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현미밥+된장국+김치… 소박한 밥상이 한국인 살린다

일본의 ‘밥 전도사’ 마쿠우치 히데오의 ‘粗食 건강론’

  • 글: 마쿠우치 히데오

    입력2003-02-06 10: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조식(粗食)’은 ‘조촐하고 거친 식사.’ 현대인의 건강상태를 ‘포식시대의 영양실조’라 규정하는 일본의 식생활지도사 마쿠우치 히데오는 하루 세끼 밥상에서 밀가루를 없애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200만부 이상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조식을 권합니다’의 저자인 그가 ‘신동아’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한국인 식생활에 대한 고언.
    현미밥+된장국+김치… 소박한 밥상이 한국인 살린다
    나는 영양학자도, 의사도, 저널리스트도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은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암, 당뇨병, 고혈압, 아토피성 피부염 등에 걸린 환자들의 식생활을 지도하는 일이다. 그런 내가 식생활에 대한 책을 냈고, 그것이 일본에서만 200만부 넘게 판매됐다.

    어떻게 내가 쓴 ‘조식’ 시리즈가 일본 독자들에게 이토록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을까? 나는 책의 내용이 특별히 참신하다거나 좋아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시대가 ‘조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 주장은 단순하다. 그간 많은 환자들의 식생활을 지도하면서, 그들이 식사를 조금만 덜 기름지고 소박하게만 바꿔도 대부분 증세가 나아진다는 점을 관찰했다. 나는 그것을 더 깊이 연구하여, 일본의 전통 식사인 ‘현미밥-미소시루(일본 된장국)-쓰케모노(일본식 김치)’에 가끔 생선구이를 더한 조촐한 식사, 즉 ‘조식’이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현재 나타나고 있는 먹을거리와 관련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광우병, 유전자변형식품, 쇠고기 위조표시 사건, 미스터도넛 사건과 교와향료화학 사건(일본에서 사용허가가 나지 않은 첨가물을 넣었다 적발된 사건), 농약잔류 시금치 사건, 무허가농약 사건 등 식품 안전성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이 떠올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관심하게 넘어갈 상황이 아니다.

    건강문제도 심각하다. 암이나 당뇨병, 심장병,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이 매년 급증하고 있으며, 아토피성 피부염과 화분증 같은 알레르기성 질환도 널리 퍼지고 있다. 여기에 아동 비만이 크게 늘었고 성인병에 걸리는 연령도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1998년 일본 후생성(현 후생노동성)이 처음 발표한 당뇨병 실태조사에 따르면, 당뇨병으로 입원중인 환자가 218만명,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1370만명에 달한다. 이는 일본 전체 인구의 10%를 훨씬 넘는 수치다. 이에 따른 국민의료비도 30조엔을 넘어섰다.

    主食의 변화가 문제

    외국식품 수입으로 대두된 식생활의 위협과 날로 늘어나는 식원병(食源病·보통 ‘성인병’이라고 하지만 요즘 성인병의 연령대가 아동으로까지 내려간 추세여서 ‘생활습관병’ 또는 ‘식원병’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은 사람들에게 ‘나는 과연 제대로 먹고 있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이대로는 안 된다’ 하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조식’으로 대표되는 전통 식생활에 대한 회복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수년간 일본에서는 식품의 안전성과 건강, 그리고 농업·식량문제 등 여러 가지 이슈가 있었다. 따로따로 이야기되던 이 문제들은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 배경이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식생활의 급격한 변화다. 내가 의료기관에서 만난 환자 중 가장 많은 경우가 유방암 환자인데, 다른 암 환자나 성인병 환자에 비해 그 연령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젊었다. 그들의 식생활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외국음식’ 일색이란 점이었다.

