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자연과 어울려 사는 길

  • 글: 이오덕

    입력2003-01-30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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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어울려 사는 길
    지금 나이가 40대 이상으로 되는 사람들이 가끔 눈앞에 그리게 될 고향은 어떤 풍경일까? 아마도 대개는 포근한 산자락에 안겨 있는 초가집(또는 슬레이트집)들이 있고, 마을 앞에 냇물이 흐르고, 냇가에는 버드나무나 미루나무가 줄을 지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들 위에는 까치집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을 것이다. 까치집이 있는 풍경은 우리 모두의 고향이다. 김녹촌 선생의 동요에 ‘까치집’이 있다.

    까치집 까치집 흔들리는 집흔들리는 방에는 까치 병아리바람에 흔들리며 잘도 크지요.

    까치집 까치집 하늘 속의 집흔들리는 방에는 아기 까치들구름에 입맞추며 노래하지요.

    하늘 위에 집을 지어놓고, 바람에 흔들리면서 노래하고, 구름을 쳐다보고 별을 바라보면서 자라나는 까치 아기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인가!

    새들의 둥지가 모두 예술품이라 할 만하지만, 까치집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건축물이다. 그 딱딱한 막대기를 입으로 물고 어떻게 그런 집을 지을까? 까치집 한 채 짓는 데 나뭇가지가 1100개쯤 들어간다고 한다. 집짓기는, 이르면 2월 초부터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올해 우리 마을에서는 고욤나무에 있는 묵은 집을 크리스마스 전에 벌써 가지를 물고 와서 수리하는 것을 보았다. 새로 지을 경우 두 달이 꼬박 걸리기도 하지만, 늦게 시작해서 한 열흘 사이에 완성하는 수도 있다. 집짓기에 한창 바쁠 때는 먹는 것도 잊어버리는 것 같다. 하루 50개를 날라도 스무날을 쉬지 않고 해야 1000개가 된다. 저렇게 해서야 하루 겨우 10개를 물어 나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게 짓는 까치집도 보았다. 한번은 짝 한 마리가 긴 막대기를 물고 왔는데, 기다리던 짝이 그 막대기를 같이 이쪽 저쪽 끝에서 물더니 한참 애써서 그 중간을 뚝 부러지게 했다. 어느 아파트 마을에 있는, 가맣게 쳐다보이는 높은 굴뚝 위 철근 사닥다리에서 그런 어려운 공사를 하였던 것이다.



    까치집에서 까치가 떠나버려 빈 둥지가 오래 되면 땅에 떨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녹촌 선생은 그것을 두어 번 주워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둥지 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알자리가 온갖 보드라운 것들을 다 물어다가 머리칼로 포근하게 얽고 다져놓았더라는 것이다. 그렇겠지.

    까치집 재료로는 나뭇가지뿐 아니고 무슨 넝쿨이나 철사 동강이까지도 쓴다. 이곳에서 서울 가는, 충청도와 경기도 경계가 되는 길가에 좀 희한한 까치집을 보았다. 나뭇가지를 걸쳐놓을 만한 발판이 아무것도 없는 전봇대 기둥에 까치집이 붙어 있는 것이다. 이상해서 잘 보았더니 그 둥지 위쪽을 전깃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까치둥지가 전깃줄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째서 저게 와르르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나 싶어서 가까이 가서 쳐다보았더니 그 까치집 재료에는 포도 넝쿨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 근처 일대가 포도밭이었다.

    까치집은 소나무와 감나무에 지어놓은 것을 보지 못했다. 소나무는 가지마다 바늘 같은 잎이 꽉 돋아나 있어서 그럴 것이고, 감나무는 가지가 부러지기 쉬워서 안 짓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녹촌 선생은 소나무와 잣나무에 지어놓은 까치집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어미가 새끼를 다 키워서 밖으로 나가게 되면, 그때부터 까치들은 집을 버리고 아무데나 날아다니면서 잔다. 자라난 새끼들은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짝을 맞추게 되고, 그리고 곧 집을 짓게 된다. 까치집은 새끼를 낳아 키우려고 한 것이었고, 새끼들이 다 크면 집 같은 것은 조금도 애착이 없이 버린다. 그리고는 다음해에 또 새집을 짓는다. 헌집을 고쳐서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새로 짓는다. 새집은 묵은집 위에다가 짓기도 하는데, 이래서 까치집이 3층이나 되는 수도 있다.

    까치가 전봇대에 붙어서 올라가는 재주를 부리는 것을 본 아이가 있어 이렇게 시로 썼다(제목, 까치·강원도 양양 오색초등 3년 하지연·2001. 12. 11).

    까치가 전봇대 저 꼭대기로걸어서 올라간다.발가락을 오므리고한 발 한 발…“어, 저기 좀 봐라. 떨어지지 않네.”까치는 아기 걸음마 하듯조심조심 올라간다.

    다 올라갔다.새가 저럴 수도 있구나야, 신기하다.자기는 올라가고 싶으니까그런 마음에자기도 모르게 용기가 생겨서올라가는 것 같다.보통 새는 겁먹고자기가 한다는 걸모르고 못 올라간다.

    용기를 가지면 나도철봉을 할 수 있다.

