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남북대화 남남갈등…명암 엇갈린 햇볕정책

  • 글: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yhkoh21@hanmail.net

    입력2003-01-30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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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 우리 사회 내부에 신·구 패러다임 간에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대북정책과 관련한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초당적·범국민적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남북대화 남남갈등…명암 엇갈린 햇볕정책

    햇볕정책의 산물인 남북정상회담.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햇볕정책은 이어지게 되었다.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가 임기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여러 정책 중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부문이 대북정책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햇볕론에 입각한 화해·협력 및 공존·공영정책(햇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정책의 목표를 평화·화해·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두고, 대북정책 3대 원칙으로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배제, 화해·협력의 적극 추진 등을 제시했다. 이같은 대북정책은 안보와 화해·협력을 병행하는 이중접근전략(two-track approach)이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의 장기생존을 가정하고 남북한이 상호 호혜적 관계를 발전시켜 장기적으로 민족공동체를 건설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김대통령은 북한을 붕괴로 유도하기보다는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게 할 것을 기대했다. 따라서 변화를 강요하기보다 교류와 협력을 통해서 북한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김대중 정부는 “교류·협력은 남북관계의 연결고리가 되고,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여 통일한국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적극적인 햇볕정책 또는 포용정책을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의 기본 가정은 북한의 조기붕괴 가능성이 높지 않으며, 북한 정권은 자체의 힘으로 변하기 어려운 정권이라고 전제하고, 햇볕론에 입각한 대북 포용정책으로 북한이 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접촉과 제공, 대화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남북간 화해·협력, 공존·공영을 모색하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정책을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 포괄적 접근을 통한 냉전구조 해체와 ‘사실상의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이루기 위해선 좀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다섯 가지 과제를 한반도 주변국과 협력·공조해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남북간 대결과 불신의 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켜 나가야 한다. 둘째,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하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셋째, 북한이 안심하고 변화와 개방을 추진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넷째, 한반도에서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통제·제거하고 군비통제를 실현해야 한다. 다섯째, 현재의 정전체제를 남북간의 평화체제로 바꿔야 한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남북이 서로 오가며 돕고 나누는 ‘사실상의 통일’ 상황이 이뤄질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다섯 가지 과제를 제시하며 포괄적 접근방법(comprehensive approach)을 통한 주고받기식 일괄타결을 모색했다. 포괄적 대북접근은 한·미·일이 공조하여 ‘우선 당면한 문제 해결 노력과 함께 근본적 문제 해결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로드맵(이정표)을 만들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방식’으로 단계적 접근(step by step)을 통한 일괄타결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북·통일정책 7대 과제

    김대중 정부는 출범 후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명목상으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하면서 실질적으로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에 따라 대북·통일정책을 펴왔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3단계 통일론’에 따라 첫 단계인 ‘남북 국가연합’의 실현을 지향하는 통일정책을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통일정책의 7대 과제로 ▲남북 기본합의서에 의한 남북개선 기반 마련(남북 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해 필요시 정상회담 추진) ▲정경분리 원칙으로 남북 경제협력 적극 추진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사회문화교류협력 활성화 ▲이산가족 재회 및 편지왕래의 조속한 실현 ▲남북한 주도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대북 경수로사업의 원활한 추진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통일정책 추진(북한 라디오·TV방송의 단계적 개방, ‘통일교육지원법’ 제정) 등을 제시했다(1998년 2월1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의 정부 품질혁신을 위한 100대 국정과제’ 중 통일분야 과제).

    이 7대 과제 중에서 ‘남북한 주도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통일정책을 추진한다’는 과제도 남남갈등이 나타남으로써 성공적으로 추진됐다고 보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남북관계가 대립과 대결이 아닌,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대화는 ▲장관급 회담, 특사 회담 등 정치·총괄 분야 회담 10회 ▲국방장관 회담, 군사실무 회담 등 군사분야 회담 14회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실무협의회 등 경제분야 회담 19회 ▲적십자 회담, 아시아 경기대회 참가 등 사회분야 회담 8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51차례의 회담이 개최되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은 공동보도문 15건, 합의서 16건을 채택했다.

    이밖에도 ‘정경분리’에 입각한 일관된 경제교류협력을 통해서 남북 경제공동체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남북간의 ‘보다 많은 접촉과 대화,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면서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남북간 인적·물적 교류가 이전보다 20배 증대됐다. 다섯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단 교환을 통해 5400여 명의 이산가족들이 상봉하였으며, 생사·주소 확인 사업 등을 통해 총 1만2000여 명이 생사 및 주소를 확인하였다. 특히 금강산에 이산가족면회소를 설치·운영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이산가족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김대중 정부는 김영삼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 대북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김영삼 정부의 북한 조기붕괴론에 입각한 흡수통일정책, 정치적 현안문제와 경제 또는 인도적인 문제를 연계하는 정경 연계정책, 북-미, 북-일관계 발전과 남북관계 발전 사이의 ‘조화와 병행원칙’ 등을 포기하고, 햇볕론에 입각한 남북간 화해·협력, 공존·공영정책을 추진했다.

