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평검사들, 각본대로 나가다 노대통령에 역전패

사상 초유 검찰 인사파동 내막

  • 글:하종대 ,동아일보 사회1부 기자> orionha@donga.com

    입력2003-03-25 18: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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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정부 첫 검찰 인사의 특징은 서열파괴와 PK 부활, 대통령 사시 동기들의 급부상이다. 노대통령과 강금실 법무장관은 ‘검찰 개혁’이라고 주장하지만 검사들은 ‘검찰 장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까지 낳은 유례없는 검찰파동의 전모를 파헤쳤다.
    평검사들, 각본대로 나가다  노대통령에 역전패

    3월9일 TV로 생방송된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대화

    3월11일 아침 청와대 본관 식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강금실(康錦實) 법무장관,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내정자 등 3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곧바로 식사가 나왔다. 조촐한 한식이었다.

    이날의 조찬은 검사장급 이상 검찰간부에 대한 승진 및 전보 인사를 단행하기 위한 자리. 먼저 강장관이 인사안을 내밀며 결재를 요청했다.

    “한번 보시죠.”

    “아이고 안 볼래요. 강장관이 잘 알아서 했겠죠.”

    노대통령은 손사래를 치며 서류를 물리쳤다. 강장관에 대한 신임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그러나 강장관은 다시 서류를 노대통령에게 되밀며 말했다.

    “그래도 보시죠.”

    강장관의 강권(?)에 노대통령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인사 서류를 들춰보기 시작했다. 인사 서류엔 보직은 물론 각 간부에 대한 이른바 ‘존안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존안 파일이란 얼굴사진과 함께 출신과 학력, 경력은 물론 업무 능력 등 인사대상자에 대한 모든 내용이 들어 있는 ‘병풍식 두루마리’. 한번 기재되면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게 존안파일만이 갖는 특징이다. 설령 잘못된 기록일지라도 추가 기재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을 뿐이다.

    노대통령은 한 검찰 간부의 얼굴 사진을 가리키며 “이 사람 어때요?” 하고 물었다. 강장관 대신 26년째 검찰에 몸담고 있는 송 총장내정자가 답변에 나섰다.

    “예. 그 사람 괜찮습니다. 업무 능력도 뛰어나고 검찰 내부에 신망도 높은 편입니다.”

    “아 그래요.”

    노대통령은 몇 사람 더 물어보더니 곧바로 결재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송 총장내정자에게 몇 가지 주문을 했다.

    “검찰은 국민들로부터 그 어느 때보다도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검찰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어떻게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죠.”

    노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의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대통령에 취임한 뒤 지금까지 단 한번도 검찰에 부탁이나 지시 전화를 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SK 수사도 검찰이 알아서 하십시오. 국익에 대한 고려도 검찰이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노대통령은 이날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을 위해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강장관이 알아서 했겠죠”

    노대통령은 이에 앞서 9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토론회에서도 검찰을 장악할 의도가 없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노대통령의 말대로라면 그가 검찰을 장악할 의도는 없어 보인다. 또 이번 검찰 간부 인사에 대해 “그런대로 무난하다”는 평가도 들린다. 그런데도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운 검찰 장악”이란 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대통령은 실제로 12일 청와대에서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 등 한나라당 수뇌부와 가진 여야 수뇌부 회담에서 다른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갖던 도중 엉겁결에 “검찰은 이번에 꽉 쥐었는데…”라고 털어놓았다. 실수한 발언인지 몰라도 그 뜻은 이번 인사를 통해 노대통령이 ‘검찰을 장악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은 평검사들이 ‘검찰 장악하기’라는 의혹을 제기하자 여러 차례 “절대로 그럴 의사가 없다”며 부인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검찰을 장악할 의사가 있었던 걸까.

    이는 단순히 추측해서 될 일이 아니다. 노대통령이 정말 이번 인사에서 검찰을 장악할 의도가 있었는지를 알아보려면 인사 내용을 꼼꼼히 뜯어봐야 한다. 의도가 있건 없건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검찰 인사파동’의 원인도 여기서 출발한다.

    청와대를 떠난 검찰 간부에 대한 인사안은 이날 오전 10시 법무부에서 발표됐다.