    아침엔 버터 바른 빵과 드레싱을 친 샐러드, 햄에그, 요구르트를 먹는다. 점심으로는 샌드위치나 스파게티를, 간식으론 쿠키나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먹는다. 그리고 저녁엔 밥과 햄버그스테이크, 수프, 마요네즈를 친 샐러드를 먹는 식이다. 그밖에 밥을 거의 먹지 않는 사람이나 전혀 식사가 되지 않는 도넛으로 아침을 때우는 사람도 늘고 있다.그런데 대다수 환자들은 이런 식생활이 그다지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우리는 오랫동안 곡류와 감자류를 주식으로 하여 계절 야채와 콩류, 해조류, 어패류를 섭취하며 살아왔다. 식생활에도 국적과 지방이 있고, 계절과 가정의 맛이 있는 법. 그러나 전후(戰後) 50년 동안 급격한 변화가 왔다. 쌀 소비가 급감하고 수입 밀가루(빵, 스파게티, 라면, 피자, 과자류, 스낵 등)의 소비가 급증했다. 또 버터와 마가린, 식물성 기름 등 유지류와 사탕수수를 정제한 다양한 감미료, 우유와 유제품, 고기와 식육가공품 등이 빠르게 늘어났다. 이렇게 단기간에 식생활이 급변한 나라는 전세계를 찾아봐도 일본이 유일할 것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엔 전후의 영양교육과 보건소 등 행정기관이 추진한 영양개선보급운동(식생활근대화론)이 있다. 특히 ‘밥은 남겨도 좋으니 반찬을 많이 먹어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자’ ‘일본의 식단은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단백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일본인은 칼슘이 부족하다’ ‘일본인은 염분을 너무 많이 섭취한다’ 등과 같은 표어들이 급속하게 퍼졌다. 이 네 가지 표어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서양의 식생활이 이상적이고, 일식은 문제가 많다’는, 전통적 식문화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서구의 학문인 영양학이 그 배후에 자리잡고 있다. 영양학은 일찍이 독일에서 시작됐다. 서양의 음식문화는 일본이나 한국·중국 같은 아시아 국가와 달리 주식과 부식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다. 유럽에 주식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여름이 짧고 기온이 낮으며 강수량이 적은 기후 때문이다. 즉 식물이 자라기에 아주 좋지 않은 조건이라는 뜻이다. 특히 쌀은 기후가 따뜻하고 강수량이 풍부하지 않으면 재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대륙에서 쌀은 비교적 따뜻한 포르투갈·스페인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된다.

    그래서 밀을 재배해왔는데, 밀은 밭작물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재배하면 여러 가지 장애가 일어나는 결점이 있다. 때문에 한해 밀을 재배한 밭은 다음해에 목초지로 사용하고 또 그 다음해엔 순무나 채소, 완두, 감자를 심는 등 지력을 되살리기 위해 토지를 쉬게 하면서 작물을 재배하게 된다. 게다가 유럽은 온도와 습도가 낮아 식물이 일본에서처럼 쑥쑥 자라지 못하고 어린 상태에서 성장을 멈춘다. 이런 풀들은 소·양 같은 초식동물의 좋은 먹이가 된다.

    유럽인들이 고기와 유제품, 야채에 소량의 빵을 먹는 식생활을 해온 이유도 빵을 배불리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더욱 잘 살기 위해’ 만들어진 식생활 체계였던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같이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는 나라에서는 식물이 잘 자라므로 곡류와 야채를 주로 한 식생활이 가능했다. 논을 이용한 쌀농사는 연작이 가능하고 토양도 거의 소모되지 않아 굳이 낙농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단백질도 ‘부족한’ 것이 아니라 성격이 다를 뿐이다. 일본과 한국에선 육류 대신 콩으로 단백질을 섭취한다. 특히 콩을 발효한 된장이나 청국장은 콩에 함유된 소화방해물질이 분해돼 있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한국이나 일본의 요리는 어디까지나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이다. 때문에 반찬의 칼로리도 낮다. 미소와 간장을 사용한 요리는 칼로리가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서양인에게 빵은 주식이 될 수 없었다. 주식이 없다 보니 반찬으로 배를 불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기름, 마요네즈, 케첩, 소스 등이 발명된 것이다.

