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언론개혁, 자율로 안 되면 세무조사도 하겠다”

임채정 대통령직인수위원장

  • 글: 김기영 hades@donga.com

    입력2003-02-04 11:5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공무원 반발은 당연, 토론으로 푸는 게 당선자의 뜻
    • “공무원들, 치밀하고 훈련 잘된 사람들”
    • 새 인재 등용 “당선자와 생각 같아야 함께 일할 수 있다”
    • 새정부 명칭, 분권 통합 동북아중심국가 의지 담을 것
    • “국정원 국내정보기능 여전히 중요해”
    “언론개혁, 자율로 안 되면 세무조사도 하겠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최근 몇 주 사이 핵심적인 뉴스공급처다. 인수위원회에 출입하는 등록 기자만 312명. 뉴스의 중심인 인수위에서도 한가운데 서 있는 임채정(林采正) 인수위원장. 그의 한마디는 곧바로 신문의 제목거리가 됐다.

    하지만 그는 몇 차례 부정적 기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임위원장이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으로부터 언론사 과징금면제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이를 양해해줬다는 보도가 그 첫 번째 사례. 며칠 뒤에는 KT 계열사 신임사장 인선과 관련, 정통부 장관에게 ‘인사청탁성’ 전화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임위원장은 “사실과 다르거나 지나치게 앞서간 기사로 솔직히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1월15일 오후, 세종로 정부청사 신관 6층 인수위원장실에서 임위원장을 만났다. 연일 강행군으로 조금 피곤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대화가 시작되자 곧 활력을 되찾았고 자신의 생각을 속사포를 쏘듯 얘기했다.

    -국회의원으로서 공무원을 만났을 때와 인수위원장으로 만났을 때, 느낌이나 평가가 어떻게 다르던가요.

    “공무원들을 그렇게 많이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공무원들이 인수위에 파견된 지도 며칠 안 되고 해서, 정밀하게 분석·비교해보지는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만나는 공무원은 장·차관 등 상임위에서 답변하는 사람들이었죠. 여기서는 주로 실무진을 만나고 있는데, 옆에서 일하는 것을 보니 역시 공무원들은 훈련된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훈련이 잘돼 있고 치밀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인수위에 보고하러 오는 정부부처 공무원들과 인수위원 사이에 의견 차이를 보이는가 하면 심하게 갈등을 겪고 있는 듯한 모습도 나타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언론 보도 자체가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부정확한 것도 있고요. 내가 분과마다 일일이 들어가본 것은 아니니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정부부처와 인수위 쪽의 견해가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에서는 이를 갈등이나 불협화음이라고 보도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공무원과 인수위원이 각자 활동해온 장이 다르다 보니 아무래도 일의 체계라든가 사안을 보는 관점, 업무 스타일 같은 게 다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죠. 토론을 거치며 의견이 수렴될 것으로 봅니다. 다만 그 과정이 소모적인 논쟁만 아니라면 말입니다.”

    “공무원 반발 당연한 것”

    -인수위가 학자 중심이다 보니 유연성이 부족한 데다, 원칙대로 일을 추진하다 보니 현직 공무원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건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문제 지적이라고 봅니다. 만약 정치인을 인수위에 데려다놓으면 그때 가서는 또 전문성이 부족하다느니 하며 비판할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을 데려다놓아도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는데 굳이 부정적 측면만 꼬집어 문제삼자는 것이지요. 그런 주장이야말로 문제를 만들기 위한 지적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인수위에서 벌어지는 현직 부처 공무원들과 인수위원들 간의 갈등 양상에 대해 임위원장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의견수렴이 이뤄지는 과정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좋게만 보기에는 최근의 인수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공무원들의 반발이 단순한 문제제기가 아닌 것 같고, 노무현 당선자까지 나서 ‘반발하는’ 공무원들을 향해 “내 방식에 따라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도 이례적이다.

    -노당선자의 검찰개혁 공약 가운데 ‘한시적 특검제 상설’ 같은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안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직 공무원들은 제도도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또 검찰 인사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것도 반발에 부닥쳐 한걸음도 못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반발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개혁이라는 것은 바꾼다는 것인데 이해관계에 따라 당연히 찬반 의견이 있을 겁니다. 더군다나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중요한 사안이라면 반대가 없을 수가 없지요. 그러니 토론과정을 거쳐 합의를 이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14일 노당선자는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정부부처 공무원들 상대로 ‘공약대로 따라와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노당선자의 독선이라는 비판도 합니다.

