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특검 결과 불법 드러나면 DJ도 책임져야”

노무현의 ‘칼’문재인 민정수석

  • 글: 엄상현 gangpen@donga.com

    입력2003-03-25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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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검 결과 불법 드러나면 DJ도 책임져야”
    노무현 정권의 개혁은 그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도 그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끝이다. 문재인(文在寅·50)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제 더 이상 ‘노무현(盧武鉉) 변호사’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가 아니다.

    때로는 노대통령이 제대로 국정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충실한 참모이자, 때로는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감시하는 매서운 감독관이다. 정권 첫 조각 과정에서 노대통령이 직접 추천한 한 인사도 문수석의 검증과정에서 탈락했다.

    민정수석 내정 직후 “원리원칙대로만 하는 일, 개혁에 도움되는 일이라고 해서 맡았다”고 한 자신의 말처럼 문수석은 ‘원리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이번 검찰 인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문수석은 검찰의 집단반발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인사방침은 오래 전부터 구상됐던 것이고 그에 따라 법무부 장·차관을 내정한 것이다. 이번 인사 방안도 마찬가지다. 검찰 서열을 존중하나, 윗 기수부터 차례로 승진하고 주요 보직을 맡는 경직된 서열주의는 타파돼야 한다”고 원칙과 소신을 밝혔다. 그리고 그대로 밀고 나갔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노무현 정권의 민정수석실은 공직기강 등 기존 민정업무 이외에 사정과 제도개혁, 인사검증 등 역대 정권에 비해 막강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노무현 정권 5년의 제도개혁 청사진도 문수석의 머리 속에서 그려지고 있다.

    과연 그가 그리고 있는 현 정권의 개혁 청사진은 어떤 모습일까.



    현대그룹 대북송금 특검문제, SK그룹에 대한 검찰의 전격 수사 등 정권 출범과 동시에 터져나온 각종 사건들에 대한 대책 마련에 겨를이 없는 문수석을 지난 3월14일 오후 외교통상부 건물에 마련된 민정수석실에서 힘겹게 만났다.

    “대북송금 DJ 해명 충분치 않다”

    이날 인터뷰는 노대통령의 대북송금 특검법 공포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국무회의가 오후 3시에서 갑자기 5시로 늦춰지면서 약속 시간을 오후 5시에서 3시로 앞당겨 이뤄졌다. 특검법 공포 여부가 결정될 국무회의를 앞둔 시점에서 결론이 어떻게 날지 궁금했다.

    ―특검법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 것 같습니까.

    “지금 이 순간(3시10분 현재)까지 특검법을 받아들이는 경우와 거부하는 경우, 양쪽을 모두 대비한 두 가지 대국민담화문을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어제 참모들 회의에서 받아들이자는 쪽이 우세했는데 대통령이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오늘 국무회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겠나 싶습니다.”

    ―현대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대(對)국민 사과와 임동원, 박지원 등 이전 정권 관련자들의 사과와 해명이 충분하다고 봅니까.

    “충분하지 않다고 보니까 특검이 나온 것 아닌가요. 저 또한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 특검이 국익에 손상을 준다는 하는데 과연 얼마나 손상이 오는지 그 내용을 모르겠어요. 다만 국익에 손상이 있을 것이라는 말, ‘그럼직하다’는 추측, 그 정도뿐이죠. 정확히 아는 바가 없어요. 그래서 정확히 알기 위해 국회의 선조사를 요구했던 겁니다.”

    ―어느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까.

    “근본적으로 다 규명돼야 합니다. 책임 있는 인사들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죠. 다만 앞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위해 비록 부당한 방법이 사용됐더라도 과거 외교적 접촉에서 맺어진 신뢰는 유지돼 나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남북관계를 위해 북한에 돈이 건너갔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부분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전달했는지 규명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에요. 남북관계의 신뢰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어차피 그 부분은 드러나더라도 고도의 정치적 행위나 외교적 행위로서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거든요. 그런 부분은 제외해야겠지만 남북관계를 위해 일했다 하더라도 거기에 소요되는 자금을 조성한 여러 가지 행위나 거래가 잘못된 것일 경우 이를 철저히 규명해 책임을 물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 대상에 포함되는 겁니까.

