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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들쑤시는 ‘불편함’의 미학

보이는 것 그 너머

  • 글: 박신의 경희대 교수·문화예술경영학 / 미술평론가 lunapark@khu.ac.kr

일상을 들쑤시는 ‘불편함’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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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들쑤시는 ‘불편함’의 미학

마르셀 뒤샹 작 ‘샘’

다시 현대미술의 결코 부드럽지 않은 불편함으로 얘기를 돌려보자. 1910년대 중반부터 유럽과 미국을 풍미하던 다다운동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인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을 보자. 남자 소변기를 가져다 거꾸로 돌려놓은 작품이다.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본다면 누구라도 “이게 작품이야?”라고 반문할 것이다.

너무 엉뚱해 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반응은 어떤 배신감에서 오는 것이리라. 예술작품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에 대한 배신감 말이다. 우선 뒤샹은 작품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작가란 위대한 작품을 위해 혼신을 불태우며 작업에 몰두, 그 결과물을 우리에게 보여줘야 마땅한 게 아닌가. 그럼에도 이 불성실한 작가는 변기 파는 가게에 가서 소변기 하나 달랑 사와 미술관에 던져놓았을 뿐이다. 그런 것이 작품이라면 예술가는 누구나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예술가란 무엇이고,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

뒤샹에게 느끼는 불편함은 그 강도가 제법 세다. 왜냐하면 불편함의 파장이 근본적인 데 있기 때문이다. 과연 예술작품의 기준은 어디에 있고,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 뒤샹은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작품은 더 이상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고. 무어라? 그럼 뭘 만들어낸다는 것인가. 그래서 그는 다시 말한다. 우리의 생각을 ‘개념적으로(conceptually)’ 바꿔놓는 일이라고, 또한 시각적인 부분에 집중한 예술작품은 이제 장식적인 기능밖에 할 수 없다고, 예술가란 그런 점에서 장식적 작품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사고(思考)의 축을 바꾸기 위해 ‘개념을 던지는 자’라고….

그래서 뒤샹은 일단 예술작품을 소변기로 선택한다. 우리에게 오랜 믿음으로 자리한 예술작품 개념이 확실히 깨지는 순간이다. 소변기는 정신적인 것도 아니고, 철학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며, 종교적이라 말할 수도 없는 물건이다. 그는 소변기에 작가의 서명 대신 소변기 제작회사 이름인 ‘Mutt’라는 글자만 남겼다. 이로써 다시 한번 우리에게 오랜 믿음으로 자리한 위대한 예술가의 신화가 여지없이 깨진다. ‘신화 깨기’, 이것은 엄청나게 심기 불편한 일이다.

마르셀 뒤샹은 현대미술사에서 ‘개념미술(Conceptualism)’의 장(場)을 연 선구자로 평가된다. 그러나 개념미술이란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미술이 시각적인 것에서 개념적인 것으로 그 핵심이 옮아갔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개념적인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독자들이 익히 겪은 바대로, 이제 더는 예술가들이 그림을 예쁘게, 조각작품을 근사하게 만드는 경우를 보기가 어렵다.



예쁘고 근사하기는커녕 일상에서 흔히 보고 사용하는 물건들을 갖다놓질 않나, 신문이나 광고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질 않나, 고물과 폐품들을 마구 늘어놓질 않나, 도무지 예술가들은 그럴 듯한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뒤샹은 작품이라는 말 대신 기성품이라는 뜻인 ‘레디메이드(Ready Made)’ 개념을 제안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술가가 그 물건(objet·오브제)을 선택한 동기에 달려 있고, 나아가서는 그 물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어떤 해석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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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신의 경희대 교수·문화예술경영학 / 미술평론가 lunapark@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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