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호메로스, 당신 살아 있었군요”

문학, 세계의 반영

  • 글: 이윤기 소설가 / 번역가

    입력2003-01-22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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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메로스, 당신 살아 있었군요”

    신화의 세계를 문학으로 복원한 또 한 명의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

    2000년 9월27일 이스마일 카다레 씨를 만났다. 한 신문사가 만든 대담 프로그램 ‘이스마엘 카다레로부터 듣는다’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자격으로 나와 그가 만난 자리였다. 1990년 조국 알바니아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한 카다레 씨는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유럽의 대표적인 소설가이기도 하다. 당시 카다레 씨는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2000년 서울 국제 문화 포럼’ 참석차 서울에 와 있었다. 나보다 11년 연상인 카다레 씨는 체구가 자그맣고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카다레 씨는 영어에 어둡고 나는 불어에 어두워 통역을 놓고 마주 앉았다.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선생님의 고향 ‘기로 카스타르’는 그리스 국경에서 30km 떨어진 알바니아 마을인 것으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알바니아어를 모릅니다만 기로 카스타르는 어쩐지 ‘둥근 성(城)’을 뜻하는 말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는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더 넓어지지도 깊어지지도 못했다. 그는 나의 질문이 담고 있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읽어내지 못했다.

    “선생님의 소설은 호메로스 서사시가 지닌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알바니아어를 알지 못하지만 호메로스를 통하여 선생님의 고향 마을 이름이 지니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호메로스의 텍스트에서 나는 ‘둥근 성’을 뜻하는 ‘귀로 카스트로’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소설을 읽고 내가 느낀 것은 선생님과 내가 호메로스 체험을 공유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나는 호메로스(인류의 보편적 가치) 이야기를 한동안 더 했다. 기원전 8세기의 고대 그리스 서사시인 호메로스에 관한 한 나에게는 뼈아픈 추억이 있다.

    1991년에 도미,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교환교수 아파트에 정착한 직후, 나는 미국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한국인 언어학자를 만났다. 그는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어 귀국길이 원천 봉쇄된 그런 분이다. 한동안 그분과 가까이 지냈다. 하루는 그분이, 자신은 고대 그리스어로 진행되는 호메로스 원전독회(原典讀會)에 나가고 있는데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고전 그리스어에 관한 한 나는 완전 초보자에 지나지 않았으나 독회의 수준이 어떤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흡사 친구 따라 처음 교회에 나가는 중학생처럼 쭈뼛거리며 그분을 따라 독회에 참석했다. 그러고는 절망했다.

    고대 그리스어는 물론이고, 원전을 해석하는 영어조차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안함을 참지 못하고 독회가 끝나기도 전에 슬며시 강의실을 나왔다. 2년 뒤 나는 뼈를 깎는 노력을 각오하고 그 독회에 다시 나가기로 결심했지만 독회는 닫힌 지 오래라고 했다.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벨레로폰, 페가수스를 타고 괴물을 죽이다

    나는 그때는 물론이고 12년이 지난 지금도 땅을 치며 후회한다. 조급한 마음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문학의 먼 시원(始原)으로 거슬러 오르는 기회를 붙잡지 못한 것이다. 그때를 후회하면서 여전히 땅을 치고 있을 즈음, 이스마엘 카다레 씨를 만났다. 나는 카다레 씨 앞에서 이 이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내 고백을 인상적으로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이어 나와 카다레 씨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카다레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작품에 최고의 찬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여기에 와 있습니다. ‘부서진 4월’은 견딜 수 없이 매혹적인 작품입니다. 그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올림포스 신들을 패러디한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의 소설 속에서는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 서사시의 거장 호메로스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떤 프랑스 비평가가 쓴 책에도 같은 말이 있습니다.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와 단테에게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보편적인 문학 프로세스의 발현 같은 것이지요.”