    “지난 번 김 전 대통령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면 그 부분까지는 관여하지 않았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속일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외교적으로 필요한 행위’라고 했었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관여한 바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죠.”

    인터뷰가 끝난 뒤 확인된 내용이지만 국무회의 논의 결과는 참모회의 결과와 같았다. 이날 오후 6시 노대통령은 대북송금 특검법을 원안대로 공포했다.

    시간 관계상 인터뷰는 매우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사직동팀을 부활시킨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그건 완전히 오보입니다. 잘못 보도한 일부 언론이 정정한다고 했는데 아직 안했더군요. 과거 사직동팀은 경찰청 내에 특수수사대로 편제돼 있었습니다. 경찰직제 선상에 있어 수사가 가능했던 조직이면서 실제로는 청와대가 지휘 운용하는 팀이었죠. 청와대가 변태적인 방법으로 수사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됐고, 폐지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정권인수위 때 확인해보니) 사직동팀이 폐지된 이후에도 청와대 사정비서관 산하에 검찰, 경찰, 감사원 등에서 감찰요원이 파견돼 계속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감찰업무의 특성상 청와대 밖에 있어서 이전 정권에서는 별관팀이라고 불렀습니다. 다만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서인지 대외적으로는 숨겨왔더군요.

    우리는 그 인원(10여 명)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입니다. 새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죠. 그리고 과거와는 달리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운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과거 사직동팀과는 전혀 다른 조직입니다. (청와대 사정비서관 산하에 있기 때문에) 수사권한은 없고 감찰 기능만 있습니다.”

    ―민정수석실이 과거 정부에 비해 무척 비대해졌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비대해진 것 전혀 없습니다. 편의상 직제가 조금 바뀌었을 뿐입니다. 민정수석실에 있던 민원업무는 국민참여수석실로, 시민사회 업무는 정무수석실로 넘어간 것이죠. 대신 민정수석실이 민정1비서관과 민정2비서관으로 나뉘었습니다. 민정1비서관은 종전의 민정업무를 그대로 담당하고, 민정2비서관은 권력기구의 개혁지도를 그리는 업무를 담당하게 됐습니다. 그게 좀 색다르다면 색다르죠.”

    ―향후 민정수석실에서 가장 중점을 두게 될 업무는 무엇입니까.

    “지난 정부 때는 (민정수석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느낌이 듭니다. 인사가 비선라인에서 결정돼버리니까 추천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실이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사난맥상이 초래됐던 것이죠. 또 친인척 관리업무도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업무를 제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문제는 어떻게 정리할 계획입니까.

    “그건 국가 사정기관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면 필요 없는 조직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의되고 있는 것이죠. 임시적 조치로 강구됐던 것입니다. 그 부분은 검찰권과 모순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 새로운 법 제정도 필요하므로 앞으로 계속 논의되고 여야간 합의가 돼야 가능한 제도입니다. 보다 장기적으로 봐야 할 문제죠. 지금으로서는 당장 시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 때까지는 민정수석이나 기존 조직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죠.”

    ―검찰과의 관계가 무척 궁금합니다. 얼마전 문수석께서 밝힌 대로라면 검찰의 보고라인뿐만 아니라 업무협조라인까지 모두 단절됐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민정수석실은 검찰 국정원 경찰 등 국내 사정기관들을 총괄하는 만큼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관계를 정립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게 고민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대전제는 검찰과 검찰력을 정권의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국민들을 위한 목적으로만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검찰권을 특정한 목적으로 행사하거나 통제하고 관리할 비밀통로를 일절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확고부동한 방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기관간 업무협조를 위한 공식적인 통로가 없어서는 안되죠. 그건 법에 따라 적법하고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행법상 정부 부처간 업무협조를 위한 협의가 가능하게 돼 있거든요. 거기에 검찰청도 포함됩니다.

