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회의는 춤추고 법안은 잠잔다

‘인간배아복제’ 8년 논쟁

  • 글: 김훈기 puset@donga.com

    입력2003-03-25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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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연장을 위한 불가피한 섵낵인가. 아니면 반윤리적인 위험한 도전인가. 인간복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전세계가 떠들썩하다. 최근 의학계의 지속적인 연구 결과, 인간복제의 가능성이 점차 커지면서 더 이상 논란에만 머물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회의는 춤추고 법안은 잠잔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인간복제에 반대하며 ‘생명윤리기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복제인간 이브의 탄생과 복제양 돌리의 사망. 지난 연말과 올해 초 두 복제 창조물의 생몰 소식이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2002년 12월27일 종교단체 ‘라엘리안 무브먼트’ 산하 인간복제회사 클로네이드는 최초의 복제인간 이브가 세상에 무사히 태어났다고 밝혔다. 이 낯선 생명체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킨 것은 최초의 복제동물 돌리의 사망 소식이었다. 2003년 2월14일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의 로슬린연구소는 돌리가 폐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도축했다고 발표했다. 돌리는 보통 양의 수명의 절반 정도인 6년 반의 짧은 생을 살다 간 것이다.

    이브와 돌리는 비록 종(種)은 다르지만 ‘복제’를 통해 태어났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아직 로슬린연구소측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돌리의 ‘요절’은 복제기술이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브의 탄생이 윤리적인 이유뿐 아니라 안전성 면에서도 지적받을 수밖에 없는 근거다.

    이런 세간의 우려를 반영하듯 국내에서는 복제기술에 대한 규제 내용을 담은 법안 제정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현재 행정부와 입법부에 모두 4개의 법안이 준비된 상태다.

    행정부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주축이 돼 과학기술부와의 협의 아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이 상정돼 있다. 또 국회에서는 김홍신(金洪信·한나라) 의원이 발의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과 이원형(李源炯·한나라) 의원의 ‘인간복제금지 및 줄기세포연구 등에 관한 법률안’이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중이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도 이상희(李祥羲·한나라) 의원이 발의한 ‘인간복제 금지 및 줄기세포 연구 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이들 법안의 공통점은 한가지, 즉 인간복제를 금지한다는 사항이다. 지난 2개월간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 법안을 조만간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공표해왔다. 하지만 국내에서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일은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인간복제를 제외한 항목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핵심은 인간배아복제, 그리고 이종간 핵이식에 대한 허용 여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생명과학산업위원회를 비롯한 생명공학 산업계 관계자들은 국제경쟁력 측면에서 한국이 뒤처지지 않도록 이들 연구를 금지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이에 반해 시민단체들은 안전성과 윤리문제를 제기하며 연구가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연구의 주체인 과학자들도 이 두 가지 입장의 어느 한편에 서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도대체 인간배아복제와 이종간 핵이식이 무엇이기에 복제인간을 금지하는 법안 통과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일까.

    인간배아복제는 찬성이 우세

    복제양 돌리가 탄생한 이후 ‘복제’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로 자리잡았다. 돌리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해 태어난 양이 아니다. 암양으로부터 얻은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여기에 다른 암양의 젖세포 하나를 결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수정란’을 만들었다. 이를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한 후 임신 기간을 거쳐 태어난 개체가 돌리다. 젖세포 제공자, 난자 제공자, 그리고 대리모까지 모두 암컷이었으니 돌리는 아빠 없이 엄마만 3마리인 셈이다.

    ‘인간복제’란 바로 돌리가 태어난 원리를 인간에게 똑같이 적용시킨 개념이다. 양 대신 인간의 난자와 체세포를 사용한다는 점만 다르다.

    그렇다면 ‘인간배아복제’란 무엇일까. ‘배아’(embryo)는 흔히 임신 2개월까지의 초기 생명체를 일컫는 말이다. ‘인간배아복제’는 돌리의 경우와 같은 방식으로 인간을 복제한 후 이를 초기 배아 단계(보통 수정 후 4∼5일 정도)까지만 기른다는 의미다. 말을 잘못 해석하면 ‘인간의 배아를 복제한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1998년 12월 국내 경희의료원에서 인간의 체세포를 복제해 4세포기까지 발달시켰다고 주장함으로써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바로 이것이 인간배아복제를 시도한 일이었다.