    법무부는 “검찰 내에 신망 있는 검사들을 전진 배치하고 검찰의 신뢰를 손상시킨 책임이 있는 간부들은 요직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또 “기수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에 따라 간부들을 발탁해 적재적소에 배치,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인사안을 받아든 검사들은 경악했다. 인사가 파격적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예상은 했지만 이처럼 ‘과격’한 인사일 줄은 전혀 몰랐던 것. 대검의 한 간부는 “전두환(全斗煥) 정권이 들어선 5공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검과 법무부의 고위 간부들은 “이번 인사는 원칙 없는 인사”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검찰 중간 간부들도 “도대체 발탁의 근거가 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평검사들은 “나름대로 문책과 발탁을 했다고 하지만 일부 인사의 경우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며 평가절하했다.

    평검사들, 각본대로 나가다  노대통령에 역전패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 승진자 지역별 비율

    이에 반해 청와대의 반응은 달랐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인사가 발표되기 직전 “인사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80∼90점은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강장관도 인사를 단행한 이틀 뒤인 13일 낮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자신의 사시 동기생(13회)들을 만난 자리에서 “인사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검찰과 강장관-노대통령 사이의 갈등 구도에서 대체로 강장관 편에 섰던 재야법조계와 시민단체의 반응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못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이번 조기 인사는 불가피했다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검찰 개혁 방안을 제도화해 투명한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인사가 투명한 인사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

    대한변협 도두형(陶斗亨) 공보이사도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서열 파괴 등 과거의 관행을 극복하기는 했지만 정치권의 영향을 받는 인사 시스템의 한계는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선수(金善洙) 사무총장은 “인사 자체에 대한 평가는 어렵지만 앞으로 공정한 인사를 위한 개선책이 강구돼야 한다”며 이번 인사의 공정성을 거론했다.

    이처럼 노대통령과 강장관의 ‘밀실 인사’에 강력히 반발하던 검찰뿐만 아니라 그동안 강장관에게 호의적이었던 시민단체와 재야법조계까지 이번 인사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무엇보다도 이번 인사에서 원칙 없이 발탁과 좌천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의 최대 피해자는 유창종(柳昌宗) 서울지검장과 장윤석(張倫碩) 법무부 검찰국장, 김진환(金振煥) 대구고검 차장 등 3명. 유검사장은 이용호(李容湖) 게이트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 수사사령탑이었다. 장검사장은 12·12 및 5·18사건 첫 수사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장으로 이 사건 관련자들을 전원 불기소처분했던 주임검사다. 김검사장은 검찰 내 ‘피의자 폭행 사망 사건’ 당시 서울지검장.

    ‘검찰의 꽃’인 서울지검장이던 유검사장은 후배가 있던 대검 마약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 내 핵심 4대 요직 중 하나인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장검사장은 초임 검사장이 가는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다. 지난해 말 문책을 당해 서울지검장에서 대구고검 차장으로 옮겼던 김검사장은 또다시 초임 검사장이 맡는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전보됐다.

    특히 장검사장과 유검사장은 고검장인 후배 밑에서 일해야 한다. 김검사장도 동기생을 연수원장으로 모셔야 할 처지다. 선후배 관계가 돈독하고 서열을 중시하는 검찰에서 이런 인사는 당사자에게 사표를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 내에서는 이들의 전력이 모두 ‘흠집’에 해당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또 이들이 맡거나 재직중 일어난 사건이 결국 검찰의 불신을 가속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이 당시 사건의 주 책임자라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용호 게이트 부실 수사의 주 책임자는 사실상 S 전 검찰총장이라는 게 검찰 내부의 일치된 견해. ‘피의자 폭행 사망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좌천됐던 김검사장의 경우 “과연 지휘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건 발생 당시 해당 검찰청의 기관장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책임을 져야 한다면 모르지만 ‘지휘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때 거론됐던 김검사장에 대한 징계는 김검사장에 대한 전보조치 이후 유야무야됐다.

    12·12 및 5·18사건 첫 수사에서 관련자들을 불기소한 책임은 장검사장에게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게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상은 밝히되 평가는 역사에 맡기자”며 관련자들에 대한 불기소를 주문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과연 자기 의지만으로 기소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평검사들, 각본대로 나가다  노대통령에 역전패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한 검사와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다.