    유럽엔 유럽의 환경과 농업이 있고, 그에 따른 식생활이 있다. 일본과 한국에는 그 특유의 환경에서 태어난 농업이 있고 식생활이 있다. ‘후진국일수록 곡물 섭취량이 많다, 단백질을 늘려야 한다’라든가, ‘밥은 남겨도 좋으니까 반찬을 먹어라’는 구호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전후의 영양교육은 단지 ‘서양숭배사상’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옥수수 민족’이 돼버린 일본

    식생활은 이른바 ‘인체실험’의 반복이다. 부수적 문제도 있지만, 일본의 전통식은 수백 년 동안 상당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전후 음식은 불과 5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문제가 있다’ ‘풍요로운 식생활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전후의 식생활은 앞서 말한 건강문제는 물론이고 농업과 환경, 식품 안전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수입 밀가루로 만든 빵과 면을 열심히 먹은 결과, 주식인 쌀의 소비가 감소해 경작면적을 줄여야 했고 농업 전체가 쇠퇴했다. 게다가 외국산 가축사료나 사료원료는 유전자조작 검사나 농약검사도 할 수 없다.

    2000년 가을에 유전자변형 곡물을 수입한 것이 발각되면서 수입체계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1997년 일본은 1600만톤의 옥수수를 수입했다. 같은해 밀의 수입량은 약 600만톤이었고, 쌀 생산량은 약 1000만톤이었다. 옥수수와 밀가루의 수입량이 쌀 생산량의 배가 넘는다. 이와 같은 수입의존형 식생활을 계속하는 한, 앞으로도 유전자조작식품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그 많은 옥수수를 직접 먹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소나 닭의 사료로 사용된다. 밀은 빵, 과자, 면류, 스낵 생산에 이용된다. 예전에 일본인은 쌀을 먹는 민족으로 불렸다. 그러나 1980년이 되자 옥수수 수입량이 쌀 생산량을 넘어섰다. ‘옥수수 민족’이 된 것이다.

    기름진 땅, 따뜻한 날씨, 풍부하고 깨끗한 물 등 풍요로운 자연조건을 가진 일본은 1억2000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쌀이 있다. 그런데도 현대 일본인들은 쌀 생산량을 계속 줄인다. 반면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곡물시장에서 대량의 옥수수를 사들이며, 고기와 식육가공품, 우유 및 유제품을 끊임없이 먹고 있다. 그 옥수수는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제3세계 사람들의 주식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행동이 언제까지나 용서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현대의 식생활은 유전자조작 식품과 식품첨가물 등으로 인해 그 안전성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런 문제를 빼놓고 식생활을 이야기할 수 없다. 게다가 일본의 영양교육은 수입식품과 사료에 기대는 식생활을 장려해왔다. 그러한 생각이 변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우리는 우리의 식생활에 대해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내 아이가 다니는 도쿄 도내 초등학교의 급식을 보면 주식은 거의 밀가루 요리나 빵이다. 부식도 크로켓, 콘스튜, 버섯스튜, 포크 앤드 빈스(흰콩과 돼지고기로 만든 미국요리), 그라탕, 군만두, 탄두리 치킨(인도식 닭튀김) 등이다. 육류와 식육가공품, 유제품과 유지류로 이뤄진다. 이게 대체 어느 나라 식단인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5무(5無: 무국적, 무지역, 무계절, 무가정, 무안전) 식단이다.

    나는 빵을 중심으로 한 식단에 의문을 갖고 있다. 빵 자체가 좋은 재료로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동양의 전통적 미각을 해치고 식량의존도를 높인다는 거시적 문제가 있다. 하물며 방부제투성이인 오래된 밀가루에 몸에 잘 흡수되지도 않는 화학물을 첨가한 유지와 설탕으로 범벅을 한 빵이 주식이라면? 게다가 빵이 나오면 ‘반찬’으로 당연히 잼이나 버터 따위가 따라온다. 영양학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식단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사정이 조금 좋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1953년 이바라키(茨城)현에서 태어났는데, 초등학생 시절의 급식은 모두 빵이었다. 밥이 나왔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시에는 식량사정도 있고 해서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쌀 생산이 늘어도 빵 급식은 계속됐다. 지금은 주 5회 급식에서 쌀밥 급식이 2.8회(일본 전국 평균)로, 이나마도 밥이 늘었다고 감사해야 할 처지다. 학교 급식을 먹는 아이는 1000만명이 넘는다.