    현재 대다수 과학자들은 복제인간을 태어나게 하는 일에 반대한다. 하지만 인간배아복제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표명하는 과학자가 적지 않다. 난치병 치료에 중요한 해결책을 마련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일단 ‘복제’ 문제를 접어두고 인간의 배아가 의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자.

    몸에 병이 들었다는 말은 어떤 장기의 세포가 손상됐다는 의미다. 이를 고치려면 손상된 부위에 건강한 세포가 자라나게 하면 된다. 그러나 이 일은 웬만해서는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 의학은 수술과 첨단의 약제품을 통해 장기의 기능을 회복시키려 하지만 질환의 원인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난치병들이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새로운 대안의 하나로 아예 건강한 세포를 질환 부위에 이식하는 방법이 있다(세포치료). 예를 들어 췌장의 기능이 떨어져 당뇨병에 걸린 사람에게 건강한 췌장 세포를 이식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 치매나 각종 암의 경우에도 해당 장기를 구성하는 건강한 세포를 이식한다면 난치병 극복의 시간은 훨씬 앞당겨질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걸림돌이 있다. 건강한 세포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이때 과학자들이 문제 해결의 한가지 가능성을 발견한 대상이 바로 배아다.

    원리는 간단하다. 수정란이 4∼5일 지나면 배반포기 상태가 된다. 안쪽 한 부분에 100∼200개의 세포로 이뤄진 세포덩어리(inner cell mass)가 모여 있는데, 이것이 장차 인체를 구성하는 210여 가지의 장기로 발달할 부분이다.

    소 난자는 윤리문제 해결책?

    실험실에서 이를 떼어낸 후 특수한 배양액에서 처리하면 몸의 각 기관, 예를 들어 심장이나 근육을 구성하는 세포로 분화가 유도된다. 이런 능력을 지닌 세포를 가리켜 배아줄기세포(embryo stem cell)라고 부른다. 몸의 모든 기관을 형성하는 뿌리에 해당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아직 문제는 남아 있다. 줄기세포가 치료에 아무리 좋은 재료라 해도 다른 사람의 세포는 면역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간염환자의 경우 자신의 간세포를 얻어 이식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어디서 자신의 간세포를 얻을 수 있을까. 환자는 이미 간이 손상된 상태가 아닌가.

    복제기술이 이를 실현시킬 수 있다. 즉 환자 자신의 건강한 체세포(가령 귀 세포) 하나를 떼어내 핵이 제거된 난자와 결합시킨 후 잘 배양하면 배반포기까지 자랄 수 있다. 여기서 줄기세포를 얻고 이를 간으로 자라날 세포로 배양시키면, 면역거부반응이 없는 훌륭한 치료용 재료가 얻어진다. 인간배아복제가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핵심 내용이 여기에 있다.

    2000년 8월9일 국내에서 최초로 인간배아복제 실험이 완수됐음을 알리는 발표가 있었다.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黃禹錫) 교수가 인간배아복제 실험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다고 전한 것이다. 황교수에 따르면 실험에 사용된 재료는 36세 한국인 남성 귀 세포와 한 여성으로부터 얻은 난자였다. 남성의 귀에서 떼어낸 세포를 미리 핵이 제거된 여성의 난자에 융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수정란’을 만들었다. 이 수정란이 4∼5일 지나 배반포기 상태로 자라면 안쪽의 세포덩어리를 떼어내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또 하나의 쟁점인 이종간 핵이식 허용 여부는 바로 인간배아복제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종간 핵이식’이란 종(種)이 다른 생명체끼리 복제(핵이식)를 수행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인간의 체세포를 소나 돼지의 핵이 제거된 난자와 융합시키는 일을 가리킨다. 이 실험은 이미 국내에서도 행해졌다.

