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준비하는 사람’에게 위기는 기회

  • 글: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medius@naver.com

    입력2003-01-02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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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하는 사람’에게 위기는 기회
    해가 바뀌면 변화에 대한 의욕이나 기대감 못잖게 변화의 불가측성에 따른 불안도 커지게 마련이다. 그런 불안은 개인적 차원에서 더 나아가 한 사회나 지구촌 전체가 안게 되는 불안일 수도 있다. 변화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처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변화에 휩쓸려 따라가는 데 급급하기 십상이다. 새해를 즈음해 개인적·집단적 차원에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를 몇 권의 책을 통해 알아보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석유 위기는 ‘시한폭탄’

    먼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그 영향이 우리 일상에 구체적으로 미치지 않으면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바로 석유위기다. 석유위기라고 하면 식상할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중동에 전운이 감돌 때마다 유가가 올랐다가 이내 잠잠해지면 다시 내리고…. 이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프린스턴대 명예교수 케니스 S. 데페이에스(석유지질학)의 ‘파국적인 석유위기가 닥쳐오고 있다’(중심)를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허버트 피크(Hubbert’s Peak)’인데, 이는 미국의 원유생산이 1970년대 초 최고조에 달한 후 감소할 것이라는 지질물리학자 킹 허버트의 1956년도 예측에서 따온 것이다. 미국이 석유 고갈에 대비해 자국 내 유전을 개발하지 않고 그냥 놓아둔다는 설도 있지만, 데페이에스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 않다. 허버트의 예측대로 미국내 원유생산은 1970년부터 줄어들어 현재는 중동 석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파국적인 석유위기의 시작은 언제부터 시작될 것인가? 데페이에스는 놀랍게도 빠르면 바로 2003년, 아무리 늦어도 2008년에 세계 석유 생산량이 정점에 달한 뒤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주장한다. 석유 수요는 날로 증가하는데 생산이 자꾸 줄어든다면 그 결과는? 책 제목대로 사회·정치·경제 등 모든 분야의 파국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들이 이런 경고의 목소리에 좀처럼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유전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전지대에서 태어나 휴스턴의 셸 석유연구소에서 근무했고, 프린스턴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석유업계 컨설턴트로 일한 ‘석유장이’ 데페이에스는 고개를 흔든다. 이미 가용한 유전개발 기술을 모두 써버린 상태여서 추가 개발의 여지가 적다는 것이다.

    데페이에스는 본격적인 석유생산 감소시대에 연착륙하기 위해선 앞으로 10년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기간에 대체에너지 개발을 비롯한 다양한 노력이 집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령화사회의 파국을 막아라!

    석유위기가 일종의 시한폭탄이라고 한다면, 그에 못잖게 위험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는 폭탄이 있다. 노령화사회란 시한폭탄이다. 2002년 4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엔 제2차 노령화 세계총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10명당 1명인 60세 이상 노인이 2050년엔 5명당 1명, 2150년에는 3명당 1명 꼴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세계인구의 중간연령도 현재의 26세에서 36세로 높아질 것이라 예상했다.

    한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2000년에 이미 노령화사회(총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로 진입했고, 2019년엔 노령사회(총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가 14% 이상)가 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회장 피터 G. 피터슨은 ‘노인들의 사회 그 불안한 미래’(에코리브르)에서 ‘고령화의 파도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고령화된 사회에서도 연금 및 건강보험 제도가 유지될 수 있게 근본적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 전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지붕은 해가 났을 때 고쳐야 한다’는 말을 인용,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는다면 훨씬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소수의 근로인구가 엄청난 숫자의 노인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까닭에, 연금기금 파산으로 인한 지급불능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나라 전체의 경제적 활력과 생산성이 떨어지고 빈곤이 만연할 개연성도 크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사람들이 이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암초를 향해 돌진하는 배 위에서 무사태평인 꼴이다. 저자는 6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근로기간을 연장하도록 장려함으로써 노인들의 사회의존도를 낮춘다. 비노인계층의 근로활동을 확대한다. 더 많은, 더 생산성 있는 다음 세대를 길러낸다. 자식의 의무를 강조한다. 재정적 필요에 따라 상이한 혜택을 줌으로써 급여비용을 절약한다. 노후자금을 미리 저축하도록 장려한다.

