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거대 은행’은 있지만 ‘강한 은행’이 없다

한국 ‘은행 4강’의 경쟁력

  • 글: 강기택 머니투데이 금융부 기자 acekang@moneytoday.co.kr

    입력2002-12-31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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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 은행’은 있지만 ‘강한 은행’이 없다
    2002년 12월1일 통합 하나은행이 공식 출범하면서 국민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신한은행 등 4개 은행이 한국의 은행산업을 이끄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이 국내 은행업을 지배하던 시대가 1997년 외환위기로 막을 내리고, 국민·주택·신한·한미·하나은행 등 5대 우량은행이 은행산업을 주도하는 4년여의 과도기를 거친 후 새 구도가 짜여진 것이다.

    2002년 6월말 현재 국민·우리·하나(+서울은행)·신한 등 4개 선도은행의 시장점유율은 65% 수준에 이른다. 이들 ‘4강 은행’은 일반은행 전체에서 총자산 64.5%, 대출금 67.2%, 예금은 63.8%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예금과 대출 시장의 3분의 2를 이들 4개 은행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며, 특히 1위인 국민은행의 시장점유율은 30%에 달한다.

    4강 은행 시대는 시장점유율에서만 봐도 각각 10% 안팎의 엇비슷한 점유율을 보이던 5대 시중은행 시대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은 물론, ‘규모의 경제’와 상업성, 수익성 위주의 경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특징을 지녔다.

    1960년대부터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국내 은행산업의 판도는 정부에 의해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로 불린 5대 시중은행에 대한 호송선단(護送船團)식 금융정책으로 시장논리에 따른 은행업의 자생적 발전은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관치금융이 팽배한 나머지 진정한 선도은행(leading bank)은 존재할 수 없었다. 선두로 떠오르기만 하면 정부의 요구로 부실기업에 거액의 대출을 해줘야 했고, 이로 인해 그 은행은 기업과의 동반 부실화를 면할 수 없었다. 1990년대 중반 국내 1위를 달리던 제일은행이 한보그룹에 대한 대출 때문에 한순간에 부실은행으로 추락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은행, 시장으로 뛰어들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관치금융과 호송선단식 정책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됐으며, 경기·충청·동남·동화·대동 등 5개 은행이 퇴출되면서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도 깨지고 말았다. 또한 기업금융 전문은행이던 조흥·제일·외환은행 등은 각각 주거래 기업인 쌍용·대우·현대그룹의 경영악화 등으로 인해 기업여신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 공적자금 투입과 외국계의 지분참여 등이 이어지며 선두그룹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반면 소매금융에 치중하던 국민·주택은행 등과 기업금융 부문의 부실여신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하나·한미·신한은행 등이 외환위기라는 외적 계기와 김대중 정부의 1차 금융구조조정의 결과 리딩뱅크로 일시 부상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은행들은 더 이상 국가에 의존하는 ‘금융기관’이 아니라 시장에서 스스로 생존책을 찾아야 할 ‘금융기업’이라는 뼈아픈 자기인식을 해야 했다. 나아가 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갖춘 리딩뱅크를 원했고, 은행들은 합병과 지주회사를 통한 대형화, 겸업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으로 통합 국민은행이 탄생했고, 부실화한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쳐져 한빛은행(2002년 5월 ‘우리은행’으로 개칭)이 생겨났다. 하나은행은 2002년 9월 서울은행 인수를 확정, 12월에 합병을 마무리지으며 단숨에 3위 자리로 올라섰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신한은행은 최근 총자산 기준 5위인 조흥은행의 매각입찰에 참여, 덩치를 키우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조흥은행 경영권을 인수해 합병할 경우 신한은행은 총자산 130조원대의 2위 은행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은행산업은 외환위기 후 이처럼 금융 구조조정을 거치며 합병을 통해 국민·우리·하나·신한은행의 4강 구도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들 은행은 관치금융에서 벗어나 시장경쟁에서의 우위를 통해 강자의 면모를 갖춰가는 중이다.