    2002년 3월8일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朴世必) 소장은 30대 여성의 귀 세포에서 핵을 추출한 뒤 핵이 제거된 소의 난자에 이식해 99% 이상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복제 배아를 만드는 데 여러 차례 성공했다고 밝혔다. 박소장은 “현재 배아 복제 성공률은 10분의 1 정도여서 실험을 위해 많은 난자가 필요하지만 제공자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워 그 대안으로 지난 2년 동안 소의 난자를 이용한 복제실험을 해왔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인간의 난자를 얻기 어려워 소의 난자를 사용했다는 말이 과연 윤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일까. “오히려 윤리적인 문제를 덜 일으킨다”는 것이 박소장의 설명이다.

    1998년 11월 미국의 생명공학회사인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러지(ACT)는 인간의 체세포와 소의 난자를 결합시켜 ‘키메라 배아’를 만든 후 꾸준히 비슷한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ACT는 왜 ‘키메라 배아’를 만들었을까. 인간의 난자가 아닌 소의 난자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윤리문제 때문이다. 인간의 난자를 ‘불임클리닉용 시험관아기’를 만드는 일 외의 용도로 실험을 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규제를 받는다. 화제의 주인공인 시벨리 박사는 바로 사회적인 비판을 최소화하는 방편으로 소의 난자를 사용한 것이다. 그는 이 ‘키메라 배아’가 32세포기 단계까지 분열된다는 점을 확인하고 폐기시켰다.

    그러나 인간배아복제와 이종간 핵이식에 대해 국내 시민단체들은 대체로 ‘불가(不可)’ 판정을 내리고 있다. 인간의 배아 역시 엄연한 생명체라는 인식 때문이다. 배아에서 세포덩어리를 떼어내 줄기세포를 만드는 과정은 생명체를 함부로 조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 실험을 위해 수많은 생명체(배아)가 폐기되는 일은 ‘살인’ 행위가 아닌가.

    더욱이 인간배아복제는 단지 ‘배아’ 단계에서 실험이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체’ 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즉 누군가가 복제된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하는 실험을 진행한다면 ‘복제양 돌리’와 마찬가지로 ‘복제인간 아무개’가 등장할 수 있다. 진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클로네이드의 주장에 따르면 바로 이브의 탄생 과정에 해당한다.

    그런데 최근 들려온 돌리의 사망 소식은 인간배아복제의 윤리적 측면 외에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실 인간배아복제는 모든 난치병에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선천적으로 유전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경우 신체의 모든 세포는 유전적 결함을 안고 있다. 즉 환자 자신의 세포를 떼어내 복제할 경우 배아로부터 얻은 줄기세포 역시 동일한 유전적 결함을 갖게 된다. 이런 세포로 병을 치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인간배아복제는 후천적인 난치병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돌리의 죽음으로 인해 이 부분에 대한 가능성 역시 도전을 받고 있다.

    돌리에게 핵을 제공한 엄마의 나이는 여섯 살. 즉 6년 동안 분화된 세포를 떼어내 복제를 수행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돌리의 탄생 초기인 수정란 상태는 정상적인 수정란에 비해 노화된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이 수정란을 배반포기까지 분화시킨 후 줄기세포를 추출할 경우, 그 줄기세포 역시 노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것이 아닐까.

    2001년 과학기술부가 설립한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권혁찬 원장(봄여성병원)은 “복제된 수정란이 이미 어느 정도 노화가 진행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이로부터 추출한 줄기세포 역시 분화가 진행됐을 것이므로 만능세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노인성 치매에 걸린 환자의 경우 몸의 세포는 상당 부분 노화됐을 것이다. 이 세포로 복제배아를 만들어 줄기세포로 치료하는 일이 과연 적합할까.