    카다레의 소설 ‘H서류’의 ‘H’는 ‘호메로스(Homeros)’의 두문자(頭文字)다. 이 소설은 미국의 고전학자 두 명이, 호메로스가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가인지 아니면 편집자인지를 궁금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은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갓 발명된 거대한 ‘녹음기’를 짊어지고 고대의 서사시 전통이 음유시인들에 의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알바니아를 현장 조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의 조사는 처음부터 순조롭지 못하다. 알바니아 정부가 두 고전학자를 스파이로 단정하고 현장인 N군의 군수에게 철저한 밀착 수사를 지시하는 ‘편지’를 보낸 상태이기 때문이다. 군수에게 고전학자들은 감시의 대상이지만 군수의 아내에게는 ‘혼외 사랑’의 대상이다. 군수의 아내는 그들에게서, 질식할 것 같은 결혼생활의 돌파구를 찾는다. 두 고전학자는, 독자들이 짐작하고 있겠지만, 알바니아에서 현장조사를 통해 호메로스의 정체를 밝히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나는 카다레 씨에게 물었다.

    “나는 ‘H서류’에서 신화 시대의 영웅 벨레로폰을 읽었습니다. 두 고전학자는, 하늘을 나는 천마(天馬) 페가수스를 타고 괴물을 죽이는 벨레로폰입니다. 호메로스는 괴물 키마이라, 녹음기는 하늘을 나는 천마 페가수스입니다. 알바니아는 서사시의 발생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선생님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카다레 씨와의 만남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작품을 세 권(그 중 ‘ H서류’는 교정쇄로)이나 읽고 나간 나는 그의 작품의, 호메로스 및 셰익스피어와의 연관성을 추궁했지만 그의 대답은 번번이 겉돌았다. 인터뷰가 끝난 직후에야 그는 나의 집요한 추궁이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뒷날 카다레 씨는 통역을 통해 신문사의 담당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미지의 나라 한국에서 그런 질문을 받으리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참이어서 대답이 부실했노라고 고백하더란다. 그는 ‘문학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이런 따위의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H서류’가 출간되었을 때 나는 신문에다 카다레를 찬양하는 서평을 썼다. ‘호메로스, 살아 있었군요’가 그때 서평의 제목이다. 나는 그 책에서 읽은 다음 몇 구절을 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또 어떤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노래의 한 구절이 사라져서 몇 년 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더구나 이런 현상은 한 음유시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마치 물이 지하로 흐르다 다시 솟아오르듯 다른 시인에 의해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사시의 조각들은 이미 몇 년 전 시체가 썩어버린 음유시인의 무덤으로부터 땅 표면의 단단한 껍질을 꿰뚫고…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H서류’ 中, 이스마엘 카다레/박철화 옮김/문학동네)

    “검사님, ‘소설’ 쓰시는군요”

    25년 전 흑백 TV 시절, ‘수사반장’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탤런트 최불암씨가 수사반장으로 나왔다. 수사반 형사들이 피의자를 심문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피의자는 사실을 평면적으로 건조하게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달빛이 유난히 밝아 별들이 성기어 보이던 밤’ 따위의 수사(修辭)를 써가면서 진술했다. 듣고 있던 형사 하나가 투박한 사투리로 이렇게 내뱉었다.

    “이 자슥, ‘문학’ 하고 자빠졌네.”

    이 경우 ‘문학’은 순수문학, 상업주의 문학, 할 때의 그 ‘문학’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부쩍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소설’이라는 말이다. 향정신성 약물 투여 혐의를 받고 구속된 한 여배우는, 정황 증거를 들어가면서 여죄를 추궁하는 검사에게 이런 말로 대들었다.

    “검사님, ‘소설’ 쓰시는군요.”

    대통령 아들을 끼고 권력의 핵심을 맴돌던 한 인사가 수뢰혐의로 구속되었다. 언론이 수뢰혐의 당사자의 신변을 추리해서 기사를 쓰자 그는 언론을 향해 똑같은 말을 했다.

    “요즘의 언론은 나를 두고 ‘소설’을 쓰고 있다.”

