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다자주의 안보틀은 비현실적

  • 글: 이정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cmlee@yonsei.ac.kr

    입력2003-03-24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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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외교전략은 한반도 통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 독일이 확고한 미·독 공조로 통일을 쟁취했듯, 우리도 공고한 한·미 공조로 통일의 길을 닦아야 한다.
    다자주의 안보틀은 비현실적

    지난 3월13일 부시 대통령과 통화하는 노무현 대통령.한국은 미국과 정상회담 외에 정례적인 외무·국방 장관회담을 가져야 한다.



    2003년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앞으로 5년 간 국정과 외교안보를 총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그의 앞에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체제 구축과 북한 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이란 과제가 놓여 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2020~30년까지 발생할 다양한 전략적 추이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한국형 외교안보정책이 뿌리 내리기를 기대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하기 전부터 외교안보 전략, 남북관계 비전, 한미관계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 등 국가안보와 외교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반도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대외적 변수들을 고려해 보면 새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핵심 외교안보 어젠더들은 상당 부분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전후해 표출된 반미감정, 제2의 북한 핵위기, 그리고 불안정하게 비치는 한국의 대외신인도 등 당면한 문제들은 단순히 정책방향의 수정작업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물론 취임한 지 한 달밖에 안된 상황에서 완벽한 정책대안과 총괄적인 국가안보 청사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한·중 안보협력의 한계



    지난 3월11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노대통령은 나라의 평화와 안정을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하게 유지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리고 3월13일의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는 평화를 지키는 길은 튼튼한 안보이며 그 어떠한 도전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이날 그는 취임 이후 첫 한미정상간 전화통화를 갖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 확인과 확고한 한미동맹 관리를 위한 양국 정상의 노력강화, 그리고 조기 한미정상회담 실현을 언급했다. 이는 그동안 노출되어 왔던 한미간의 불협화음을 부분적으로 해소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핵심적인 관건은 이러한 새 정부의 의지를 정책화하는 것이며 특히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한미관계를 지속적으로 보전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형성하는 것이다.

    전방위적 개혁을 기치로 내건 새 정부는 한반도의 3단계 평화구축 방안을 발표하는 한편 동등한 한미관계 설정을 외교정책의 핵심적인 과제로 선정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빚어진 한미간 전례 없는 불협화음과 이에 따른 총괄적인 여파관리(consequence management)가 문제가 되고 있다.

    한미관계가 한국 외교안보에서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은 전쟁과 평화, 번영과 성장, 그리고 남북 화해와 통일 등 거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동맹관계를 근본적으로 수정한다면 그간 한국안보에서 미국이 한 역할을 대체할 방안을 필수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방안은 국방비를 현재의 국민총생산(GDP) 대비 2.7%에서 2∼3배 증가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아니면 한국외교의 기본 방향을 완전 재정립해 중국과의 다각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동북아에서도 ‘유럽 안보 및 협력 기구(OSCE)’와 유사한 다자안보 협력기구에 동참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 한국안보를 담보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다. 중국과 북한간에 동맹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중간의 안보협력은 한계가 있다. 또한 현재 동북아에서 다자적 안보협력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 안보를 다자주의적 틀 속에서 보장한다는 것은 극히 비현실적인 대안이 아닐 수 없다.

    한미관계의 향후 관리는 핵심적인 외교안보 과제이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바로 대북 정책이다. 특히 북한의 핵무장 계획과 전반적인 대남 전략을 평가하는 자세에 있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의 핵무기 계획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천명했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러나 북한이 김일성 사후 추진해온 북한형(型) 대전략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북한 핵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극히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북한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대미·대일용 협상 카드와 국제사회로부터 좀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면 북핵 문제는 의외로 빨리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쌍무적 협상을 계속 보류하고 있으나 다자주의적 틀 속에서 북미대화와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북한이 핵무기 계획을 경제원조와 안전보장을 확보하는 대가로 포기할 의도를 갖고 있다면 북미회담은 긍정적으로 풀릴 수 있다. 반면 북한이 끝내 핵무기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우라늄 농축 강행,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혹은 지하 핵실험 같은 레드 라인(red line)을 넘으면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미는 평화적 해결 방안을 총론으로 끌고 가지 말고 빠른 시일 내에 각론화할 필요가 있다. 한미간의 긴밀한 정책협의를 기반으로 ‘공통적이고 합동적인 로드맵(common and joint road map)’를 제시해야 한다.