    물론 인간배아복제가 야기할 안전성 문제에 대해 현재로서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복제된 인간배아로부터 추출한 줄기세포에 대한 공식적인 연구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세필 소장은 “최근의 우려는 돌리 하나의 사례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돌리가 탄생한 지 이미 6년이 지났으며, 그 사이에 세계적으로 복제기술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돌리의 결함을 복제기술 자체의 결함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한 예로 미국의 ACT는 2000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서 연구팀이 복제한 소 6마리의 경우 동갑내기 소들에 비해 오히려 젊어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당시 연구를 주도한 란자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결과는 수정란 단계에서 젊고 건강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주장하며 인간배아복제의 가능성에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생명공학연구원 한용만 박사는 “인간배아복제가 현 단계에서 불완전하지만 앞으로 과학기술의 진보에 의해 많은 한계들이 극복될 수 있지 않겠냐”는 조심스런 입장을 취했다. 예를 들어 2002년 4월5일자 생물학 전문지 ‘셀’에서 MIT의 제니시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의 연구내용이 주목할 만하다. 연구팀은 미리 면역성을 상실하도록 유전자 조작을 가한 생쥐를 대상으로 배아복제 실험을 수행해 줄기세포를 추출했다. 이 줄기세포는 당연히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다. 그런데 연구팀은 이 줄기세포에 정상적인 면역 기능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삽입하고, 이를 애초의 면역성 결핍 생쥐에 이식했다. 흥미롭게도 이 생쥐는 면역력을 갖추게 됐다.

    한용만 박사는 “만일 이 실험이 인간에게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면 선천적인 유전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경우 인간배아복제를 통해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론적으로는 유전병 환자로부터 얻은 줄기세포에 유전자 치료를 가함으로써 결국 유전병을 극복할 수 있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인간배아복제를 허용하느냐 마느냐의 선택만 주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배아복제의 장점, 즉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난치병을 치유할 수 있는 점을 취하면서 윤리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또 하나의 연구 흐름이 있다. 배아가 아닌 성인으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이다.

    2000년 8월15일 국내에서 황우석 교수가 인간배아복제에 성공했다고 밝힌 지 약 1주일 후 ‘뉴욕타임스’는 줄기세포를 얻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보도했다. 미국 로버트 우드 존슨 의대 연구팀이 인간 골수에서 채취한 줄기세포의 80%를 신경세포로 전환시킨 실험이다. 이 신경세포를 쥐의 뇌와 척수에 주입한 결과 수개월 가까이 정상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했다.

    사용된 실험재료는 성인의 골수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다. 배아에 대한 어떤 연구도 허용하지 않는 로마 교황청이 성인의 골수, 췌장, 뇌 등에서 줄기세포를 찾는 실험에 대해서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또 치매환자의 경우 자신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얻어 손상된 뇌에 이식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면역거부반응도 없다.

    배아복제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관건

    최근에는 산모가 출산한 이후 남은 탯줄과 태반에서 줄기세포를 발견하는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수정란이 산모의 자궁벽에 착상하면 탯줄과 태반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수정란이 계속 분열하는 동안 탯줄과 태반도 분열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이처럼 탯줄과 태반은 세포분화가 왕성히 일어나는 조직이기 때문에 줄기세포를 적지 않게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배아가 아닌 곳에서 줄기세포를 얻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예를 들어 성인의 줄기세포는 배양하는 동안 제 기능을 발휘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 의료적으로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성인이나 탯줄·태반의 조직에서 찾는 줄기세포의 수가 의료용으로 활용하기에는 너무 적다고 한다. 물론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인간배아복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이종간 핵이식에 대해 ‘허용’하겠다고 명시한 나라는 없다. 다만 인간배아복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다(현재 난치병 치료용으로 인간배아복제에 대한 연구를 명시적으로 허용한 나라는 영국뿐이다).

    회의는 춤추고 법안은 잠잔다
    한국의 경우 현재 제출된 법률안을 단지 수적으로만 살펴보면 ‘대세’는 인간배아복제와 이종간 핵이식을 허용한다는 분위기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주도하고 있는 행정부 단일안은 질병 치료를 위한 연구 목적으로 이들 두 가지 실험을 모두 허용하고 있다. 다만 연구의 허용 ‘범위’는 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정한다. 또한 현재 진행중인 인간배아복제 연구도 복지부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계속 진행할 수 있다. 이상희 의원과 이원형 의원의 법안 역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김홍신 의원의 안은 인간배아복제와 이종간 핵이식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허용하는 경우에 한해 연구를 허용한다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다.