    이번 SK사건 같은 경우 경제부처의 장이 검찰의 장에게 수사발표 시기를 조정해달라고 협의하고 요청한 것은 정당합니다. 다만 그것이 비밀리에 이뤄졌기 때문에 나쁜 짓 하다가 들킨 것처럼 변명하는 이상한 현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그 방법을 제대로 정립하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진행중입니까.

    “우리가 검토한 안이 있고, 법무부에서 검토한 안이 있습니다. 양쪽을 다 검토해서 대통령께 보고드릴 생각입니다.”

    ―민정수석실에서 검토한 안은 어떤 내용입니까.

    “정부 부처장간 업무협조가 가능하지만 검찰은 중립성이나 독립성이 보장돼야하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부처에서 검찰총장에게 업무협조를 하려면 법무부 장관을 통해서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 정부 부처간 협의가 필요할 경우에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통해서 지시하거나 총리가 갖고 있는 국무조정 기능을 통해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공식적, 공개적으로 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이번 검찰 인사가 매우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아닙니다. 파격적이지 않았습니다. 아주 안정형으로 했죠. 13기부터 16기까지 골고루 안배했습니다. 과거에는 인사를 하면 선배 기수들의 옷을 다 벗겼어요. 그래서 선배가 후배 밑으로 가는 경우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 이번에는 선배들이 옷을 벗지 않아서 선배가 후배 밑에 가게 된 것입니다. 또 과거에도 대부분의 인사에서 (후임 검찰총장이나 검사장급) 사시 기수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이번만 특별히 크게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번 검찰 인사의 원칙과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공감하는 바입니다. 검찰 개혁의 출발점이죠. 물론 인사만 가지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번 인사의 기준은) 기본적으로 과거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자율성을 해치거나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 그런 인사는 배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줄서기를 해서 (과거에) 인사상 특혜를 받았다든지, 검찰의 중립성에 상처를 입혔다든지, 과거 비리 사건 때 제대로 수사를 못해서 특검까지 가게 만들었다든지….”

    대한민국 1% 극상층의 단면

    ―검찰 내부로부터의 추천은 어떻게 받았습니까.

    “각 기수별로 희망하는 분들을 접수받고, 또 검찰 내부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었어요. 공식적인 다면평가는 아니지만, 검찰 내부에 공론이 있었어요. 기수별로 신망을 받는 분들이 다 있더라구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정치적인 인사들은 배제된 것이죠.”

    ―다른 부처 장·차관에 대한 인선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진대제 장관 같은 경우는 아직도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인선 기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인수위가 외부 추천 인사위원회를 구성해서 1-2-3단계를 거쳐 5배수까지 거르지 않았습니까. 진장관도 그 5배수 추천명단 속에 들어 있던 분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검증작업을 해보니까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분야에 거론됐던 후보들은 한결같이 본인이나 자녀들이 이중국적이나 병역문제에 걸렸습니다. 대부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따거나 아니면 외국 연구기관에서 연구를 계속해왔던 분들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디다. 진장관도 마찬가지였죠.

    그런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 그것을 결정적인 흠으로 봐서 배제할 것인가. 아니면 정통이나 과학기술 분야의 특성을 고려해 흠보다 능력을 높게 볼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중잣대라고 비난하던데요. 우리들은 법무부라든지, 교육부 국무총리 국방부 등은 보다 엄격한 기준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봤고, 과학이나 정통 분야는 정말 글로벌하게 볼 필요가 있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통령도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이번 인선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텐데요.

    “대한민국의 상류층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은 분들을 검증하면서 느낀 것인데 제대로 군 복무한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본인 아니면 아들이 (군대에) 안 갔거나, 본인과 아들 다 안 갔거나. 그 사유가 정당한지 여부를 떠나서 하여튼 군대를 제대로 간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중국적자도 많았고.”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그런 단면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그런 것 때문에 사회적으로 평판이나 능력이 좋은 분들이 배제되는 것을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그건 과거에 특권을 누린 흔적이 아닙니까.

    “그렇죠. 그렇게 볼 수 있죠.”

    ―이번 인사에서 한계랄까, 아쉬움이 있었다면 어떤 겁니까.