    신한은행 김상대 부행장은 “정부 주도로 합병이 이뤄진 우리은행을 제외하고는 경쟁을 통해 시장에서 살아남은 은행들이 강자로 부상했다”고 강조했다. 금융연구원 권재중 박사는 “4강 은행 시대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은행산업을 이끌 수 있는 초대형 은행이 탄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은행들이 상업성, 수익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탈바꿈했다는 측면에도 커다란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대 은행들은 소매금융을 강화하고 부실자산을 감축하는 노력 등에 힘입어 수익성과 건전성이 크게 개선되는 등 외환위기 이전에 비하면 경쟁력이 훨씬 높아졌다고 평가받는다.

    은행별 자산규모와 수익성, 강점 등을 살펴보면 우선 국민은행은 총자산이 통합 당시 165조원에서 2002년 9월 말에는 205조원으로 늘었다. 합병을 하면 고객이 이탈하고 일시적으로나마 외형이 감소하는 선진국 은행들의 전례를 깬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은행은 9월 말 현재 당기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7.0% 감소한 1조5129억원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소매금융에서의 절대적 우위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PB(프라이빗 뱅킹) 마케팅, SOHO(소규모 개인사업자) 영업 등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2002년 말 총자산이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2위 우리은행은 9월 말 현재 당기순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배나 늘어난 8528억원으로 나타났으며, 연말까지 1조원의 순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가늠하는 지표인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0.85%로 은행권에서 가장 높다.

    특히 우리은행은 국내 30대 계열기업군 중 삼성, LG 등 16개 그룹의 주거래 은행일 정도로 기업금융에 강하다.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가계 및 중소기업 부문의 약세를 만회하기 위해 적극적인 영업전략을 펴고 있다.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을 합친 통합 하나은행의 총자산은 85조원이다. 두 은행은 이미 2002년 3/4분기에 2001년 말 당기순익 수준인 4254억원을 돌파했다. 고정이하 여신비율도 1.49%로 한미은행에 이어 은행권 최저 수준이다.

    하나은행은 프라이빗 뱅킹이 단연 돋보인다. 최근에는 투자은행 부문도 강화했으며, 최대 약점으로 꼽히던 점포망과 거래고객수 열세를 서울은행과의 합병으로 크게 보완했다.

    신한은행의 총자산은 9월 말 기준으로 65조원. 9월 말까지의 당기순익은 4448억원으로 2001년 연간 당기순익인 3471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1.59%로 한미·하나은행과 더불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신한은행은 설립 초기부터 중소기업 부문을 특화해 왔으며 인터넷뱅킹에 강점을 갖고 있다. 신한은행의 인터넷뱅킹서비스는 인터넷금융컨설팅업체인 스톡피아닷컴의 정기평가 결과 7회 연속으로 1위에 올랐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4강 은행이 나름대로의 강점을 갖고 있으며, 수익성·건전성 부문에서도 과거에 비해 개선됐다는 사실을 대체적으로 인정한다. 그렇지만 차별화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그저 ‘거대 은행’에 머물지 않고 ‘강한 은행’으로 거듭나려면 차별화한 핵심역량이 필요한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대우증권 서영수 연구위원은 “단순히 자산이 많고 적은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신용카드나 가계대출 등으로 함께 몰려가서 수익을 내다가 똑같이 연체율이 높아져 리스크에 노출되는 등의 행태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특히 4개 은행 모두 기업금융 부문은 등한시하고 소매금융에만 편중되는 경향은 은행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 전반의 불균형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예대마진에만 의존하는 수익모델의 후진성 개선도 해묵은 과제 중 하나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우진 연구위원은 “4개 은행의 장단점은 은행산업 전체 구도에서 따로 떼놓고 분석하는 게 무의미하다”며 “1위 은행과 2위 은행의 격차에서 오는 시장구조의 왜곡과 자산확대 경쟁에 따른 수익악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민은행과 다른 은행들의 시장점유율이나 집중도 차이가 워낙 커 은행들이 수익성 향상을 표방하면서도 단기적으론 너나 할 것 없이 자산을 늘리려는 데만 치중, 차별화에 힘을 쏟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 다른 약점도 거론된다. 은행들이 외환위기 이후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리스크 관리를 위해 CRO(Chief Risk Officer·최고 리스크 관리자)를 선임하고 신용평가 시스템(CSS), 리스크관리 시스템 등을 구축했지만, 아직 선진 금융기관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김병연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리스크 관리를 강화했으나 아직 안착되진 못했다”며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감독당국과 외부 환경 등 타율적인 힘에 의해 시스템을 마련했다면 이제는 자율적으로 리스크 대처능력을 높여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거대 은행’은 있지만 ‘강한 은행’이 없다

