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급성장 감당할 경험도, 역량도 없었다”

다시 벤처로 돌아온 김진호 전 골드뱅크 사장

  • 글: 허헌 자유기고가 parkers49@hanmail.net

    입력2003-03-24 18: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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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드뱅크를 설립해 벤처 대박을 터뜨린 김진호 전 사장.
    • 그러나 골드뱅크 신화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변했다. 감옥까지 다녀와 한동안 칩거했던 그는 2000년 일본에서 포털 사이트 회사를 창업하는가 하면, 지난해 말에는 코스닥 업체를 인수하면서 비즈니스를 재개했다. ‘평생 CEO’가 꿈이라는 그의 반성과 야심을 들어봤다.
    “급성장 감당할 경험도, 역량도 없었다”
    코스닥 지수 38.19(3월6일). 국내 벤처업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숫자다. 2000년 초 한때 300선에 근접했던 걸 떠올리면 아무리 ‘신경제’의 버블이 심했다고는 하지만, 불과 3년 전보다 80% 넘게 하락한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찾아 대기업을 떠나 벤처업계로 모여든 수많은 직장인들이 연어떼처럼 대기업으로 복귀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거품은 꺼졌고, 남은 자들은 그저 허탈하다. 국내외 경제 전망까지 어둡다 보니 서울 테헤란밸리에선 좀체 봄 기운을 느낄 수 없다.

    벤처라고 하면 아무 조건 없이 프리미엄을 얹어주던 시절, 기개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이른바 ‘닷컴’ 사장들도 요즘은 행적을 찾기 어렵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 NHN 이해진 사장,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 등 불과 몇몇이 닷컴주를 리드하고 있을 뿐이다. 새롬기술 오상수 전 사장, 프리챌 전재완 전 사장 등 대표적인 벤처 1세대들이 줄줄이 감옥 신세를 졌다.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다 보니 코스닥 시장은 갖가지 비리로 얼룩진 거대한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 같다.

    물론 코스닥 시장의 붕괴와 닷컴 기업들의 몰락을 벤처 1세대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건전한 기업을 육성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벤처업계를 투기꾼들의 놀이터로 만든 정부 당국의 안일한 행정, 정치권과 일부 몰지각한 벤처기업주들의 결탁,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모럴 해저드 등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단기 차익 실현에 급급해 벤처기업가를 달달 볶아댄 벤처 캐피털과 개인 투자자들도 코스닥 시장을 황폐하게 만든 요인의 하나다.

    한때 닷컴 기대주로 증권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골드뱅크 김진호(金鎭浩·35) 전 사장은 그의 삶 자체가 우리 벤처업계의 축소판이다. 그는 골드뱅크를 시가총액이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거대 기업으로 키워냈지만, 결국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닷컴기업의 꿈을 일구려고 노력했으나, 골드뱅크 시절의 횡령 혐의로 구속되는 등 쓴맛을 봤다.



    과연 그는 이같은 벤처기업들의 몰락과 희망을 찾기 어려운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조용히 재기를 노리고 있는 그를 만나 지난 7년 동안의 사업 여정과 반성, 그리고 희망을 들어봤다.

    배임은 무죄, 횡령만 인정

    -지난해 두 달 동안 수감됐는데, 현재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1월10일 서울지법 합의23부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배임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횡령죄는 인정했어요. 횡령에 대해서는 제가 실수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이 부족해 실수를 한 것이니 법적인 책임은 지겠습니다. 그런데 검찰에서 항소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저도 항소했고, 지금은 2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배임죄는 어떤 내용입니까.

