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땅 밑을 보면 국민성이 보여요”

‘지하 인생’ 21년 양흥모 한국지중정보 사장

  • 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입력2002-12-02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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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을 말하면서도 기본이 안 된 나라 한국. 그런 나라의 가장 밑바닥을 흐르는 하수구와 가스관을 뒤지며 전국을 누벼온 사람이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그가 돌아본 한국의 땅 밑, 그곳에서 본 한국인들의 국민성, 한국의 ‘기본’에 대한 생각들.
    “땅 밑을 보면 국민성이 보여요”
    (주)한국지중정보. 회사 이름만 듣고는 고개를 절로 갸웃하게 된다. ‘지중’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혹시 지중해와 관계된 일일까. ‘땅속’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도 순간 망설여진다. 땅속에 무슨 정보가 있다는 걸까. 광맥이나 지질학과 관련된 회사일까. ‘땅속에 묻힌 하수관, 가스관 등 수많은 시설물을 점검하고 컴퓨터와 첨단 전자 탐지기로 땅속 지도를 그리는 회사’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의문이 풀린다.

    그러고 보니 묵묵히 발 밑을 뒤져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일이야말로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관공서마다 ‘기본이 충실한 나라’라는 캠페인성 구호가 붙어 있는 나라, 탄탄한 바탕을 만들자는 게 정부의 공식 컨셉인데도 바로 그게 잘 안돼 헤매는 이 나라에 딱 맞는 작업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니나다를까 “바로 그런 생각으로 20년 넘는 세월동안 두더지처럼 묵묵히 땅속만 뒤져왔다”고 사람 좋아 보이는 사장님이 맞장구를 친다. 이 달의 주인공 한국지중정보 양흥모 사장(56)이다.

    “청계산 입구에서 청소를 하는 봉사단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산하를 내 몸과 같이’라는 구호가 선명한 어깨띠를 두르고 수십 명이 산책로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더군요. 그런데 보고 있노라니까 주운 쓰레기를 모두 하수구에 처박아버리는 거예요. 아마 눈에 보이지 않으면 깨끗하다, 그런 생각이었겠지요. 답답하더군요. 그런 생각 때문에 우리 산하는 오히려 더 더러워지고 있는 거니까요.”

    어설픈 시민정신과 환경관이 더 위험하고 불결하다는 것이 21년 동안 땅밑을 헤매고 돌아다닌 뒤 얻은 결론이라고 양사장은 말한다. 더러운 게 눈에 띄지 않는다고 안심한다면 덤불에 대가리를 박고 있는 꿩이나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반문이다.

    “산업화 이후 지상의 위험물은 어느 정도 해결됐죠. 위험한 것은 모두 지하에 묻어버렸으니까요. 상·하수도를 비롯해 가스관, 송유관, 송배전 케이블이 모두 땅속에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지럽게 묻혀있든 말든 관이 녹슬든 말든 일단 안전하다고 느껴지겠지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 때문에 더 많은 위험이 생겨나는 겁니다.”



    딴은 그렇다. 지난 90년대 서울 마포구 가스 대폭발 사고나 대구 가스 폭발사고나 안 보이는 땅밑에서 벌어진 사고로 수백명의 목숨이 사라지지 않았던가. 가스관을 잘못 건드려 일어나는 이런 참사가 지금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고 보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그런 상황이라면 서울의 1000만 시민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잠 못 이루는 서울의 밤’을 보내야 할 일 아닌가.

    “그래서 기본을 닦자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도시폭발이라는 재앙이 닥칠지 모르니까요. 환경, 환경 백날 얘기해봐야 도시 지하를 정비하지 않고는 모두 헛소리입니다.”

    딱 잘라 말하는 양사장 목소리가 서늘하다.

    알고 보면 서울은 위험천만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지중정보의 자그마한 사무실. 실내로 들어서는 복도 한 켠에 금방 중국집에서 시켜 먹은 듯한 음식 그릇들이 신문지에 덮여 어지럽게 널려있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직원들이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해치우고 야근에 들어간 모양이다. 3열 종대로 줄지은 책상에 직원들이 마네킹처럼 붙어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대부분 20~30대인 젊은 직원들이 무엇인가 탐색하거나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에 열중해 있어 쉽게 말을 붙일 수조차 없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고개를 돌려보니 사무실 한 귀퉁이에 붙어있는 꾀죄죄한 사장실 소파에는 필자가 들어서기 전에 벌써 보따리장수가 들어와 앉아 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양사장은 백두산에서 캐왔다는 산삼을 소개하는 산삼장수 이야기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듣고 있다.

