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정부가 뭘 해줬다고 자식도 못 불러오게 합니까”

한국국적 취득 동포들의 애환

  • 글: 정호재 demian@donga.com

    입력2003-03-25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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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이지만 마음대로 혈육을 만날 수 없는 한국인이 있다.
    • 한국국적을 취득한 중국동포들의 그 주인공.
    • 어느덧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된 조선족들, 하지만 차별의
    •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은 차라리 눈물겹다.
    • 노동시장을 안정시키면서 재외동포를 껴안을 방안은 없는가.
    “정부가 뭘 해줬다고  자식도 못 불러오게 합니까”

    2월26일, 서울 구로구 서울조선족교회에서 열린 ‘조선족 출신 한국인 차별 항의집회’에서 한 여성이 자신이 한국인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들어 보이고 있다.

    최근 현대아산은 특별한 소식을 하나 공개했다. 북한 금강산 온정리 휴양소에서 일하는 한국인 총각과 조선족 처녀의 결혼소식이다. 이른바 ‘금강산커플’의 주인공은 온정각휴게소 지배인인 이종선(33)씨와 조선족 염은실(22)씨. 이들은 3월1일 삼일절에 수원에서 백년 가약을 맺었다.

    두 사람은 2000년 5월 금강산 온정각휴게소에서 지배인과 봉사원으로 처음 만났다. 이씨는 뷔페식당 관리를 맡았고, 염씨는 홀에서 일해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두 사람은 2월초 중국 랴오닝(遼寧)성 푸순(撫順)에서 신부의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1차 예식’을 치렀다. 염씨가 조선족인 까닭에 부모들이 손쉽게 입국할 수 없어 중국에서 따로 예식을 치른 것이다. 양가 부모형제의 축복을 받으며 치르는 게 정상적인 결혼식일텐데, 이들은 신랑식구 따로 신부식구 따로 혼례를 치렀다. 왜 이런 반쪽 결혼식을 해야 했을까.

    조선족과의 국제결혼 연간 7000건

    한국 남성과 조선족 여성의 결혼은 이제 흔한 일이다. 지난 한해 치러진 1만5000여 건의 국제결혼 가운데 7000건 이상이 한국 남성과 조선족 여성의 결합이었다. 그간 6만쌍의 한국 남성과 조선족 여성 부부가 탄생했고, 한국 여성과 중국 남성 커플도 총 3000쌍에 육박한다.

    말이 통하는 동포간의 결혼이지만 엄연한 국제결혼인지라 이들의 결혼생활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 약 2년간 평온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경우 대한민국 국적은 자동적으로 주어진다. 그렇지만 국적을 취득했다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모든 권리가 함께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중국의 가족들을 초청할 때 문제가 생긴다.



    중국에 거주하는 친정식구를 초청할 권리가 없는 조선족 여성이 가족을 만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 본인이 중국으로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오는 것. 하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출산과 육아의 책임을 진 주부로서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두 번째 방법은 남편이 장인과 장모 등 부인의 중국 가족을 초청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식이 보편적으로 활용되면서 최근 조선족의 입국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조선족교회의 오필승 목사는 이런 방식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말한다.

    “조선족 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국적을 취득하더라도 조선족은 중국의 직계가족을 초청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 남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국적 취득은 물론, 친정가족 초청권이 남편에게 있어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할 경우 미아가 돼버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선족 여성은 남편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현재 한국인은 친인척 관계만 확인되면 중국에 거주하는 8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을 초청할 수 있다. 조선족 출신 국적취득자에게는 이 권리가 없다. 그런데 현행 법률에는 이를 금지하는 규정이 어디에도 없다. 다만 법무부가 관계부처와 협의한 내규에 근거해 이를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법에도 없는 권리제한인 까닭에 명백한 불법이며 인권침해라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한국 국적자와의 결혼 외에 조선족이 한국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는 단 두 가지. 독립유공자이거나 동포 1세일 경우이다. 독립유공자와 동포 1세는 친척의 초청이 없이도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 이들은 대개 해방 이전에 작성된 자신의 호적을 찾아 국적을 취득한다. 동포 1세 및 그 배우자와 미혼 자녀, 유공자 가족 등 고령 동포에 의한 국적 취득자가 이미 1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한국민으로서 권리를 마음껏 누리지는 못한다.