    “1999년 봄 김모 변호사가 골드뱅크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투자하고 싶다는 의향을 전했습니다. 운영자금이 모자랄 때라 여간 반갑지 않았어요. 그는 현금 2억원과 건물 14억원 등 총 16억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저는 두 차례에 걸쳐 전환사채를 발행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8억원어치의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난 직후 골드뱅크 주가가 한 달 사이에 무려 40배나 올랐어요. 주가가 너무 올라 두 번째 전환사채를 도저히 발행해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변호사에게 ‘주가가 비정상적이니 발행시기를 미루자’고 부탁했죠. 저는 가격만 정하고 발행일자는 확정하지 않은 백지 전환사채를 발행해주기로 했고, 공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된 부분은 무엇입니까.

    “검사는 ‘김변호사와의 전환사채 발행 계약을 파기하고 위약금 5000만원만 주면 될 텐데 왜 굳이 백지 전환사채를 주겠다고 약속했느냐’고 지적하더군요. 제가 회사의 손실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임죄에 해당된다고 했어요. 저도 위약금만 주면 된다는 조항은 알고 있었지만 약속을 깰 수 없었습니다. 기업이 신뢰를 잃는다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자고 한 것이 백지 전환사채였습니다. 결국 김변호사에게 40억원을 물어주고 전환사채 발행은 없었던 일로 했죠. 40억원 중 제가 28억원을 댔고, 회사가 12억원을 지급했습니다.

    -횡령 건은 유죄가 인정됐는데요.

    “그건 제가 잘못한 겁니다. 주총(2000년 3월) 때 제가 의뢰한 변호사 비용 5억원을 회사가 부담했어요. 제가 내야 하는 비용인데, 솔직히 그땐 그래야 된다는 걸 몰랐습니다. 또한 골드뱅크가 계열사인 골드투어에 5억원을 지원할 때, 당시 류정숙 골드뱅크 부사장(김 전 사장의 부인) 명의로 돈을 빌려 투자했습니다. 결국 제 아내가 5억원을 빌린 셈이 됐죠. 이와 관련해서는 제가 앞으로 2년간 12억원(변호사 비용 및 빌린 돈 원금 10억원과 이자 2억원)을 코리아텐더에 갚기로 합의했습니다.”

    “빚을 갚고 싶다”

    -그간 마음 고생이 심했겠군요.

    “세상이 제게 많은 기회를 주고 투자까지 했지만, 그만한 성과를 돌려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입니다. 골드뱅크 김진호에게 거는 기대는 엄청났죠. 어느 재벌도 그런 기대를 안고 성장한 경우는 없을 겁니다. 거기에 부응하는 성과를 못 냈으니 부채감이 크죠. 그 빚은 어떻게 해서든지 갚고 싶습니다. 저에 대한 세상의 선입견이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연한 결과예요. 이런 대접을 받아도 당연해요.

    다만 좀 서운한 것은, 앞으로 제가 60년 동안 CEO를 할 것인데, 그래서 두고두고 이 빚을 갚고 싶은데, 그리고 결코 그것을 피하고 싶지 않은데도 세상이 나를 다른 각도로는 봐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은 골드뱅크에서 ‘코리아텐더’로 회사 이름이 바뀌었지만, 1997년 김사장이 세운 골드뱅크는 그를 일약 벤처업계의 ‘스타’로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그를 ‘실패자’로 추락시킨 것도 골드뱅크였다. 그는 하루아침에 골드뱅크를 시가총액 2000억원대의 기업으로 키웠지만, 또한 하루아침에 골드뱅크를 떠나야 했다. 닷컴 붐이 절정에 이른 2000년 초, 그가 스스로 일군 회사를 나오자 그 배경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언론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이렇다. 골드뱅크 주주총회를 한 달쯤 앞둔 어느 날 김사장은 한 일간지에서 ‘골드뱅크 경영권 인수 시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골드뱅크의 대주주인 릴츠펀드가 골드뱅크 경영권 인수를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적대적 M&A는 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었고, 김사장은 그 사실을 몰랐다. 이후 그는 “릴츠펀드의 배경엔 재벌가의 손녀가 있다”고 주장하며 골드뱅크 M&A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려 했다. “내 경영능력에 문제가 있다면 전문 경영인을 세우고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급해진 김사장은 릴츠펀드의 대주주이자 당시 중앙종금 사장이던 김석기씨를 찾아갔다. 김석기 사장만 그의 편을 들어주면 표 대결에서 이길 수 있었으나, 김사장은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결국 표 대결로 가야 했다. 당시 주총장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닷컴 기업 최초의 M&A 현장을 취재하려고 북새통을 이뤘다.

