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환경지상주의와 인기몰이 정치논리가 문제

새만금사업·청계천 복원 논쟁의 허실

  • 글: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환경학 박사 wukhee@yahoo.com

    입력2003-03-25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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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만금 간척과 청계천 복원사업의 논의과정에 대해 한 환경학자가 문제를 제기해왔다. 오랜 논쟁을 거쳐 이미 결정된 사항을 두고 다시 논란이 불거진 새만금 사업과, 필수 논의절차마저 생략한 채 추진되고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의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
    • “환경단체들이 ‘과도한 생태주의’에 매몰돼 있다”고 주장하는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의 비판과 대안을 소개한다(편집자).
    환경지상주의와 인기몰이 정치논리가 문제

    지난해 11월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청계천 복원 국제 심포지엄’

    민주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토론과 논쟁을 필요로 한다. 토론과 논쟁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합의점과 해결책을 찾아가는 사회가 진정 성숙한 사회라면, 우리 사회는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도상에 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논쟁과 토론이 생산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이에 임하는 당사자들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일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언론매체를 통해 접하는 우리 사회의 토론 문화는 그렇지 못하다. 최근 시민단체들의 고발로 다시 불거진 새만금 사업 관련 논쟁과 마구잡이로 추진되고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도 바로 그런 사안에 해당한다. 이 두 사업은 상충하는 의견을 가진 양쪽 집단이 있지만, 어느 한 집단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만이 일방적으로 언론에 소개되면서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치열했던 2년간의 논쟁

    새만금 사업과 청계천 복원사업을 둘러싼 논쟁의 전말을 살펴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논쟁이 어떤 식으로 잘못 진행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보기로 하자. 그리고 이 두 사업에 대해 과연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국민을 위하는 일인지 새로운 관점에서 검토해보기로 하겠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토개조 사업’이자 ‘여의도 면적 100배의 국토확장 사업’이라는 새만금 사업은, 전북 군산시의 서남쪽 해안에서 시작해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고군산군도를 거쳐서 다시 변산반도의 북쪽 끝자락 해변에 이르기까지 장장 33km의 방조제를 건설하는 초거대 토목사업을 통해 간척지 총 4만100ha(1억2000만평)를 얻는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1991년 11월 기공식을 가진 이 사업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까지 방조제 공사의 약 70%가 진행된 상태였다. 그 동안 쏟아 부은 돈만 1조원에 육박했다.



    새만금 사업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 이후 영향력이 크게 확대된 시민·환경단체들이 이 사업을 ‘환경을 파괴하는 대표적 국책사업’으로 규정하고 즉각 중지를 요청하면서부터다. 정부는 이 요구를 수용해 사업 추진 여부를 전면 재검토하는 ‘새만금사업 환경영향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했다. 30명으로 이루어진 조사단은 1999년 5월 활동에 착수해 두 번이나 기한을 연장한 끝에 2000년 8월 사업지속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환경단체의 추천으로 민관공동조사단에 참여했던 일부 인사들은 보고서가 편파적으로 작성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조사단의 결정을 부정하고 나섰다.

    이듬해인 2001년, 사업 추진을 주장하는 전라북도와 농림부가 한편이 되고 사업 중지를 요구하는 환경단체들이 다른 한편이 되어 대립전선을 형성하면서 논쟁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양측이 각종 언론매체와 시위, 집회를 통해 총체적 실력행사에 나섰던 것이다. 분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정부는 이해 5월7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대토론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국책사업 추진 여부를 둘러싸고 대토론회가 열린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전북도민 표를 잡아라”

    하지만 토론회에서조차 양측은 팽팽한 대결양상을 보였을 뿐 어떠한 해결점도 도출하지 못했고, 공은 다시 정부로 넘어갔다. 결국 2001년 5월21일 국무총리실은 새만금 사업의 지속을 결정했다. 1999년부터 2년여 동안 논쟁이 진행되면서 잠정 중단됐던 방조제 공사는 이후 다시 추진되어 현재는 88%가 진행됐다. 총 33km의 방조제 중에서 이제 겨우 6km 구간만이 열려 있는 상태. 주무기관인 농업기반공사는 방조제 준공 목표를 2006년으로 잡고 있다.