    “이 산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 숨이 꼴까닥 넘어갈 때 한 뿌리만 달여먹어도 즉방으로 벌떡 일어난다는 인류의 보약 중에 보약 백두산 산삼입니다. 우국지사인 옌볜 동포에게 발견이 되어서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불철주야 산업발전에 이바지하시는 사장님을 위해 모셔온 것이니, 양기도 보호하고 나라 산업도 생각하셔서 애국하는 마음으로 한 뿌리 달여 잡숴보십시오.”

    줄줄 이어지는 청산유수를 듣고 있노라니 웃음이 절로 난다. 그 정도 들었으면 적당히 끊고 내보낼 만도 하건만 양사장은 그저 조용히 웃고만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농부처럼 하염없이 느긋하기만한 표정에 슬슬 부아가 난다. 산삼장수도 안달이 나는 모양인지 결국 제풀에 지쳐 물러난다. 호통 한마디 없이 잡상인을 물리친 셈이다.

    -여유가 많은 성격인 듯합니다. 평소에도 그런 편입니까.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요 뭐.”

    부아난 속을 달래 보려고 빙빙 돌려 찌른다고 찔렀는데, 눙치고 넘어가는 품이 영 효과가 없다. 좀더 센 질문을 골랐다.

    -사업을 하면서 고비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언뜻 보니 회사가 긴장감이 없어 보이네요. 사장님이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신경쓰는 직원도 별로 없는 것 같고요.

    “그럴 리가 있나요. 한동안 많이 힘든 때도 있었지요. 잠깐 다른 일에 한눈을 판 사이에 회사가 망가지기 일보 직전까지 간 일도 있었습니다.”

    그제야 자세를 고쳐 앉으며 발끈하는 품새가 질문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한가한 농부 같던 표정은 금세 사라지고 대신 진지함이 자리를 잡는다.

    “1997년 IMF 위기 때는 정말로 어려웠습니다. 월급을 석 달 동안 못 주기도 했으니까요. 10년 동안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하나 둘 떠나더군요. 결국 묵묵히 남아준 이들 덕분에 회사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언제까지라는 기약은 없어도 서로 신뢰하면서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이지요. 우리 회사는 의리와 신뢰가 기본 바탕입니다. 언뜻 경직된 모습이 없어 보인다면 서로가 서로를 충분히 신뢰하기 때문이겠지요.”

    ‘거의 맞는 것은 틀린 것이다’

    땅밑의 일을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부터 물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 무슨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처음 한 일은 항공지도 측량이었어요.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한양대 토목공학과)을 졸업한 뒤 1974년 항공지도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갔지요. 전공을 잘 살린 셈이었죠. 그 회사에서 개인주택 장독대까지 그리는 정밀한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구미산업공단이며 여천 석유화학공단, 영동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 설계지도에도 참여하며 십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통 재미가 없어요. 단순노동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사장한테 건의했지요. 좀더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다른 일을 해보자고, 땅속의 시설물을 조사해 지도를 만들자고 말입니다.”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양사장은 1983년 지하시설물조사 개발팀장으로 자리를 옮겨 앉게 된다. 한국전력의 지중 케이블 지도를 그리는 일, 도시가스 관망도면을 만드는 일, 보령 대천 제천 서귀포 평창 등 전국 각 도시의 상수도 관로도를 만드는 일을 하며 다시 10년 동안 전국을 누볐다.

    이거다 싶었지만 아쉽게도 사주는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1992년에 독립해 직접 회사를 차렸다. 당시 그가 만든 (주)양림엔지니어링은 지하매설물 조사 및 탐사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최초의 회사였다. 사업은 생각보다 잘 뻗어나갔다. 몇 차례 이름을 바꾸며 회사를 키운 지금 한국지중정보는 상하수도, 도시가스, 전력, 광역상수도, 통신, 열난방관, 송유관 등 땅속에 묻힌 관로라는 관로는 죄다 관리하는 회사가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리정보체계 구축사업과 국가재난방지시스템, 인터넷을 이용해 국가지중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도 맡고 있다.

