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乘風破浪! 아이디어로 바람타고 R&D로 파도 헤친다

오토바이 헬멧 세계 1위 홍진크라운 홍완기 회장

  • 글: 장인석 CEO전문 리포터 jis1029@hanmail.net

    입력2002-12-02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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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지만 강한 기업. 홍진크라운은 ‘强小기업’의 전형이다.
    • 연 매출 1200억원의 중소기업이지만, 세계 오토바이 헬멧 시장에서 10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신속히 상품화하는 기동성, 해마다 매출액의 10%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기술제일주의 덕분이다.
    乘風破浪! 아이디어로 바람타고 R&D로 파도 헤친다
    11월1일, 한적한 시골마을인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시미리에서 자그마한 연구소 준공식이 열렸다. 대지 555평, 3층짜리 건물 두 동뿐이지만, 준공식에 참가한 사람들의 열기는 뜨겁기만 했다.

    “지금은 세계 1위 제품이 한 개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두 개, 세 개, 나아가 다섯 개가 나올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이 연구소를 세웠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연구와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중소기업에 불과하지만, 이익금의 거의 대부분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좋은 제품은 우리의 미래이며, 후손에 물려줄 유산입니다.”

    박수가 쏟아지자 홍완기 회장(洪完基·62)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이를 바라보는 임직원과 하객들도 숙연한 분위기에 젖었다. 이 조그만 중소기업이 그간 기울여온 노력, 그리고 이를 이끌어온 홍회장의 집념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직원이 300명 남짓한 홍진크라운이 어떤 회사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HJC’ 브랜드 헬멧도 오토바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 하지만 HJC가 한국 브랜드로는 드물게 세계시장을 석권한 1위 제품이라면 ‘그런 게 있었나’ 하고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그것도 그냥 1위가 아니다. 세계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북미시장에서 점유율이 35%나 되는 명실상부한 세계 1위다. 전세계 시장 점유율은 15% 정도. 하지만 2위인 이탈리아 ‘놀란(Nolan)’의 점유율이 그 절반 수준인 7∼8%인 것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선두주자인 셈이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세계적인 오토바이 전문잡지 ‘모터사이클 인더스트리 매거진’은 지난해 12월 ‘올해 최고의 인기 헬멧’으로 홍진크라운의 HJC를 꼽았다. 미국 상인 2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HJC 헬멧이 56%의 선호도를 기록, 2위인 일본의 ‘쇼에이’(13%)를 여유있게 따돌렸다.

    미국 시장에서 HJC가 차지하는 위상을 실감케 하는 일화가 있다. 미국 중북부 지역에 HJC를 공급하는 바이어 캐슬씨는 얼마 전 자신이 사는 위스콘신주 그린베이를 방문한 홍완기 회장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했다. 캐슬씨는 홍회장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하려고 주(州) 경계를 넘어 한국 슈퍼마켓이 있는 일리노이주의 시카고까지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 장을 봐왔다고 한다. 홍회장은 그에게 평생의 은인이다. 캐슬씨는 HJC 덕분에 큰돈을 벌었는데, 다른 바이어들이 HJC 판매권을 1000만달러에 사겠다고 해도 일언지하에 거절할 정도다.

    이에 반해 ‘로키 사이클’이란 회사를 운영하는 한 바이어는 지금도 땅을 치고 있다. 홍회장이 미국시장을 개척하던 시절에 이 바이어를 찾아갔는데, 그는 HJC의 시장성을 내다보지 못해 굴러들어온 복을 제발로 차버렸다.

    요즘 HJC 제품은 미국의 어느 오토바이 헬멧 가게에서든 가장 눈에 잘 띄는 코너의 중앙에 진열돼 있다. HJC가 품질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재작년 수출의 날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삼성전자 등 4개 업체 대표가 상을 받았는데, 제가 삼성전자 임형규 사장보다 먼저 받았어요. 그랬더니 나중에 임사장이 묻더군요. ‘저희는 수출액이 171억달러나 되고, 홍회장님은 5500만달러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저희보다 먼저 상을 받았습니까?’라고.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말했죠. ‘사장님네 제품이 미국 매장 한가운데 있습니까? 우리 제품은 늘 정중앙에 있지요’라고….”