    동포 1세로 한국국적을 취득한 권차하(여·70)씨는 지난 1월22일 다른 3명의 중국동포 출신과 함께 “한국인은 얼굴도 모르는 중국 친척을 초청할 수 있는데 우리는 친가족조차 초청 할 수 없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권씨는 “죽더라도 마음이 편해야 한다며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인 안동을 찾아 귀국했는데 중국의 자식들을 초청할 수 없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7남매를 두었는데, 미혼인 아들 둘이 나를 따라와서 내 밥벌이를 대신하고 있지. 나는 다른 동포 1세에 비하면 사정이 좋은 편이야. 그런데 큰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은지…. 하지만 나는 초청할 수가 없어.”

    권씨는 193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7살 때 아버지 등에 업혀 옌볜(延邊) 지린(吉林)시로 이주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권씨는 고향 안동을 방문해 호적을 찾았고 지난해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국적을 회복했다.

    “얼마나 고맙던지, 주민등록증을 어루만졌다니까. 그런데 큰아들이 보고 싶다니까 죽기 위해 고국에 온 나보고 중국에 돌아가서 자식을 만나보고 오라는 거야. 나도 대한민국 사람인데 이게 가당키나 하냔 말이야.”

    이상택(62)씨는 자신을 ‘교포’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나는 이 땅에서 태어났고, 일제시대 말기에 독립운동했던 아버지 따라 잠시 피해 살았을 뿐이야. 이제는 호적도 되찾고 대한민국국적도 회복했어. 근데 왜 나를 중국교포라고 불러? 나도 대한민국 사람이야. 조선족이라는 표현도 이제는 기분 나빠….”

    이씨는 스스로를 ‘2등 국민’이라 부르며 자조했다.

    “세금도 다 내고, 투표권도 있지만 중국에 있는 가족을 마음대로 초청하지 못한다니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얘기지…. 우리는 2등 국민이라는 소리밖에 더 되는가?”

    이씨의 하소연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내가 지금 중국에 있었으면 매달 연금 1300위안 타서 편히 살 수 있었어. 한국 돈으로 20만원이지만 중국에서는 200만원 가치야. 그걸 포기하고 여기 와서 힘들게 일해 70만원 벌어서 노인 부부가 손바닥만한 벌집에서 살고 있는데, 정부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내 자식 불러온다는 데 막느냐고?”

    노예와 다름없는 시집생활

    1997년 한국으로 시집온 박아무개씨는 “중국국적까지 포기하면서 이 땅을 밟은 우리들의 고된 타향살이를 이해해 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가족과 생이별한 뒤로 한번 만나려면 시집 눈치를 봐야 하는 자신들은 노예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중국에 계신 부모를 초청하려고 몇 번이나 남편에게 애원했지만 시어머니의 반대로 성사시키지 못했습니다. 임신을 하고 나서야 겨우 허락하더군요. 힘들게 한국에 온 부모는 출국시한을 넘겨 잠시 불법체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가 되더군요. 시댁과 사소한 갈등이 있어도 친정 부모를 약점으로 잡는 겁니다. ‘불법체류니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이죠. 정말 지옥과 다름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이런 한국국적 취득자들의 가족 초청권 허가요구에 대해 법무부의 반응은 냉담하다. 초청한 가족이 제 시간에 중국으로 돌아가리라는 약속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 단계적으로 초청권이 확대될 수는 있지만 당장 내국인과 똑같은 조건을 주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입국심사과 관계자의 말.