    “당선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왜 개혁을 해야 하는지, 왜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는가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참여해달라는 부탁은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노당선자가 그렇게 말했으니 저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당선자는 ‘이쪽으로 와라,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이쪽이다’라고 공무원들에게 얘기한 겁니다.”

    -인수위 활동은 2월25일 끝나는 한시적 활동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노무현 당선자의 개혁적 정책들이 공무원들 사이에 충분히 이해가 되고 설득이 될 수 있을까요.

    “인수위 활동 기간에 모든 것을 다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큰 방향을 잡아나가는 것뿐이지요. 세부적 사항은 차츰 결정해 나갈 겁니다.”

    과거 인수위원장과 달리 임위원장은 실무형 인수위원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들어 노당선자가 인수위 전체를 챙기면서 임위원장은 중심에서 비켜선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하지만 간혹 매체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숨기지 않고 털어놓아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과연 임위원장이 생각하는 인수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위원장을 맡으면서 인수위 운영에 대해 어떤 원칙을 세웠습니까. 인수위원들에게 강조한 사항은 무엇입니까.

    “인수위원들은 자기 몫을 충분히 하고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특별히 다른 부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앞으로 5년은 한국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고 노무현 정부는 개혁과 변화의 정부다, 개혁과 변화는 문명사적 전환과 연결돼 있다, 따라서 역사를 변화시키는 현장에 있다는 각오로 일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웃어가며 일해달라고 얘기했죠.”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를 ‘문민정부’라 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라고 불렀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어떻게 부르게 될까요.

    “그에 대해서는 지금 토의하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꼭 그런 표현을 써야 하느냐, 안 쓰면 어떠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명칭은 국민들에게 내놓는 우리의 비전인 동시에 자기를 규정짓고 책임감을 갖자는 뜻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아직은 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연구하고 있습니다.”

    -명칭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러이러한 내용은 담자’ 하는 얘기들이 있을 텐데요.

    “그런 것이야 많이 있죠. 국민통합이라든가, 새로운 동북아 공동체라든가, 분권과 자율이라든가 하는 뜻을 담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내용을 아우르는 한마디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당선자의 국정운영과 관련, 눈여겨볼 것은 인사(人事)다. 어떤 사람을 활용하느냐, 어떤 원칙으로 인재를 발굴·활용하느냐가 곧 노당선자 개혁정책의 성격을 규정짓는 잣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당선자는 인수위를 구성하며 과거와 다른 파격적 방식을 선보였다. 당직자에 대한 다면평가가 그랬고, 소장학자들을 대거 인수위 핵심에 포진시킨 것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파격 뒤에는 뒷말이 따르게 마련이다. 인수위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험담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과연 노무현 정권의 인사정책 원칙과 방향은 무엇인가.

    다면평가제는 인사개혁의 일부

    -인수위 구성 당시 노당선자는 “집을 설계하는 사람과 입주해 사는 사람은 다르다”면서 인수위를 ‘설계사무소’로 비유했습니다. 인수위가 곧 새정부의 인재뱅크는 아니라는 얘기였죠. 그런데 최근에는 “이 가운데 나와 오래 일할 사람이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 얘기입니까.

    “이분법적으로 나눠서는 곤란합니다. 인수위의 기능은 설계입니다. 밑그림을 그리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인수위를 구성하는 사람 중에는 인수위가 해산되면 떠날 사람도 있고 남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당선자가 말한 ‘나와 함께 계속 일한다’는 것은 자리의 개념이 아닙니다. 자문이 됐든, 또는 직접 참여가 됐든 어떤 식으로든 함께 간다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인수위 사람들이 청와대에 함께 간다는 뜻이 아니라 자문도 할 수 있고 의견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거죠.”