    한미관계와 남북관계가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적인 기둥이지만 어느 정도의 정치적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즉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남북문제와 동맹관리를 유지하기 위한 한미관계는 이상과 현실 양면의 동시 고려라는 한국 고유의 ‘전략적 고민’을 낳는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시점에 놓여있다.

    물론 선택이라고 해서 어느 한 쪽을 포기할 수는 없으나 한국의 중장기적인 국가이익과 통일한국을 구축하기 위한 대전략 차원에서 무엇이 핵심적인 이익인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미간에 갈등이 고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으나 이미 미국은 주한미군 문제를 포함한 대(對)한정책 검토를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3월6일 도널드 럼스펠트 미 국방장관은 주한미군과 관련된 다양한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재배치와 축소방안도 포함돼 있다고 언급했다. 물론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주한미군의 조정문제를 공식적으로 접수한 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고건 국무총리도 북핵위기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재배치, 혹은 감축 문제를 논한다는 것 자체를 유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당 및 정부 인사들도 주한미군의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한강 이북에 배치된 미 2사단을 후방으로 재배치한다면 이는 미국이 북한의 핵 시설을 군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전초단계일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미국에 부정적인 신호로 간주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을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해도 한국안보의 일차적 책임과 임무는 한국정부와 한국군에 있으므로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에 한미 연합전력 차원에서의 전략적 가치를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애치슨 라인의 교훈

    일부에서는 주한 미지상군 전면 철수도 예측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대(對)동북아 군사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6·25전쟁 발발 전인 1950년 1월에 설치된 애치슨 라인 (Acheson Line)은 한국이 미국의 동아시아 방위 노선에서 사실상 배제되었다는 인상을 남겼다. 그 결과 북한과 소련은 남침을 해도 미국이 한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반세기 전의 상황과 현재의 동북아 전략 구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위상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면 일본의 상대적인 전략적 가치는 강화될 것이다. 미 국방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가칭 동북아사령부 (Northeast Asia Command)도 일본에 설치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미국이 일본에 동북아사령부를 설치한다면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희석될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으로 미국은 동북아에서는 일본, 그리고 동남아와 서태평양에서는 호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아시아 전선을 설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부시 라인(Bush Line)’이 새롭게 형성되고 일본이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핵심적인 기둥으로 자리잡으면서 미·중·일 3각 구도로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재편성될 수 있다. 그럴 경우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유지해온 해양전략(maritime strategy)의 틀 속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대표적인 대륙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다양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이 동북아사령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공식 발표는 없었다. 따라서 당장 이같은 구상이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주한미군의 전반적인 역할 문제는 1980년대부터 미군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군사혁신(RMA), 시스템 통합(System Integration)과 네트워크 전쟁(Network Warfare) 그리고 통합 전투체제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전쟁양상(1990년의 걸프전쟁, 1999년의 코소보 작전, 그리고 2001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작전) 등을 고려해 보면 재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미동맹 문제는 한국안보와 직결돼 있다. 한반도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독일 통일을 실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서독의 외교와 미독(美獨)공조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와 (아버지)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독일 통일의 공동주연이었다면, 공동조연은 최장수 독일 외무장관을 지낸 겐셔와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동의가 없었다면 독일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독의 콜과 겐셔 그리고 미국의 부시와 베이커라는 투 톱이 없었다면 독일 통일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1980년대 말부터 급속도로 진행된 옛 소련과 동구권의 정치적 변화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으며 공산권 체제붕괴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1년 후 동서독을 포함한 주변 4강인 미국·소련·영국·프랑스를 축으로 한 이른바 ‘2+4 회담’을 계기로 동서독 기본협정이 체결되면서 동서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결국 서독과 미국의 합동 대전략(Joint Grand Strategy)으로 전후 유럽질서는 근본적으로 재편되었다. 통일 독일을 가능케 했던 원천적인 힘은 바로 빈틈없는 미독 공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 총리의 냉철하고 철두철미한 외교정책 특히 대미 정책이 큰 기여를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표출된 동서독 양 지역의 국민정서(national sentiment)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통일을 위한 냉철한 로드맵(road map)을 설정한 점이 바로 통일의 지름길이었다.

    1989∼90년 유럽에서 외교·안보 쟁점은 통일독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잔류 여부였다. 소련은 이를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미국의 핵심적인 우방국인 영국과 프랑스도 내면적으로 독일의 조기 통일을 반대했다.