    그렇다면 김홍신 의원의 안을 제외한 3가지 법안 가운데 어느 하나가 통과된다면 한국은 세계적으로 이종간 핵이식을 허용한 최초의 국가가 된다. 영국에 이어 인간배아복제를 공식적으로 허용한 두 번째 국가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시민단체들은 이들 법안 모두에 대체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과학자들 가운데 배아가 아닌 성체의 줄기세포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적지 않다. 동물 실험 단계를 거쳐 충분히 안전성이 입증된 이후 인간배아복제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논란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사실 한국 정부는 돌리의 탄생 소식이 전해진 1997년부터 생명윤리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2001년까지 무려 5개의 법안이 국회와 행정부에서 제출됐다. 그 가운데에는 인간배아복제를 완전히 금지해야 한다는 법안도 있다. 하지만 5개 법안은 실질적으로 모두 폐기된 상태다. 정부가 제시한 폐기의 근거는 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생명윤리법 제정을 위해 2001년 한국 사회에서 행해진 중요한 실험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경험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점을 알려준다.

    자문위, 10개월간 기본법안 마련

    과학기술부는 2000년 6월 당시 이한동 국무총리에게 국무조정실에서 생명윤리와 관련된 범정부 차원의 법제정을 추진해줄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국무조정실은 같은 해 9월 각계의 목소리를 들어 법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무부처에서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과학기술부 주관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 법제정을 추진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부는 인문사회과학계, 시민사회단체(NGO) 및 종교계, 생명공학계, 의학계에서 각 5명씩 총 20명으로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그 해 12월21일 첫 회의를 열었다. 자문위원회는 2001년 5월까지 각계 의견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하고, 과학기술부는 자문위원회 보고서를 바탕으로 생명윤리에 대한 법률안을 작성, 2001년 정기국회에 상정할 계획이었다.

    자문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은 공개적이고 민주적이었다는 것이 당시의 중평이었다. 우선 과학기술부가 자문위원회 위원을 구성할 때 초창기에는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와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을 추천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문위원회가 주요 심사대상으로 삼을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였기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자문위원회의 논의에 공정성이 결여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즉각 이에 반발했다. 과학기술부는 이 의견을 반영해 2명을 새로운 과학자로 대체했다. 아울러 보건복지부로부터 5명의 인사를 추천받아 위원으로 위촉했다.

    또한 자문위원회가 다룰 주제와 운영방식 등은 전적으로 자문위원회의 판단에 맡겼다. 과학기술부는 자문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조달해주고, 회의에 참관하는 정도로 역할을 한정지었다. 즉 자문위원회의 논의 결과는 과학기술부의 입장이나 이해관계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자문위원회는 2000년 11월21일의 제1차 회의 이래 2001년 8월14일까지 매달 2회씩 총 18회의 전체회의를 열어 생명윤리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했다. 그 결과 2001년 5월 생명윤리기본법안의 기본골격을 확정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전문가들이 시간을 쪼개가며 논의에 논의를 거듭해 얻은 힘겨운 성과물이었다.

    회의는 춤추고 법안은 잠잔다
    한편 자문위원회는 이러한 과정에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견해와 의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홈페이지(http:// www.kbac.or.kr)를 개설해 운영했다(자문위원회 활동이 끝난 후 이 홈페이지는 폐쇄됐다). 활동 초창기에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서울대 국민윤리교육학과 진교훈(秦敎勳) 교수는 “섣부른 결론보다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며 “다양한 의견수렴을 위해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해 의견을 듣고 위원회 진행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문위원회는 2001년 5월18일 위원들이 그 동안 합의를 이끌어낸 내용을 담은 생명윤리기본법안의 기본골격을 작성했다. 이 법안은 인간배아복제에 대해 금지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자문위원회가 줄기세포 연구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냉동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 실험은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불임클리닉에서 폐기될 운명에 처한 냉동보관중인 배아를 실험재료로 쓰는 일에 대해서는 당분간 허용한 것이다. 법안에 이런 항목이 삽입된 이유는 바로 한국에서 냉동배아를 이용한 실험이 행해졌기 때문이다.