    가장 큰 문제는 급식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실시된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잘못된 가치가 보급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침에 빵을 먹는 집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 결과 쌀 소비는 급격히 감소했고, 쌀 생산량을 조정하게 됐다. 불과 수십년 만에 어느 나라의 식생활인지도 모르게 돼버린 가장 큰 이유는 빵 급식에 있다.

    그래도 한국엔 희망이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지금도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존재한다. 내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30개국 정도를 방문했는데, 한국에는 지난해 처음으로 찾아갔다. 일본에는 ‘하레(晴)’와 ‘케(褻)’라는 말이 있다. 하레는 특별한 날에 먹는 식사로, 새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의 행사식이다. 케는 평소 먹는 일상식이다.

    나는 건강 및 식생활 연구를 하기 때문에, 1년에 몇 번밖에 먹지 못하는 진수성찬보다는 평소에 먹는 식사에 관심이 많다. 일상식이야말로 그 나라의 음식문화와 ‘지혜’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케’를 알기란 쉽지 않다. 가령 외국인에게 일식 중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초밥, 전골, 어묵튀김’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초밥이나 전골을 매일 먹는 일본인은 없다.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 호텔에서 잠을 자고 ‘하레’를 먹는다. 그 점이 못내 아쉽다.

    지난번 한국 여행에서는 일본자연농업협회와 한국자연농업협회(회장 조한규), 그리고 경기도 원삼면에 있는 농협의 협조로 일반 가정에서 묵을 수 있어 기뻤다. 겨우 5일 동안이었지만, 그만큼 즐겁고 충실한 여행은 없었다. 손님 접대용 음식이 아닌, 한국의 일상식을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삼면에서 묵었던 곳은 주인 부부와 큰아들 내외, 그리고 두 명의 손자가 사는 집이었다. 집주인과 큰아들이 일본어를 잘했기 때문에 정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집은 상당히 넉넉한 집이었다. 방이 모두 몇 개인지 모를 정도였고, 식사는 전통식이 살아있었다. 검은 콩밥과 김치를 중심으로 한 식단에, 서양요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회사원인 장남은 서울까지 통근을 했다. 점심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사먹는다고 했다. 왜 도시락을 싸가지 않느냐고 묻자, “밖에서도 집에서와 똑같은 식사를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서울 시내에서 몇 곳의 식당에 들어가봤는데, 확실히 쉽게 밥과 김치를 중심으로 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에선 밥과 미소국 중심의 외식을 하기가 좀처럼 어렵다. 대신 햄버거나 라면, 스파게티 같은 이탈리아 음식을 파는 곳은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체류기간 중 하루는 원삼면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급식현장을 견학할 수 있었다. 급식에도 밥과 김치를 중심으로 한 훌륭한 전통식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영양사에게 물어보니, “특별한 요리는 하지 않는다. 급식은 집에서 하는 식사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 여자대학의 학생식당과 회사 연수원 식당도 견학하며 식사를 해봤다. 거기서도 비교적 국적이 분명하고 구성도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현미밥+된장국+김치… 소박한 밥상이 한국인 살린다

    <b>권장할 만한 ‘조식’메뉴의 일례</b><br>아침 : 율무된장국 - 시금치유부볶음 - 깍두기<br>점심 : 구운 현미주먹밥 - 밥에 발라 먹는 야채된장볶음 - 자투리 야채로 만든 국 - 배추김치<br>저녁 : 현미밥 - 아욱토장국 - 청어소금구이에 곁들인 무 - 밤·다시마조림(왼쪽부터)