    “조선족이 한국에 들어오려는 이유는 대개 취업해서 돈을 벌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경제 사정이 그들을 전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중국동포 출신 국적자에게 4촌 혹은 8촌까지 초청권을 준다는 것은 200만 조선족 모두가 자유롭게 한국을 오간다는 이야기인데 불가능한 얘깁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약 36만명. 이 중 80.1%인 28만9000여 명이 불법체류자다. 3월 말까지 자진 출국해야 하는 근로자(국내 체류 3년 이상자)만 총 14만명이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 통계일 뿐 대략 50만명의 이주노동자가 국내에 머무르고 있고 그 가운데 조선족만 20만명에 이른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중국 조선족의 10% 이상이 한국에서 거주하는 셈이다.

    불법체류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은 끝이 없다. 법무부는 3월 말부터 불법체류자에 대해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다짐했고 조선족교회를 비롯한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조선족교회 서경석 목사는 지난 1월말 인수위를 찾아가 5만여 명의 탄원서를 접수시키며 “조선족 불법체류자의 체류기간을 1년만 연장해준다면 서명자 전원이 자진 출국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앞서의 법무부 관계자의 말.

    “조선족들은 한번 들어오면 3년 이상씩, 심지어 10년까지 버티기도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이 주장하는 국적취득자의 가족들이 못 들어오는 피해가 발생한 것입니다. 조선족교회의 요구는 한마디로 자유왕래를 보장하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단계적으로 확대를 추진중인데 무조건 허용하라고 생떼 쓰는 데는 솔직히 질린 상태입니다.”

    한마디로 불법체류자가 증가한 것이 조선족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은 또 서비스업까지 외국인 노동자에게 취업이 허용된 상황에서 만일 재중동포 출신에게 가족 초청권을 허용하면 국내 노동시장이 순식간에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른바 초청권이 만남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취업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관계자의 말.
    “정부가 뭘 해줬다고  자식도 못 불러오게 합니까”

    1999년에 제정된 ‘재외동포법’은 가난한 나라와 공산권 출신의 동포를 제외하고 있다. 사할린 동포(위)와 고려인 역시 국내에서 어떠한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

    “현재 한국 노동시장에는 장벽이 있습니다. 이것이 1000만원의 입국비용을 요구하는 등 불법을 조장하기도 하지만 입국 숫자를 조절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초청권을 남발하면 결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조선족이 몰려올 것입니다. 한국만 바라보다가 옌볜 조선족 사회가 몰락하지 않았습니까. 문호를 여는 것은 좋지만 전면적인 자유왕래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동포가 사는 곳은 연변만이 아니다. 사할린 동포들도 비슷한 문제로 정부와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사할린에는 1~3세대 한인 3만7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1만8000여 명이 유즈노 사할린스크시에 살고 있다. 한·일 적십자사는 지난 2000년 경기도 안산시에 사할린동포 집단 거주 아파트를 건립했는데 이곳에는 현재 일제에 강제 징용된 한인동포 500세대 1000여명이 살고 있다. 이곳과 경북 고령군 대창양로원에 머물고 있는 사할린 동포들도 가족과의 생이별로 고통받고 있다. 정부는 1999년 해방 이전에 출생한 부부로 65세 이상에 한해 1명의 가족을 동반하는 조건으로 귀국을 허용했다. 이 조건 때문에 대부분 노인들이 자식들과 헤어져 외롭게 살고 있다.

    이 노인들의 가족은 3개월 관광비자로 잠시 방문했다가 돌아가곤 한다. 2년 전 안산마을로 들어온 장아무개씨는 정부에 사할린의 딸을 초청해 함께 살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냈지만, 재원 문제와 형평성을 감안해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탄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얼마 뒤 장씨는 숨을 거두었다.