    -노당선자를 지지하는 소장학자들 사이에서도 인수위를 냉소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인수위원이 된 학자들을 폄하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완벽한 인사는 없습니다. 자리는 제한돼 있고 사람은 많은데 어떻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합리적 기준이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 당만 해도 인사에 관한 한 제도화가 덜 돼 있던 곳인데 이번에 다면평가라는 기준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과거와 같은 밀실인사가 아니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큰 변화이고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면평가제와 국민제안제가 공직사회에 긴장을 몰고 오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 내 일부부처에서 다면평가가 시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노당선자가 취임하면 이 제도가 보편화될 것이라는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업체에서도 인사제도를 바꿀 때는 몇 년씩 연구기간을 두고 시범실시를 하는 등 준비를 하는데, 너무 급작스럽게 공직사회 인사방식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민감한 것 같군요. 현재 공직사회 40여 곳에서 다면평가를 채택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면평가제만으로 평가하는 건 아닙니다. 다면평가제도 새로운 인사개혁의 일부분입니다. 공무원 사회가 불안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인사제도가 정착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아마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한 인사가 될 겁니다. 그건 자신 있습니다.”

    -노무현 당선자가 정치에 입문한 지는 꽤 됐지만 현역의원으로 있던 기간도 짧고 원외에 있다 보니 인재풀(pool)이 얕고 일천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인재가 많아야 적재적소도 가능한 것 아닙니까.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인재가 옛날 봉건시대처럼 초야에 숨어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다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진주는 땅 속에 있어도 스스로 빛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인물을 골라 쓰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인재는 발굴되게 마련이에요.”

    “언론개혁, 자율로 안 되면 세무조사도 하겠다”

    인수위 전체회의장에 들어서는 노무현 당선자와 임채정 인수위원장.

    -노무현 정권은 한국 최초로 개혁성향의 이념정권이라고 합니다. 과거 정권도 개혁을 표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 정권만큼 색깔이 분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이념을 개혁과 보수로 구분할 때 크게 세 가지로 기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남북문제에 있어 남북한간 화해와 협력을 우선하느냐, 아니면 안보를 우선하느냐, 둘째 경제 문제에 있어 성장과 분배 가운데 어떤 것에 무게를 두느냐, 셋째 정통적인 가치관, 즉 장유유서(長幼有序)와 같은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느냐 아니면 합리적 가치관을 우선하느냐 등의 질문에 어떤 의견을 갖는가에 따라 이념 성향을 나눌 수 있다고 보는데요.

    우리 사회에서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는 사람의 상당수는 보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능력 있고 다재다능한 사람이기는 한데 보수적 성향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적재적소의 원칙에 따라 적극 발탁해서 써야 할까요. 노당선자와 생각이 일치하는 사람만 써야 하나요.

    “기본적으로 (당선자와) 생각이 같아야 합니다. 사람을 골라 쓰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능력과 도덕성도 있어야죠. 그러나 그 사람의 지향성도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적 균형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대부분의 사람이 보수와 개혁성향으로 분명하게 나눠지는 것은 아닙니다. 약간의 성향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함께 일하면 그 틀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함께 갈 겁니다. 함께 가지 못할 사람이라면 참여를 안하면 되는 겁니다. 정체성 때문에 우리와 일을 같이 못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대개는 중립적이며 중립적인 사람들은 얼마든지 (새정부와) 호응해갈 수 있습니다. 또 새정부의 정책 대부분이 현재의 안정적 흐름을 벗어나 엉뚱하게 급진적으로 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혁명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념성향 때문에 인재를 리쿠르트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테크노크라트들은 상당히 보수화돼 있지 않나요.

    “테크노크라트들이 보수화돼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보면 현재 공무원들은 한 사람도 쓸 수 없다는 말이 되게요.”

    -공무원과 인수위원 간의 갈등의 배경에는 이런 배경이 있지 않나요.

    “어느 정도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규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현직 공무원들이 노당선자와 생각이 다르다면 어떻게든 이들을 설득하고 동화시켜야 할텐데 그 방식은 노당선자가 얘기했던 대로 토론을 통해서인가요.