    -왜 갑작스럽게 골드뱅크를 떠나야 했습니까.

    “코리아텐더 유신종 사장과 제가 주총장에서 표 대결에 들어가기 전에 경영권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저는 유사장에게 공동경영을 하자고까지 얘기했는데, 유사장은 제가 나가야 한다고 했어요. 유사장을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그가 묵던 호텔로 뻔질나게 찾아갔죠. 주총 전날과 당일 아침에도 만났어요. 그러나 유사장은 완강했습니다. 제 변호사는 ‘표 대결로 가라’고 조언했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커뮤니티’가 생명인 회사가 표 대결까지 가서 둘로 나뉘면 끝장날 거라고 생각했죠.

    서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자 소액주주 대표가 합의를 보라고 의견을 냈습니다. 그래서 유사장과 저는 주총장 구석의 작은 방으로 옮겨 얘기를 나눴지만 서로의 입장만 재확인했을 뿐입니다. 결단이 필요했어요. 성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판결이 생각나더군요.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두 여인에게 칼로 아이를 둘로 갈라 하나씩 나눠가지라고 한 판결말입니다. 저는 아이를 포기한 여인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골드뱅크를 둘로 나눠 표 대결에 부치기보다 우리가 골드뱅크를 포기하는 쪽을 택한 겁니다.”

    “급성장 감당할 경험도, 역량도 없었다”

    비젼텔레콤 직원들과 함께한 김진호 사장(앞줄 맨 왼쪽)

    -결과적으로 골드뱅크 경영에 실패했는데, 무엇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까.

    “기업의 성장, 그리고 사장으로서의 제 지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죠. 기업인으로서 갖춰야 할 역량과 경험이 모자랐습니다. 13개나 되는 계열사를 뒀고, 자기 분야에서 앞섰다고 자부하는 기업들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는 자부심은 있습니다. 하지만 계열사들을 조율하고 통제하는 데 실패했어요. 회사 창업 1년8개월 만에 상장했는데, 상장한 지 1년 만에 시가총액이 몇천억원 규모로 커졌습니다. 그 과정을 감당하기가 너무 벅찼어요.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죠.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제게 닥친 사회적 기회가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했어요. 그저 얼떨떨했습니다. 저의 미래에 대한 신념이 그렇게 빨리 돈으로 연결될 줄 몰랐어요. 갑자기 다가선 기회였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때로는 주위의 조언이 회사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고….”

    -누가 악영향을 끼쳤다는 얘깁니까.

    “당시 고위 임원 중에는 회사 안에 파벌을 만들고 회사를 분열시킨 사람도 있었어요. 과거에 대기업에 있으면서 익힌 생존원리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어요. 그가 해주는 말이 제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도 구별하기 힘들었어요. 그런 것은 실패를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조직과 사회의 기대는 저 한 개인의 성장속도를 추월했습니다. 그 틈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몰랐어요. 제가 다시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스태프들의 주장이 스태프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회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 이익이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 “골드뱅크가 기술개발은 제쳐두고 회사 확장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며 벤처기업답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저는 골드뱅크가 인터넷 사업을 한다거나 기술개발에 목숨을 건 회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골드뱅크는 인터넷을 이용한 마케팅 회사였어요. 서울 코엑스에서 국내 최초의 인터넷 마케팅 세미나를 열기도 했습니다. 벤처기업이 왜 기술개발을 하지 않느냐, 왜 문어발식 확장을 하느냐는 비판을 들으면 ‘우리는 이발사를 지향한다’고 답했습니다. 나는 가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다, 왜 벤처기업이 가위만 만들어야 하나, 이발사는 머리만 잘 깎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죠.