    이런 경우의 ‘소설’은 장편소설, 중편소설, 단편소설, 할 때의 그 ‘소설’이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본바닥 그리스에서 나는 영어로 쓰여진 관광 안내 책자를 읽다가 실소한 적이 있다. ‘신화(myth)’라는 단어의 용례(用例)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남들에게 친절하다는 소문은 거짓말이 아니다(Greeks’ reputation for hospitality is not a myth).’

    이 용례에 따르면 ‘신화(myth)’는 ‘거짓말(myth)’과 동의어다. 위에 쓰인 ‘문학’ ‘소설’ 역시 ‘신화’ 혹은 ‘거짓말’과 똑같은 의미로 쓰였다. 문학, 소설, 신화, 거짓말… 문학은 신화에 얼마나 가까이 닿아 있는 물건인가? 신화는 거짓말에 얼마나 가까이 닿아 있는 물건인가? 문학은 결국 거짓말인가?

    황지우 시인이 놀랄만한 말 한마디를 툭 내뱉은 일이 있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문학이라는 것이 본디 기도나 발원문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그것이 익을 대로 익게 되면 그 열매가 다시 종교의 뒷마당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한영희 문인사진집 ‘작가’ 서문 ‘선골도풍(仙骨道風) 이콘’ 中)

    신화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만한 글을 책에 쓴 적도 있다. 다시 쓴다. 신화는 결정적인 ‘인간의 꿈과 진실’이다. 나는 신화 이야기를 할 때마다 특정 민족의 ‘꿈과 진실’이라는 말보다 ‘우리 인간의 보편적인 꿈과 진실’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민족에 관한 한 ‘우리’는 그리스인과 다르고 로마인들과도 당연히 다르다. 하지만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우리’라고 할 때의 ‘우리’는 몇 가지 기본적인 경험을 공유한다. 그 경험의 내용은 이런 것이다.

    “호메로스, 당신 살아 있었군요”

    ‘신의 제왕’ 제우스는 부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영문도 모르는 채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이 땅으로 던져진다. 우리의 의지와 아무 상관도 없이 이렇게 태어난 우리는, 우리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한 사건의 배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한살이의 봄철에 해당하는 사춘기가 되면 비로소 우리의 근본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사춘기를 건너면서 우리는 본능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때 나타나는 여러 성적인 징후는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사건의 배후에서 있었던 일, 즉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일어났던 일을 짐작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가 된다.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우리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을 되풀이함으로써 또 하나의 아기 사람으로 하여금, 영문도 모르는 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 그러고는 나이를 먹으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죽음’의 경험을 되풀이한다. 이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하는 경험이다. 이 공통된 경험의 구비구비에 잠복해 있는 많은 사건, 인류학자들이 ‘통과의례’라고 부르는 일련의 사건들을 어떤 일에 견주어가면서 설명하는 이야기, 바로 이것이 신화 중에서도 각별한 이름으로 불리는 ‘보편적인 원형 신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류로서 우리가 공유하는 또 하나의 보편적인 경험이 있다. 바로 종교 경험이다. 종교 없는 종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종교 경험 주체가, 다른 동물이 아닌, 바로 인간이라는 뜻이다.

    종교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섬김의 대상인 신과, 그 신에 대한 제의로 이루어져 있다. 신이 없는 종교, 제의가 없는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제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종교 학자들에 따르면 제의는 ‘드로메논(dromenon)’과 ‘뮈토스(mythos)’로 이루어져 있다. 드로메논은 섬김의 대상에 대한 ‘제사 행위’다. 제단을 만들고 제물을 진설하고 절하고 기도하는 절차가 바로 드로메논이다. 바로 이 드로메논 절차에서, 세상이 비롯되던 때를 재현하는 절차가 ‘드라마’다. 무용도 아마 여기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문학의 그릇에 신화를 담다

    ‘뮈토스’란 무엇인가? ‘뮈토스’는 ‘이야기 혹은 말’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다. 신화를 뜻하는 영어 ‘미스(myth)’는 바로 여기에서 온 말이다. 그렇다면 제의에서의 뮈토스란 무엇인가? 섬김의 대상에 대한 이야기다. 섬김의 대상이 되는 신의 근본을 풀어낸 이야기, 바로 우리의 ‘본풀이’와 아주 똑같은 말이다. 절에서 예불할 때마다 독송하는 불경, 교회에서 예배 때마다 봉독하는 성경이 이것이다. 결국 우리가 제사 때 읽는 ‘제문’과 똑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산문이나 운문이 발생했을 것이다.

