노래 글 그림 한통속이야. 속성이 똑같아. 어필하는 것이 똑같아. 하나는 목소리로, 하나는 그림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데, 노래가 곧장 전달되는 ‘퀵서비스’라면 그림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선박 컨테이너’야. 전달되는 속도에 차이가 있지만 글이나 그림이 훨씬 강력한 메시를 전할 수가 있어. 어쨌든 한 동네 얘기야.”

    마지막으로 재주 많은 그에게 인맥이란 무슨 의미를 지닐까 궁금했다.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서도 어디 가서든 능력을 발휘할 것 같아서였다.

    “중요해. 결국 삶은 인맥 게임이야. 남자 세계에서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느냐가 평가 기준이 돼. 나는 운이 좋았지. 세상은 실력만큼 배당이 오는 것이지. 실력 없는 놈에게 오지 않아. 실력에 따라 친교 관계가 쌓이는 거지. 물론 실력은 재주만으로는 안 돼. 끊임없이 짱구를 쓰고 내공을 쌓아야지. 내가 책 읽고, 음악회 가고, 영화 보는 게 다 그런 거야. 절대 그냥 되는 게 아냐.”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 그는 그림 한 점을 마무리짓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일어서자 그도 비행기를 타러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인생이 짧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앞으로 영화와 시에도 도전해볼 작정이다. 그는 쉬지 않는 기관차 같다. 인생이라는 놀이 동산을 도는 기관차.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예술가 기질의 멀티형 인간이 있는가 하면 일하고 또 일하는 멀티형 인간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가 ‘좋아서’ ‘자기다운 일이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 [윤은기] 물레방아는 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느다

    성공하고 싶은 당신 ‘다모작 인생’ 꿈꿔라
    오후 6시 퇴근 무렵, 라디오에선 어김없이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KBS 제1라디오에서 ‘생방송 오늘’을 6년째 진행하고 있는 윤은기씨. 그렇지만 그를 방송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IBS컨설팅컴퍼니 회장과 정보전략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경영컨설턴트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고의 몸값을 지닌 연사다. 출강하는 대학도 많다. 한남대 객원교수, 인하대 겸임교수 그리고 경희대 관광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하는 등 어지간한 최고경영자 과정에는 죄다 출강한다. 학회나 모임의 상임이사 직함이 4개, 이런 저런 위원직이 9개나 된다.

    도대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기에 이런 모든 일이 가능할까. 그의 의자는 날아다니기라도 하는 걸까. 그를 만나기 위해서 여의도 KBS방송국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마치 분신을 여럿 거느리고 다니는 손오공이라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그가 회장으로 있는 IBS컨설팅컴퍼니 회사의 비서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차가 막혀 10분 정도 늦을 거라고 했다. 상대방의 10분을 아껴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인터뷰를 준비하느라 긴장돼 있던 내 마음이 눈 녹듯 풀렸다. 그러고 보니 그는 경제계에 시테크 개념을 퍼뜨리고 확산시킨 시테크 전문가가 아닌가.

    과연, 10분 뒤에 그가 나타났다. 생각보다 젊고 얼굴도 맑았다. 전혀 일에 찌든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가 안주머니에서 인터뷰 질문지를 꺼냈다. 나는 비서실의 요청대로 그에게 물어볼 질문지를 이메일로 보내 놓은 상태였고 그는 비서로부터 팩스로 그 질문을 받아서 생각을 정리해둔 상태였다. 그래서 인터뷰는 일사천리로 마치 그의 강연을 듣는 것처럼 진행됐다.

