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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경영일기

熱砂에 바친 젊은, ‘熱情 경영’ 싹 틔웠다

문우행 SK건설 대표이사

  • 글: 문우행 SK건설 대표이사

熱砂에 바친 젊은, ‘熱情 경영’ 싹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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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장벽 또한 해외 근무를 힘들게 했다. 나는 대학 시절에도 영어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영어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영어 공부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KOCC에 입사하자마자 해외 공사현장에서 근무하게 되다보니 당장 현지 인력과의 의사소통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말이 안 통하는 것처럼 답답한 일도 없다.

궁리 끝에 택한 수단이 ‘페이퍼 커뮤니케이션(paper communication)’. 말이 통하지 않으면 펜을 꺼내들고 필담이라도 해서 적극적으로 뜻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보면 내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 창피할 때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뭐든지 제대로 배우려면 부끄러워 해선 안된다. 건설분야의 어려운 전문용어 등 현장에서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날밤 숙소로 돌아와 영어사전을 뒤적거리며 익혔다.

지금도 나는 어려운 상황과 맞닥뜨리거나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려면 우선 상대방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 외국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 곧잘 내 성(姓)을 빌려 농담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를 ‘문(Moon)’이라고 소개한 다음 ‘in the sky’라고 덧붙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딱딱한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예외없이 웃음을 지으며 마음을 연다. 물론 나 또한 상대에게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SK건설과 인연을 맺은 것도 중동에서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5년 넘게 근무하며 지역전문가로 자리잡아가던 어느날, 당시 선경건설(現 SK건설)의 조종태 사장이 중동시장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았다가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조사장에게 자동차를 내주고 길 안내를 해주며 중동 현지 사정과 정보를 들려줬다. 그때 조사장이 나를 스카우트할 속셈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얼마 후 휴가를 얻어 잠시 귀국했을 때 조사장이 나를 불러서는 선경건설로 오라고 제의했다. 그 무렵 선경건설 배정화 부장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지사로 세 차례나 나를 찾아와 선경 입사를 권했다. 그때만 해도 선경건설은 신생 회사(1977년 설립)였기 때문에 막상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보니 여간 고민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내 30대 시절이 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라는 판단이 섰다. 결국 다시 한번 새롭게 도전한다는 자세로 1981년, 과감하게 선경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구원투수’, 다시 사우디로

중동이라면 지긋지긋했기에 선경에 입사할 때는 해외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그 조건의 ‘유효기간’은 6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입사한지 반 년 만에 다시 사우디아라비아로 발령이 난 것이다.

그런데 당시는 그 요란하던 중동 건설 붐도 서서히 끝물이 되어 가던 시점이었다. 내게 맡겨진 것은 일종의 ‘구원투수’ 역할이었다. 그 무렵 선경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벌이던 병원공사가 갖가지 소송에 휘말리면서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현지에 부임해 상황을 파악해보니 다른 것은 제쳐놓고 당장 직원들의 의식주 해결을 위한 자금을 융통하기도 막막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해결방안을 모색한 끝에 어렵사리 실마리를 찾아냈다. 소송과 관련해 압류된 30만달러 상당의 자산과 80만달러의 이행보증금만 돌려받으면 발등의 불을 끌 수 있을 듯했다. 압류 건(件)은 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직접 맡기로 했고, 이행보증금 건은 부하 직원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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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우행 SK건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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