    작지만 강한 기업. 홍진크라운의 오토바이 헬멧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기술력이다. 기술력의 근간은 홍회장의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에 있다. 홍진크라운은 300여 명의 직원 중 40여 명이 연구·개발 인력이다. 홍회장은 해마다 매출액의 10%를 연구·개발비로 쓴다. 지난해 매출액은 1117억원, 올해 예상액은 1200억원이니 지난 2년 간만 해도 연구·개발비로 200억원을 넘게 썼다는 얘기다.

    11월1일 문을 연 홍진연구소는 ‘연구는 곧 경쟁력’이라는 홍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배태됐다. 또한 지난해 11월19일 창립 30주년 행사에서 공표한 ‘비전 2011’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매출액이 100억원이던 1991년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직원들에게 ‘10년 후 30주년에는 1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세계 3위 안에 들자’고 다짐했습니다. 결국 1000억원을 돌파한 것은 물론, 목표를 뛰어넘어 세계 1위에 올랐고, 중국에도 공장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30주년 때는 ‘비전 2011’을 발표해 10년 후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현재는 세계 1위 제품이 한 개지만 그때까지는 다섯 개로 늘리고, 매출액도 5000억원으로 키우자는 것이죠.”

    홍회장은 연구소 설립을 계기로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을 확충할 계획이다. 아울러 오토바이 헬멧 외에 두형보조기(어린이의 머리 모양을 예쁘게 키우기 위해 헬멧처럼 씌우는 것), 자동차 경주용 헬멧, 목 보호대, 조립식 고가도로 등에서도 세계 1위 제품을 생산하려면 연구·개발비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HJC 헬멧은 그저 매출액이 많아 세계 1위 제품이 된 것이 아니다. 품질에서도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1위라는 데서 홍진의 우수한 기술력이 돋보인다. HJC의 내수용 제품도 국내에서 가장 고가로 팔린다. 경주용, 스트리트용(오픈 페이스, 하프 헬멧, 풀 헬멧), 오프 로드용 헬멧의 평균 소매가는 20만원선.

    하지만 똑같은 제품을 북미시장에 수출할 때는 30% 정도 비싸게 값을 매겨 250∼270달러를 받는다. 울며 겨자먹기로 덤핑 수출하는 국내 제품이 부지기수인 실정에 이는 가히 파격적인 일이라 할 만하다. 홍진이 초기부터 북미지역 유명 업체들의 주문자 상표 부착방식 생산(OEM) 제의를 뿌리치고 고정 딜러를 통해 자사 브랜드의 고가 수출전략을 감행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북미나 유럽시장에는 개당 300달러가 넘는 브랜드도 있어 HJC는 가격면에선 중고가 제품으로 통한다. 오랜 전통의 놀란이나 쇼에이가 최고가 제품. 하지만 HJC는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아 레이서들이 즐겨 찾는 인기 제품이 됐다.

    국내·외 특허 42개

    “미국의 600cc급 모터사이클 선수인 아론 예트가 몇달 전 시합중에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오토바이 경주는 워낙 속도가 빨라 사고가 나면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을 만큼 충격이 큽니다. 그런데 예트는 넘어지면서 몇바퀴나 구르고 부딪혔는데도 머리가 말짱했어요. 사고를 당한 지 불과 몇시간 후 2차전에 나가서 2위를 했는데, 기자들은 1등을 한 선수를 제쳐놓고 그에게 몰려가 인터뷰를 했지요. 그는 ‘헬멧이 좋아서 큰 부상을 면했다’고 했는데, 그가 쓴 헬멧이 HJC였습니다. 덕분에 홍보가 아주 잘됐죠. 헬멧 겉부분이 좀 긁히고 깨졌지만 머리엔 전혀 손상을 주지 않았어요.”

    오토바이 헬멧은 생명을 보호하는 장치다. 오토바이 사고에서 운전자가 뇌를 다치면 치명적이니만큼 헬멧은 그야말로 ‘생명존중의 사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좋은 헬멧을 만드는 관건은 ‘셸’이라고 부르는 외피의 강도를 높이는 데 있다. 그렇다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무거운 소재를 사용하면 착용자가 불편하다. 따라서 단단하되 가벼운 신소재를 개발해야 한다.

    또한 충격을 흡수하는 스티로폼과 내장재도 중요하고, 사고가 났을 때 헬멧이 안 벗겨지게 강도를 조절하는 등 까다로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홍진크라운은 제품 개발단계에서 여러 가지의 강도 및 충격실험을 거듭한다.