    -한 가지 일도 어려운데,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

    “나는 여건이 되면 다모작 인생이 좋다고 말해요. 일년에 농사 한 번 지을 수도 있지만 환경을 잘 활용하면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하죠. 이게 가능하려면 상호 ‘선순환고리’로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방송하다가 좋은 내용 있으면 강의 때 얘기하고, 강의 녹음을 풀어서 정리하면 책이 되고, 책을 내고 나면 저자와의 대화 형식으로 강연을 하고. 여러 개를 동시에 하지만 따로따로가 아니라 같은 영역에서 물레방아처럼 상호작용을 하면서 돌아가는 거죠. 물을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지만 한번 돌리고 보낼 수 있잖아요. 그런 식이어서 가능하죠. 책을 조용한 데 가서 쓰고 오겠다면 나머지는 올스톱이죠. 생방송을 하면서 생생한 현장 정보를 얻고 대학에서는 학문적인 틀을 갖추고 기업에서는 실용적인 틀을 제시하면서 학문-실무-지식-정보가 서로 순환하는 거예요.”

    -다방면에 재능을 갖고 있고 또 발휘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평범한 제너럴리스트라면 먹고살기 힘들죠. 이것도 찔끔 저것도 찔끔 하면 망가지지만 같은 분야를 선순환시키면서 전문성을 강화하면 가능하죠. 한눈을 파는 게 아니고 같은 우물을 선순환시켜서 활용하는 거죠.”

    사랑하라, 생산적으로 몰입하라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세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노는 것, 쉬는 것, 사랑하는 것입니다. 노는 재주가 없는데 유일하게 골프를 해요. 쉬는 것은 천안의 광덕사 절 아래에 처가가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곳에 가서 아무 일도 안 하고 달팽이처럼 퍼져 있다가 옵니다. 그 다음에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마음이 충전되죠. 사랑을 받으려니까 별 재간없이 아내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아내를 교주로 모시고 아내를 귀인이라고 하면서 정성을 들입니다. 그래야 사랑을 받을 수 있으니까. 독특하게 개발한 것으로는 아령을 이용한 운동이에요. 아령을 침실과 세면대와 서재에 하나씩 두고 눈에 띄고 발에 걸릴 때마다 해요. 운동도 되고 스트레스도 해소되죠. 시간도 절약되고 실천하기 쉬워서 좋아요.”

    -인생에 있어서 일과 놀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일과 놀이는 꽈배기처럼 섞여서 돌아가야 합니다. 50대까지 일하다가 은퇴하면 논다고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해요. 노동은 비자발적이고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데 이제는 엔터테인먼트가 들어가잖아요. 일 자체를 즐기고 일과 놀이가 섞이고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화끈하게 놀고. 일이 생계수단이 아니고 정체성이나 재미를 느끼는 쪽으로 갑니다.”

    -주 5일제가 되면서 직장인들이 자기 개발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 개발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 몇 가지를 추천해주시지요.

    “자기 개발에 중요한 것은 몰입니다. 정보기술을 쓰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높아졌어요. 요즘 한 시간 일하는 게 예전 열 시간 일하는 것만큼 되었죠. 일의 강도가 높아지면 놀고 쉬는 강도도 높아져야 해요. 그때 생산적 몰입을 하라는 거죠. 생산적 몰입으로 악기연주, 운동, 자원봉사, 종교, 자발적 학습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사전에 훈련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행도 테마 여행을 하고 놀고 쉬는 것도 계획적으로 하라는 겁니다.

    그러지 못하면 어려워지죠. 생산적 몰입을 못하면 파괴적 몰입에 빠지게 되는데 마약, 섹스, 음주가 그런 것들이죠. 그래서 저는 방송국에서 만나는 연예인들에게 골프를 치라고 권해요. 좋아서 미치는 것이 없으면 알코올이나 스캔들, 마약에 빠지고 맙니다. 한국 사회에 음주, 도박, 고스톱이 많은 이유가 어려서부터 놀이문화가 빈약해서 그래요. 이제는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산적 몰입을 하는 여가 프로그램 개발이 중요한 세상이 되었어요. 자격증 하나 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봐요.”

    -다니엘 핑크는 ‘미국 사회는 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우리 사회도 이제는 조직 인간보다는 프리에이전트가 더 매력적인 존재로 부각되는 것 같은데요. 프리에이전트 그룹이 어느 정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십니까.