    ‘조식’ 식단 구성, 한·일이 닮은꼴

    한국은 일본에 비하면 그나마 식생활의 서구화가 덜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급식 통계 자료를 보았는데, 한국에는 학교급식에 빵이 드물게 나오는 것 같았다. 영양사에게 직접 물어봐도 “빵이 나오는 학교는 얼마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성인층의 전통식에 대한 애착도 상당히 강했다. ‘빵은 아무리 먹어도 허전하다’거나 ‘서양음식을 먹고 나면 김치가 먹고 싶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한국도 결코 방심해선 안 될 것이다. 일본의 경우, 학교급식에 빵이 나오면서 주식이 급격히 붕괴됐다.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빵이 급식에 등장하는 순간 전통식은 순식간에 붕괴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 한국에도 기존 영양학에 대한 맹신과 ‘고단백’ ‘저염분’에 대한 집착이 있다. 전쟁 이후 미국의 식량수출정책으로 인해 급격한 식생활 변화를 겪었다는 점도 일본과 매우 비슷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대도시엔 일본과 다름없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었다. 서울 시내의 편의점은 일본의 편의점과 상품구성이 너무도 닮았다. 빵, 과자, 샌드위치, 즉석라면 같은 인스턴트 식품, 스낵, 청량음료 등이 빼곡이 진열돼 있었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일본과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지난번 한국 방문의 한 가지 중요한 목적은 한국의 장(醬)류와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김치를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맛이 산뜻하고 다양한 일본 된장과는 달리, 한국 된장은 대체로 맛이 더 구수하고 깊었다. 분명 한국의 물과 콩, 소금, 기후가 빚어낸 한국적인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의 경우는 일본식 김치인 쓰케모노보다 배추에 즙이 많고 시원하고 칼칼했다. 이 역시 한국의 풍토와 입맛에 맞게 나름대로 발전한 한국의 전통식이다.

    일본의 ‘조식’ 식단이 ‘현미밥-미소국-쓰케모노’라면 한국의 조식은 ‘현미밥-된장국-김치’다. 기본에 있어 일본과 한국은 거의 동일하며, 구체적 재료에 있어서는 그 지역의 것을 쓰면 된다. 따라서 내가 제안하는 조식의 5대 원칙을 한국 사람들이 적용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조식의 5대 원칙은 식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천할 마음만 있다면, 오늘이라도 당장 실행할 수 있다.

    한국인을 위한 조식의 5대 원칙

    ●밥-반찬-간식의 비율은 60:20:10

    한국은 쌀이란 귀한 주식 문화를 갖고 있다. 주식이 견고하면 웬만큼 식생활이 방향을 잃어도 기둥까지 뽑히지는 않는다. 단 쌀을 먹되 농약을 치지 않은 현미를 먹자. 현미가 거북하다면 5분도미 같이 덜 정제된 쌀에 잡곡을 섞는 게 좋다.

    밥을 먹어서 생기는 또 다른 부수적 효과는 자연히 채소와 콩류, 어패류, 해조류를 많이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빵을 먹어서는 이런 음식을 좀처럼 먹기 힘들다. 밥이 밥상의 중심에 놓이면 자연히 반찬 수나 양이 줄게 된다. 된장국에 김치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은 거뜬하고, 그 외에 가끔 생선구이가 오를 수 있다.

    된장국에 넣는 재료라든가 그 외 다른 반찬으로는 제철 채소를 넣자. 즉 겨울엔 무나 배추, 여름에는 토마토·가지·호박, 봄에는 쑥·냉이 같은 채소를 많이 먹자. 밥을 중심으로 했을 때, 밥-반찬-간식의 비율은 60:20:10 정도가 이상적이다.

    ●전통 발효식품을 꼭 먹는다

    된장, 간장, 김치, 청국장(일본의 경우 낫또)…. 이런 전통 발효식품에는 우리 몸에 유용한 미생물이 존재하며, 모두 식물성 재료로 만들어진다. 우유로 만드는 요구르트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설탕이 잔뜩 들어간 요구르트와 달리 전통 발효식품엔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다.

    ●설탕과 유지류의 섭취를 줄인다

    이것은 요리 방법의 문제이기도 하다. 튀김이나 볶음에는 당연히 정제한 기름을 쓴다. 이 과정에서 몸에 나쁜 변성지방이 생기고 몸에 흡수되면 생식기 이상이나 성인병을 일으킨다. 설탕 역시 자연식품이 아닌 정제식품이므로 우리 몸에 맞지 않는다.