    석유위기와 노령화사회 위기는 다음 세대 삶의 질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 설사 위기가 닥치더라도 다음 세대가 지혜롭게 대처해주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위기는 그런 바람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일본 최고의 저널리스트이자 저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청어람미디어)는 그래서 각별하다.

    이번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서 또 한번 수험생 학력저하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비단 수능시험이 아니더라도, 기초단어를 한자로 쓸 줄 모르고 중학교 수준의 수학문제에 쩔쩔매는 대학생도 드물지 않다. 일본도 학력저하에 대한 위기감이 큰 듯하다. 도쿄대는 그동안 일본 정관계·법조계·경제계의 중추 엘리트를 배출했지만 스스로 문제를 조사·분석·해결하는 창의적 인재를 기르지 못했다는 게 다치바나의 진단이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우선 우리의 교육인적자원부에 해당하는 문부성을 해체하라고 말한다. 서구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문부성이 앞장서 대학을 이끌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대학입시에 대한 주장도 파격적이다. 폭넓은 사고력을 갖추지 않으면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 암기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출제하라고 한다. 그리고 영어사전, 계산기, 노트북PC 등을 지니고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다치바나가 제시하는 근본적인 대안은 독특한 교양론에 있다. 현대를 스페셜리스트, 즉 전문가의 시대라고 하지만, 다치바나는 앞으로의 시대는 제너럴리스트, 즉 일반적 교양인의 시대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교양인이란 문학·역사·사상·고전 등을 공부하는 전통적 교양인이 아니다. 전문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 나아가 사회 전체를 보는 안목을 갖춘 사람을 뜻한다.

    제너럴리스트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 능력은 무엇일까? 지식과 정보가 있는 모든 곳에서 스스로 조사하고 문서를 제대로 작성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발신하고, 나아가 문제상황을 분석·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치바나는 그런 능력을 반드시 대학에서만 기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심지어 대학의 시대는 끝났다면서, 유비쿼터스(ubiquitous), 즉 도처에 존재하는 대학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디지털 유목민’이 그려낼 세상

    마지막으로 직업의 위기가 있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 주필을 지낸 군돌라 엥리슈는 ‘잡노마드 사회: 직업의 유랑자들’(문예출판사)에서 직업(job)을 따라 유랑하는 유목민(nomad)을 일컫는 새로운 용어로 ‘잡노마드’ 개념을 강조한다. 인터넷, 노트북PC 등 최신 정보통신수단과 기기로 무장한 21세기 유목민이 확산되리라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토지에 묶여 있었다. 산업사회에선 기계, 공장, 사무실에 묶였다. 그러나 정보화사회에선 일자리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어디서 일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평생직장의 신화는 무너졌다. 일에 따라 전세계를 누비는 사람들이 흔해졌다.

    저자는 독일 사진작가 알렉산더 슈텐첼을 사례로 든다. 패션사업으로 35세에 백만장자가 된 그는 고정적인 직장, 자동차, 거처가 없다. 1년에도 여러 차례 세계를 여행하는 그의 재산은 노트북PC, 디지털카메라, 휴대전화, 옷 몇 벌뿐. 그에겐 인터넷 홈페이지가 직장이요 집이다.

    디지털 유목민, 멋져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기꺼이 그런 삶의 양식을 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요컨대 잡노마드사회는 디지털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노(no)잡노마드’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정보격차 심화에 따른 정보 불평등사회의 그림자마저 엿보인다. 무한경쟁의 냉엄한 현실이 잡노마드 사회의 본모습은 아닐까? 그렇다면 정보복지 개념 같은 것을 도입할 필요성이 있는 건 아닐까? 질문의 꼬리는 그치지 않는다.

    연초엔 새 희망을 얘기하거나 덕담을 하는 게 적합하다. 그런데 4권의 책을 통해 위기에 대해 얘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현재의 우리와 다음 세대에게 중요한 문제들이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 했던가. 불안과 위기는 준비하는 개인과 사회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여기 소개한 책들을 통해 기회의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것도 뜻깊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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