    4대 은행이 소매금융에 편중, 기업금융 부문을 등한시해 국가 경제의 불균형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4개 거대 은행들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금융 전문가들은 “수익성과 건전성은 세계 우량 은행 수준에 근접하고 있으나, 영업의 주무대가 국내시장으로 제한되고 자산기준 세계 100대 은행에 들어가는 곳이 국민은행 하나밖에 없는 등 아직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고 평가한다.

    2001년 11월 통합 국민은행 출범으로 국내에서도 마침내 기준자본, 총자산 기준으로 세계 100대 은행에 드는 은행이 탄생했다. 국민은행은 금융전문 월간지 ‘뱅커’가 2002년 7월 발표한 ‘세계 1000대 은행’ 가운데 68위를 기록, 2001년 118위에 비해 50등급이 상승했다. 국민은행은 ‘월스트리트저널’이 2002년 10월 발표한 ‘세계 100대 대형 금융기업’ 순위에서도 73위에 올랐다.

    그러나 우리·하나·신한은행은 아직 100대 은행에 들지 못하고 있다. 규모면에서 아직 세계 유수의 은행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뱅커’지 조사에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144위, 149위에 머물렀고, 하나은행(서울은행 합병 전)은 200위에 그쳤다.

    이 때문에 이들 3개 은행은 합병 등을 통해 조만간 세계 100대 은행에 진입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일단 규모의 경제를 달성, 경쟁의 외적 기반을 다지겠다는 의미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하나·서울은행 간 통합이 완료되면 세계 150대 은행에 진입하게 된다”며 “2004년에는 통합은행을 100대 은행 안에 들어가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계 유수 은행과 비교해보면 4개 은행의 수익성은 미국, 영국 등 주요국 10대 은행 평균 수준에 근접했다. 2002년 9월 말 현재 4개 은행의 총자산이익률(ROA)은 국민 1.27%, 우리 1.49%, 신한 1.05%, 하나 0.84% 등이다. 이는 미국 10대 은행의 평균 ROA 1.24%, 영국 10대 은행의 평균 ROA 1.15%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다소 높다.

    건전성도 많이 개선돼 선진국 은행들이 부럽지 않다. 6월 말 현재 무수익여신(NPL) 비율은 국민 1.83%, 우리 2.06%, 하나 0.82%, 신한 0.76% 등으로 미국 10대 은행의 평균 무수익여신비율(1.66%)과 별 차이가 없다.

    4개 은행의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10∼11%로 미국(11.27%), 영국(12.32%) 은행 수준에 육박했다. 하지만 ‘뱅커’지 조사 결과 국민은행을 제외한 3개 은행의 기본자본 기준 순위가 총자산 기준 순위보다 낮아 자본충실도는 아직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관련 한국금융연구원은 “국내 은행의 BIS 비율은 상당 부분 후순위채 발행을 통한 차입금에 의존하고 있어 핵심자본을 기준으로 한 자본충실도가 아직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4강 주역은 CEO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제시장에서 우리 4강 은행의 경쟁력이 여전히 낮다는 것이다. 선진국 은행들이 국제시장을 무대로 경쟁력을 높여나가고 있는 반면 국내 4강 은행들은 아직 국내시장에만 머물고 있다. 국내 은행의 해외 점포들도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나 교포를 상대하는 수준일 뿐 현지인 상대의 영업은 본격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행 은행연구팀 조정환 차장은 “선진국 은행들의 해외영업 비중은 50%를 넘어서고 있는 데 비해 4강 은행들은 국내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며 “거대은행들도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은행들이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은 최근 “중국, 인도, 동남아 등지에서 현지인을 상대로 소매금융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행장은 “국내 금융기관의 역량을 감안할 때 아시아권을 벗어난 미국이나 유럽 진출은 아직 비현실적”이라고 시인했다.

