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집│한미동맹 50주년, 흔들리는 한미 관계

이제 미국은 없다?

崇美에서 反美까지… 한국인의 복잡한 심리 분석

  • 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이제 미국은 없다?

1/4
  • 한미 관계는 새로운 전환의 시점에 이르렀다.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친미나 반미의식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지혜롭게 대응하는 용미(用美) 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미국은 없다?

2002년 12월7일 광화문에서 1만여 명의 시민이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을 추모하면서 SOFA 개정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미(反美) 열풍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여중생 사건’을 계기로 점화된 반미 열풍은 NGO(비정부기구)를 시작으로 대다수 사회조직은 물론 대선을 앞둔 정당까지 가세함으로써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반미 열풍이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02년 초 이른바 ‘오노 사건’을 계기로 이미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모은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노 사건’에 따른 반미 열풍이 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반면, 최근 진행중인 반미 열풍은 세대를 뛰어넘어 전국민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반미 열풍은 그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것이다. 여중생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군에게 무죄 평결을 내린 것은 굳이 한국 국민이 아니더라도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한미 관계라는 특수한 정치·군사적 조건 속에서 논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의 시각에서 먼저 접근해야 할 문제다. 사건의 전후가 명백한 데도 이에 대한 죄를 묻지 않는 것은 상식적인 시각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처사다.

최근의 반미 열풍에는 미국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 변화가 감지된다. 어느 때부터인가 미국을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반미의식이 확산된 반면 숭미(崇美)에 가까운 친미의식은 약화됐다.

압도적인 미국 선호도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를 한국전쟁과 경제 기적, 또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동아시아의 크지 않은 국가 정도로 기억하겠지만, 우리 한국인의 입장에서 미국은 해방 이후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나라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압도적인 호감을 가졌던 미국에 대한 태도가 왜 이렇게 변화됐을까. 반미의식은 최근 갑자기 분출했다기보다 1980년대 이후 꾸준히 확산돼 왔으며, 그 의식의 내면 또한 단순하게 볼 것이 아니다.

먼저 한 자료를 보면 최근 전세계적으로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하락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인간과 언론을 위한 퓨 연구센터’가 2002년 7월부터 10월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대미 호감도는 2년 전에 비해 5% 정도 떨어진 53%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지난 2년 동안 부시 행정부의 공세적인 대외 정책이 대미 호감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지만, 친미의식의 이런 약화는 해방 이후 특수한 한미 관계를 고려해볼 때 주목할 만한 변화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미국에 대한 우리 국민의 호감도는 1980년대까지는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의 실시와 남북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 등 우리 현대사의 향방을 가른 중대한 사건들에서 미국이 끼친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분단체제가 고착된 이후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됐는데, 막대한 규모의 군사·경제 원조와 주한미군의 존재는 많은 국민이 미국은 한국 최고의 ‘우방’이자 ‘맹방’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친미의식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미국은 서양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 국민에게 서양은 곧 미국을 의미했는데, 서양 제도는 미국 제도, 서양 경제는 미국 경제, 또 서양 문화는 당연히 미국 문화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 자본주의가 최고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시기였으며, 많은 한국인에게 미국은 우리의 생존을 지켜주는 국가로, 또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나라로 받아들여졌다.

1965년에 미국 공보원이 서울 인근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는 당시 친미의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어느 나라를 제일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8%가 미국을 지목했으며, 미국이 싫다는 사람은 1%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에 이어 좋아하는 나라로 손꼽힌 국가는 일본(12%), 인도(7%) 등이었으며,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는 중국(78%)이 지목됐다. 이 조사 결과는 1960년대 당시 냉전 시대 분위기가 반영돼 있는 것이지만, 미국에 대한 선호도 내지 친밀감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것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이런 높은 친미의식은 현실적이고 이념적인 근거를 모두 갖고 있었다.

먼저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남한과 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치한 상황에서 주한미군은 우리의 생존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로 인식됐으며, 미국으로부터 제공된 막대한 원조와 차관은 한국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더불어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의 경제개발계획 입안과 추진 과정에 절대적인 조언자였으며, 미국 시장은 가장 중요한 수출시장이었다. 한마디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우산 속에서 한국의 정치와 경제가 재생산돼 왔다고 볼 수 있다.

1/4
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목록 닫기

이제 미국은 없다?

댓글 창 닫기

2016/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