    “토론과 설득을 통해서도 하겠죠. 우리 사회의 요구가 바뀌었으니 달라진 요구를 스스로 깨닫기도 할 것이고, 여러 가지 과정이 있겠죠. 인수위에 파견 나온 공무원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노무현 철학을 이해해봐라,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우리 사회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달라, 그래야만 일을 하는 자세가 달라질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노무현 정권 탄생의 정치사회적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일단 3김으로 상징되던 과거의 정치행태, 정치문화가 극복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직적 리더십이 수평적 리더십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한국은 지금 변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근저에는 경제발전과 월드컵을 통해 얻은 국민적 자신감이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나타난 여론이나 권위에 함몰되지 않은 독립적 자아가 확산됐습니다. 또 남북 교류협력을 통해 운명적이다시피 했던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하면서 국민들의 사고의 지평이 넓어졌습니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각 분야에 대한 변화 요구의 수준과 참여의 형태가 크게 변했습니다. 한국사회의 이런 변화발전 요구가 노무현이라는 인물로 나타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이 이겼다, 젊은이들이 이긴 것이라고 말합니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은 민의 변화가 반영된 정치적 사건이라고 정의했습니만,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나라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시스템으로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한두 사람의 리더십보다는 정부 조직과 시스템이 정비돼 잘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민의 요구를 따라가다 보면 야당의 주장처럼 ‘포퓰리즘’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바로 그 시스템을 정비하자는 겁니다. 노당선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어젠더 가운데 하나가 시스템의 합리화, 효율화예요. 새로운 변화를 담기에는 시스템이 너무 낡았다는 겁니다. 변화에 대한 요구를 이념으로 따지는데, 물론 그런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합리성·효율성·투명성 등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보편적 시스템을 정비하자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개혁 중 하나입니다.”

    인수위는 최근 몇 가지 주목되는 정책안을 내놓았다. 그 가운에 관심이 가는 몇 가지 정책에 대해 물어보았다. 먼저 지난 대선 노당선자가 ‘해외정보처’ 로 이름과 기능을 바꾸겠다고 공약했던 국정원의 앞날에 대해 물어보았다.

    -국정원의 해외정보처로의 전환은 대선공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유보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인수위의 정리된 입장은 무엇입니까.

    “인수위에서는 정부기구 개편에 대해 다루지 않기로 했어요. 정부기구라는 것이 다 이유가 있어서 생겨난 것입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현 상태에서 필요한지, 고쳐야 할 것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따지려면 시간을 갖고 차분히 살펴야 합니다. 국정원 개편에 대해서도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해외정보처로 전환하는 것이고, 하나는 국내정보의 기능도 유지하자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국내 정보도 중요해요. 특히 산업정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최근에도 중요한 산업정보가 새나가서 문제가 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을 막아주고 방어해줘야 합니다. 국정원의 해외정보도, 대북정보도 모두 필요합니다. 야당에서 국정원의 정치사찰을 문제삼는데 나는 상당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고쳐나가야지요. 새정부에서는 지금까지의 국정원의 역할에 대해 깊이 검토해서 (국정원의 처리방향을) 결정하겠다, 그런 입장입니다.”

    -과거 국정원의 정보가 취합돼 최고 통치권자에게 보고되고 그 정보는 정치를 컨트롤하는 데 악용되지 않았습니까.

    “권위주의 정권, 군사정권이 중앙정보부나 안기부를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죠. 지금의 국정원에서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인수위가 발표한 새정부 10대 과제를 보면 정치개혁이 가장 마지막에 있더군요. 정치개혁에 관한 세부항목을 보면 국회에서 결정하지 않으면 별로 의미가 없는 사항들만 나열돼 있습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검토’라든가 ‘정치자금법 개정’이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죠. 인수위에서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정치개혁의 방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정치개혁 의지는 강하지만 정치개혁 추진 주체로서 인수위가 적합한가가 문제입니다. 존재적 한계라고나 할까요. 아무리 정치개혁안을 만들어도 최종 결정하는 곳은 정치권, 국회입니다. 인수위에서 정치권에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종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치개혁의 내용을 만드는 것입니다.”

    행정수도 이전 길게 보고 결정할 것

    -정치개혁을 하려면 정치권 내에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동력이 있어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데 현재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을 보면 바람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내부의 반대에 부닥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치권이야말로 개혁과 보수라고 할까, 양측의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곳이죠. 여러 요인들 때문에 한쪽으로 나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느낌입니다. 고싸움을 보면 한쪽의 힘이 우월해야 밀고 나가지 힘이 팽팽하면 그 자리에서만 맴돌거든요. 지금 정치권이 그런 형상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 길을 잡아가겠죠.”

