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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취재

“정부가 뭘 해줬다고 자식도 못 불러오게 합니까”

한국국적 취득 동포들의 애환

  • 글: 정호재 demian@donga.com

“정부가 뭘 해줬다고 자식도 못 불러오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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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적자와의 결혼 외에 조선족이 한국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는 단 두 가지. 독립유공자이거나 동포 1세일 경우이다. 독립유공자와 동포 1세는 친척의 초청이 없이도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 이들은 대개 해방 이전에 작성된 자신의 호적을 찾아 국적을 취득한다. 동포 1세 및 그 배우자와 미혼 자녀, 유공자 가족 등 고령 동포에 의한 국적 취득자가 이미 1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한국민으로서 권리를 마음껏 누리지는 못한다.

동포 1세로 한국국적을 취득한 권차하(여·70)씨는 지난 1월22일 다른 3명의 중국동포 출신과 함께 “한국인은 얼굴도 모르는 중국 친척을 초청할 수 있는데 우리는 친가족조차 초청 할 수 없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권씨는 “죽더라도 마음이 편해야 한다며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인 안동을 찾아 귀국했는데 중국의 자식들을 초청할 수 없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7남매를 두었는데, 미혼인 아들 둘이 나를 따라와서 내 밥벌이를 대신하고 있지. 나는 다른 동포 1세에 비하면 사정이 좋은 편이야. 그런데 큰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은지…. 하지만 나는 초청할 수가 없어.”

권씨는 193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7살 때 아버지 등에 업혀 옌볜(延邊) 지린(吉林)시로 이주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권씨는 고향 안동을 방문해 호적을 찾았고 지난해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국적을 회복했다.



“얼마나 고맙던지, 주민등록증을 어루만졌다니까. 그런데 큰아들이 보고 싶다니까 죽기 위해 고국에 온 나보고 중국에 돌아가서 자식을 만나보고 오라는 거야. 나도 대한민국 사람인데 이게 가당키나 하냔 말이야.”

이상택(62)씨는 자신을 ‘교포’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나는 이 땅에서 태어났고, 일제시대 말기에 독립운동했던 아버지 따라 잠시 피해 살았을 뿐이야. 이제는 호적도 되찾고 대한민국국적도 회복했어. 근데 왜 나를 중국교포라고 불러? 나도 대한민국 사람이야. 조선족이라는 표현도 이제는 기분 나빠….”

이씨는 스스로를 ‘2등 국민’이라 부르며 자조했다.

“세금도 다 내고, 투표권도 있지만 중국에 있는 가족을 마음대로 초청하지 못한다니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얘기지…. 우리는 2등 국민이라는 소리밖에 더 되는가?”

이씨의 하소연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내가 지금 중국에 있었으면 매달 연금 1300위안 타서 편히 살 수 있었어. 한국 돈으로 20만원이지만 중국에서는 200만원 가치야. 그걸 포기하고 여기 와서 힘들게 일해 70만원 벌어서 노인 부부가 손바닥만한 벌집에서 살고 있는데, 정부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내 자식 불러온다는 데 막느냐고?”

노예와 다름없는 시집생활

1997년 한국으로 시집온 박아무개씨는 “중국국적까지 포기하면서 이 땅을 밟은 우리들의 고된 타향살이를 이해해 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가족과 생이별한 뒤로 한번 만나려면 시집 눈치를 봐야 하는 자신들은 노예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중국에 계신 부모를 초청하려고 몇 번이나 남편에게 애원했지만 시어머니의 반대로 성사시키지 못했습니다. 임신을 하고 나서야 겨우 허락하더군요. 힘들게 한국에 온 부모는 출국시한을 넘겨 잠시 불법체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가 되더군요. 시댁과 사소한 갈등이 있어도 친정 부모를 약점으로 잡는 겁니다. ‘불법체류니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이죠. 정말 지옥과 다름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이런 한국국적 취득자들의 가족 초청권 허가요구에 대해 법무부의 반응은 냉담하다. 초청한 가족이 제 시간에 중국으로 돌아가리라는 약속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 단계적으로 초청권이 확대될 수는 있지만 당장 내국인과 똑같은 조건을 주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입국심사과 관계자의 말.

“조선족이 한국에 들어오려는 이유는 대개 취업해서 돈을 벌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경제 사정이 그들을 전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중국동포 출신 국적자에게 4촌 혹은 8촌까지 초청권을 준다는 것은 200만 조선족 모두가 자유롭게 한국을 오간다는 이야기인데 불가능한 얘깁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약 36만명. 이 중 80.1%인 28만9000여 명이 불법체류자다. 3월 말까지 자진 출국해야 하는 근로자(국내 체류 3년 이상자)만 총 14만명이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 통계일 뿐 대략 50만명의 이주노동자가 국내에 머무르고 있고 그 가운데 조선족만 20만명에 이른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중국 조선족의 10% 이상이 한국에서 거주하는 셈이다.

불법체류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은 끝이 없다. 법무부는 3월 말부터 불법체류자에 대해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다짐했고 조선족교회를 비롯한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조선족교회 서경석 목사는 지난 1월말 인수위를 찾아가 5만여 명의 탄원서를 접수시키며 “조선족 불법체류자의 체류기간을 1년만 연장해준다면 서명자 전원이 자진 출국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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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호재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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