    북한의 장기생존 가능성을 가정하고 흡수통일 배제원칙을 표방하여 흡수통일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그리고 기본합의서 이행과 냉전구조 해체를 통해 통일의 첫 단계인 남북 연합단계 실현을 위해서 포괄적인 대북 포용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는 제로섬 게임(흡수통일 대 적화통일)의 남북관계를 윈-윈 게임(공존·공영)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상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그 결과 남북 당국간에 신뢰가 조성되었고,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남북한의 최고 지도자간의 담판에 의해서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의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됐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이 남남갈등과 주변 4강의 대한반도 영향력 경쟁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의 성과는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체제위기에 봉착한 북한 사회주의체제와 김정일 정권을 위기관리 차원에서 ‘포용’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IMF 관리체제라는 외환위기 속에서 남북문제를 평화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둘째, 일관된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대북정책의 혼선을 막고 남북간 신뢰회복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한동안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햇볕정책에 거부감을 표시했지만, 김대중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을 지켜보면서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남북간 신뢰회복에 기여했다고 본다.

    셋째, 남북간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이 증대되어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진하고, 남북관계에 있어 다양한 연결고리를 확보하는 성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경 분리원칙에 입각한 경협 활성화 및 창구다원화 조치로 금강산관광사업이 성사되고, 남북간 인적·물적 교류가 크게 확대됨으로써 민족 공동번영을 위한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 북-미, 북-일관계 발전과 남북관계 발전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조화와 병행원칙’을 포기함으로써 대북정책을 추진하면서 미·일 등 우방과의 마찰을 줄이고, 한국 주도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미국·일본의 지지와 공조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햇볕정책의 결과로 북한이 ‘의미 있는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의 일관된 햇볕정책 추진으로 남북 당국간 신뢰가 구축되고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호응하면서 대내외적인 개혁·개방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북한은 대내적으로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발표하고 신의주·금강산·개성 특구를 설치하는 등의 개혁·개방조치를 취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북·일 정상회담 등 대외관계 확장에 나서는 등의 변화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햇볕정책에 대한 부정적 견해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첫째, 햇볕정책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정책이다. 둘째, 햇볕정책은 유약한 투항주의적 정책이며, 이로 인해 안보태세가 약화되었다. 셋째,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호전성은 오히려 증대하고 있다.

    햇볕정책에 대한 다른 한편의 비판은, 포용정책의 총론(기조)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 각론(추진전략)에서는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포용정책이 장기적인 대북전략임에도 불구하고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정부 당국의 성급함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 것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불변론’이 제기되면서 대북 지원과 관련하여 ‘퍼주기’논쟁이 일어나는 등 남남갈등이 심화되었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이어 주요 언론사 사주들이 구속되면서 일부 언론의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특히 2001년 8·15 평양 통일대축전을 계기로 임동원 통일부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공동여당이 깨지고, 여소야대 정국으로 개편됨으로써 대북정책의 추진기반이 와해됐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는 베를린선언의 이행, 주적론 수정, 국가보안법 개정, 남북경협 관련 4대 합의문 국회 비준동의 등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가 표방한 대북 포용정책의 1단계인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정책은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2단계인 냉전구조 해체와 ‘사실상의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은 많은 난관에 봉착하였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북한 변화 여부, 대북지원과 관련한 ‘퍼주기’ 논란,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과 관련한 논쟁 등으로 남쪽 사회에서는 ‘남북화해시대의 남남갈등’이란 역설이 형성되었다. 북쪽 사회도 미국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의 대북 강경정책 추진과 9·11테러사태 이후의 정세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남북관계 진전에 심한 기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북한 핵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김대중 정부는 2단계인 냉전구조 해체와 ‘사실상의 통일’을 다음 정권의 과제로 넘겨야 할 상황이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구상’은 기존의 정전협정에 기초한 냉전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우리의 능력과 준비 그리고 동북아 역학구조와 주변국과의 관계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점진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할 문제다. 그리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데 있어 제기될 수 있는 미군 철수와 지위변경에 관한 문제, 유엔사 해체문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양립하기 어려운 민족화해(민족공조)와 한미공조(외세공조)를 조화롭게 절충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할 것인가도 김대중 정부의 고민이었다.

    남남갈등의 해법 찾아야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신·구 패러다임간에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대북정책과 관련한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초당적·범국민적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남남갈등을 줄이기 위해서 대북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대북정책 추진 절차상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햇볕정책의 유지 여부와 관련하여 “햇볕정책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절대적 조건이기 때문에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계승’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노당선자는 통일방안과 관련하여 “통일방안에 대해 상호신뢰 단계에서 국가연합 단계로 점진적으로 발전시킨다 는 총론에 큰 이견이 없다”(2002년 1월 한겨레 인터뷰)고 말했다.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승·이행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햇볕정책의 포장은 달라질 수 있어도 햇볕정책의 기조와 내용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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