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울진 불영계곡에서 영덕 강구항까지 山 첩첩 , 海 양양, 食 컬컬

  • 글: 이형삼 기자 사진: 김용해 기자

    입력2003-01-03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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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를 치받다 박살이 나도 기죽지 않는 파도가 발끝까지 밀려드는 겨울바다, 수평선 너머에서 뻐근하게 하루를 건져올리며 사위를 붉게 적시는 일출, 그 생명의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심심(深深) 계곡과 울창한 송림, 훈향 그윽한 청정도량(淸淨道場), 삶의 기운이 넘쳐나는 포구와 덕장, 텁텁한 속을 쏴하니 풀어주는 컬컬한 먹을거리…. 경북 울진군 불영계곡에서 영덕군 강구항까지 내려가는 길은 다 이어붙여야 100km가 채 안 되지만, 이 모두를 ‘패키지’로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충청도 산골인 제천과 단양, 경북 내륙의 영주·봉화를 거쳐 울진으로 가려면 첩첩한 산을 수없이 넘어야 한다. 다행히 2001년 말 중앙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에서 영주까지 가는 시간은 많이 단축됐다.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서면 한 시간이 못 돼 풍기IC로 빠져나온다. 여기에서 5번 국도를 타고 북영주를 관통해 36번 국도로 접어들면(영주IC로 나올 경우 28번 국도→영주시내→36번 국도) 봉화를 거쳐 한 시간 만에 불영계곡에 닿는다.

    아직 해가 높을 때 이곳까지 왔다면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광천교 직전에서 좌회전해 비포장도로로 14km 가량 들어가면 된다(길이 험해 승용차라면 바닥 긁힐 각오를 해야 한다). 평균 수령 150년, 높이 23m, 지름 38cm의 금강소나무들이 1610ha의 임야를 빽빽히 메우고 있다.

    불영계곡은 좀 낯간지럽긴 해도 ‘한국의 그랜드캐년’이라는 별명이 붙은 절경이다. 영겁의 세월 바위틈을 흘러내리며 생긴 물길, 그 물길에 쓸려 갖은 형상으로 변한 맑은 빛 돌덩이들이 때로는 오밀조밀하고 때로는 위압적인 계곡을 만들어놓았다.

    계곡 끝자락인 진잠교에서 12km를 달리면 망양해수욕장, 드디어 바다를 볼 수 있다. 망양정(望洋亭)은 이름부터가 일출 명소임을 알리지만, 정작 정자에 오르면 키큰 솔숲이 시야를 가려 일출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차라리 해안도로변 횟집 겸 민박집에서 매운탕으로 저녁을 먹고 이른 아침 민박집 옥상으로 올라가거나 해수욕장에 나가 일출을 기다리는 편이 낫다.







    완벽한 일출을 보기란 쉽지 않다. 이쪽 날씨가 아무리 좋아본들 수평선 부근에 물안개라도 끼면 허사다. 해가 제대로 떠도 3분이면 ‘상황끝’이다. 눈곱만하게 붉은 혀를 낼름거리다 1분쯤 지나면 반원을 드러내고 3분이 지나면 수면 위로 완전히 떠오른다. 5분 정도가 더 흐르면 햇살이 퍼져 해를 바라볼 수 없다. 태양이 인간에게 자신과 마주볼 수 있게 허락하는 시간은 10분이 채 못 된다.

    망양에서 일출을 보고 나면 인근 죽변항을 둘러봄직하다. 고깃배들이 오징어, 복, 대구 등 밤새 잡아온 싱싱한 물고기들을 쏟아내며 즉석에서 경매가 이뤄진다. 전날 밤 독주로 여독을 달랬다면 막 경매를 끝내고 밥집으로 가져온 복으로 지리를 청하자. 구멍나기 직전의 낡은 냄비에 방금 알과 피를 뺀 팔뚝만한 복을 텀벙텀벙 잘라넣고 미나리와 콩나물을 얹어 팔팔 끓여내는데, 속풀이엔 그만이다(2인분 1마리 2만5000원). 반찬은 손으로 쭉쭉 찢어먹는 시골김치와 큼직큼직하게 썬 깍두기가 전부. 서울에서 먹던 생각으로 복 껍질 무침을 청했더니 “껍질이 이래 싱싱한데 무치긴 와 무치노, 같이 끓여 먹어야지”라고 면박만 줬다. 복의 ‘품계’는 참복-밀복-까치복-청복으로 내려가는데, 죽변 근처에서 많이 잡히는 것은 배 부분이 하얗고 검은 점이 없는 밀복이다.

    죽변에서 강구까지는 해안도로를 넘나드는 드라이브 코스가 이어진다. 지도에는 강구까지 쭉 해안도로를 탈 수 있게 돼 있지만, 길이 끊어진 곳이 더러 있다. 기성망양해수욕장에서 월송정에 이르는 비포장 도로는 어구를 말리느라 길을 막아놨기 때문에 7번 국도로 우회해 월송정까지 가야 한다. 병곡고래불해수욕장에서 대진해수욕장으로 가는 도로도 막혀 있다. 그 사이를 잇는 축산-병곡간 도로 확·포장 공사가 새해 1월24일 끝날 예정이어서 7번 국도로 영해나 축산까지 가서 해안도로로 나가야 한다. 대진에서 강구에 이르는 918번 지방도로에선 포구와 덕장을 끼고 달리며 해변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강구항의 해돋이도 일품이다. 망양에선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일출이라 깔끔하긴 해도 좀 밋밋한 감이 있는데, 강구에선 포구를 드나드는 고깃배 주위로 갈매기떼가 날아드는 정경을 내려다보며 해가 솟기에 사람 냄새가 묻어난다.





    강구항의 또 다른 명물은 영덕대게. 170여 개 업소가 영덕대게 간판을 내걸고 있다. 무게가 2kg에 육박하는 대형 영덕대게는 마리당 15만원을 호가하지만, 요즘은 남획으로 거의 잡히지 않는다. 요즘 상품(上品)으로 치는 것은 1.2kg쯤 나가는 것으로, 먼바다산은 9만∼11만원, 근해산은 11만∼13만원선에 팔린다. 지천으로 널린 러시아산 수입 게는 그 반값에 못미친다.

    음식점에서는 원하는 가격에 맞춰 연근해산과 수입 게를 조합해 쪄내온다. 게찜을 발라먹고 나면 게장(‘醬’이 아니라 ‘腸’)에 밥을 볶아준다. 찜과 볶음밥은 간을 거의 하지 않아 좀 싱거운 듯하지만, 그래야 게살과 게장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해장을 겸한 아침식사라면 두부를 숭숭 썰어넣고 고춧가루를 얼큰하게 푼 게탕(2인분 1마리 3만원)이 제격이다.

    강구영덕대게상가연합회 이춘국 회장은 “근해산 대게는 껍질이 얇고 까만 혹 같은 충(蟲)들이 붙어 있지 않으며, 삶으면 등 부분만 붉어진다. 또한 짜지 않고 약간 단맛이 난다. 먼바다산은 각질이 두껍고 맛이 짜며, 홍게는 몸통의 아래, 위가 다 붉다. 러시아산에는 ‘동굴’이라고 부르는 흰색 산호가 많이 붙어 있다”고 감별법을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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