    새만금 사업은 외견상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과 이렇다할 공통점이 없다. 공사의 성격 자체도 토목공사와 도시개발사업이라는 점에서 다를 뿐더러, 새만금 사업은 시민·환경단체들이 극력 반대하는 반면 청계천 복원사업에는 적극적 혹은 묵시적 찬성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면 두 사업이 갖는 공통점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먼저 새만금 사업과 청계천 복원사업은 모두 애초부터 졸속으로 추진되었거나 추진되고 있다. 두 사업 모두 냉정한 경제성 평가와 합리적인 환경영향평가 절차 없이 정치적 목적에서 처음 발의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림부가 새만금 사업의 모태인 전북 해안지구 간척사업을 처음 구상했던 것은 1970년대라고 한다. 이후 한참 동안 농림부 관계자의 책상 서랍 속에 묻혀 있던 이 계획은 1987년에 이르러 ‘서해안 개발사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는 물론 정치적 고려가 숨어 있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정당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후계자로 노태우 대표를 확정하고 사실상 선거운동에 돌입하던 시점이었던 것이다. 민정당은 야당의 텃밭이던 전북에서 표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새만금 사업은 노태우 후보의 선거공약으로 새롭게 포장되었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참동안 새만금 사업은 계획에만 머물러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업 규모가 방대해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미루어진 사업이 1991년 마침내 착공할 수 있게 된 데는 정권의 경쟁 상대였던 평민당 김대중 총재의 집요한 권고가 있었던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듬해 대선을 눈앞에 두고 전북도민의 민심잡기에 여념이 없었던 여야 모두에게 새만금 사업은 꼭 추진해야 할 사업이었을 것이다.

    아직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던 10년 전에 새만금 사업이 정치적 타협으로 졸속 착수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와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상황과 시대가 변한 2002년에, 그것도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와 똑같은 일이 재발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제 청계천 복원사업의 추진 과정을 잠시 들여다보기로 하자.

    “서울시민 표를 잡아라”

    청계천 복원이 처음 구상된 것은 1997년 10월 연세대학교 노수홍 교수와 원로문인 박경리 선생과의 대화에서였다고 한다. 이후 노교수는 ‘청계천살리기연구회’라는 모임을 결성해 2000년 9월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토지문화원과 공동으로 ‘제1차 청계천되살리기 심포지엄’을 갖는다. 그리고 이듬해 4월에는 연세대학교, 2002년 3월에는 이명박씨가 주도한 ‘아태환경NGO한국본부’와 공동으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어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5월17일에도 토지문화관과 청계천살리기연구회 공동주최로 원주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학자들의 청계천 복원 논의는 그야말로 아이디어에 불과했다. 계속되는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자들은 한정돼 있었고 그 내용 또한 재탕, 삼탕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처럼 청계천 복원론자들의 구상이 허술했던 까닭에 환경관련 학계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다.

    청계천 복원이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2년 지방선거 때문이었다. 서울시장선거 출사표를 던졌던 이명박씨는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선거공약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청계천 복원사업을 선거공약 제1호로 삼는 기민함을 보였다. 환경단체들이 청계천 복원에 공개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던 것 또한 이후보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에 입성한 이명박씨는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지난해 7월 청계천복원추진본부를 설립해서 본격적인 계획수립을 독려했다. 강력한 추진력에 힘입어 청계천복원추진본부 구성 이후 불과 7개월 만인 2003년 2월11일 청계천복원 기본계획이 발표됐다. 수도 서울의 면모를 뒤바꿔버릴 엄청난 도시계획사업 기본안은 이렇게 졸속으로 확정됐다. 사업 추진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새만금 사업 추진 당시보다 훨씬 더 졸속이라 말할 수 있다. 도대체 이명박 시장은 왜 그처럼 무리하게 서두르는 것일까?