    이렇듯 거대은행들의 국제 경쟁력은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외환위기 이후의 격변기에서 수익성과 건전성을 끌어올리며 우리 은행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CEO들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오늘의 4강 은행은 CEO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도전과 변화를 이끄는 간판 CEO가 있었기에 강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게 금융시장의 한결같은 평가다.

    은행 4강 시대를 연 주역은 바로 김정태(金正泰·55) 국민은행장, 김승유(金勝猷·59) 하나은행장, 윤병철(尹炳哲·65)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 이덕훈(李德勳·53) 우리은행장, 라응찬(羅應燦·64)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 이인호(李仁鎬·59) 신한은행장 등이다. 이들은 한국 금융사를 이끌며 늘 뉴스의 중심에 서 왔다.

    이들 가운데 김정태 국민은행장과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국내 시장에서 이른바 ‘CEO 주가(株價)’를 유행시킨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에 대한 시장의 신뢰 덕분에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주가에는 항상 CEO 프리미엄이 붙어다녔다. 미래에셋증권 한정태 연구위원은 “김정태·김승유 행장의 공통점은 시장의 흐름을 잘 읽는다는 것”이라며 “이들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합병을 성공적으로 추진함으로써 CEO 주가가 형성되도록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김정태 행장은 늘 시장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1조원을 증시에 투입, 리딩뱅크로서 국민은행의 면모를 과시하면서 짭짤한 수익도 올려 추진력과 시장감각을 함께 보여준 것이 단적인 예다. 그는 캥거루나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고객을 맞거나 연체 고객에게 직접 빚독촉 전화를 하는 등 쇼맨십도 강해 스타로서의 상품성을 갖췄다는 얘기를 듣는다.

    CEO로서 그의 돋보이는 능력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친화력을 바탕으로 조직을 장악해 가는 리더십이다. 그를 아는 기자들이 하나같이 ‘김정태 행장이 나와 가장 친하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흡인력은 행원들에게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국민·주택 두 은행이 합쳐진 국민은행을 별다른 잡음 없이 경영해오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경제 관련 통신매체들이 매월 초 그가 주재하는 국민은행 월례조회를 실시간으로 보도할 정도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금융시장에서의 국민은행 위상과 함께 주목받고 있다. 그는 통합 국민은행을 이끌고 국민은행은 그를 미는 모양새다.

    기업성과 공공성의 조화

    김승유 행장은 ‘뱅커(은행원)’의 전형이다. 30년 동안 한번도 옆을 보지 않고 오로지 한 조직에서 한 길만 걸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은행원 같지 않은, 차라리 영화배우처럼 보이는 은행장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情)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조직을 책임져야 하므로 그 정을 끊어야 할 때가 많은 CEO의 자리는 참으로 비정하다”고 말한다.

    그의 이같은 CEO관이 잘 드러나는 일화 하나. 그는 담당 부장이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합병을 반대하는 주주들이 52%에 이르러 주식매수 청구대금으로 최소 7000억∼1조원이 예상된다”고 보고하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김행장은 그날 밤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CEO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런 속사정이 밖으로 새나가 주식매수 청구권 행사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 때문이었는지 실제 주식매수 청구비율은 15.2%에 그쳤다.

    그는 1997년 행장 취임 후 충청은행과 보람은행을 합병한 데 이어 올해에는 서울은행과의 합병을 성사시키는 등 세 차례의 합병을 거치며 조직을 추스르고 다독거려 하나은행을 대형은행 반열에 올려놓았다.