    이런 실용적인 면뿐 아니라 디자인과 색상을 최신 유행에 맞게 개발하는 것도 판매에 큰 영향을 끼친다. 홍진의 헬멧은 유체역학적으로 공기저항을 덜 받도록 날렵하게 디자인됐다. 다른 헬멧보다 시야도 훨씬 넓어 사용자의 안전성을 높였고, 헬멧 안으로 들어온 탁한 공기가 빨리 배출될 수 있게 특수 설계했다.

    홍진 헬멧의 화려한 색상은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홍진은 야마하, 혼다, 스즈키, 할리 데이비슨 등 손꼽히는 오토바이 색상과 잘 어울리는 다양한 컬러의 제품을 만들뿐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 사람들의 머리 모양과 크기까지 치밀하게 분석해 제작에 반영한다.

    2000년 6월부터 수출한 ‘SY-MAX’ 모델은 헬멧 앞쪽 턱 보호대를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이동중에도 대화를 나누거나 담배를 피울 수 있게 한 제품. 특히 턱 보호대를 위로 올렸을 때 헬멧이 목에 주는 중량감을 최소화한 기술로 한국, 미국, 캐나다에서 특허를 받았다. 이 모델은 유럽에서만 13만여 개가 팔려나간 히트 상품이다.

    홍진의 독특한 디자인 아이디어는 대부분 홍완기 회장의 머리에서 나온다. 타고난 발명가인 홍회장은 잠잘 때를 빼고는 문득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실용화하는 일에 몰두한다. 홍진이 ECE(유럽공동체규격), JIS(일본산업규격), BSI(영국산업규격) 등 각국 산업공인규격에 통과한 것은 물론 국내·외에서 42개의 특허를 받은것도 그의 아이디어에 힘입은 바 크다.

    오토바이 헬멧과 조명을 접목한 일종의 퓨전 상품인 ‘라이트 헬멧’도 홍회장이 고안한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집 안을 장식하기 위해 헬멧을 갖고 싶어하는 이가 많다는 점에 착안, 헬멧에서 얼굴이 드러나는 부분을 빛이 새나오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대체한 것.

    홍진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있는 조립식 고가도로는 1997년 제네바 국제발명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미 미국 등 10여개국에서 특허를 얻은 아이디어로 건교부에서 정책자금을 받아 세종대 교수들과 공동 연구를 해왔다.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2층 도로를 세우는 것인데, 지금의 공법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경비도 많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공장에서 미리 만든 조립형 도로를 현장에서 짜맞추는 공법을 생각해낸거죠. 이렇게 하면 경비나 공기(工期)가 40%쯤 단축됩니다.”

    홍회장은 조립식 고가도로가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가령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1100억달러를 들여 로스앤젤레스에 2층 도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홍진이 기술력을 인정받으면 이런 대형 공사를 수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충격 흡수 가드레일도 그의 아이디어. 철판이나 시멘트로 만든 가드레일에 차가 부딪치면 운전자는 큰 충격을 받는다. 홍회장은 차와 가드레일 모두 파손되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스티로폼을 덧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가드레일 샘플을 만들었다. 그의 아이디어 샘이 무궁무진함을 입증한다.

    군 부대의 요청으로 그가 개발한 조립식 욕조 30개는 현재 소말리아에서 사용되고 있다. 차에 싣고 다니며 설치할 수 있는 간이 욕조로 원래는 유엔에 납품할 계획으로 개발했는데, 군 당국의 담당자와 지휘관이 바뀌면서 그 프로젝트가 유야무야됐다고 아쉬워한다.

    충남 논산 광석면의 가난한 농가에서 7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렵사리 강경상고를 졸업했다. 그렇지만 농사꾼이나 은행원이 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뭘 만드는 걸 좋아했고, 어떤 기계든지 뜯어보고 그 원리를 깨치는게 즐거웠어요. 제 목표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는데, 그러자면 히트 상품을 만드는 사업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특별한 기술이나 자본이 없어도 기발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가능하거든요. 농사는 아무리 열심히 지어도 1년에 1회전밖에 못하는데 그걸로 어떻게 큰돈을 벌겠나 싶었지요. 월급쟁이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기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상고 졸업 후 서울로 올라온 그는 2년간 우유 배달과 막노동 을 하며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가 택한 곳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현재는 산업공학과로 이름이 바뀜) 이과와 문과의 중간 위치에서 제품 개발과 기업 경영을 함께 배울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군 복무 시절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상업화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공군 PX에 근무하던 그는 라면이 잘 팔리는 데 착안, 끓이면 떡국이 되는 인스턴트 떡국을 라면 대체용으로 개발해 재미를 봤다. 제대한 후에는 일명 ‘도레미컵’이라 불리는 일회용 컵 사업을 시작했다. 누르면 한 개가 되지만 펴면 서너 개가 되는 다목적 컵이었다.