    초대형 토목사업에는 으레 많은 관련자들이 있고, 수많은 이권과 혜택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두 사업은 이처럼 잠재적 이익과 이권이 걸려 있는 대규모 건설사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각각 선거를 앞두고 본격 구상된 두 사업에서 관련 주요 인사들이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새만금 사업은 20년 이상 걸리는 초장기 건설 사업이었고 특히 초기 10년 동안 공사는 오직 방조제 축조에만 국한됐다. 따라서 이 사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이권이래봐야 고작 지역주민에게 지급되는 토지 및 갯벌보상금이나 어업보상금이 고작이었다(물론 공사주체인 농업기반공사는 장기 일감을 확보한다는 이익을 누렸겠지만). 이렇게 본다면 지역민의 표를 얻는 데 성공한 여야 정치인 이외에 별다른 혜택을 취한 사람은 없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사업의 경우는 다르다.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강북 4대 간선도로의 하나인 청계천변 5.3km 구간을 한꺼번에 파헤쳐 그 주변 지역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이 사업에는, 얼마나 많은 이익집단이 얼마나 많은 이권을 두고 움직일지 그 규모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우선 서울시 발표대로 이 공사가 2005년 말까지 불과 2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료돼야 한다면 사업은 여러 건설회사에 분할 발주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도심 한가운데를 파헤치는 데 뒤따를 수많은 보상과 배상의 과정에서 누가 어떤 이익을 차지하게 될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복원공사가 예정대로 완공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새와 물고기가 뛰노는 자연하천으로 탈바꿈한 청계천(필자를 비롯해 대다수 물 문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조성방향에 대해 크게 부정적이지만)을 통해 이익을 얻게 되는 최대 수혜자는 과연 누구일까? 서울시민 전체가 수혜자가 되리라는 대답은 50점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이 사업으로 가장 두둑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은 새로 조성된 청계천 양쪽에 즐비하게 들어설 고층 건물 주인과 그곳에 입주하는 돈 많은 기업들이 될 것이다. 청계천 복원공사는 결국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의 잔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업에 투자되는 돈의 규모, 기간, 사업 규모의 확대 가능성 등을 살펴보아도 새만금 사업과 청계천 복원사업은 서로 닮은꼴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청계천 복원사업이 새만금 사업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규모 국책사업에 착수할 때 예상사업기간이나 사업비의 규모는 가능한 한 축소하고 기대효과는 되도록 부풀리는 것이 그 동안 우리 정부의 뿌리깊은 관행이었다. 새만금 사업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당초 예상 공사비 1조3000억원은 중반에 접어든 지금 3조2500억원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간척지 내부공사가 진행되면 사업비는 더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청계천 복원사업의 경우는 어떨까. 청계천복원추진본부측은 이 사업을 금년 7월에 착공해 2005년 연말까지 정확히 2년 반 만에 끝마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사업비 규모도 3600억원으로 충분하다는 단언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청계천 복원사업의 실체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미심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교통이 혼잡하고 20만명의 경제인구가 활동하는 서울도심의 한가운데에서 고가도로 철거 공사와 하천복원 공사를 동시에 시행하는 것이 청계천 복원공사의 진면목이다. 이런 초대형 공사가 불과 2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완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이는 군사독재 시대의 밀어붙이기식 공사의 재판을 꿈꾸는 것에 다름아니다.

    백번 양보해서 고가도로 철거는 단기간에 끝낼 수 있다 하더라도 하천 복원 공사는 1~2년 안에 해치울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나무와 풀을 심어 환경을 가꾸는 생태사업이기 때문이다. 양재천의 경우도 지금과 같은 하천으로 가꾸기까지 수년 동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더욱이 청계천은 양재천보다 훨씬 공사가 까다롭다. 청계천은 수질오염의 심화 가능성이 양재천의 몇 배에 달하고 홍수 때 밀려드는 유량도 훨씬 더 많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할 때 복원 공사를 그처럼 단기간에 끝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맨땅에 묘목을 거꾸로 심는 무모함에 다름아니다.

    복원공사비 또한 문제다. 서울시는 현재의 청계천 고가도로가 구조적으로 심각한 안전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조속히 공사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고건 시장 시절 고가도로 전면 보수비용으로 1000억원을 책정한 바 있다. 고가도로 보수공사에 소요되는 비용만 1000억원이라면, 고가도로와 그 밑에 깔린 도로를 철거한 후 다시 하천의 수량과 수질을 확보하고 주변을 가꾸어서 자연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 전체가 과연 3600억원으로 가능한 것일까.

    더욱이 3600억원이라는 숫자는 서울시가 청계천복원 기본계획안에서 처음 제시했던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후보가 선거유세 기간에 발표한 액수였다. 문제는 당시 논의되던 복원 공사의 내용이 사업 추진이 본격화되면서 상당 부분 변경됐다는 점이다. 건천인 청계천의 유량을 확보하기 위해 한강물을 끌어온다거나, 하천 바닥으로 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방수공사를 하고 하천 쪽을 향해 돌출하는 2차선 도로를 새로 낸다는 내용은 이전 사업 구상에 없던 사항이 새로 포함된 것이다.

    이처럼 사업내용이 상당 부분 수정되었음에도 공사비의 규모는 여전히 3600억원으로 묶여 있다. 원래의 공사비가 과다하게 계산된 것일까? 아니면 3600억원의 한계를 넘지 않기 위해서 공사비를 애써 짜맞춘 것일까?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새만금 사업 중단, 이미 늦었다

    마지막으로 새만금 사업과 청계천 복원사업은 모두 시민·환경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찬반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비록 전자에 대해서는 사업중단을, 후자에 대해서는 사업추진을 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두 사업 모두 언론매체에서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점 역시 유사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 반대편의 주장이 언론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크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사가 착수된 10여 년 전의 사회 분위기에서 이 사업에 반대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전문학자들도 갯벌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했던 시절이었고, 시민단체도 막 태동기에 접어든 터라 본격적인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기에는 미약했다.

