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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기자의 스포츠 別曲

감독들은 왜 목이 잘리는가

  • 글: 김화성 mars@donga.com

감독들은 왜 목이 잘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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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들은 왜 목이 잘리는가

보비 롭슨 감독.

하기야 영국 축구에서 만약 선수가 감독과 언쟁을 벌인다면 그는 그날로 보따리 쌀 각오를 해야 한다. 영국에서 선수는 감독이 지시하는대로 하는 장기판의 말과 같다. 그래서 선수들은 감독을 보스(Boss)라고 부른다. 행여 형편없는 경기라도 하는 날이면 감독은 그날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을 집합시켜 한바탕 욕설을 퍼붓는다. 그래도 선수들은 군말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영국 선수들은 상급자에게 절대 복종한다. 그들은 군인과 다름없다. 경기중 머리가 깨져도 붕대로 싸맨 뒤 계속해 공을 찬다. 이런 근성도 대표 선발 때 중요한 한 요소로 삼는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다르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토론을 즐긴다. 사소한 부상을 입어도 더 이상 못 뛰겠다고 벤치에 사인을 보낸다. 겨우 스무 살이 된 선수도 자신이 감독만큼 축구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술을 놓고 감독과 다투는 선수는 네덜란드 선수들밖에 없다. 감독은 작전을 세운 뒤 우선 선수들부터 설득해야 한다. 그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 뒤 그들 스스로 생각하면서 공을 차게 하면 그들은 환상적인 축구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땐 엉망이 된다.

현재 아인트호벤 감독인 히딩크는 축구 경영자로서 사람 다루는 데 귀신이다. 선수뿐만 아니라 기자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그는 선수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한다. 후보나 주전이나 똑같다. 결코 그 누구도 편애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수들은 그에게 감동을 하고 그가 하는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다. 히딩크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 이 ‘인간존중’과 ‘신뢰’에 있다.

히딩크가 한국 팀에 가르친 축구 기술은 새로운 게 아니다. 유럽의 일류 감독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의 황소 같은 뚝심과 소신도 그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이웃 일본 팀을 맡았던 트루시에 감독도 소신이라면 히딩크 못지않다. ‘생각하는 축구’라든지 ‘체력과 스피드를 중시하는 축구’ ‘스위퍼를 없앤 4-4-2 포메이션’ 등은 국내 지도자들도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다. 다만 아무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면에서 히딩크에게는 ‘외국인’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스웨덴 출신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이 잉글랜드 사령탑을 맡아 ‘잉글랜드 축구’를 확 바꾼 것과 비슷하다. 그는 잉글랜드의 촌스런 ‘킥 앤드 러시’의 축구를 세련된 ‘현대축구’로 바꿔버렸다. 에릭손은 잉글랜드의 ‘악습’과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잉글랜드인들이라고 그걸 몰랐겠는가. 잘 알면서도 축구 종가라는 ‘체면’과 ‘관행’ 때문에 고치지 못했던 것이다.



에릭손은 냉정하다. 골이 들어가도 점잖게 박수를 치는 정도다.

달빛이 너무 밝으면…

프로 감독의 성적 부진은 곧바로 ‘잘린다’는 것을 뜻한다. 올 미국 프로야구에선 30개 구단 가운데 10개팀이 감독을 바꾸었다. 한국에서도 8개 구단 중 4개팀 감독이 유니폼을 벗었다. 대부분 성적 부진이 주된 이유다. 하지만 김성근 전 LG감독처럼 좋은 성적을 내고 해임된 사례도 있다. 이래서 감독 중엔 승리 지상주의자가 많다. 관중들이 재미없게 경기한다고 눈총을 줘도 그것은 그 다음 일이다. 삼성 김응룡 감독과 현대 김재박 감독은 “감독의 지상과제는 승리다. 이기지 못하는 감독은 존재가치가 없다”며 화끈한 야구 대신 ‘재미없는 야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축구는 11명이 한다. 야구는 9명, 그리고 농구는 5명이 한다. 한마디로 축구든 야구든 농구든 한두 명의 잘하는 선수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감독들은 한두 명의 스타보다는 팀워크를 중시한다. 스타가 많은 팀은 그 스타가 부진할 때 대책이 없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보았던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좋은 예다.

1998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팀은 글자 그대로 ‘다인종 연합의 무지개팀’이었다. 그러나 4년 후에는 ‘지단의 팀’으로 변했다. 신흥 축구강국으로 떠오른 포르투갈도 어느새 ‘피구의 팀’이 됐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2002한·일 월드컵에서 팀워크의 팀들에게 뼈아픈 수모를 당하며 쓸쓸히 보따리를 싸야 했다.

현대 프로 스포츠는 시스템과 팀워크다. 한 스타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덴마크나 미국, 한국 축구팀엔 이렇다할 스타가 없다. 특히 2002월드컵에 나온 덴마크는 수비-공격 역할 분담이 철저한 ‘끈끈한 축구’의 전형이다. 한국은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수평조직 축구’다. 조직에서 스타란 너무 커지면 ‘계륵’과 같다. 팀워크가 사라진다. 달빛이 너무 밝으면 주변의 별들은 빛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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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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