    노무현 당선자의 최대 선거공약은 아마 충청권에서 노무현 바람을 일으킨 ‘행정수도 이전공약’일 것이다.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신수도 건설정책에 대해서는 어떤 내부 준비가 진행되고 있을까. 임위원장은 이 문제에 대해 “호흡을 길게 가져갈 생각”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대선 막판의 최대 이슈였던 행정수도 이전 공약안도 인수위에서 다듬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큰 프로젝트 아닙니까. 따라서 인수위에서 다 결정하지는 않고 어떻게 일을 진행할 것인가 하는 기본 구도를 정리할 거예요. 이 계획 위에서 신수도 문제를 전담하는 주체가 생긴다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 호흡을 길게 갈 겁니다. 신수도 추진 주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또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기본 개념에 대해 인수위에서 밑그림을 그리고, 새정부 출범 후에 본격적으로 다뤄나간다는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어요.”

    -길게 본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합니까. 완전히 행정수도를 이전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지금 당장 기간을 산출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선 때 우리의 계획은 집권 첫해에 타당성 조사와 부지선정까지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조금 더 현실성 있게, 상황을 더 살펴서 다듬어 가려 합니다. 대선 때 얘기했던 것을 곧이곧대로 실천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단어는 많다. 그 가운데 ‘언론개혁’만큼 이전 정권과 분명하게 선을 긋는 표현도 드물다.

    최근 임위원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언론개혁은 언론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자율을 강조한 그의 발언은 노당선자의 생각과 거리가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언론개혁을 어떻게 할 것이냐, 여전히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러면 내가 뭐라고 할까요. 타율적으로 해야 한다고 할까요”라고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그는 새정부와 인수위의 강도 높은 언론개혁 의지를 밝혔다.

    “언론개혁의 가장 좋은 방법은 자율적으로 하는 겁니다. 자율적으로 안 될 때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게 문제 아닌가요. 14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고시를 수시로 위반하는 신문사를 직접 규제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2월까지 신문협회와 체결하되 협회가 응하지 않으면 내부 방침으로 직접 규율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인수위원회에 보고했습니다.

    공정위에서도 지금까지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공정경쟁을 하기를 바라며 유도해왔지만 제대로 안 되니까 규제를 담은 양해각서를 만들겠다고 한 것 아닙니까. 자율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현재 할 수 있는 법과 제도 하에서 최대한 (언론이)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은품이라든가 무가지를 주고, 또 신문 끊기도 어렵잖아요.

    이것들은 기사의 취재와 편집이 아닌 하드웨어적인 부분으로 여태까지는 그것도 자율에 맡겼지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집행해나가야죠. 법 질서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해나가야 해요. 세무조사도 정기적으로 할 필요가 있으면 해야 합니다. 언론의 본질적 자유는 인정하지만 언론의 자유라고 해서 영업부분에서까지 특권을 누릴 수는 없는 겁니다.”

    “나도 상처 입었다”

    인터뷰가 길어지면서 비서들도 바빠졌다. 다음 일정이 있음을 알리는 사인이 계속 들어왔다. 이쯤에서 임위원장을 놓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 그가 주인공이 됐던 몇 가지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판단했다. 먼저 공정위의 언론사 과징금 부과면제 사전 양해설에 대한 임위원장의 해명.

    “양해하지 않았습니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와서 설명을 하고 갔어요. 그 뒤 기자들이 묻기에 ‘그냥 보고받았다’, 내가 한 말은 딱 그겁니다. 그런데 대변인실에서 발표하면서 말이 더 나가버렸어요.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든가, 양해했다든가 그런 식으로 오버가 되어버렸죠.”

    -KT 계열사 사장 인사와 관련, 정통부 장관에게 청탁성 전화를 걸었다는 보도는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것은 거의 조작…, 이렇게 하면 과격한 표현을 쓰게 되니까 그냥 놔둡시다. KT 계열 신설법인 인사에 대한 무수한 소문이 들어오고 있었어요. 잡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정치권이 관련된 얘기도 듣고 있습니다. 대선 전은 물론 대선기간에도 사장 인선과 관련해 안 좋은 소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상철 장관에서 전화를 걸어 신설법인 사장 인선을 둘러싼 잡음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만약 내가 청탁을 했다면 누구를 밀었다는 얘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 얘기는 없고….”

    그는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기 위해 인사청탁설을 과장해 퍼뜨렸다고 믿고 있었다. “이 일로 나도 상처를 입었다”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1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인수위 활동에도 탄력이 붙고 있다. 인수위는 물론 정부부처도 다양한 개혁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자칫 ‘말의 성찬’으로 끝날지 모를 인수위 활동. 임위원장은 초반의 상처를 극복하고 과연 어떤 작품을 만들것인가. 관심이 모아진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