    “지하매설물 관련 시장은 대략 1000억원 안팎입니다. 눈으로 확인하는 조사작업이나 장비를 이용하는 탐사부문에 들어가는 돈만 250억원 정도고요. 이 부문에서 우리 회사 매출은 50억원 가량입니다. 그렇지만 기자재를 들여오는 데만 매년 수억원씩 지출해야 하니 크게 이윤을 얻는 일은 아니지요. 사실 지하매설물 지도를 그리는 일은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닙니다. 컴퓨터를 이용한 장비가 발달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매설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제한된 표준 코드를 통해 기계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지나지 않거든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관로가 원칙대로 매설된 경우가 드뭅니다. 컴퓨터로는 해결이 안 되지요. 20년 노하우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실수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회사 사훈이 뭔지 아십니까. ‘거의 맞는 것은 틀린 것이다’입니다. 이 분야는 완벽주의가 아니면 안 됩니다. 한번 잘못 그린 지도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정밀하지 않으면 회사가 살아 남지 못합니다.”

    “땅 밑을 보면 국민성이 보여요”

    지금도 양사장은 현장에 자주 나간다. 힘들고 험한 일일수록 사장이 나서야 쉽게 풀리는 까닭이다.

    -조사나 탐사만 하십니까. 문제가 있으면 대안을 내놓는 작업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처음에는 우리 조사를 토대로 전문 엔지니어링 회사가 대안을 내놓는 절차를 거쳤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직접 조사 및 탐사를 해본 우리가 더 잘 아는 거예요. 그래서 1996년에 아예 자회사를 만들어 대안제시 작업까지 하고 있습니다. 서울 마장동 배수분구 처리, 중랑천 양안에 깔려있는 하수관로에 대한 집중 처리 방안, 성동구 옥수동과 금호동을 지나는 금호 배수분구, 동대문과 전농동 배수분구 등등 우리가 조사해 환경개발 제안서를 내놓은 게 한두 곳이 아닙니다.”

    그래도 회사자랑이 덜 끝난 모양이다. 정말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할 텐데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아예 생뚱맞은 질문을 골라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 둘 묻기 시작했다.

    -땅속만 들여다보면 재미가 있습니까. 금세 지겨워질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 많습니다. 금반지도 심심찮게 줍게 되니까요(웃음). 아주 오래 전에 한전 케이블을 조사해가다가 남영동 분실로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남영동 분실은 고문 제조창으로 알려진 공포의 대상 아니었습니까. 아니나다를까 우리 모두 붙들려 들어가 밤샘 조사를 받았어요.

    한전측에서 설명을 해도 쉽게 납득을 하지 않더군요. 빤히 알 수 있는 내용인데도 우리를 대공용의자로 몰려고 하는 겁니다. 사직동 분실이나 광화문 전화국, 동대문 전화국에는 특수 통신케이블이 있었지요. 이런 케이블 때문에 기관에서 과잉반응을 보인 거죠.”

    양사장의 말에 따르면 지상 작업과 지중 작업의 재미는 다르다. 1977년부터 82년까지 한국전력의 지상 배전설비를 위해 조사측량을 할 때는 ‘산따라 강따라 전신주따라’ 전국을 두 번이나 누볐다. 밥 먹을 곳이 없으면 밭에 들어가 청무를 뽑아먹고, 옥수수 고구마 감자를 캐먹었다. 남의 집 과일을 따먹는 건 기본이고, 들일 나간 농가 부엌에 들어가 식은 밥과 김치로 끼니를 때운 적도 있다는 것. 시골 인심이 넉넉하던 그 시절 이야기다.

    간혹 간첩으로 오인받아 신고를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대체로 어딜 가나 환영을 받았다. 이 무렵 시골에서 만난 여인들과 뜻하지 않은 로맨스도 벌어지곤 했다. 함께 산하를 누비던 이들 중에는 그렇게 만나 결혼에 이른 이도 있단다.

    “측량다니는 사람을 좋게 봐주곤 했거든요. 변화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없는 농촌마을에 문득 바깥에서 세련된 기술자가 들어와 며칠, 몇 달을 묵으니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지요. 일제 때 측량기사를 어려워한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어르신들은 측량하는 이들을 대단한 기술자로 대접했습니다. 도시를 선망하는 시골 처녀들한테는 갑갑한 농촌을 탈출할 수 있는 확실한 창구였을테고요.”