    황지우 시인의 말은 따라서 옳다. 문학이라는 것은 본디 기도나 발원문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것이 익을 대로 익게 되면 그 열매가 다시 종교의 뒷마당으로 떨어지는지 안 떨어지는지는 조금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문학이라는 것이 기도나 발원문, 종교에서 ‘뮈토스’, 혹은 ‘본풀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나온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문자가 없었던 원시시대 사람들은 저희 민족의 본풀이를 기록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시대의 본풀이는 구전(口傳)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기록된 문학의 형식은 무엇이었을까? 고대인들의 본풀이(신화)였다. 고대 본풀이의 한 형식인 시가(詩歌)가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유럽문화의 정점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트로이 전쟁 이야기)’와 ‘오디세이아(오디세우스의 모험 이야기)’가 있다.

    ‘일리아스’는 운문으로 쓰인, 신들과 영웅호걸들의 상승과 하강을 그린 신화다. 전편(前篇)에 해당하는 ‘일리아스’는 심오한 무의식의 풍경을 거느린, 또 한 신화(문학)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오디세이아’의 망망대해로 띄워 보내기 위한 준비 운동이었다. 최초의 서사시들에 속하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아스’도 바로 신들의 이야기, 신화를 다루고 있다. 그 기나긴 이름들을 여기에다 수선스럽게 소개하지는 않겠지만 유럽 문학의 가장 오래된 형식 중 하나인 그리스 비극이 다루는 것도 하나같이 신화다. 켈트 문학의 정점에 아더왕 신화(전설)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게르만 문학의 정점에는 ‘니벨룽겐의 노래’가 있다. 이 비극적인 전설(신화)은 음악가 바그너의 손에서는 오페라 ‘니벨룽겐의 가락지’가 되고, 헤벨의 손에서는 희곡 ‘니벨룽겐의 사람들’이 된다.

    신화가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일은 고대에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다. 호메로스 이후 근 2700년이 흐른 1920년대에 ‘오디세이아’를 되살린 작가가 있다. ‘율리시즈’를 쓴 영국 작가 제임스 조이스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어 이름이다. 같은 인물의 라틴어 이름은 ‘울릭세스’다. ‘율리시즈’는 영어식 이름이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1938년에 또 한 편의 오디세우스 이야기가 출간된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장편서사시 ‘오디세이아 ; 현대의 속편’이 그것이다.

    오디세우스 이야기는 생판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만 한가. 그것은 우리 문화와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1990년,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 여성 메어리 백 리의 자서전이 나왔다. ‘조용한 오디세이아(Quiet Odyssey)’다. 오디세우스 이미지는 마침내 우리 땅에 상륙한다. 이문열의 ‘서울, 오디세이’라는 이름으로 상륙한 것이다.

    “호메로스, 당신 살아 있었군요”

    ‘일리아스’의 배경이 된 고대 도시 트로이의 유적

    언젠가 ‘지금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질문에는 ‘옛날 작가와는 어떻게 다른가, 지금 문학이란 무엇인가, 옛날 문학과는 어떻게 다른가’ 이런 질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물론, 문학의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까지도 깔려 있는 듯했다. 나는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문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읽는다.