    “그것말고도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돈벌이가 안됐어요. 그러다 깨달았지요. 새로운 아이디어로 제품을 만들어내려면 공장도 지어야 하고 시장 개척이며 관리도 다 새로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들죠. 그래서 한 가지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그 제품을 개선하고 혁신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게 훨씬 사업성이 높겠다고.”

    ‘우리 힘으로 세계 제일’

    그런 판단에서 시작한 사업이 오토바이 운전자용 가죽점퍼와 바지 생산이었다. 당시만 해도 오토바이는 사치품이었다. 그래서 겨울에 오토바이를 탈 때 입는 가죽점퍼와 바지도 고가품이라 이윤이 꽤 많았다. 직접 오토바이를 타기도 했던 홍회장은 이때도 몇 가지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아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날씨가 추울 땐 얼굴이 시려 오토바이를 타기 힘들다. 그래서 안에는 거즈를 붙이고 바깥에는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은 마스크를 만들어 팔았다. 이게 잘 팔려 유사 제품이 쏟아져 나오자 그는 이 마스크에 턱받이를 댄 신제품을 출시, 한발 앞서가는 감각을 선보였다.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그는 헬멧을 생산하는 ‘크라운’이란 회사에 헬멧 내피를 납품하게 됐다. 그 회사가 만든 헬멧을 지방으로 판매하는 일까지 맡으면서 헬멧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크라운사가 재정난에 빠지자 이 회사를 인수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오토바이 헬멧이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물건이라 이걸 만들면 보람도 클 것이라 여겼고, 금속과 봉제의 결합, 인체공학적인 설계와 디자인이 필요한 일이라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봤습니다.”

    헬멧 회사를 인수한 후로도 그의 아이디어는 끊임없이 샘솟았다. 소리가 잘 들리라고 여닫이 귀마개를 단 헬멧에서부터 여닫는 고글, 쓰기 쉽게 하려고 머리 뒤쪽에 끈을 붙인 헬멧 등이 소비자들로부터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는 헬멧사업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국내시장에서 1위에 올랐다. 공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밤을 새우고 부인이 날라준 아침밥을 먹으며 연구에 매달린 결과였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헬멧 회사를 인수할 때 품은 꿈을 기어코 실현하리라 다짐했다. 세계적인 제품, 우리도 한번 전세계에서 1위를 하는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욕심이었다.

    “저는 외국에 나갔을 때 한국 사람 만나는 건 하나도 반갑지 않아요. 대신 한국 제품을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특히 그 물건이 진열대 중앙, 눈에 제일 잘 띄는 곳에 있으면 저녁을 굶어도 웃으면서 잠이 듭니다.”

    문제는 직원들의 의욕을 돋우는 일이었다. 사장 혼자 아무리 세계 1등을 부르짖어도 직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그는 틈날 때마다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선수가 일본 선수와 권투나 축구할 때 꼭 이기라고 응원하지 않느냐, 그런데 왜 운동만 일본에 이겨야 하느냐, 우리도 품질에서 일본을 눌러보자, 일본을 이기면 세계 1위다…. 제가 얼마나 1등 제품을 부르짖었는지 직원들이 거의 최면상태가 됐나 봐요. 1982년 지금의 용인공장으로 이전했을 때 표어를 공모했는데 ‘내손으로 세계 제일’ ‘피땀 흘려 세계 제일’ 등 70% 이상에 ‘세계 제일’이란 말이 들어갔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회사의 캐치프레이즈는 ‘우리 힘으로 세계 제일’입니다.”

    乘風破浪! 아이디어로 바람타고 R&D로 파도 헤친다

    홍회장은 창립 40주년이 되는 2011년까지 세계 1위 제품을 5개로 늘리고, 매출액도 5000억원으로 키울 계획이다.

    홍회장은 직원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본 제품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했다. 똑같이 만들어보고 다시 부수면서 일본 제품이 세계를 석권한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무엇을 가감하면 더 나은 제품이 될지 고민했다. 몇 년간 신상품 준비에 매달리던 홍회장은 1986년, 마침내 까다로운 미국 품질규격에 통과해 수출을 시작했다.