    그렇지만 땅위의 지도 대신 땅속의 지도를 그리겠노라 마음먹은 순간부터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하수구를 기어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어딜 가나 둘도 없는 찬밥 신세다.

    “우선 꼬락서니부터가 말이 아니잖아요. 옷은 오물을 뒤집어썼죠, 고약한 냄새는 나죠, 작업이 있는 동안에는 아예 씻을 생각도 안 하다보니 이건 사람꼴이 아니에요. 그대로 거렁뱅이 행색이니까. 심지어 공사를 의뢰한 기업 직원이나 공무원들도 만나기를 꺼릴 정도였어요.”

    그렇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긍지는 남들의 시선 따위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애초에 벤처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벤처도 그런 벤처가 없지 않으냐고 말하는 양사장의 얼굴에서 그의 또 다른 표정, 자부심이 읽힌다.

    - 지하 매설물 조사를 하면서도 재미있는 일이 많았겠죠.

    “재미있다기보다는 아찔한 일이 참 많았습니다. 1980년대 초반 강남 봉은사 인근에서 작업을 하다가 2200mm 수도관을 파열시킨 적이 있었어요.

    주변 아파트 공사를 위해 지하매설물을 조사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일본에서 들여온 장비를 들고 갔지요. 설 무렵이었는데 어찌나 추운지…. 사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정밀한 기계가 에러를 낼 수 있어서 탐사를 할 수 없거든요. 시공업자가 억지로 권하는 걸 이기지 못했던 건데, 아니나다를까 컴퓨터가 에러를 내서 굴삭기가 팔당에서 수원으로 가는 대형 수도관을 건드린 겁니다. 그래 봐야 60cm 오차였는데도 갑자기 물기둥이 하늘로 치솟는 거예요.

    50m는 족히 솟는데 사고만 아니면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더라고요. 워낙 수압이 높았기 때문에 사람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어요. 스무 시간도 더 지나서야 팔당 수원지 배수관을 잠그고 수리를 하게 됐죠. 그나마 20년 전이니까 그 정도였지 지금 그 동네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면 그건 뭐 초대형 사고죠.”

    팔당 수원지가 군의 통제를 받는 시설이다보니 수습을 위해 배수관을 잠그는 데도 복잡한 절차와 수속을 밟아야 했다는 것이 그의 회고담이다. 뭐는 그렇지 않았겠나 싶지만 비상상황 대응이라는 게 유난히 엉성하던 시절의 일이다. 갈팡질팡 허둥대면서 고생만 실컷 하고도 끝내는 2000만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그 공사를 하면서 도수(盜水)와 도전(盜電)을 잡아준 것만으로도 그 이상의 값을 했는데 손해배상은 한푼 에누리가 없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못내 서운한 모양이었다.

    -도수나 도전이 많습니까.

    “상수도에 몰래 관을 박아 물을 빼내 쓰거나, 지하 전력 케이블에 전선을 이어 전기를 훔쳐 쓰는 이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어요. 지금은 꽤 사정이 좋아졌지만 80년대에는 곳곳에서 찾아낸 도수나 도전을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은 우리를 수도국이나 한전 조사반으로 보기도 했지요. 사이가 상당히 험해지는 수도 있었습니다. 간혹 사정이 딱해 보이는 집은 눈감아 주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고마움을 느낄 리는 없지요. 누가 왔다 갔는데도 별 탈이 없으니 재수가 좋다고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20여년의 땅속 생활 중에 양사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90년대 초반 미군 송유관을 조사할 무렵의 기억이다. 워커힐 호텔을 지나는 8군 송유관을 LG축구장 인근에서 탐사했다. 보안상 미군 공병대와 양사장 회사가 따로 탐사작업을 벌였는데, 회사는 단 1mm의 오차도 없이 작업을 완성해냈다. 지금도 양사장은 공병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완벽한 탐사였다고 자부하고 있다.

    “미군들이 놀라더라고요. 설비도 자기들 것만 못한 것 같은데 더 짧은 시간에 100% 정확한 도면을 건네주니 신기하다는 거지요. 알고 보면 그게 다 노하우 덕분이지요.