    “인사의 대상으로 삼은 폭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실 그런 계층이 1%나 되겠습니까. 1%도 채 되지 않을 극상층의 모습이지요. 나머지 95%는 건강합니다. 자기일 다하고 제대로 잘 살아 오지 않았습니까. 이번 인사는 과거에 높은 직책을 지냈고, 높은 경력을 가지고 있고, 또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아서 그런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제 인사 대상의 폭을 넓혀서 보다 건강한 계층을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번과 같은 일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지 않겠는가 생각됩니다.”

    ―각 부처 1급에 해당되는 인사까지 청와대에서 직접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처 장관들에게 일임해도 되지 않습니까.

    “1급 이하 공무원에 대해서는 부처 장관들에게 가급적 재량권을 줄 계획입니다. 다만 과거에 보면 지역이나 학연에 따라 여러 가지 인사편중 현상이 발생하고, 한편으로는 장관들이 자기 사람 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왜곡된 인사가 되지 않도록 최종 평가를 청와대에서 하겠다는 것입니다.”

    ―검찰의 SK수사에 대해 ‘쿠데타설’, 사전교감설, 기획수사설 등 소문이 무성합니다. 검찰의 수사착수 배경에 대해 어떻게 파악하고 있습니까.

    “현상 그대로 봤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부 기자들을 보면 항상 그 배경에 뭔가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냥 현상 그대로입니다.

    있다면 우리 사회가 법으로 정해놓은 기업의 여러 가지 기준이 있는데 현실은 거기에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죠. 기준과 현실의 차이가 크다는 이야깁니다. SK의 경우 이 격차를 분식회계라는 방법으로 숨겨왔던 것입니다. 과거 투명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그게 통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불가능하죠. 시민단체가 고발하는데 검찰이 수사 안 할 방법이 있나요.

    또 과거에는 검찰이 ‘좌고우면’ 하느라고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사를 가로막는 장애가 없어졌고, 정부도 검찰에 대해 소신껏 수사하도록 보장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과거에 묶여 있는 사건들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설들이 난무하는데 다 근거 없는 이야기예요.”

    ―SK에 대한 수사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참여연대나 경실련 등 경제관련 시민단체들의 고소고발이 많습니다. 삼성이 그 대표적인 예죠. 만일 삼성에 대한 수사가 진행된다면 그 파장은 더욱 클 것입니다. 검찰이 원칙대로 수사를 펴 나간다면 정부에게도 부담이 크지 않겠습니까.

    “고민스런 부분입니다. SK사건 때문에 경제적으로 파장이 크고,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국익을 고려해 검찰 수사의 시기 조절이 마냥 필요하다고만 봐야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보다 큰 국익은 검찰이 소신껏 수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아픔을 딛고 서야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해외신인도도 더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의 고소·고발을 단서로 수사를 진행한 검사가 해당 기업의 위법행위들을 확인하게 됐을 때, 그걸 수사하고 처벌하는 것은 검사로서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굉장히 어려운 시기에 한꺼번에 집중됐을 때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느냐는 고민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쉽지 않은 문제죠. 아직까지는 답을 잘 모르겠어요.”

    검찰수사 시기 조절 프로그램 필요

    ―수사 시기를 조절하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 내부의 고민이 클 텐데요. ‘상황논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자칫 검찰의 독립성이 또 의심을 받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개인적인 견해를 말한다면, 시기상 조율이 필요할 겁니다. 그것을 위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제시된다면 아마 검찰도 수사시기를 조절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는 겁니까.

    “분식회계로 회사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면 하루 빨리 그 격차를 줄여서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의 위법행위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해당 기업이 문제를 다 해결하면 과거의 분식회계 등 위법행위에 대한 가벌성이 많이 줄지 않겠습니까.

    문제를 해결하는 시기별 단계를 설정해서 그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과거 일부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감경해 준다든지, 필요하면 사면해주고 반대로 못했을 경우에는 엄하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어떨까 싶네요. 이 프로그램을 기업과 상의해서 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처벌 여부를 결정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아이디어 단계입니다. 많은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특검 결과 불법 드러나면 DJ도 책임져야”

    임시로 마련된 정부청사 외교통상부 건물 6층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문수석.