    윤병철 우리금융 회장과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우리금융의 초기 혼선을 잘 풀어가면서 회장과 행장의 역할을 무난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정부의 주도로 2001년 4월 우리금융이 출범할 때만 해도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사이엔 불협화음이 심했다. 그러나 두 CEO의 리더십에 힘입어 안정을 찾았고, 지금은 1등 탈환을 선언하며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투자금융 대표부터 시작해 무려 16년을 CEO로 일해 “직업이 CEO”라는 윤회장은 직원들에게 제약을 가하거나 규칙 준수를 강요하기보다는 자유를 주고 그 결과에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스타일이다. “스스로 일해야 엔도르핀이 돈다”는 것이다. CEO가 비전을 제시하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만 하면 직원들은 스스로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는 지주회사가 일종의 옥상옥(屋上屋)에 불과할 뿐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있겠냐는 의구심을 상당 부분 희석시키며 우리금융의 출범 때부터 현재의 모양새를 이뤄내는 데 정성을 쏟았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 지주회사 모델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고 평화은행 합병과 카드사 분리 등 지주회사 내부의 난제들을 풀며 때로는 조언자, 때로는 컨설턴트 노릇을 해왔다.

    KDI(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인 이덕훈 행장은 학자 출신이 거대 은행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겠냐는 주위의 우려와 우리금융지주회사와의 마찰 등 장애물을 비교적 무난하게 극복해 왔다고 평가받는다.

    기업금융에 강한 우리은행의 경우 기업성과 공공성이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장사꾼 경영’을 해서는 안 되며, 금융산업과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선도적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때문에 마이크론과의 반도체협상 때 사실상 총대를 매고 매각협상을 벌이는 등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은행의 행장으로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만 취임 초부터 골칫거리였던 금융사고가 최근 잇따라 재발한 데다 특히 (주)쌍용의 무역금융 사기사건은 ‘근사한 은행장’으로 남고 싶다는 그의 바람에 악재가 되고 있지만, 취임 이후 은행 내부의 통합도를 높이고 수익성을 개선해 온 점은 후한 점수를 받을 만하다는 게 은행권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거대 은행’은 있지만 ‘강한 은행’이 없다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캥거루 복장으로 ‘캥거루 통장’홍보를 하고 있다.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은 1982년 신한은행 창립 당시 상무로 부임한 후 1991년부터 1999년 2월까지 은행장으로 재직하며 신한은행의 토대를 다졌다. 은행장에 취임하던 날 “상고 출신으로 은행장이 된 내가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신한은행 발전을 위해 내 몸을 태우고 재가 돼서 떠났겠다”고 한 말은 아직도 은행권에 회자된다.

    그런 다짐과 함께 행장에 오른 그는 다른 은행들이 하지 않던 일을 앞장서 해왔다. 1990년대 초반 다른 은행들이 기업 위주의 영업에 중점을 둘 때 소매영업 부문을 강화했으며, 외환위기 이후에는 금융기관 중 가장 먼저 개인·기업여신에 대한 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했다.

    라회장은 서두르지는 않지만 기회가 오면 적극적으로 몸을 던지는 스타일이다. 2001년 9월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민간 주도 금융지주회사를 출범시켰으며, 2002년 들어서는 굿모닝증권을 인수한 데 이어 조흥은행 인수전에도 본격 뛰어들었다.

    1999년 취임한 이인호 신한은행장은 ‘신한문화’를 계승·발전시켜 신한은행의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생 은행원으로 청렴하고 성실하게 살겠다고 다짐, 일확천금은 꿈도 꾸지 않고 월급을 받는 족족 저축해 통장이 100개가 넘는다”는 이행장은 후발 은행인 신한은행을 소리 소문 없이 강하게 만들어 국내 최고(最古)인 105년 전통의 조흥은행을 넘볼 수준에 이르게 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가신용도가 추락했음에도 불구, 4억달러의 해외주식예탁증서(DR)를 발행하고, 취임 후 3년 연속으로 1조원 이상의 충당금 적립 전 이익을 내는 등 빼어난 경영성과를 내고 있다.