    뛰어난 이발사가 되려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전직원이 MBA 정도의 경영지식과 마케팅 안목을 키우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를 포함해서 회사 안에 체계적으로 경영학이나 마케팅을 공부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기왕 공부를 할 바에는 제대로 하자고 했습니다. 매주 저명한 대학교수들을 초청해 교육을 받았는데, 강의에 출석하지 않으면 팀장으로 승진할 수 없다고 직원들을 ‘협박’하기도 했죠. 시험도 봤어요.”

    네 번째 ‘대표이사’

    골드뱅크에 3년 동안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그는 결국 실패했다. 그는 2000년 봄 골드뱅크를 나오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엠스타(M-sta)를 설립했다. 엠스타를 운영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다 지난해 3D 아바타 게임을 제작하는 오즈인터미디어 사장이 됐고, 지난해 말에는 유·무선 통신장비 솔루션 전문기업으로 코스닥에 등록된 비젼텔레콤을 인수, 네 번째로 대표이사 명함을 팠다.

    2년에 한 번꼴로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김사장은 ‘M&A 전문가’ ‘금융 전문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자신은 이런 평가를 어색하게 여기지만, 세상은 ‘그는 적어도 기업인은 아니다’라는 데 무게를 둔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경영한 회사는 이익을 내지 못했거나 아직 내지 못하고 있다. 골드뱅크, 엠스타, 오즈인터미디어가 다 그렇다. 골드뱅크에서 경영한 13개 계열사 중 골드금고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적자회사였다. 그는 ‘책 읽고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시키며’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지만, 아직 ‘사업가’로 평가받지는 못하고 있다.

    엠스타는 일본 포털 사이트 중에서 접속률 순위 8위 업체. 자본금은 113억원인데, 그가 투자한 금액은 60억원으로 45%의 지분을 갖고 있다. 나머지는 일본 회사들이 출자했다. 현재 엠스타는 매월 7000만∼8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데, 아직 순익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창립 초기에는 매월 5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고 직원도 100여 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20여 명으로 줄었다. 김사장은 “지난해 검찰 조사를 받다보니 회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사업 경험은 보다 폭넓은 비즈니스 세계를 관찰할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일본에서 사업하면서 뭘 얻었습니까.

    “일본 사업가들 사이엔 약속을 꼭 지키는 문화가 정착돼 있습니다. 한국에선 기업이 신뢰를 쌓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지 몰라요. 이에 비해 일본은 사회적 신뢰에 대한 인프라를 잘 갖췄다고 봅니다. 일본 기업인은 문서 없이 한 약속도 반드시 지킵니다. 못 지키면 사회에서 매장당해요. 계약서를 썼냐, 안 썼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야 어디 그런가요. 기업간에 계약서를 써도 다른 기업이 덤핑을 하면서 들어오면 계약이 파기됩니다. 더구나 대기업이 이런 짓을 주도해요. 비즈니스 인프라 수준이 낮은 거죠.”

    -일본 기업인들의 단점을 지적한다면.

    “변화를 수용하는 마음가짐이 모자라요. 그들은 사업을 해도 대를 이어서 합니다.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변화를 좀체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래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많습니다. 변화를 일으키려면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거든요. 그들 마음 속의 벽을 허물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그들의 상식 밖에서 움직이면 어렵지 않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가령 저를 외국인으로 생각하도록 만들면 일이 쉬워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일본 기업인들은 책임을 여러 사람과 나누려 합니다. 그러니 의사결정이 늦어져요. 저는 그들에게 ‘당신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까 일을 진행시키자’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실제로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여주면 저를 외국인으로서 존경해요.”