    ―국정원의 개혁방향에도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해외정보처로 전환하겠다는 노대통령의 공약에 대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정리됐습니까.

    “개혁방안에 대해 인수위 때부터 논의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정리되지는 않았습니다. 앞으로 더 가다듬고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세계화 시대에 정보는 국력의 원천 아닙니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중요하죠.

    국정원이 바로 그런 본연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쓸데없이 정치권 사찰이나 정치인 동향을 살피는 것은 국가 통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정보기관의 노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그런 것을 없애는 게 한 방향이 되겠지요.

    또 한편으로는 국정원의 현행 업무편제가 국내·외 그리고 대북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대북관련 업무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간 부정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국민을 불안하게 해서 냉전적인 사고로 이끌어가던 식의 대북업무가 아니라 남북화해협력 시대에 걸맞은 대북정보를 확보해서 국민에게 정확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바꿔나갈 생각입니다.

    국내·외로 나눠져 있는 업무부분은 외교안보에 관한 정보, 과학기술·문화에 관한 정보, 국정문제 및 국가프로젝트에 관한 정보 등, 분야별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소박한 내 생각입니다. 국정원 종사자들은 국가에 필요한 정말 우수한 자원들입니다. 그들도 국민에게 필요한 기관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국정원 현판에 음지에서 일한다고 돼 있는데 왜 음지에서 일합니까, 양지에서 떳떳하게 일해야지.”

    ―대통령이 해외정보처로의 전환을 공약했는데요.

    “100% 해외정보 업무만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을 겁니다. 국내 정치사찰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공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의 목적이 아니라 국가의 목적에 필요한 정보를 각 기관에, 각 기업에, 국민에게 배분해주는 그런 기관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한 대통령 선거 당시의 공약을 지킬 수 있는지도 궁금한 대목입니다.

    “수사권 독립, 경찰자치가 큰 방향입니다. 시기별로 현실성을 감안해서 완급을 조절하는 정교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하지 않겠느냐 싶네요.”

    “언론개혁, 세무조사로 되는게 아니죠”

    ―노무현 정권의 언론 개혁 방향도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최근 노대통령께서 오보에 대한 철저한 대응을 강조했는데 언론 개혁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있는건 아닙니까.

    “별도의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대단히 단순하고도 명쾌한 처방을 갖고 있지요. 직접 개입해서 언론을 좌지우지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 시도는 애당초 생각지도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겁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한 시장질서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고, 청와대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 정정당당하게 대응하는 것이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은 충분한 사실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충의 정보만 가지고 보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맞으면 좋고, 틀려도 크게 추궁당하지 않고 으레 넘어가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이 언론의 사실확인 절차를 가볍게 만들었던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해 나가려는 겁니다. 그러면 언론이 자연히 사실확인 절차에 더욱 노력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마구잡이식 추측 보도 때문에 국가기능이나 일반인의 인권이 침해받는 일들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무조사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세금 잘 낸다고 언론이 개혁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언론 개혁은 언론 스스로 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직접 나서서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우리가 고민할 생각도 없고요.”

    ―노무현 정부 5년 개혁 청사진의 큰 틀을 어떻게 그리고 계시는지.

    “저희 민정팀에 주어진 과제는 인사를 제대로 하는 것과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구를 국민의 기관으로, 신뢰받는 기관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정업무를 통해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친인척 관리를 잘하는 것, 그리고 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죠.