    이와 같은 반대에 봉착한 콜 총리와 부시 대통령은 ‘2+4 회담’의 틀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1+1 회담’, 즉 서독과 미국이 공통적인 외교전선을 구축해 소련·영국·프랑스를 설득하고 동시에 이 국가들의 반대를 초월하는 외교능력을 발휘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 및 개방 정책이 독일 통일 과정을 촉진시킨 중요 변수였다면 독일통일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빈틈없는 미독공조는 핵심변수였다.

    동독은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최전선이었던 만큼 그 전략적 가치는 절대적이었다. 동독에 주둔한 소련군(Group of Soviet Forces Germany)은 동독군의 두 배인 38만명이었다. 소련군은 20개 사단, 6000여 대의 탱크, 1500여 대의 전투기(이중 80%는 전술핵무기를 투하할 수 있는 능력 보유), 특수부대(Spetznaz) 등을 동독에 주둔시키고 있었다.

    통일독일 NATO 잔류 배경

    1990년 2월10일 이러한 상황 속에 콜·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에서 만났다. 그리고 콜 총리는 “저는 오늘 모든 독일 국민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저는 독일 국민들이 함께 한 국가에 생활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독일 국민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합의했습니다. 오늘은 독일을 위한 참으로 위대한 날입니다”라고 천명했다.

    소련이 통일독일의 NATO 잔류를 받아들인 진짜 이유는 미국의 확고한 입장 표명 때문이었다. 1990년 6월8일 개최된 미독 정상회담에서 콜 총리는 “통일된 독일의 NATO 잔류문제에 관한 한 부시 대통령과 저의 견해는 완전히 일치한다”고 밝혔다. 부시 역시 “우리는 독일과 함께 통일독일의 완전한 NATO잔류를 지지하며 이 점에 대해 한치의 흔들림이 없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이 소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누차 강조한 결과, 고르바초프는 통일독일의 NATO 잔류를 승인했을 뿐 아니라 동독 주둔 소련군을 완전 철수시켰고 주독미군의 구 동독 지역 파병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독일의 통일과정과 한반도 통일과정은 다른 궤도에서 관찰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정치적·군사적 그리고 경제적 배경의 차이점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북통일이 어느 시점에 그리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실현될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한국의 외교전략은 한반도 통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통일과정에서 분출될 다양한 정치·외교·군사·국제법·경제·사회적 문제점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의 외교능력은 독일 통일 과정에서 발휘된 서독의 외교능력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의 안보합의(security consensus)는 지난 5년 간 매우 놀라운 속도로 변화했다. 특히 북한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상당부분 희석됐다.

    안보합의를 둘러싼 남남갈등은 새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때문에 우리외교의 총괄적인 역량, 국가안보 전략과 비전, 전략정보 능력, 한미공조의 미래, 대주변국 외교, 그리고 남북관계의 향방 등을 감안하면 다가오는 한반도의 구조적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한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또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통일을 원만히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서독은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미독공조로 극복했다. 미국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계기로 탈냉전적 완충지대를 설정했다고 보았을 때 서독 통일외교의 핵은 다름아닌 대미외교였다고 확신할 수 있다. 서독이 보여준 외교와 통일의 역학관계는 이미 통일과정에 진입해 있는 한국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다자주의 안보틀은 비현실적

    독일통일의 주역인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과 베이커 전 국무장관, 서독의 콜 전 총리와 겐셔 전 외무장관(왼쪽부터). 서독은 공고한 미·독 공조로 주변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이루었다.

    향후 5∼10년간 한반도 안팎의 상황을 전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한국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적 촉진 요소(strategic drivers)들을 감안한다면 다음과 같은 변수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현재 국제질서가 미국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고 미국의 전반적인 영향력은 최소한 2050년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라크 사태를 둘러싼 반전 데모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 미국의 전반적인 투사능력에 도전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물론 9·11테러와 같이 비대칭적인 분쟁과 극단적인 테러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방위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분명해졌지만 현재 미국의 전반적인 영향력과 힘에 도전할 수 있는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2003년 2월 현재 집계된 미국의 국방예산은 3790억달러인 반면 미국을 제외한 전 NATO 회원국(영국, 독일, 프랑스 포함)과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이스라엘, 그리고 남북한의 방위비를 더한 금액은 3520억달러이다. 전세계 주요 국가들의 국방예산을 더한 것보다 미국의 국방예산이 270억달러 더 많다. 미국과 이 국가들과의 군사력의 격차는 점차 커지는 추세에 있다(미국의 2003년도 국방예산은 핵무기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에너지성이 요청한 190억달러를 포함하면 총 3990억달러이다. 또한 이라크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 국방부는 200억달러를 추경으로 신청할 계획이어서 미국의 실질적인 국방예산은 최소 4190억달러로 집계된다).