    대신 저도 놀란 게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묻은 관로는 설계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다는 거죠. 깊이나 위치가 한번도 설계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요. 그러니 우리도 작업하기가 훨씬 편하고 쉬웠던 거죠. 한국 사람들이 묻은 관로를 설계도만 갖고 찾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깊이도 들쭉날쭉이고 위치도 적당히 잡아나간 경우가 많거든요. 역시 기본이 안 된 거지요. 일단 돈을 아끼고 보자는 생각에 쉽게쉽게 한 것이겠지만 이로 인해 나중에는 두 배로 돈을 써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겁니다.

    모든 관의 매설 심도는 120cm 기준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60cm 깊이에 묻어놓은 경우도 있어요. 부실 시공이지요. 사고는 이럴 때 납니다. 법정 기준을 믿고 굴착을 하다 보면 1m 깊이에서 관로가 나와버리거든요. 물이 터졌네, 가스가 샜네 하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대개 이런 경우입니다.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대구 가스 폭발사고도 배관 위치를 모르고 굴착을 하다 사고가 난 겁니다. 얼마나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습니까. 더군다나 등교길의 어린 학생이 많이 희생됐으니까요.”

    그나마 대구 사고 이후 전국 74개 시의 지하시설물에 기본도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라고 양사장은 말한다. 땅속 설비를 일종의 안보 차원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처음 조성됐다는 것. 이때부터 지하시설물도 종합계획을 통해 관리되기 시작했다.

    -요즘 한참 청계천 얘기가 시끄러운데, 그 밑은 어떻던가요.

    “한마디로 엉망이죠. 청계천을 횡단하는 전력 케이블을 조사하기 위해 들어갔었는데, 지하 시설물이 엉망입디다. 철근이 삐어져 나왔는가 하면 관이 아무렇게나 설치되어 있어요. 기본도면도 없어서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덮고 묻기에만 바빠서 서울에서 흘러나온 온갖 산업화의 병폐가 청계천에 집결한 것 같더라니까요. 별도로 하수관로가 있는데도 오폐수가 그대로 유입되고, 쓰다버린 시멘트가 굳어서 수 십년째 흐르는 물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직접 들어가 본 사람으로서 꼭 복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교통 문제, 폐기물 문제가 커서 오히려 청계천 복원이 문제를 야기한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당분간 교통이나 주변 상권 문제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길게 보면 좋은 일이 될 겁니다. 일본 오사카나 프랑스 파리도 복개된 하천을 복원해 공원으로 조성해서, 실개천이 흐르고 크고 작은 물고기가 살고 나아가 도시 전체가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생각 같아서는 청계천뿐만 아니라 성북천, 서부역에서 용산으로 흘러가는 하천도 복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수 종말처리장만 제대로 갖추면 되거든요. 현재의 종말처리장으로는 소화할 수 없어 시설을 확장해야겠지만 오폐수 차집관로를 정비해주는 것만으로도 청계천에는 맑은 물이 흐를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의 청계천은 하수도도 그렇게 심각한 하수도가 없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수도를 뭐든 버려도 되는 곳쯤으로 생각하니까요. 끔찍한 얘기를 하자면 버려진 태아 사체도 봤습니다. 자살한 게 아닐까 싶은 소년의 주검을 수습해 신고한 적도 있고요. 하수관로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리어카를 그대로 방치해 오물이 그 위에 겹으로 쌓여 관로를 막아버린 경우, 폐타이어, 폐건축자재, 폐가전제품…. 따지고 보면 하수구는 도시의 내장이나 혈관 같은 겁니다. 하수구 관리를 엉망으로 한다는 것은 자기 내장을 썩히거나 혈관에 소변을 보는 격이지요.”

    “땅 밑을 보면 국민성이 보여요”

    IMF 경제위기를 넘으면서도 회사를 지켜준 직원들은 그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다.

    -하수관이 더럽기는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은 독일 기술자와 함께 하수관로 도면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하수도의 역한 냄새를 맡고는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음흉하고 독한 줄 몰랐다’고 농담을 하더군요. 우리 스스로는 선진국이라도 된 양 으스대지만 하수도만 놓고 평가한다면 필리핀이나 베트남, 방글라데시, 중국 같은 나라와 별로 다를 것이 없어요. 필리핀 빈민가를 흐르는 개천을 가보았더니 발을 들여놓기가 무서울 정도더군요. 그런데 우리 청계천도 필리핀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일본만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시설은 더 잘해 놓았어요. 핀란드나 스위스, 프랑스는 하수도 관리가 완벽에 가깝지요. 특히 로마는 제정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하수도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요. 외국영화를 보면 도망치던 범죄자가 막다른 골목에서 하수도로 기어들어가잖아요? 하수구 상태가 좋으니까 그런 발상이 나오는 겁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 흉내를 냈다가는 몇 분을 못 가 질식해버릴 겁니다.

