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지금 ‘노무현 개혁팀’은 파워게임 중?

386보좌진·자문교수단·민주당 실세그룹

  • 글: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3-02-04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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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각 편대’가 이끄는 ‘노무현 개혁팀’ 일각에서 마찰음이 들려온다. 보다 높은 차원의 개혁을 이루기 위한 생산적 갈등인가, 승자의 오만이 자초한 분파적 균열인가.
    지금 ‘노무현 개혁팀’은 파워게임 중?
    즉위를 앞둔 새 천자(天子) 곁엔 숱한 ‘청룡·백호’들이 시립해 위용을 자랑한다. 취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주변에서도 내로라하는 좌청룡·우백호들이 본인들의 뜻과 무관하게 화제에 오르내린다.

    ‘좌희정·우광재’는 이미 일반명사가 되다시피 했다. 10년 넘게 노당선자를 보좌해온 안희정(安熙正·38) 당선자 비서실 정무팀장, 이광재(李光宰·38) 당선자 비서실 기획팀장을 일컫는다. 최근엔 ‘좌진표·우봉흠’ 커플도 거론된다. 김진표(金振杓·56)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과 박봉흠(朴奉欽·55) 기획예산처 차관이 그 주인공인데, 노당선자가 ‘내가 만나본 가장 유능한 관료 두 사람’으로 평가했다고 해서 주목받고 있다.

    시점을 노당선자의 선거준비 기간으로 가져간다면 ‘좌정배·우종일’이라는 인물 조합도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천정배(千正培·49) 민주당 의원과 유종일(柳鍾一·45)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그들이다. 천의원은 정치분야에서, 유교수는 경제분야에서 노당선자의 핵심적인 ‘개혁참모’ 노릇을 하며 선거전략을 짜냈다. 두 사람은 ‘노무현의 탈레반’으로 불릴 만큼 개혁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선거가 끝난 후 천의원은 민주당 개혁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아 집권당의 정치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에 중용되어 경제개혁 정책의 밑그림을 그릴 것으로 기대됐던 유교수는 인수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지금까지는 노당선자로부터 아무런 공식 임무도 부여받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이상하게 볼 것이 없다. 선거를 도운 학자라고 반드시 인수위에 들어가야 한다는 법도 없거니와, 활동기간이 한 달 남짓밖에 안 되는 인수위가 아니더라도 새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정책 개발 과정에 참여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교수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잡음이 새나오면서 좀 다른 각도의 독법(讀法)이 설득력을 얻었다. ‘노무현 개혁팀’ 내부의 파워게임 양상으로 읽힐 소지가 다분했던 것이다.

    개혁성과 인간성 사이

    유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노트르담대, 영국 케임브리지대, 일본 리츠메이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97년 KDI로 자리를 옮겼다. 유종근(柳鍾根·59) 전 전북지사, 유종성(柳鍾星·47) 전 경실련 사무총장의 동생이다.

    그는 2001년 초 ‘경제 가정교사’ 격으로 노당선자와 인연을 맺었고, 지난해 노당선자가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서자 노후보의 공식 브레인인 자문교수단과는 별도로 ‘노연(盧硏·노무현과 함께하는 연구자 그룹)’을 만들어 정책 개발과 공약 수립을 이끈 것은 물론, 각종 연설과 TV 토론까지 챙겼다.

    경제분야의 장하원·임원혁 KDI 연구위원, 이동걸 금융연구원 은행팀장, 복지분야의 문진영 서강대 교수, 외교·안보분야의 서동만 상지대 교수, 정보통신분야의 윤영민 한양대 교수, 보건·의료분야의 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 등 개혁성향이 강한 10여 명의 학자들이 ‘노연’에 참여했다.

    유교수는 총괄기능을 맡았기 때문에 전공인 경제뿐 아니라 정치, 노동, 외교, 통일 등 전분야에 걸쳐 노후보의 정책 자문에 응했다. 노후보가 내놓은 공약 가운데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유교수의 손을 거쳤다. 그는 노후보와 맞담배를 피우며 토론을 벌일 만큼 허물없이 지냈다고 한다. 유교수가 노후보에게 수시로 개혁안을 올리는 데 대해 민주당 관계자들이 “리포트는 공식 라인을 통해 받으라”며 불만스러워하자 노후보는 “그 사람은 내 경제특보나 마찬가지니 잘들 조율하라”고 유교수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는 것.