    닭이 소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보았다고 하는데, 두 날개를 치면서 한 발씩 올라가더라고 했다. 이 시에 나오는 까치도 아마 그랬겠지.

    그런데 이 아이는 이 까치를 보고 한 가지 크게 배웠다. ‘보통새는 겁먹고’ 못하는데, 이 까치는 용기가 있어서 해냈다. 나도 용기를 가지면 ‘철봉을 할 수 있다’고 기뻐한 것이다. 자연은 이래서 이이들에게 훌륭한 스승이 된다.

    다음은 33년 전에 어느 아이가 쓴 ‘까치 새끼’란 제목의 시다(경북 안동 대곡분교 3년 백석현).

    까치집을 떠니새끼가 세 마리 있다.한 마리 가주 가니

    까치 어미가 깩깩깩깩하면서 어쩔 줄을 모른다.나무를 막 쫏는다.어미도 불쌍하고 새끼도 불쌍해서갖다 놓고 왔다.

    내가 어렸을 때도 아이들은 이런 장난을 했다. 나무에 올라가 새끼를 꺼내면 어미가 미친 듯이 둘레를 날아다니면서 울부짖고, 나무를 마구 쪼고 한다. 이 아이는 까치가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도로 올라가 새끼를 넣어놓았다. 어린이다운 고운 마음은 이렇게 해서 자연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이런 장난을 하려야 할 수 없다. 어느 곳 어떤 나무에 지어놓은 까치집도 아이들이 올라가서 부러지지 않을만큼 굵은 가지에 지어놓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죄다 가느다란 가지에다가 지어놓아서 아무리 어린 아이가 올라가도 곧 부러지게 되어 있다. 까치집만 보아도 영악하게 살아온 사람의 역사가 나타난다.

    까치는 주로 우리나라와 중국에 있다. 일본에는 까치가 없고 까마귀가 많다. 다만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규슈 북쪽에만 까치가 있다고 한다. 까치는 우리 옛이야기에도 나오고, 아침에 까치 소리를 들으면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하여 ‘길조’라 했다. 또 해로운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익조’라고도 했다. 우리말 사전에는 ‘나랏새(국조)’라고 적혀 있다.

    이렇듯 이 땅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아온 새가 얼마 전부터 갑자기 그 영광의 자리에서 끌려 내려와 그만 지옥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까치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까치 한 마리에 5000원의 현상금이 걸리고, 누구든지 타살, 독살, 총살의 형을 집행할 수 있게 되었다. ‘길조’가 하루아침에 ‘흉조’로 되고, ‘익조’가 ‘해조’로 되고, ‘나랏새’고 뭐고 간곳 없어졌다. 어느 은행의 건물과 통장에서 자랑스러운 상표로 날고 있던 까치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몇 천년 동안 찰떡처럼 사이가 좋았던 사람과 까치가 갑자기 서로 원수가 된 까닭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모두 까치가 사람을 해치는 새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까치가 나쁘게 되었다면 사람이 까치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까치가 사람의 적이 된 까닭은 두 가지다. 곡식을 먹는 것과 전봇대에 집을 지어서 전기사고를 낸다는 것. 그런데 곡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산이고 들이고 온통 농약을 뿌려서 벌레가 없어졌으니 무엇을 먹겠는가? 요즘 까치는 배춧잎까지 먹는다. 또 농촌에서 사람들이 약으로 총으로 잡기만 하니 할 수 없이 도시 근처로 가게 되고, 그래서 전봇대나 높은 굴뚝 위에라도 집을 짓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내몰리기만 하는 까치를 전쟁으로 다 죽여 없애면 어찌 될까? 사람들은 그 다음에 또 다른 날짐승이나 산짐승을 상대로 전쟁을 하겠지. 그래서 모든 짐승을 다 없애고 나면 그때는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판이 될 것이다. 이것이 자기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그러니 까치를 상대로 전쟁을 하는 이 치사스러운 짓거리를 그만두어야 한다. 적어도 ‘생각’이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까치도 살고 사람도 사는 길을 가야 한다. 모든 목숨이 함께 어울려 사는 길이 사람이 살 수 있는 길이다. 농사를 짓더라도 농약을 안 뿌리면 된다. 우리 아이들은 벼 농사고 고추 농사고 농약을 안 뿌리고 잘도 하고 있다. 그리고 까치집 뜯느라고 월급쟁이들이 장대 가지고 돌아다니지 말고, 현상금으로 까치를 멸족하려고 핏발을 세우지 말고, 그런 데 드는 노력과 비용의 10분의 1만 들여도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으니 이렇게 해보라.

    도시 근처 마을 여기저기에 까치들이 쉽게 집을 지을 수 있는 전봇대 비슷한 콘크리트 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기둥 위쪽 몇 군데에다가 나뭇가지 비슷한 것을 만들어놓으면 까치가 즐겨 둥지를 만들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도시 풍경이 될 것이고, 어쩌면 이것이 외국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되어 관광 수입까지 올리게 될 수도 있다. 돈벌이 같은 것부터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아무튼 짐승이고 뭐고 마구 잡아죽이는 이 죽임의 놀음판은 걷어치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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