    임광빈 조선족복지선교센터 목사는 이런 비극적인 생이별을 막기 위해서라도 재외동포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족 동포는 숫자가 많으니까 그나마 주목을 받고 있지만 소수자인 사할린 동포문제는 아예 관심권 밖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본에 있는 총련계 무국적자 20만명이지요. 이들은 불행한 역사가 낳은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국가가 끌어안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현재 재외동포법은 1948년 대한민국 설립 이전에 출국한 사람에 대해서는 동포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을 개정해서라도 재외동포의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조선족 역시 동포로 인정한다면 왕래 금지로 인한 인권침해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입니다.”

    지난 2001년 11월29일 헌법재판소는 재외동포법의 ‘1948년 이후에 출국한 사람만을 재외동포로 인정한다’는 조항에 대해 재외동포간의 평등권을 해친다는 이유로 위헌판정을 내렸다.

    이 조항의 치명적 오류는 1948년 이후에 출국한 사람만을 동포로 정함으로써 그 이전에 강제로, 혹은 부득이하게 고국을 떠나 해외에 정착한 동포들, 즉 중국 조선족과 사할린 동포를 포함한 독립국가연합(CIS, 옛 소련지역 11개국)의 동포, 재일 조선적 동포 등 300만 동포를 법적 동포의 범위에서 제외시켰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 법은 1999년 시행초기부터 시민단체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동포들이 대규모로 거주하는 외국에서도 반발했다. 법 제정 과정에 소수민족의 움직임에 민감한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견제를 받기도 했다.

    외교통상부가 두려워한 것은 동포법이 완전한 혈통주의를 택할 경우 초래될 여러 문제점이었다. 외교부 관계자의 말.

    “현실적으로 ‘혈통주의’ 동포법은 국내 외국인 노동자 차별법이 될 수 있어 국제적 인권규약에 어긋납니다. 또한 조선족에게 국적에 가까운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할 우려 또한 존재합니다.”

    하지만 관련단체들은 정부가 중국측의 반발보다는 조선족이 동포로 인정돼 국내로 무한정 유입될 경우 국내 노동시장에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을 두려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법무부-외교통상부-노동부로 이어지는 이른바 관계부처는 혈통주의와 국적주의를 혼합한 ‘과거 국적주의’라는 기막힌 절충안을 내놓았으니 그것이 문제의 ‘1948년 이후에 출국한 사람만을 재외동포로 인정한다’는 조항이었다.

    재외동포법개정대책협의회측은 “1999년 개정된 재외동포법은 사실상 동포들을 빈부에 따라 차별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과거 재외동포를 체제안보와 정권안보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IMF사태를 계기로 경제안보 논리로 바뀌었습니다. 부자나라에 사는 재외동포들에게 투자요청을 하기 위해서 과거 동포들이 요구한 법 개정을 시도한 것이죠. 문제가 불거져 바뀌게 됐지만 2003년까지는 유효하니까 외교부가 원한 소기의 목적, 즉 동포들의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는 반면 조선족의 입국을 통제하는 목적은 달성한 셈이죠.”

    인천대 노영돈 교수는 동포의 범위를 정할 때 혈통주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독일도, 이스라엘도, 헝가리도 동포법의 핵심은 ‘혈통주의’입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기술적으로 풀어야 하지만 동포문제는 원칙이 중요합니다. 본국에서 한민족 출신을 우대한다는 것은 타국이 간섭할 수 없는 자주권에 속합니다. 외교부가 중국 반발 운운하는 것은 스스로 외교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외교부는 동포들이 처한 조건이 각기 다른데 이를 무시하고 똑같은 권리를 준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다. 더욱이 한반도 주변 4강에 흩어져 있는 동포들의 경우 해당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최근에는 국민적인 관심사가 된 군복무나 납세의 문제까지 얽혀 이런 문제들을 모두 비켜가는 재외동포법을 만들어내는 것은 더더구나 어렵다고 말한다. 외교부 관계자의 전언.