    물론 이들이 사건의 주 책임자가 아닐지라도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 앞으로 교훈으로 삼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이미 한 번씩 문책을 당한 경험이 있다. 선두주자 중 한 명이었던 장검사장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한직을 전전해야 했다. 유검사장 역시 부실 수사에 책임을 지고 지난해 초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좌천됐다. 김검사장도 지난해 말 서울지검장에서 대구고검 차장으로 전보됐다.

    그러나 심완구(沈完求) 전 울산시장의 수뢰사건 부실수사의 책임자였던 모 검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오히려 고검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평창종건의 사무실에서 뇌물수수 액수 등이 적힌 비자금 장부까지 압수했지만 관련자 가운데 일부가 해외로 달아났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수사를 종결처분했다. 울산지검의 부실수사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씨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뒤늦게 밝혀졌다.

    또 국정원 직원의 수뢰 사건 수사를 도중에 중단시켰던 모 검사장은 대검의 핵심 요직으로 영전했다. 검찰 내부에서 “인사 원칙이 뭐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와 법무부의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들 2명은 검찰 내 후배들의 신망이 높았다”고 해명했다.

    지역과 연고에 따라 발탁과 좌천이 이뤄졌다는 점도 이번 인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우선 PK(부산 경남) 출신 간부들은 거의 모두 승진하거나 영전했다. 검사장 승진자 6명 중 3명의 출신지가 부산·경남이다. 검찰총장과 고검장 승진자 등을 포함하면 6명으로 전체 승진자 13명 중 절반에 가깝다.

    PK 출신 중 검사장 승진자는 사시 18회의 문영호(文永晧) 서울고검 공판부장과 임채진(林采珍) 서울지검 북부지청장, 안영욱(安永昱)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장. 13명의 PK 출신 간부 가운데 승진 또는 영전하지 못한 사람은 단 한 명으로 김영진(金永珍) 대구지검장이다. 그는 이번 인사에서 전주지검장으로 좌천됐다가 결국 옷을 벗었다.

    게다가 PK 출신들은 줄줄이 검찰 요직을 차지하거나 동기보다 먼저 승진했다. 송 총장내정자를 비롯, 정홍원(鄭烘原) 법무연수원장, 김상희(金相喜) 대전고검장, 이종백(李鍾伯) 인천지검장, 안대희(安大熙) 대검 중앙수사부장 등이 노대통령과 같은 고향 출신이다.

    대신 호남 출신 간부들은 이번 인사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10명의 좌천 간부 가운데 절반인 5명이 호남 출신이다. 창원지검장(검사 정원 38명)이던 채수철(蔡秀哲·전북 진안) 검사장은 제주지검장(검사 정원 16명)으로 전보됐으며, 수원지검장(검사 정원 83명)이던 김규섭(金圭燮·전남 함평) 검사장은 부산고검 차장으로 좌천됐다. 광주지검장(검사 정원 49명)이던 조규정(趙圭政·광주) 검사장도 광주고검 차장으로 전보조치됐으며, 법무부 법무실장이던 박종렬(朴淙烈·광주) 검사장은 3기 후배가 있던 대검 공판송무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송 총장내정자 동기인 정충수(鄭忠秀) 대검 강력부장(사시 13회)은 초임 검사장이 가는 사법연수원 부원장에 임명됐다.