    특별한 청사진 없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어 각 기관에 제시해서 감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검찰 인사 때도 검찰 내부에는 그동안 검찰의 왜곡된 모습에 개탄하면서 개혁을 바라고 논의하는 건강한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기관마다 다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개혁방향을 찾게 하고 도와드리면 된다고 봅니다. 각 기관의 구성원들을 개혁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수석께서는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온갖 특권과 부를 누렸던 분들이 여전히 최고권력을 장악해서 자기들의 특권과 영화를 계속 이어가려 하고 있기 때문에 부산선대위 상임본부장을 맡았다”고. 이번에 민정수석을 맡은 것도 같은 이유라 여겨집니다. 또 노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밝혔던 ‘권위주의의 틀을 깨는 것’과도 일맥 상통합니다. 과연 특권과 부를 누렸고 지금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나 집단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역사가 잘못된 이유 중 하나는 심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 식민지를 마치고 해방됐으면 친일세력에 대해 심판을 하고 민족성을 되찾는 과정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또 자유당이나 군부독재가 끝나고 보다 민주화된 시대가 열렸으면 과거 독재권력에 앞장섰거나 영합했던 사람들에 대한 심판과 그 사람들의 반성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 사회정의랄까 민족정기랄까 이런 게 바로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사회는 한번도 그런 심판의 과정이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 영합해 각종 혜택과 이득을 누렸던 사람들이 바뀐 시대에도 여전히 똑같이 혜택과 권한을 누리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고 봅니다. 그런 심판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와서 그런 심판을 내릴 마땅한 방법이 있습니까.

    “각종 인사를 하는 데 있어 (권력에 대한 영합 등) 그런 요소들은 인사상 불이익을 주거나 배제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봅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우대해 보상해주는 겁니다.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특정 권력이나 세력에 영합해서 인사상 이익을 본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또 건강한 사람들을 실망하고 좌절하게 만들고, 우리나라 전체에 대한 불만을 갖게 만듭니다. 결국 병든 사회가 되는 것이죠. 그런 것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파악되는 범위 내에서 인사 검증 과정에 마땅히 불이익을 주고,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능력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검찰 인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작업은 비단 김대중 정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5, 6공 YS정부 때 정권에 유착해 빛을 본 사람들에 대한 바로잡기도 포함됩니다. 이번 검찰 인사를 잘 보면 그런 부분이 담겨 있습니다.”

    ―문수석의 개혁색깔은 어떤 것입니까. 일부에서는 문희상 비서실장의 지론인 ‘토네이도’식 개혁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좀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습니다. 오히려 지금 개혁이 조심스럽죠. 우리야 정치적 소수 아닙니까. 여당조차도 일사불란하게 지원해주지 않는 상황입니다. 소수파 내에서도 더 소수파인 셈입니다. 몰아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의 개혁은 억지 개혁이죠. 개혁을 우리가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이 하는 거 아닙니까, 지난 대선 때 국민이 보여줬던 것처럼. 흐름에 자연스럽게 맡기면 된다고 봅니다. 굳이 말한다면 ‘자연스런 개혁’이라고 할 수 있겠죠.”

    ―노무현 정권의 미래는 문수석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수정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래저래 정계개편을 위한 ‘사정(司正)’유혹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전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수당이라고 개혁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개혁을 하기에 훨씬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고 봅니다. DJ와 YS정부의 공과가 여러 가지 교차하기는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개혁을 위한 과도기적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는 국민이 개혁을 바라는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개혁을 위한 좋은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죠.

    일단 정권을 잡은 대통령을 비롯해 주체가 될 만한 사람들에게 과거 정권에서 나타났던 권위주의적 한계가 없어요. DJ나 YS가 평생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권위주의적인 행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거든요. 그들의 민주주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는) 늘 상존하고 있었죠. 노대통령은 권위주의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권위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합니다.”

    ―개혁을 위해서는 관련 법의 제정이나 개정도 무척 중요합니다. 소수정권에 머물 경우 기득권층의 반발과 저항이 만만치 않을텐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잃지 않는 것입니다. 다수당이 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통령께서 야당과도 만나고 있지 않습니까. 야당이라도 국민들의 열망과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고 봅니다.

    민주당이나 정치권 일각에 ‘지금은 당이 소수파이기 때문에 은인자중하고 있다가 다음 총선에서 다수파가 되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그 후에 본격적인 개혁을 시작한다’는 아주 도식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들을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개혁을 위해 앞으로 남은 가장 큰 과제는 무엇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죠. 첫째가 제 자신이 변하지 않는 것이고, 그 다음이 대통령이 변하지 않도록 붙잡고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심만 잃지 않는다면, 권력의 맛에 취하지 않고 처음 가졌던 의지와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개혁은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되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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