    첫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매출이 급격히 늘지는 않았지만, 바이어들이 호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크라운’이란 이름이 문제가 됐다. 미국의 유명 소방 헬멧 상표가 크라운이었다. 고심 끝에 ‘세계로 나아간다’는 의미인 ‘홍진(洪進)’을 붙여 ‘홍진크라운’으로 바꿨다.

    1992년 홍진크라운은 마침내 세계 1위에 등극했다. ‘모터 사이클 인더스트리’가 조사해 발표한 순위니 사실상 ‘공인 세계 1위’였다. 불이 나서 원자재와 설비가 타버려 큰 손해를 입고, 홍수 때 공장이 침수되는 바람에 납기일을 맞추려고 며칠씩 밤을 새우던 고생이 단번에 상쇄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품질을 개량하고 디자인을 개선하는 노력을 배가했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 일본, 독일, 호주, 유럽공동체,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들의 까다로운 공업·산업규격을 잇달아 따냈다. 상도 많이 받았다. 1992년 산업포장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경쟁력제고 공익광고 업체’로 지정되는가 하면 품질경쟁력 100대 기업, 세계화 우수사업 경진대회 대통령상, 한국능률협회 ‘월드 베스트 어워즈’ 금메달, 5000만불 수출의 탑 등을 거머쥐었다.

    홍완기 회장은 “우리 회사엔 노조가 없다”고 자랑한다.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압력을 넣어서가 아니고 직원들이 스스로 노조를 만들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노사갈등은 월급이 적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 인간관계의 갈등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경영자가 모범을 보여야 해요. 회사에 수익이 발생하면 그 수익금을 부동산이나 증권에 투자하는 회사가 많은데, 이를 회사의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에 투자하거나 사원복지에 쓰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저는 사원들에게 약속한 것은 가능한 한 지키려고 애씁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노사공존의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비전은 세계 1위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고, 그 약속을 지켜준 사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1993년에는 사원아파트를 지었고, 1999년에는 맞벌이 사원들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홍진 어린이집’을 열었다. 직원들에게 주택구입 자금은 물론,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을 지원한다. 뿐만 아니라 사내식당, 체력단련장, 통근버스 운행, 차량보조금 지원 등 대기업 못지않은 복지를 자랑한다. 지난해에는 실적이 좋아 1150%의 연말 보너스를 지급했다.

    “저희는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상장(上場)도 할 계획입니다. 오래 전부터 상장요건을 갖췄지만, 주인을 많이 모시면 피곤할 거라는 생각에 상장하지 않았죠. 그러나 회사 지분의 20%를 사원에게 나눠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상장을 하기로 한 겁니다. 이미 올 초에 사원주주조합에 5억원을 내놓았어요.”

    바람 타고 파도 헤쳐라

    서민적이고 털털해 사람 좋아 보이는 홍회장도 싫어하는 직원이 있다. 그에게서 기술을 배운 직원들이 회사를 나가 홍진크라운 제품과 거의 똑같은 헬멧을 만드는 회사를 차린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들이 거래처마저 빼앗으려 들어 홍회장은 배신감에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직원들 중 성공한 경우는 없었다. 그들이 그냥 회사에 남아 있는 것보다 못하게 되자 홍회장의 마음도 편치 못했다.

    ‘비전 2011’을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현장에서 뛰고 싶다는 홍회장은 건강을 위해 골프를 친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필드에 자주 나가지 못한다.

    “우리 집안에는 당뇨 환자가 없어요. 미국 지사를 맡고 있는 둘째와 중국을 담당한 다섯째 등 동생들도 모두 당뇨가 없는데 저만 있어요. 유전적인 게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거랍니다. 그래도 운동만 열심히 하면 혈당수치가 뚝 떨어지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아요.”

    직업이 오토바이와 무관하지 않은만큼 홍회장은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오토바이 폭주족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폭주족이 날뛰는 건 오토바이 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없는 상황에 너무 제한만 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는 것. 그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대신 거리로 나와 소란을 피우는 것은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게 그의 해법이다.

    지난 2월 세종대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은 홍회장은 연구소 준공과 함께 집무실을 연구소 2층으로 옮겼다. 그의 옆방은 바로 ‘조립식 고가도로’ 프로젝트팀이 차지했다. 자신은 연구·개발에만 전념하는 것이 회사의 미래를 위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乘風破浪’. 절친한 친구가 홍회장에게 보내준 휘호다. ‘바람을 타고 거센 물결을 헤쳐가라’는 뜻인데, 일찍이 세계화를 시도, 작지만 세계 최강의 기업을 만든 그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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