    “프리에이전트나 프리타나 마찬가지인데 특정 기업에 속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미쳐서 책도 쓰고 직업도 창출하는 존재들이에요. 피터 드러커가 앞으로는 근로자도 없고 직원도 없다고 했어요. 모든 사람이 기업가죠. 회사에 다녀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계약 관계에 의해서 일하는, 권한이 이양된 한 명의 기업가죠. 명령 복종 관계에 있지 않아요. 1980년대 중반에 도요타, 히타치, 미쓰비시와 동시에 계약을 하고 일하는 사람을 봤어요. 아르바이트 같은데 전문적이어서 상상하기 힘든 돈을 버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지금은 비정규직의 권익을 보장하라고 주장하지만 머잖아 비정규직을 스스로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겁니다. 그와 함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성공이자 최고의 가치로 여겨질 겁니다. 그때쯤 되면 출근해서 카드 긋고 하는 것은 ‘그때를 아십니까’에나 나올 법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프리에이전트는 전문성 확보가 전제되어야 해요. 전문성이 없으면 죽는 거죠.”

    -직장인이 전문가가 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몇 가지를 추천해주시지요.

    “‘예술가처럼 벌어서 천사처럼 써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예술가처럼 자긍심과 창의력, 자발적인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게 바로 경쟁력이에요. 전문가가 되려면 예술가 기질이 있어야 합니다. 아트와 사이언스가 섞여야 되죠. 내게 ‘성공 비결이 뭐냐’ ‘CEO가 되는 비결은 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요.

    나는 그때 이렇게 말해요. 실력과 인간적 매력이 있어야 최고봉에 올라갈 수 있다. 특정 분야의 핵심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전문가가 되려면 인간적 매력과 친화력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사부나 상사를 잘 만나야 해요. 혼자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 다음에 제자가 있어야 하고. 열렬히 지지하는 팬이 있어야 해요. 그러면 자연히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죠.

    사람들이 곧잘 말하는 ‘너만 똑똑하면 돼’가 아닙니다. 인간적 친화력과 매력이 없으면 안 되죠. 김이사 하면 모두가 좋아하고 경영주가 봤을 때도 ‘저 친구 됐어요’하는 소리가 나와야 해요. 유능한 CEO들은 물론 팬들이 있죠.”

    한 가지 재주로는 못산다

    -요즘 세컨드잡을 갖는 직장인이 생기고 또 세컨드잡을 희망하는 직장인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직장인의 ‘투잡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개의 직업은 서로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상승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해요. 똑같은 일이라야만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죠. 낮에는 기획 일인데 저녁에 마케팅일 수 있죠. 기획과 마케팅이 만나면 더 잘 됩니다. 낮에 마케팅하고 밤에는 막노동을 한다면 그것은 곤란하죠. 피곤해서 더 힘들죠. 상호연관성이 무엇인가를 봐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투잡’뿐 아니라 ‘트리플잡’ ‘멀티잡’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어요.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더블 수입을 위해서 무리하면 오히려 인생 망가집니다. 설계가 중요하죠.

    진정한 성공은 제너럴리스트냐 스페셜리스트냐가 아니고 전체를 익혀서 자기가 집중할 분야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멀티플레이어가 많이 나와야 해요. 앞으로는 진짜 다모작 인생, 멀티플레이어의 시대가 되는 것이죠. 휴대전화만 보더라도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있어요. 휴대전화 안에 카메라, 위치 추적 시스템, 인터넷이 들어가죠. 멀티플한 지능이 압축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정보화 사회가 가는 길이고 미래 사회의 방향입니다. 인간도 하나밖에 모르면 산업사회의 단순한 부품에 지나지 않게 돼요. 직업은 하나라도 멀티플 지능과 역량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도태될 염려가 없고 잘리더라도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거죠.”

    KBS로비 커피숍, 방송출연자들이 오가는 시끄러운 와중에도 인터뷰는 거침없이 진행됐다. 이제 그는 ‘생방송 오늘’을 진행하기 위해서 스튜디오로 들어가야 했다. 그는 헤어지면서 올해 펴낸 ‘귀인’이라는 책을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사인과 함께 “귀인을 만나고 귀인이 됩시다”는 한마디가 적혀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 라디오에서 그의 군더더기 없는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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