    -골드뱅크도, 엠스타도 수익을 내지 못했다면 김사장의 경영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변명 같지만 그 무렵 골드뱅크는 이익을 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공장을 지어놓기가 무섭게 당장 수익을 내라고 하는 건 옳지 않지요. 일본 엠스타는 한참 잘나가고 있었는데, 제가 검찰 조사를 받느라 최근 1년 동안 일본에 갈 수가 없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도 많지만, 아직은 초반전이라고 봐요. 저를 충분히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60년은 일해야 하는데, 겨우 2∼3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싶진 않습니다. 저는 직업이 CEO입니다. CEO로 은퇴할 생각입니다. 이것말고는 재미있는 게 없어요. 저는 골프도 못 칩니다. 일하는 것과 책 읽는 것밖에 몰라요. 상상한 것을 현실에 적용해 성취하는 것이 저를 유지하는 원동력이죠. 저는 길게 생각하면서 삽니다.”

    -최근에 인수한 비젼텔레콤은 이른바 ‘가위’를 만들어야 하는 회사인데, 그렇다면 ‘이발사’를 지향하는 기업관에 변화가 생긴 것인가요.

    “상장 효과를 이용하기 위해 비젼텔레콤을 인수했습니다.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야 제가 생각하는 대로 규모 있게 일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전환사채 등을 발행한 적이 없는 깨끗한 회사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회사가 라우터 스위치 VDSL 모뎀 등 네트워크 인프라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젠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네트워크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트워크 업체와 게임 업체가 한 회사라면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더 잘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집에 앉아서 내가 원하는 비디오를 볼 수 있는 VOD가 있다고 칩시다. 요즘엔 영화 한 편을 8초면 다운받아요. 콘텐츠 전문가와 네트워크 전문가가 만나면 ‘VOD 플레이어’라는 박스를 만들어 영화를 다운받으면서 요금을 지불하는 과금체계를 고안해낼 수 있고, 내가 선택한 영화를 찾아주는 인덱싱 기술을 박스 안에 넣을 수도 있어요. 지금까지는 콘텐츠 생산자와 네트워크 생산자가 따로 놀았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지 못했거든요.”

    -비젼텔레콤 인수 자금은 어디서 마련했습니까.

    “대부분 아버지가 댔습니다. 아버지께서 운영하던 구멍가게 건물이 재개발돼 보상금을 받았어요. ‘한번 더 밀어줄테니 열심히 해보라’고 하셨어요.”

    ‘대박 추억’에서 벗어나야

    -국내 벤처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뭐라고 봅니까.

    “벤처기업들이 아직도 소비자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소비자는 4∼5년 전처럼 ‘인터넷’이라고 하면 무작정 흥분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온라인으로 정보를 얻은 뒤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삽니다. 반대로 오프라인의 서비스를 받으면서 실제로는 다른 기업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제품을 구입하기도 하죠. 따라서 요즘 기업은 예전보다 훨씬 많은 마케팅 비용을 들여야 합니다. 제가 골드뱅크를 경영할 때 회원 한 사람을 모집하는 데 드는 비용이 50원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예컨대 오즈인터미디어에서 회원 한 명을 끌어들이려면 2750원 이상이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상당수 벤처 사업자들이 이런 변화에 무지해요. 아직도 자신이 만든 게임이나 쇼핑몰, 소프트웨어가 마케팅 비용 없이도 잘 팔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순진한 생각이죠. 벤처기업만 만들어놓으면 증권시장에서 대박이 터졌던 ‘옛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이젠 소비자가 바뀌었고, 기업 환경이 변했어요.

    좀 다른 각도로 보면 오히려 기업을 하기엔 지금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디지털 융합의 시대라는 데 주목해야 해요. 네트워크 장비만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했던 회사도 생각을 바꾸면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 수 있죠. 이런 점에서 SK는 비록 최태원 회장의 구속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벤처기업이 따라야 할 모델이라고 봅니다. SK는 끊임없이 고객들의 취향 변화를 체크하면서 그것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기업입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나선 거죠.”