    이들이 새만금 사업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김대중 정권 이후다. 시민단체들은 갯벌의 중요성, 새만금호의 수질오염 가능성, 쌀농사 경작지 확보 논리의 경제적 타당성 미흡 등을 들어 사업 중지를 주장했다.

    이미 방조제 공사가 중반 이후 단계에 들어선 시점이었음을 감안해도 이는 상당히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이러한 반대 주장에 자극받은 정부가 새만금 사업의 추진 방식을 전면 개편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업 주체인 정부와 농업기반공사의 자세에 일대혁신을 일으키는 성과도 거두었다. 이후 정부의 다른 국책사업에 대해 시민·환경단체들이 보다 적극적인 견해를 표출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큰 발전이다.

    그러나 새만금 사업 중단 주장이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시민·환경단체의 추천으로 민관공동조사단 일원으로 참여한 바 있는 필자는 당시 시민단체들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이미 방조제 공사가 절반 넘게 진행된 간척사업을 중지시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국익 차원에서도 온당치 않다는 점을 주장한 바 있다(‘신동아’ 2001년 4월호 ‘새만금 사업, 환경친화적으로 추진할 비책 있다’ 기사 참조).

    당시 필자의 논리는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사업을 중단시키려면 보다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민·환경단체들이 거론한 반대 이유들은 사업계획 당시에 제기되었어야 했던 것들이다. 농경지보다 갯벌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은 정당할 수 있지만 이미 1조원이나 투자되어 방조제 공사가 3분의 2 이상 완료된 상황이라면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갯벌이 자연생태계로서 중요하므로 보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백번 옳은 논리다. 그러나 이미 방조제 공사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시점에서 갯벌 보전을 위해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착공에서 완공까지 20년이 걸리는 초대형 건물이 철근골조 공사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고 치자. 이제 뼈대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그 건물이 완공되면 교통난이 가중된다거나 주변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를 주장한다면 과연 그것이 합당한 일이겠는가.

    청계천 복원사업을 살펴보자. 환경단체들은 사업필요성이 처음 제기됐던 때부터 이를 환영하고 나섰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초 지방선거에 대비해 서울시장 및 각 구청장 후보들에게 제안할 목적으로 만든 ‘녹색서울만들기 10대 녹색공약’에는 ‘청계천에서 버들치가 살게 하자’는 내용이 두 번째 자리에 올라 있다. 이명박 시장 취임 후 서울시가 청계천 사업을 위해 조직한 시민위원회는 위원장을 비롯해 구성원 상당수가 시민단체들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인사들이다. 청계천 복원을 바라보는 시민단체들의 관대한 입장은 여기서도 읽을 수 있다.

    일부 언론매체도 힘을 실어주었다. 특히 ‘한겨레’는 작년 지방선거 운동 기간에는 물론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 사업의 추진을 찬성하는 기사를 실어 다른 확실한 차별성을 나타냈다. 물론 특정 언론이 시민단체의 의견을 적극 지지해 기사화하는 것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책임 있는 언론매체라면 어느 정도의 균형감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시민단체들이 지난 몇 해 동안 역량 있는 사회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이들이 공정성과 균형감각, 합리성을 잃지 않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자세를 견지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민단체가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던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하천 양안 지역의 상당 부분을 재개발하는 사업으로 구상됐다는 것은 처음부터 상식이었다. 다시 말하면 사업의 추진으로 혜택을 입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집단이 있으리란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가장 큰 수혜자가 일반 시민들이 아니라 이 지역에 땅과 건물을 소유한 극소수 부유층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 사업은 시공을 맡을 건설회사나 적잖은 세수증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서울시로서도 물론 바람직한 일이며, 특히 새로 생겨나는 자리에 눈독을 들이는 일부 공무원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사업추진으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우선 상권 악화로 생계에 지장을 받을 영세상인, 소상인, 노점상들이다. 서울시는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청계천 주변 상가 상인은 20만명 내외라고 추산하지만, 그 정확한 수나 이들이 당하게 될 경제적 피해의 규모는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만약 복원사업이 예정 공사 기간을 넘겨서 몇 년이고 지속된다면 피해 규모는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놀랍게도 지난달 서울시가 발표한 기본계획안의 경제성 평가 부분에는 이런 항목이 아예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환경론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정리하자면 이미 상당한 경제력을 확보하고 있는 이들은 커다란 이익을 얻지만, 영세 상인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과연 이러한 사회적인 파장에 대해 얼마나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을까. 혹시 청계천에서 뛰놀 몇 마리 물고기와 하루 아침에 생계를 놓고 천변에 나앉게 될 노점상인, 임대상인을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닐까.