    그 정도로 노당선자와 가까웠던 유교수가 인수위에 기용되지 않자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유종일, 장하원 등 대표적인 개혁론자들이 인수위에서 빠진 것은 노당선자의 개혁의지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노당선자의 이른바 ‘386세대 보좌진’ 중의 한 측근은 사석에서 “임채정 인수위원장이 유교수를 인수위원으로 추천했으나 노당선자가 반대했다”며 “과격하고 독단적인 언행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신망을 잃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자신에게 KDI 정책대학원장을 시켜주지 않는다고 강봉균 당시 KDI 원장(현 민주당 의원)을 비난하고 다니는 등 행실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

    이와 관련, 유교수의 입장을 들어보고자 했으나 그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자신이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우려하는 듯했다.

    그러나 유교수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유교수가 개혁성향이 너무 선명한 탓에 본의 아니게 주위에 적을 많이 만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중간한 절충을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다. 토론할 때도 다른 사람의 의견이 틀렸다 싶으면 민망하리만큼 잘근잘근 반박한다. 무슨 사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논리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한국의 토론문화는 이런 태도를 탐탁케 여기지 않는다.”

    그는 유교수와 강봉균 전원장과의 갈등에 대해서도 좀 다른 얘기를 했다. 유교수가 강 전원장의 관료적 학사운영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마찰을 빚었고, 대학원장 인사위원회 표결에서 유교수가 1위 득표를 했는데도 강 전원장이 2위 득표자를 대학원장에 임명하자 유교수가 요로에 그 부당성을 알렸다는 것.

    ‘노무현 개혁팀’은 크게 세 축(軸)으로 나뉜다. 측근 참모와 비서들을 중심으로 한 386세대 보좌진 그룹, 정책자문을 맡은 학자 그룹, 그리고 민주당 실세 그룹이 그것이다.

    그런데 유종일 교수의 사례에서 보듯 최근 이들 세 그룹이 균열의 조짐을 보인다는 시각이 있다. 그 동안은 선거 승리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려오느라 다소 갈등이 있어도 다툴 여유가 없었지만, 목표를 달성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아직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 해도 그간 서로 속으로만 쌓아온 감정의 앙금이 조금씩 표출되면서 ‘3각 편대’의 파워게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는 것.

    갈등의 싹은 우선 개혁 노선의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유종일 교수 같은 학자 그룹과 민주당 개혁파 인사들은 대개 강력한 개혁 노선을 견지했다. 이들은 선거전략에서도 노무현 후보의 정체성 차별화를 강조하며 ‘탈(脫) DJ’ ‘탈 민주당’의 기치를 내걸었다. DJ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적 청산도 주장했다.

    지난해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승리한 후 후보수락 연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자 그룹은 노후보 차별화를 겨냥해 민주당의 자기 반성과 환골탈태를 다짐하는 내용을 집어넣자고 주장했지만, 노후보는 “내가 민주당에 무슨 기반을 갖고 있다고 그렇게까지 나가겠느냐”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학자 그룹은 “지금 숙이고 들어가면 저 사람들이 더 얕잡아 본다. 후보로 선출된 지금 강하게 나가야 당을 장악할 수 있다”고 재차 조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문이었을까. 불과 몇 달 후 민주당에선 ‘후보 흔들기’사태가 불거졌다.

    지난해 3월24일 강원도 경선을 앞뒀을 때는 이미 ‘노풍(盧風)’이 폭발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그런 흐름을 간파한 현지 정보기관 관계자가 노후보측에 “이쪽 여론도 많이 변했으니 강원도라고 대북정책 등에서 지레 움츠러들지 말고 소신대로 밀어붙여라”고 조언할 정도였다. 그러나 당측 인사들의 만류로 결국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하고 말았다.

    선거전에 돌입한 후에는 선대위 안에서조차 전술에 차이가 있었다. 천정배 의원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갈등이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노선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민주당의 고정표를 지키는 전술로 갈 것인가, 아니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보다는 새로운 표밭, 예컨대 영남지역을 적극 공략하는 전술을 택할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나는 후자의 입장이었다. 인구가 많은 영남에서 상대 후보에게 몰표가 쏟아지면 다른 곳에서 웬만큼 표를 얻어도 이길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기존 지지층을 결속시켜 고정표부터 다져야 다른 지역의 표도 따라온다고 주장한 사람도 많았다.”

    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까지 노후보가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자 신기남 당시 민주당 정치개혁추진위 본부장은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후보를 내놓고 다그쳤다.

    “국민은 노후보가 구시대와 확실하게 차별화해줄 것을 바란다. 국민경선에서 노후보가 받은 열화와 같은 지지는 구질서를 용서 없이 비판하고 고치겠다는 자세를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노후보가 그걸 못했다. 당 단합은 안 되고, 약점 잡으려는 사람들 눈치도 봐야 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고…. 하지만 포용하려고 하면 할수록 노후보의 이미지와 인기도는 떨어졌다. 노후보는 이쪽 저쪽 도움을 다 받으려고 중간에서 망설이는 형국이다. 지금은 자기의 분명한 길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다.”