    ●빵을 상식하지 않는다

    주식을 밥으로 한다는 것은 빵을 상식하지 않는다는 것과도 통하지만, 다시 한번 단단히 확인시키는 의미에서 꼽아보았다. 빵에는 유지류나 설탕이 잔뜩 포함돼 있으므로 과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베이킹파우더나 유화제 등 식품첨가물의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 섬유질을 섭취한다면서 빵과 곁들여 먹는 샐러드는 마요네즈로 범벅이 돼 있다.

    ●액체로 칼로리를 섭취하지 않는다

    탄산음료, 유산균음료, 주스, 캔커피, 우유…. 주변엔 칼로리가 든 액체음료가 넘쳐난다. 동전만 있으면 길모퉁이의 어느 자판기에서나 쉽게 살 수 있고 간편하게 마실 수 있지만, 씹을 필요가 없는 음료로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 인간의 몸은 씹을수록 타액 분비가 촉진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타액이 소화효소 분비나 입 안의 살균 등 다양한 작용을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마시는 것은 물이 기본이며, 그 외의 것을 마셔야 한다면 보리차나 엽차 등 칼로리가 없고 몸에 자극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

    일본은 최근 50년 동안 잘못된 식생활교육을 했다. 그 결과 건강문제뿐 아니라 식량, 농업, 환경 등 다양한 문제가 나타났다. 정말 이대로 좋은 것일까 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나 자신도 이런 의문에 대해 50권 이상의 책을 썼다. 역시 뭔가 이상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내가 쓴 책 ‘조식을 권합니다’ 시리즈는 밀리언셀러가 됐다. 그 중 ‘몸이 원하는 밥, 조식’(디자인 하우스)은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그러나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대학이나 전문대학에서는 서양을 이상(理想)으로 한 영양교육이 이뤄진다. 내 책을 비판하는 영양학자의 책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국적 없는 식생활이 그만큼 진행돼버렸고, 그런 식생활을 지지하는 식품업자도 많아졌다. 영양학보다 경제학적인 문제가 된 것이다. 앞으로도 전통식의 재검토를 주장하겠지만, 점점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서구세계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영양학의 본거지인 서구에서 기존 영양학에 대한 반성으로 생태영양학(ecological nutrition: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관점에서 인체 영양학을 재해석한 대안학문)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타국에는 농약을 친 밀가루, 유전자변형 옥수수를 팔지만, 자국의 식생활만큼은 철저히 보호하고 지키려는 것이다.

    한국 초등학교의 급식은 전통식이 나오는 훌륭한 급식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우유가 나오는 것은 일본과 다르지 않았다. 우유엔 영양소 표시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칼로리(열량)’와 ‘단백질’, ‘칼슘’이었다. 일본의 급식과 완전히 똑같았다. 일본에 있는 대다수 학교에서는 밥과 반찬, 구운 생선과 함께 우유가 나온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 우유를 마시는 사람은 좀처럼 없는데도 말이다.

    내가 견학한 한국의 학교에서는 급식시간이 아닌 때에 우유가 나왔다. 밥과 김치에 우유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 우리가 찾아간 원삼면의 아이들은 집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아이들에게 맞추기 위해 극단적인 서양식 식단을 만들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도시 아이들의 경우는 또 다르지 않을까? 실제 식단은 훌륭했지만, 그 밑에는 ‘서양의 식생활이 이상적’이라는 영양교육이 깃들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식(食)’의 문제는 건강의 문제이자 식량, 농업,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영양교육에 대해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내 걱정대로 일본의 전철을 밟는다면 아차 싶을 때 너무 늦을 것이다.

    한국도 수백 년간 이어온 전통식을 기본으로 ‘민족영양학’을 재구축하기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것을 제대로 알려주는 ‘식생활교육’을 시행해 몇 년이 지나도 다시 가보고 싶은 한국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