    필자가 보기에 일부 시민·환경단체들이 청계천 복원사업을 지지하고 나서는 것은 옳지 못하다. 잃어버린 자연을 되돌리는 일이 아무리 귀하다 해도, 사업의 무리한 추진으로 위협당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새만금 사업과 청계천 복원 사업의 공통 분모를 확인해보았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검토해보기로 하자. 특히 새만금 사업에서의 교훈을 통해 청계천 복원사업 추진과정에 참고할 만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시민환경단체들이 새만금 사업을 극력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갯벌의 보전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이외의 대안은 아예 고려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청계천 복원사업의 경우 청계천을 자연하천으로 되돌린다는 당위성에 집착한 나머지 이 사업이 초래할 사회적·경제적 부작용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환경지상주의와 인기몰이 정치논리가 문제

    지난 2001년 6월5일 정부 주최 ‘세계 환경의 날’ 기념식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 주변에서 환경단체들이 새만금 사업 반대집회를 열고 있다.

    이처럼 오직 환경 보전만을 최고의 선으로 삼는 논리를 학문적으로는 ‘생태주의’라 부르는데, 요약하자면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른 생물들 역시 우리 인간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들임을 깨달아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 수 있는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생태주의는 그 동안 시민·환경단체들이나 이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이 환경보전운동을 펼치는 데 든든한 이론적 뒷받침이 되었다. 관행이었던 마구잡이식 대단위 토목 공사를 중단시키는 데 구실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도한 생태주의의 범람은 자칫 우리 사회를 잘못된 길로 오도할 수도 있다. 필자는 새만금 사업에 대해서는 거의 무조건적인 반대 의사를,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지지 의사를 표명한 일부 시민·환경단체들의 태도에서 이러한 부작용을 읽는다. 필자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과도한 생태주의’란 인간보다 다른 생물들을 우선시하는 사고 방식이다. 또 일부 생태계 복원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과 노력을 감수하고자 하는 사고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일부 시민단체들이 바로 이런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만금 사업에 대한 시민·환경단체들의 반대는 토론의 규칙과 절차를 무시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치열한 사회적 논쟁의 결과 사업 추진 쪽으로 결말이 났음에도 여전히 사업 중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시민단체들이 말하는 사업중지 요구의 근거는 과거 ‘새만금 대논쟁 기간’ 내세웠던 것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2년 사이 설득력을 가진 새로운 사유는 제시된 적이 없는 것이다.

    몇 년에 걸친 논쟁에도 양쪽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면 이제는 상대방의 의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무릇 민주주의란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견해만을 주장할 때는 절대로 꽃피울 수 없는 법 아닌가.

    선 도심재개발, 후 청계천 복원

    반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은 지나친 생태주의의 산물이자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허황된 도시계획 청사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구상이 상당 부분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청계천 복원사업에 크게 비판적인 인사들도 수도 서울의 열악한 환경 실태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는 데에는 같은 생각일 것이다. 특히 강남에 비해 매우 열악한 강북 도심지역의 재정비가 절실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복원론자나 반대론자 모두 동의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따라서 청계천 복원사업의 목표나 방안에는 이견이 있다 해도, 강북 도심지역의 주거 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해보자는 근본취지와 의욕만큼은 평가할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청계천 복원사업을 넘어서는 새로운 수도서울 정비 대안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명박식 청계천 복원사업으로는 결코 청계천의 물이 되살아날 수 없다. 먼저 강북 4대문 안 거의 전지역을 재개발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청계천 물이 맑아질 수 있다. 박경리 선생이 기대하는 ‘맑은 물과 나무가 있고 그 속에 물고기가 뛰노는 청계천’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강북 일대에 걸친 도심재개발 사업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요컨대 ‘선 도심재개발, 후 청계천 복원’이 그 대안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지금부터 이명박 시장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강북 4대문 일원의 도심재개발을 위한 청사진을 만들기 위해 청계천복원추진본부와 청계천지원연구단의 규모를 합당한 규모로 확대개편하는 일이다.

    요컨대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 복원공사를 임기 중 완공하려 서두르기보다 20~30년 후 미래를 내다보고 밑그림을 착실히 그리는 데 전념해야 한다. 그래야만 먼 훗날 서울 시민들이 복원된 청계천변에서 이시장의 업적을 제대로 기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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