    인수위에서도 마찰

    노선 차이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놓고 인수위에서도 마찰을 빚고 있다. 개혁 성향의 학자 출신 인수위원들은 공정위에 대한 사법경찰권 부여, 상호출자금지제의 전체 기업으로 확대, 상속·증여 완전포괄주의 도입 등 노당선자의 대선 공약을 고수하며 원칙론을 펴는 데 반해 정치권과 관료 출신 위원들은 “현실을 감안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선 과정에서도 학자 그룹과 정치인 그룹은 서로에게 향하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학자들이 이상에 치우쳐 비현실적인 개혁방안을 양산하고 있다고 봤고, 학자들은 정치인들을 딴지만 걸어대는 비생산적 집단이라 여겼다.

    정책 개발 과정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당 실세들과 회의를 할 때는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고 털어놨다. “인텐시브하게 일해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다음 논의로 진전될 수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은 후보의 눈치나 살피고 점잔들만 빼면서 하나마나한 얘기만 늘어놓으니 아웃풋이 없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교수들이 후보에게 정책 보고서라도 올릴라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후보에게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견제하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386세대 보좌진 또한 그들 나름대로 학자 그룹과 당 실세 그룹을 보는 눈이 사뭇 비판적이다. 두 그룹이 현실 감각과 실무 능력, 성실성 같은 자질에서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고 본다는 것. 이런 시각은 노후보의 386세대 보좌진들이 상당한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는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이들과 오래 호흡을 맞춰온 한 민주당 관계자의 말.

    “비록 신문에 이름이 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노당선자의 젊은 보좌진은 질로 따지면 최상의 인력들이다. 각자 맡은 영역의 전문성과 실무 능력이 최고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필요하면 ‘노가다’에 가까운 일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성실하다. 이건 정치권에서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YS나 DJ를 따라다니던 비서 출신들 중에 문서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했던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DJ와 노당선자는 둘 다 회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회의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DJ는 회의를 해도 자기 혼자 말하고 혼자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논리와 기획력을 지닌 인재들이 모이지 않았다. 하지만 노당선자는 팀원들을 동등한 토론 파트너로 인정하고 회의를 이끌기 때문에 웬만큼 실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함께 어울리기가 버겁다. 그런 파트너로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넘게 노당선자와 부대끼며 일했다면 다들 한 가락씩은 한다고 봐야 된다.”

    이렇듯 능력 있는 젊은 인재들이 당선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다 보니 이들을 중심으로 실세 ‘이너서클’이 형성됐다는 시각도 있고, 인수위 실무진 인선 과정에서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설도 나돈다. 이들 중 일부가 외부에서 공공연히 ‘인물평’을 하고 다닌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들 사이에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노무현 개혁팀’에도 성격이 원만한 사람이 있고, 모난 사람이 있다. 그룹을 지어 몰려다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개인 플레이 위주인 사람도 있다. 그로 인해 자기들끼리 다소간의 친소관계는 있지만, 균열이나 파워게임의 산물로 볼 만한 일은 없다. 적어도 친노(親盧) 성향을 공통분모로 해서 모인 인재집단은 결속력이 상당히 강하다.”

    ‘남 건드리는 개혁’은 2004년부터?

    개혁성향이 강한 몇몇 인사가 인수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노당선자의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결과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에게는 따로 줄 임무가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에 이렇다 할 ‘뿌리’가 없는 노당선자가 우선은 민주당 개혁과 정계 개편 등을 통한 정치개혁에 치중하고, 경제개혁, 언론개혁 등 ‘남을 건드리는’ 개혁은 2004년 총선을 마치고 몸을 추스린 이후에 본격화한다는 복심(腹心)을 갖고 있다는 것. 인수위 인선을 ‘실세’와 거리가 먼 학자들 중심으로 한 것도 이런 배려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에서 활동한 한 대학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수위의 개혁 드라이브에 대해 언론이나 당 쪽에서 하도 난리를 치니까 노당선자가 ‘점진적’이니 ‘자율적’이니 하는 표현을 써가며 자세를 낮추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가 아는 노무현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사람이 절대 아니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김원기 고문까지 나서서 정몽준 대표의 요구를 들어주자고 했지만, ‘내가 대통령을 안하면 안했지, 그건 못 들어준다’고 끝까지 버틴 사람이다. 개혁과정에서도 여건이 갖춰졌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그런 면모를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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