    4강 은행은 이질적인 문화를 배경으로 출발했다. 따라서 CEO들 또한 시스템 통합 못지않게 화학적 결합에 늘 관심을 쏟아왔다. 금융산업에서 성장의 엔진은 사람이고 조직이기 때문이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쳐진 국민은행에서는 옛 국민은행 특유의 끈끈하고 폐쇄적인 조직 분위기와 상대적으로 시스템 중심적이던 옛 주택은행 간의 ‘문화충돌’이 우려됐다. 그래서 국민은행은 통합 이후 삼성경제연구소에 기업문화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컨설팅을 의뢰하고 지속적인 융합프로그램 실시, 성과주의 확산 등을 통해 ‘KB(국민은행의 영문약칭)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나, 아직은 ‘시간이 해결해 줄 부분’이 적지않게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김정태 행장 개인의 카리스마와 실적을 중시하는 경영방식으로 인해 옛 국민, 옛 주택 멤버들 간의 마찰은 상당 부분 줄어든 것 같다”며 “문제는 김행장 이후”라고 분석했다.

    ‘4大’에서 ‘4强’으로

    우리은행은 다른 합병은행들과 달리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5 대 5로 대등 합병한 경우여서 마찰의 여지가 많았다. 특히 상업은행의 가족주의적, 수직적 문화와 한일은행의 자율적, 수평적 문화차이는 좀체 극복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통합과정에서 두 은행 직원의 절반이 감원되고 그에 따라 강도 높은 업무가 부과되면서 갈등보다는 협력이 우선하게 됐다. “출신은행이나 따지고 있는 한가한 부서는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이덕훈 행장의 말이 결코 엄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양은행의 장점인 실행력과 결집력, 합리주의가 우리은행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게 은행측의 설명이다. 한 직원은 “한일·상업은행의 지점간 교차발령을 통해 사람을 섞은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지금은 파벌이 아니라 개인이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며 눈에 띄게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판이한 문화도 두 은행의 합병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느냐 아니냐를 가늠할 중요한 요소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이 “합병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업문화 차이”라며 내놓고 토로했을 정도다.

    하나은행의 분위기는 ‘리버럴(자유로움)’ 그 자체다. 행원이나 대리도 필요할 경우 직접 은행장 방에 올라가 보고한다. 투자금융업으로 시작한 만큼 전통적인 은행원들과 달리 상업적인 마인드도 강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울은행은 관료주의적 분위기가 강하다. 씨티은행 출신의 강정원(姜正元·52) 행장이 취임한 이후 이런 색채가 많이 바뀌었지만, 하나은행과는 여전히 극과 극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간격이 크다. 따라서 ‘보수적 뱅커’인 서울은행 직원들과 ‘자유분방한 장사꾼’인 하나은행 직원들의 융화가 합병 하나은행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후발주자로 출발한 신한은행은 창립 초부터 이질적인 문화의 집합체였으나, 이제는 은행 안팎에서 인정하는 독특한 풍토를 가꿔냈다. 은행원이 사표 낸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던 시절에 사직서를 쓰고 새 출발한 사람들이 모인 은행인 만큼 ‘이제 물러나면 갈 곳이 없다’는 생존본능이 투지와 주인정신, 탄탄한 팀워크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창립 초기 라응찬 행장이 행내 동문회에 참석한 임원에게 “같은 일이 또 있으면 사표 쓸 각오를 하라”고 호통을 쳤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CEO의 그런 의지에 따라 신한은행 직원들은 출신은행, 학교 등을 따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화를 이뤘다고 한다.