    -요즘도 벤처기업에 야심찬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옵니까.

    “3년 만에 우리 벤처기업에 돌어와보니 그런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사실 1997∼98년 우리 회사에 입사한 젊은이들은 대개 미혼이었고, 다른 곳에 취직을 못해 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외환위기 직후라 일자리가 없었거든요. 다들 열정은 있었지만 이를 불태울 만한 공간이 없었던 거죠. 덕분에 유능한 젊은이들을 많이 모을 수 있었고, 우린 그저 일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지금은 달라요. 일자리를 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고, 벤처 1세대들의 잘못으로 인해 벤처업계의 이미지가 실추됐습니다. 물론 이처럼 실망스러운 현실이 언론에 의해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요즘 벤처기업에서 지난 시절과 같은 맹목적인 희망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구체적인 약속과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젊은이들은 등을 돌립니다. 하다못해 ‘월 식대 5만원 인상’ 같은 약속이라도 해야 회사에서 대우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벤처기업을 경영하게 됐는데, 과거에 벤처 CEO로 일할 때와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표이사의 책임이 커졌습니다. 예전엔 사장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도 했는데, 이젠 웬만한 결정사항은 반드시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업무 처리 속도는 늦어졌지만,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높아졌습니다.”

    -인터넷 사업의 핵심인 고객 관리 비법 같은 게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지배자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네 인생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처에 우리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그들에게 기댑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때 편안한 마음이 들거든요.

    “고객을 포로로 지배하라”

    인터넷 사업도 마찬가집니다. 회원의 심리와 욕구를 지배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그들을 휘어잡아야 하죠. 그러려면 회원의 자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합니다. 참여는 어렵게 하고 혜택은 모두에게 고루 나눠주는 겁니다. 참여자를 선정할 땐 경쟁률이 높을수록 좋아요. 여기에서 선정된 사람은 스스로를 행운아로 여길 뿐 아니라 자신을 선정한 제게 아주 감사해합니다. 제 포로가 되는 거죠.

    일본에서 엠스타를 오픈한 뒤 동호회 회장들을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일본 각지에서 회원들이 속속 도착했어요. 이들을 초대하면서 속으로는 사실 걱정했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요. 우리는 일본을 이웃나라로 생각하지만, 일본은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쯤으로 여겨요. 아직 제가 한국인인 것을 모르는 일본인이 있을 테고, 혹시 그 때문에 제가 회원들에게 도리어 휘어잡히지 않을까 염려했어요.

    그래서 한 가지 꾀를 냈어요. 우리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아니고 그냥 지구인이다, 너는 홋카이도에서 온 지구인이고, 나는 서울에서 온 지구인이다, 서로 이렇게 불러주며 대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들이 감격해요. ‘우린 지구인이다!’ 얼마나 친근감 있는 접근법입니까. 저는 아직도 이들에게 ‘지구인 사령관’이지, 한국인이 아니에요.”

    -궁극적으로 어떤 경영자가 되고 싶습니까.

    “제 모델은 예수입니다. 예수는 고작 3년 활동해서 30년 만에 세계 종교의 기틀을 마련했죠. 예수가 부활한 뒤 베드로가 전도하다 죽을 때까지 30년이 흘렀고, 당시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 자리잡았어요. 그리고 그후 2000년 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런 기업을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더구나 미래의 기업은 종교와 비슷한 형태를 띨 것입니다. 종교가 신도들에게 꿈을 주고 유지되듯 기업도 소비자들이 꿈을 꾸게 만들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 겁니다. 기업이 만들어내는 것은 이상, 비전, 신뢰 같은 무형의 가치일 것입니다.

    저는 요즘 자숙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숙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저만 갖고 있는 독특한 경험과 자산이 있어요. 제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다는 얘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자숙이란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을 명확히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이 빚을 어떻게 되돌려줄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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