    호메로스는 그리스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던 신화를 긁어모으고, 이것을 상상력으로 버무려 저 만고의 명작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기록한, 좋게 말하면 위대한 상상력의 소유자일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하면 희대의 허풍쟁이였을 수도 있다. ‘일리아스’는, 여인네들 때문에 일어난 전쟁으로 트로이라는 나라가 근 10년 만에 결딴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야기.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가 만고풍상을 겪으면서, 근 10년 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그런데 아무래도 바로 이 ‘오디세이아’의 한 대목에 ‘지금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들어 있는 것 같다.

    해신(海神)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지중해를 떠돌던 오디세우스가 한 나라에 이른다. ‘파이아케스인들의 나라’가 바로 거기다. 그는 이 나라 해변에 표류, 의식을 잃고 있던 중 이 나라의 아름다운 공주 나우시카에게 발견된다. 당시 그는 모진 풍랑에 어찌나 시달렸던지 기억을 깡그리 상실하고 만 직후였다. 그 나라 왕 알키노오스는 오디세우스에게, 당신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왕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나라 궁전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본 듯이 줄줄 외는 장님이 하나 있었다. 음유시인 데모도코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호메로스 역시 장님이었다. 호메로스는 눈 먼 음유시인 데모도코스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무사이(뮤즈) 여신들로부터 / 복(福)과 화(禍)를 한꺼번에 얻은 사람 / 무사이 여신들이 이 사내의 시력을 빼앗고 / 천상의 노래를 부르는 재주를 주었으니.’

    바로 이 눈 먼 음유시인이 오디세우스 앞에서, 오디세우스가 10년 전에 잿더미로 만든 트로이 성을 노래한 것이다. 당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오디세우스 자신이 만들었던 저 트로이의 목마(木馬) 이야기, 트로이 함락 당시의 참상과 장수들의 눈부신 활약상을 감동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그러니까 오디세우스 이야기는, 당사자보다 먼저 그 나라로 흘러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했을 터다.

    오디세우스만은 그때 일을 생각하고, 말하자면 기억을 되찾고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렸다. 알키노오스 왕은 음유시인의 노래가 끝나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오디세우스에게 물었다.

    “음유시인이 트로이 전쟁을 노래하는데 그대가 어찌하여 눈물을 흘리지요?”

    오디세우스는 그제서야 대답한다.

    “내가 바로 저 데모도코스가 노래하는 바로 그 오디세우스올시다.”

    절묘하지 않은가? 장님 호메로스가 트로이에서 일어났던 일, 그리고 오디세우스에게 일어났던 일을 본 듯이 노래하고, 그 장님이 또 하나의 장님 데모도코스를 등장시켜, 호메로스의 노래로 오디세우스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해준다는 것. 호메로스는 데모도코스를 등장시킴으로써 자신의 허풍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논리의 빗장 지르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어떻게 되었는가? 호메로스가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두 권의 책이 고대 신화의 텍스트가 되고 말았다.

    “호메로스, 당신 살아 있었군요”