    김정태·이덕훈·김승유 행장 등 최근 합병을 했거나 합병을 앞둔 은행장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능력주의를 천명하며 화학적 결합을 도모한다. 이들 CEO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 ‘4대 은행’은 진정한 ‘4강 은행’으로 거듭날 것이며 경쟁력도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거대은행들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국민은행이 ‘멀티 스페셜리스트’라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은행-자회사의 지배구조를 유지할 계획인 데 비해 우리·하나·신한은행 등은 지주회사의 성패에 운명을 걸고 있다.

    국민은행의 멀티 스페셜리스트 비전은 국민은행이 잘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을 ‘전공과목’으로 만들어가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최선을 다해 3∼5년 뒤 아시아 최고 은행으로 올라서겠다는 것.

    반면 국민은행이 잘할 수 없는 부분은 은행권 구조조정이 일단락된 후 그 과정에서 탈락한 은행을 자회사로 삼아 맡길 계획이다. 김정태 행장은 “경영권을 인수하는 데는 20~30%의 지분이면 충분할 것”이라며 “자회사로 둔 은행의 특성을 살려가면서 국민은행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은행과 달리 나머지 은행들은 은행권에 하나의 추세로 자리잡은 지주회사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금융과 신한금융이 각각 2001년 4월과 9월 지주회사를 출범했고, 하나은행도 지주회사 설립을 선언했다.

    지주회사 모델은 그룹 차원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고, 신속한 구조조정이 가능하며, 자회사간에 고객 정보의 공유를 통해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금융기관이 선호하고 있으나 아직 효율성이 입증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국내 은행 중 가장 먼저 지주회사를 설립한 우리금융과 신한지주의 경우 본격적인 시너지효과 창출을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지주회사로서의 모양새를 갖추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주회사의 시너지를 최대한 활용해 자산 측면에서보다는 수익성 면에서 국민은행이 차지한 1위 자리를 빼앗아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지주와 함께 지주회사의 통합마케팅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 교차 판매가 이뤄질 경우에 대비한 영업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아울러 경남은행과 광주은행 등 지주회사 내 다른 은행들과의 IT통합과 지점망 활용 등을 통한 수익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지주회사와 계열사 간, 지주사 내 계열사 간의 갈등요소를 상당 부분 해결, 홀가분한 상태에서 높은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조흥은행 인수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신한은행을 제외하고는 그룹 내에 대형 금융기관이 없는 데다 조흥은행을 인수할 경우 총자산 규모가 130조에 이르는 2위권 은행으로 일약 발돋움할 수 있기 때문에 지주회사 차원에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신한은행은 2002년 9월 굿모닝신한증권, 신한카드 등 지주사간의 모든 금융 관련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FNA(Financial Network Service) 서비스에 들어간 데 이어 10월에는 신한지주 내의 자회사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그룹 정보포탈(그룹 EIP)을 구축, 교차 판매가 이뤄질 경우 연계효과의 극대화를 도모하고 있다.

    안에서도 싸우고 밖에서도 싸운다

    “고객 정보 공유 혜택이 아니라면 지주회사는 불필요하다”고 했던 하나은행도 최근 지주회사 추진을 선언했다. 통합 직후 김승유 행장은 “하나증권,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 등의 관계사를 바탕으로 금융지주회사로 변신, 종합금융정보 서비스 네트워크라는 장기비전을 구체화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다만 은행 비중이 현재 90% 이상이기 때문에 비은행업 자회사의 비중이 커진 후로 그 시기를 미뤘을 뿐이다.

    하나은행은 그간 후발은행이라는 멍에 때문에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했으나, 서울은행과 합병하며 다른 거대은행들과 전면적인 경쟁에 나서 단시간 내에 총자산 100조원, 시가총액 5조원, 세계 100대 은행 대열에 올라설 것을 다짐했다.

    이같은 미래 비전과 전략에 따라 은행들은 저마다 2003년 영업전략을 짜놓고 있다. 국민·우리·신한은행 등은 자산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수익성 위주의 영업전략을 세웠고, 하나은행은 자산 규모도 최대한 키운다는 방침이다.