    노대통령 사시 동기들 급부상

    검사장 승진 1순위였던 신언용(申彦茸·사시 18회·전남 영광) 서울지검 동부지청장과 강충식(姜忠植·사시 19회·광주) 서부지청장은 이번 승진에서 누락됐다.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이 검사장 승진에서 누락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신청장은 합리적이고 후배들로부터 평판도 좋아 도대체 왜 승진에서 누락됐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게 검찰 내부의 평가. 강청장도 그동안 탁월한 능력을 평가받아왔다는 점에서 탈락의 원인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지역별 불균형 인사로 14일 현재 사표를 낸 검찰 간부 11명 가운데 5명이 호남 출신이다. 게다가 아직 사표를 내지 않은 좌천자 5명 가운데도 호남 출신이 3명으로 가장 많아 검찰을 떠나는 호남 출신 간부는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이번 인사에서 승진했거나 일부 요직으로 보이는 자리로 옮긴 호남 출신 간부들은 앞으로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게 검찰 내부의 일반적 관측. 대부분 극심한 지역 편중에 대한 비난을 우려해 일부 호남 인사를 앉혔을 뿐 실질적인 권한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검의 한 고위 간부는 “호남 출신들 가운데 영전한 간부들은 경기고 출신으로 호남 출신이라는 사실이 ‘탈색’됐거나 성격이 온유한 사람들로, 위 아래가 포위돼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대통령의 사시 동기생(17회)이 대거 발탁된 것도 특징이다. 검사장급 이상 간부 가운데 노대통령의 사시 동기생은 모두 6명이다. 우선 법무차관에 임명된 정상명(鄭相明)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꼽을 수 있다. 법무차관은 원래 고검장급으로 승진한 8명의 간부 가운데 가장 막내가 맡는 자리다. 정차관은 그러나 앞으로 추진될 검찰 개혁의 실질적인 지휘사령탑을 맡게 될 것으로 알려져 법무차관직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정법무차관은 예상을 뛰어넘는 발탁 인사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도 그가 사시 동기생이라는 점을 의식했던지 “주위에서 (사시 동기생인) 정실장을 차관으로 추천해 가슴이 뜨끔했다”며 후일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안대희 부산고검 차장은 검사장 승진 1년 만에 전국 특수수사를 조정, 통제하는 수사사령탑인 대검 중앙수사부장에 발탁됐다.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의 비리는 대부분 대검 중수부가 직접 수사한다.

    이기배(李棋培) 법무연수원 기획부장도 전국의 선거와 노사문제 등을 담당하는 대검 공안부장에 배치됐다. 법무부는 인사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공안부장은 정통 공안이 아니다”며 “앞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공안업무를 다루어달라”고 주문, 발탁의 의미를 분명히 했다.

    전남 목포 출신인 이공안부장은 그러나 검찰의 핵심 4대 요직으로 분류되던 예전과는 달리 공안부 축소, 폐지론이 계속적으로 불거져 나오고 있어 실질적인 힘은 크게 상실할 전망이다.

    유성수(柳聖秀) 서울고검 검사는 이번에 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곧바로 대검 감찰부장에 임명됐다. 대개 검사장 중 가장 아래 기수에서 맡던 대검 감찰부장은 이번에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검사에 대한 감찰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요직으로 바뀐 자리.

    유검사장은 그동안 2차례나 검사장 승진대상에서 탈락, 이번에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그의 고시합격기에서 “우리 기수의 수석합격자는 법대가 아닌 공대출신이었다”고 적고 있어 노대통령이 직접 발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사시 17회 시험에서는 이례적으로 서울대 공대 출신인 유검사장이 수석을 차지했다.

    이밖에 이종백 대검 기획조정부장과 임승관(林承寬) 서울고검차장도 각각 인천지검장(검사 정원 70명)과 창원지검장 등 비중 있는 일선 검찰청의 기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를 보면서 노대통령이 검찰을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겉으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수사에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검찰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노대통령의 고향인 PK 출신 검찰 간부들 및 사시 동기생들이 중용된 것을 보면 이런 의도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검찰은 특히 “수사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는 대신 잘못한 수사에 대해서는 인사로서 분명히 책임을 묻겠다”고 한 청와대와 노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인사권 행사를 통해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이전에는 ‘민감한 수사’에 착수하면 권력 핵심부에서 직·간접으로 사인이 오기 때문에 그에 맞춰 수사강도와 범위 등을 결정해 수사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권력 핵심의 ‘뜻’을 알아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수사 강도의 조절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 특히 수사의 잘잘못은 결국 청와대와 법무부장관이 판단할 것이기 때문에 검찰 간부들은 언제든지 문책의 위험성을 안고 수사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행되는 검찰 인사를 앞두고 검찰총장부터 평검사에 이르기까지 인사의 투명성을 요구하며 크게 반발한 것도 바로 이 때문. 인사안이 너무 파격적이기도 했지만 검사들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바로 ‘밀실 인사’라는 점이었다.

    이들이 처음 반발한 것은 3월6일 오후 강장관이 고검장 승진자 명단을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에게 전화로 통보하면서부터였다. 통보 내용은 사시 14회인 정홍원 부산지검장과 사시 15회인 김종빈 대검 중수부장, 사시 16회인 임래현 전주지검장과 김상희 제주지검장을 고검장으로 승진시킬 테니 사시 13, 14회 간부들에겐 개별적으로 진퇴를 물으라는 것.