    ‘삼국유사’로 인해 우리의 신화 세계는 넓고 깊고 풍부해졌다

    허투루 보아넘기지 말아야 할 게 이 대목에 또 있다. 호메로스는 소아시아를 아우르는 그리스를 떠돌던 ‘뮈토스’들을 문자로 기록한 첫 서사시인 중 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입말(口語) 문화를 글말(文語)로 정착시킨 거의 최초의 서사시인이다. 하지만 데모도코스는 여전히 입말 문화의 종사자다. 문자가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기록되던 당시의 입말 문화에 대해, 글말 문화는 하나의 배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언어 문화의 모양새가 입말에서 글말로 옮겨온 지 어언 2800년인데도 아직 그리스에서는 입말 문화의 ‘판소리 여섯 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호메로스 송창(誦唱) 콘테스트’가 열린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와 헤로도투스는 글말의 문화를 연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일과 세월’, 헤로도투스의 ‘역사’는 글말 문화의 꽃이다. 하지만 기독교 초기에 들어서면서, 이 헬레니즘의 글말은 꽃을 피우지 못한다. 헤브라이즘 문화권에 헬레니즘의 글말 문화는 너무 생소한 것이었다. 그래서 꽃 피우게 된 것이 초대 교회의 이코노그라피(圖像文化)다. 헬라스(그리스)의 글말 문화를 알지 못하는 무식한 대중을 위해서 부활한, 그리스의 그리기 문화, 새기기 문화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이코노그라피(聖畵)의 이미지 문화다. 이코노그라피는 오랜 세월 활자 문화의 삽화로 봉사하기도 하고 독자적인 길을 걷기도 했다. 이 둘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는 것이지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21세기의 새로운 이코노그라피 문화, 이미지 문화가, 유구한 글말 문화의 전통을 드난살이로 전락시킬 것을 위태롭게 여기어 마지않는, 걱정스러운 전망이 바닥에 깔려 있다.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지 문화는 고대 종교의 유구한 구전 문화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뮈토스(옛 이야기)’, 근 3000년 가까이 그 뮈토스를 기록하고 발전시킨 문자문화(문학)의 적자(嫡子)다. 이미지 문화는 뮈토스와 문학이라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자식들이지, 뮈토스와 문학의 어머니는 아닌 것이다. 인류의 문화가, 뮈토스에서 발원해 3000여년 동안 발전하고 계승돼온 문학 텍스트 이상의 원자재(原資材)를 하루아침에 생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수많은 독자들이 새삼스러운 듯이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를 읽고 있는, 이 놀라운 현상을 보라. 이 독자들은 오래지 않아 고대 신화의 씨앗으로 우리 시대의 신화, ‘팬터지 문학’이라는 이름의 신화 생산을 계속할 것이다.

    문학의 신화성, 신화의 문학성

    우리 문화가 가진, 거의 최초의 신화집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유사’를 두고 ‘한국문화유산 답사회’는 이렇게 쓰고 있다. 아무래도 이 답사회에 속해 있는 금석학의 대가 흥선 스님(직지사 성보박물관장)이 쓴 듯하다.

    ‘만일 ‘삼국유사’가 없다면 우리 고대사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우리는 민족사의 첫머리에서 단군신화를 지워야 할 것이다. … 다음으로는 향가 14수를 잃어야 하리라. 그리하여 노래가 없고 서정이 사라진 건조한 고대사를 아쉬워해야 하리라. 그 밖에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신화, 전설, 설화가 스러져 우리 선조들의 생활과 사유는 물론 꿈까지 길어 올리던 샘이 말라 버릴 것이다. 실로 ‘삼국유사’ 없는 우리의 고대사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리라.’



    그렇다. 문학이라는 것은 본디 기도나 발원문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것이 익을 대로 익게 되면 그 열매가 다시 종교의 뒷마당으로 떨어지게 될까? 황지우 시인은 ‘종교’라고 했지만 나는, 신화가 고대의 종교였던 만큼 그것을 ‘신화’라고 부르겠다. 나는 문학이 오래 살아남으면 그것은 종교(당대에도 유효한)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신화(목숨이 끊어진 종교로서의)에 편입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눈으로 나는 새로 나온 ‘고은 전집’(김영사)에 실려 있는 고은 시인의 ‘전생 연보’를 읽는다. 후세의 독자들이, 시인이 쓴 것임에 분명한 이 연보를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들은 곧이곧대로 믿으려 들 것이다. 그때가 되면 문학이 신화성을 회복하고, 신화가 문학성을 회복할 것이다. 이 둘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먼 옛날 세습 방랑시인으로 출생. 한때 디오니 소스의 친구BC1125 카스피 해안에서 암말로 출생BC 0017 시베리아 예니세이 유역에서 인간으로 출생. 아기 무당1302 장소 미상(未詳)의 술집 주모1422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 출생. 주로 행상1597 내몽고 출생. 목동1634 조선 삼지연 출생. 화전민. 피리를 불었다1689 조선 추풍령 출생. 일자무식 나무꾼1770 여수 돌산도 출생. 무사승(無師僧)1847 안면도 출생. 귀머거리 머슴. 술을 너무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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