    미 국방부는 2004년부터 국방예산을 단계적으로 늘려 2009년엔 총 4842억달러로 확대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과의 군사적 협력과 상호지원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한미공조는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군사적 시나리오들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이므로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둘째, 한미관계 못지않게 중요한 변수는 총괄적인 위기관리 능력이다. 북핵 문제가 앞으로 어떠한 형태로 해결될지는 불분명하나, 북한은 다양한 경로와 방법으로 노무현 정부를 시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강도 분쟁은 아니더라도 비전투적 군사작전(Military Operation Other Than War: MOOTW), 고도의 심리전, 그리고 정치적 선동·선전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지난 대선을 전후해 순항 미사일 발사 실험, 전투기의 한국영공 침투, 미국 정찰기 추적 등 군사적 행동을 한 바 있다. 이라크전쟁이 발발하는 시점에 맞추어 새로운 군사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

    통일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은 남한과 평화공존의 원칙을 고수하고 제반의 경협 프로그램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도의 심리전과 대남 공작 등의 공세는 늦추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미간 정책적 갈등이 심화되면 북한은 남남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작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궁극적으로는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위한 대(大)민족공조를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이는 한미정상회담 이후일 것이다. 그 경우 북한은 6·15선언보다 강도 높은 남북간 정치적 합의를 위해 일시적으로 핵문제에서 전술적인 양보를 할 수도 있다. 그 경우 한국정부는 이를 평화구축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의 근본적인 대남전략이 수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과 핵무기 개발계획은 북한체제의 존립과 직결되어 있는 만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한반도의 냉전 구조를 군비통제 활성화를 통해 해체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한국정부와 구체적인 군비통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미 김대중 정부에서 남북국방장관 회담이 성사된 전례가 있는 만큼 한국정부도 능동적으로 군비통제회담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관계를 희석하거나 약화하면서까지 남북한 군비통제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1990년 11월19일 체결된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간의 유럽 재래식무기 군축조약(Conventional Forces Europe Treaty)은 참고할 것이 많다. 재래전력을 소련-바르샤바조약기구만큼 유지할 수 없었던 미국과 NATO는 비대칭적인 재래식 군사력 감군 조치를 꾸준히 강조했다. 소련은 1973년 10월부터 진행된 이 회담의 전신인 상호균형전력감축(Mutually Balanced Force Reduction : MBFR)회담에서 자국에 유리한 대칭적 감군 원칙을 강조했으나 미국과 NATO의 반대로 특별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이 철수하면서부터 소련은 이 협상에서 비대칭적인 협상원칙을 수용했다. 그 결과 유럽 재래식 무기 군축조약이 체결되었다. 남북한간 재래식 군축회담이 활성화된다면 한국도 이를 참고해야 할 것이다.

    셋째, 21세기형 한미동맹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여러 형태의 공식적, 비공식적인 방안들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한미군 위상문제를 포함해 보다 큰 틀에서 새로운 한미동맹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과 미국은 현상유지를 바탕으로 제한적 현대화라는 전략으로 동맹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제도화된 협의기구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

    2003년 7월이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지 만 50주년이 된다. 그런 만큼 여러 형태의 행사들이 계획되고 있는데, 양국이 긴밀히 협의하여 가칭 ‘21세기 한미관계 공동선언’을 위한 준비를 해야된다고 본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 1996년 4월17일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채택함으로써 소련 붕괴 이후의 미일안보관계를 재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전략적인 역할을 감안할 때 동일한 형태의 공동선언을 채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전략적 역할과 임무, 주한미군의 위상정립, 그리고 새로운 정치·군사적 존재이유(raison d’etre)를 명시할 필요는 있다.

    이와 함께 새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연례안보회의의 틀을 유지하되 한미간의 2+2(외교·국방장관) 회담을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즉 미-일과 미-호주처럼 한미간에도 외교·국방장관 회담이 있어야 한다. 북핵문제가 앞으로 다자주의적 틀 속에서 협의될 경우 한미간 공통된 전략과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의 최우선 과제는 한미관계를 현대화·성숙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대등한 관계를 희망할수록 양국의 역할과 임무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탈냉전적 사고와 정책을 추징하려는 새 정부의 구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화되겠지만 한반도가 지구촌의 마지막 냉전지대로 남아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북한이라는 특이한 국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탄력적 외교와 자주적인 국방태세를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 하지만 이미 통일과정에 진입해 있는 상태에서 통일의 지름길은 바로 강력한 한미동맹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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