    심지어 공무원들도 하수도과로 전보되면 물을 먹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물먹기는 마찬가지니 하수도과보다는 차라리 상수도과가 낫대나요. 이래서는 하수도가 제대로 관리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나라의 지하시설물 관리 수준은 그 나라의 양심지수와 비례한다”고 단언한다. 하수도를 보면 국민성도 알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단히 공격적·전투적이고, 제 한 몸만 신경 쓰지 공공의 청결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한마디로 말해 ‘안 보이면 개판’인 국민이다.

    -지나친 비약 아닐까요.

    “글쎄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솔직히 제가 이 일을 시작할 때야 거창한 생각을 갖고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20여 년동안 묵묵히 땅속을 들여다보니 바로 이게 환경 문제구나, 이래서는 지구적 재앙이 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제 생각 자체는 보잘것없지만 도시의 모든 추한 것들이 모여 있는 밑바닥을 살펴보면 어떤 분노 같은 것이 생겨요. 가장 낮은 곳이야말로 본질을 가장 잘 반영하니까요.”

    서울시에 존재하는 맨홀만 대략 2만5000개. 한국지중정보는 요즘 그 맨홀 하나하나의 상태를 점검해 일일이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중에는 준설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하수도 기능이 마비된 것이 태반이라는 게 양사장의 염려다. 그 맨홀을 짓느라 들어간 예산은 그대로 사라져버린 셈이다.

    하수구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사장이 직접 하수구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까.

    “이 분야에서는 사장이 회전의자에 앉아 거드름만 피우면 그 길로 망합니다. 사장이 가장 먼저 역한 오물을 뒤집어써야 아랫사람들이 따라 나서니까요. 아무리 돈이 좋기로서니 그런 일체감이 없으면 누가 선뜻 하수구에 기어들어가겠습니까. 그게 사장으로서 당연한 의무고요.”

    남들은 절대 가고 싶어하지 않을 곳에 몸 담아온 양사장만이 말할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e Oblige)’다.

    “아무리 지저분하고 더러운 곳에서 일하고 나와도, 목욕탕에 들어가 샤워 한번 하고 사우나에서 몸을 달구고 나면 깨끗한 육신이 됩니다. 사실 더럽다는 것도 관념일 뿐이죠. 더럽다고 생각해 무조건 피하려고만 하는 것 자체가 덜된 사람들의 덜된 논리 아니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로 그런 사람들이 더러운 오물을 몰래 하수구에 버리는 사람들 아닐까 싶어요.

    하수구는 물론 더럽지요. 그렇지만 일터라고 생각하면 얘기가 다릅니다. 이런 일감이 있으니 내 가족이 따뜻한 방에서 편안히 잠을 자는구나 생각하면 뱃가죽이 벗겨진 채 퉁퉁 불어터진 쥐 시체가 떠 다니는 것을 봐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모두 장성해 20대가 됐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힘있고 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의 하수구가 더 더럽다는 겁니다.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싶어 사원들에게 물어보니 맞는 것 같다고 그래요. 우리나라가 주위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 기초보다는 잔재주에 재빠른 사람들이 돈 벌고 출세하기 쉬운 나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더욱더 걱정스럽지요.”

    어떤 일이든 한 우물을 오래 파다 보면 결국 자기만의 철학이 생기기 마련일까. 역설적이지만 양사장은 지하 매설물에 말썽이 많을수록 돈벌 일도 많아진다. 그런데도 환경과 시민정신을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환경운동가와도 다른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런 생각도 없이 살면 누가 나보고 천박한 장사꾼이라고 해도 대꾸할 말이 없을 것 아닙니까.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합니다. 청계천 같은 도시하천에서 사람들이 낚시로 고기를 낚아 그날 저녁 식탁에 올리는, 그런 꿈 말입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남들보다 지저분한 곳을 많이 돌아다니며 살아왔으니 남들보다 더 많이 깨끗한 세상을 원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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