    “얼마 전 가수 유승준 사태에서 보았듯 재미동포 역시 이중국적을 이용해 한국에서 돈만 벌고 책임, 즉 병역은 기피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재중동포도 이와 다를 바가 없는데, 재외동포 규정을 평등하게 적용해서 자유왕래를 허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전세계 어디를 가나 중국요릿집을 볼 수 있듯, 중국인은 광범위하게 흩어져 살고 있다. 전세계에 교포를 두고 있는 중국의 재외교민정책은 어떨까.

    중국은 해외교민을 화교(華僑)와 화인(華人)으로 구분한다. 화교는 중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계 주민이며 화인은 해당국 국적을 취득, 현지 국민으로 완전히 편입된 중국계 주민이다. 다시 말하면 화교는 ‘재외국민’이고, 화인은 ‘재외동포’인 셈.

    중국은 화교를 ‘국외에 거주하는 중국 공민(公民)’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인 우대정책을 펴고 있다. 타이완과 홍콩, 마카오 주민들도 화교에 준해 대우하고 있다. 중국국적을 포기하고 외국국적을 취득한 화인에 대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우대 혜택이나 예외 규정은 없지만 실질적으로 지방정부에서는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이런 중국과 비교하면 우리는 제대로 된 재외동포 관리프로그램도 없는, 사실상 재외동포를 포기한 상태라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재외동포법상 대다수 조선족은 중국국적의 외국인에 불과하다. 따라서 외국인과 다를 바 없는 값싼 노동자로 인식됐고, 결국 오도가도 못하는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있다.

    재외동포법의 독소조항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 중 가장 시급한 문제가 20만명에 이르는 조선족 불법체류 문제. 불법체류자가 많다는 사실은 종종 차별을 낳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임광빈 목사는 “‘불법’이라는 수식어 탓인지 외국인 노동자, 특히 조선족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 낮게 평가하려는 시각이 있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대정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를 직시하고, 그 원인으로 지목된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로 전환하려는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중이다. 만일 조선족이 재외동포로 인정받아 국내에서 우대정책이 시행되고, 고용허가제가 실시되어 노동권을 인정받는다면 현재 국내 노동시장이 안고 있는 인권유린 문제는 상당부분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중소기업청은 새정부의 ‘고용허가제’를 분명히 반대하고 나섰다. 중소기업이 살기 위해서는 낮은 임금으로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산업연수생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허가하는 고용허가제에서는 중소기업이 생존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다. 결국 재외동포 문제는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겠다는 경제논리와 민족 공동체를 확대해야 번영한다는 민족공영의 논리 간 대결구도로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불법체류자 양산하는 나라

    조선족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제 조선족을 우리 경제에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엄격하다는 미국에는 1000만명의 불법체류자가 존재하고, 매년 200만명에게 영주권을 줘 신분을 합법화해주고 있습니다. 독일도 8년이 지나면 합법적인 권리를 주는데 우리는 왜 쫓아내려고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주 노동자가 우리 경제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지 생각도 못하나봅니다. 그들은 노동 3권도 인정받지 못하고 저임금에 혹사당하면서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사회보장, 의료보험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습니다. 한국 노동자에 비해서 말도 안 되는 불이익을 감수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노동현실을 보아도 이들이 없으면 공단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고용허가제는커녕, 비인권적인 산업연수생제도를 고집하여 불법체류자만 양산하고 있습니다.”

    재외동포의 차별이 ‘동북아 중심국가론’ 구상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지구촌 청년회의 배덕호 사무총장은 재외동포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새 정부는 동북아 중심국가를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그나마 버텨온 것은 바로 조선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중국에만 200만명됩니다. 추상적으로 동북아 중심 국가론를 펼치기보다 제대로 된 재외동포법을 마련해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 있는 재외동포를 적극 껴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조선족과 사할린 동포들, 그리고 지금도 한국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300만 재외동포들의 절절한 고통을 풀어줄 지혜로운 해결책은 없을까. 혈육과의 생이별을 강요하는 대한민국의 원칙 없는 재외동포정책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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