    2000년 8월30일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는 냉동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해 국내에서 특허출원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에 사용된 재료는 시험관아기 프로그램에서 생긴 여분의 배아를 냉동시킨 것이다. 박세필 소장은 “5년 이상 동결 보존된 배아, 그리고 환자와 연락이 안 돼 폐기될 처지인 5~6일 된 냉동배아 6개를 실험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한 사례는 1998년 미국 위스콘신대 제임스 톰슨팀과 호주 모나쉬대 알랜 트론슨팀에 의한 2가지 경우뿐. 그런데 당시 사용된 배아는 냉동시키지 않은 ‘신선한(fresh)’ 상태였기 때문에 적지 않은 윤리적인 비판을 받았다. 박소장은 “이번 연구는 냉동된 배아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세계 최초”라며 “보존기간이 완료되는 등의 이유로 폐기될 처지의 배아로 실험했기 때문에 윤리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 8월23일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인간배아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허가를 받은 대상은 폐기될 처지의 냉동배아였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는 미국 정부가 허가한 항목에 대해 최초로 특허를 출원한 셈이다.

    하지만 줄기세포가 환자 본인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이식받은 환자는 평생 면역거부억제제를 투여해야 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 박소장은 “마치 골수은행처럼 다양한 줄기세포를 모은 은행을 만들면 면역거부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아무리 폐기될 처지인 냉동배아라 해도 이를 잘 녹여 자궁에 착상시키면 엄연히 하나의 생명체로 자랄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지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지만 자문위원회는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의 실험을 일단 금지하지는 않았다. 또 유산된 태아 조직을 이용하는 배아 연구 역시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또한 자문위원회는 인간의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연구를 허용했다. “국가는 성체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며, 배아 줄기세포 연구도 가능한 한 성체 줄기세포 연구로 유도하는 방향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자문위원회의 견해였다.

    자문위원회는 이 초안을 두고 공청회를 개최했으며, 이후 공청회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견을 논의하고 일부 조항을 수정해 7월10일 최종 기본골격안을 완성했다. 이 안은 인간배아복제를 엄격히 금지하는 등 5월18일 발표된 안의 뼈대를 대부분 유지하면서,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운영방식 등 일부 내용을 개선하는 수준이었다. 자문위원회는 8월14일 제18차 전체회의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회의일정을 마쳤으며, 그 동안의 활동보고서를 작성해 과학기술부에 제출했다. 자문위원회 위원장 진교훈 교수는 “자문위원들이 지난 9개월 동안 총 40여 차례 회의와 토론을 거쳐 최종안을 만들어냈다”고 말하고 “소수의견도 있었지만 거의 합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문위원회의 힘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은 국회에 상정도 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렸다. 공청회 이후 과학기술부는 생명윤리기본법안은 단지 자문위원회의 의견일 뿐 과학기술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줄곧 강조했다. 과학기술부는 공청회에서 쏟아진 생명공학계의 거센 반발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학계 반발에 묻혀버린 기본법안

    하지만 자문위원회는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과정을 진행한 훌륭한 사례였다. 특히 자문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한 가지 사안에 대해 과학계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법안에 강력 반대하던 과학자들도 한결같이 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의 허용과 허용 범위를 확대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와 반대로 자문위원회에 속한 과학자들은 배아 외에도 성체에서 줄기세포를 얻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즉 과학자 사이에서도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는 점이 자문위원회 활동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될 수 있었다.

    정부는 자문위원회의 활동을 단지 하나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 결과물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새롭게 생명윤리법안을 만드는 시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인간배아복제와 이종간 핵이식이 계속적인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는 이상 이런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1997년부터 8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자문위원회의 경험과 결론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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