    국민은행은 자산증가율을 10%선에서 억제하되 영업은 수익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최대한 공격적으로 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신탁상품, 방카슈랑스 상품을 위주로 판매해 수수료 수입비중을 높일 방침. 중장기적으로는 상품개발에서 손을 떼고 국내 최대인 1300개 지점망을 통해 판매에 주력, 수익모델에서 수수료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40%까지 늘리겠다는 의도에서다.

    우리은행은 2003년 경기가 2002년보다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보수적인 경영을 계획하고 있다. 자산규모는 올해보다 10~20% 늘어난 110조~120조원, 순이익은 9000억원으로 목표를 잡았다. 우리은행 역시 수익이 나는 부분을 집중공략할 계획이다. 방카슈랑스 상품과 수익증권 판매,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같은 투자은행 업무 등을 통해 수수료 수입을 더욱 늘리는 한편 주택담보대출에서 위축된 부분을 중소기업 대출 확대로 메울 방침이다.

    신한은행은 일단 조흥은행 인수와는 별도로 2003년 사업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자산은 17% 증가한 80조원, 순이익은 10% 증가한 6500억원을 목표로 설정했다. 신한은행도 비이자 부문 수수료를 늘릴 방침. 이와 함께 기업 점포를 10여개 이상 신설하고 RM(기업여신 전문역)을 늘리는 등 중소기업 대출 비중을 높게 잡았다.

    하나은행은 김승유 행장이 무엇보다 조직정비와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듯이 2003년 한해는 조직과 전산망을 통합하는 데 역량을 쏟는 한편 VIP고객, 대중 고객, SOHO 시장에서 모두 공격적인 영업을 펼 계획이다. 1월말까지 조직통합과 정상화에 주력한 후 2월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가며 차세대 시스템 개발도 연초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연말 총자산 103조원, 순이익 9500억원을 목표로 잡았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에 따르면 한국의 메이저 은행은 2∼3년 안에 3∼4개만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규모에 비해 은행수가 너무 많은 ‘오버뱅킹’ 상태이므로 국내 은행산업이 과점형태로 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거대 은행의 CEO들도 이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다. 다만 과점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초대형 은행으로 입지를 다진 김정태·이덕훈 은행장은 “과점현상은 바람직하다”고 보는 반면, 대형화 과정에 있는 김승유·이인호 행장은 “과점현상은 불가피하지만 과점으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거대 은행은 과점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규모를 키우는 한편 은행산업 바깥의 다른 산업과도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이와 관련해 김정태·김승유·이덕훈 행장 등은 한결같이 앞으로 가장 두려운 경쟁상대로 이동통신회사를 꼽고 있다. 이들은 “전자금융거래법 제정을 계기로 가속도가 붙은 이동통신사들의 금융업 진출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은행 안팎에서 경쟁 국면에 직면한 거대 은행들은 합병을 통한 규모 키우기와 지분인수를 통한 자회사 만들기 등 끊임없이 합종연횡을 시도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조흥은행 인수전 참여, 제일은행의 조흥은행 인수 선언, 국민은행의 한미은행 인수 움직임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가속화하는 과점화

    또한 한미은행 대주주인 칼라일은 합병 또는 공개입찰 등의 방식으로 지분매각을 추진중이며, 제일은행의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탈도 투자펀드인 이상 일정 수익률을 얻기 위해 언젠가는 지분매각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결국 현재의 거대 은행 4강 구도는 과도기적 형태며, 합종연횡이 일단락됐을 때 지금의 구도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언제든 순위가 뒤바뀔 수 있으며 새로운 거대 은행의 출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거대 은행에 의한 국내 은행산업 지배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은행산업 과점화의 가속화라는 우려를 낳고 있고, 실제로 국민은행의 중소기업에 대한 노마진 대출이나 저금리 정책 등에 대해 거대 은행의 시장교란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 결과 국민은행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다른 은행들의 규모 키우기 시도가 거듭되고 있고, 규모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거대 은행 간의 치열하고도 소리없는 전쟁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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