    대검과 서울지검은 이 소식을 듣고 발칵 뒤집혔다. 대검의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과 과장급, 서울지검의 부장급 이상 간부들은 곧바로 긴급 회의에 들어갔고 부부장 및 평검사들도 따로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검사들은 “검찰 간부 인사에 검찰 의견을 반영해야 하며 이런 식의 인사는 절대 안 된다”는 취지의 뜻을 김총장에게 전달했고 김총장은 이날 오후 곧바로 과천의 강장관에게 달려가 검사들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강장관은 “일부 고검장 승진자를 바꿀 수는 있으나 인사 골격은 절대 바꿀 수 없다”며 김총장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결국 전국의 일선 검사들이 검찰청별로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동요하기 시작했고 노대통령은 8일 공개토론회를 긴급 제안했다.

    평검사들, 각본대로 나가다  노대통령에 역전패

    3월7일 강금실 법무장관을 면담한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하지만 다음날 TV로 생방송된 토론회에서도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노대통령과 평검사 대표 10명은 이날 토론회에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은 채 평행선을 달렸다. 평검사들은 검찰 인사 때 투명하게 해달라는 수준을 뛰어넘어 현재 법무장관이 갖고 있는 인사제청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기라고 요구했고, 노대통령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라며 이를 일축했다. 검사들은 또 노대통령에게 이번 인사부터 검찰인사위원회를 구성해 인사 원칙과 기준을 정한 다음 인사를 하라고 요구했으나 노대통령은 “시간이 없어 이번 인사 때는 종전대로 하고 다음 인사 때부터 그렇게 하겠다”며 거부했다.

    사실 이같은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평검사들은 토론 벽두부터 노대통령에게 “노대통령이 ‘토론의 달인’이라는 얘기가 있다”며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노대통령 역시 검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따라서 토론 내용도 건설적이지 못했다. 서로가 상대방을 반드시 꺾고야 말겠다고 마음먹고 나온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론 결과는 검사들에게 아주 불리하게 나타났다. 네티즌들은 평검사들을 “토론의 격식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한 데 이어 ‘검사스럽다’는 모욕적인 표현까지 만들어냈다.

    네티즌들은 ▲아버지에게 대드는 버릇없는 자식 ▲학번과 학벌을 들이대며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깎아내리기 좋아하는 사람들 ▲고생만 한다고 푸념하면서 정작 뒤로는 룸살롱을 찾는 사람 ▲할 말 또 하고 또 하고, 짜증날 때까지 말하는 사람을 통틀어 ‘검사스럽다’고 일컫는다며 검사들을 비아냥댔다.

    네티즌들은 또 ‘검찰과 조폭(조직폭력배)의 공통점’은 ▲상대가 어떤 위치에 있건 기선부터 제압하고 본다 ▲조직에 방해가 된다면 누구든 ‘맞장’부터 뜨고 본다 ▲기강이 세다. 선배 이외엔 이 세상 모두를 내려다본다 ▲논리에 약하다. 말을 못하므로 주먹(기소권)을 잘 쓴다는 것이라며 검찰에 조소를 보내기도 했다.

    실제 네티즌들의 이같은 반응은 꼭 토론회 때문이라기보다 검사 계층에 대한 평소의 불만이 어우러지면서 증폭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러나 검사들이 이날 토론회에서 정연한 논리를 전개하면서도 안 되겠다 싶으면 단호하게 거부하는 노대통령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는 게 검찰 내부의 평가다.

    이처럼 평검사들이 그때 그때 제시된 토론 주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다소 ‘엉뚱한’ 주장만 늘어놓게 된 데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대로만 발언한 것도 한 원인이다. 검사들에 따르면 이날 노대통령의 약점 들춰내기까지도 이미 짜여진 각본이었지 즉흥적으로 흥분해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는 것. 결국 참석자 10명 전원이 짜여진 각본대로 순서에 따라 앵무새처럼 얘기하다 보니 노대통령의 즉흥적인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평검사들은 “우리가 하고픈 말은 충분히 했다”며 애써 자위하고 있다.

    “강장관은 거짓말 장관”

    토론회의 파장은 검찰 내부에서도 예상외로 컸다. 김각영 검찰총장은 노대통령이 이날 토론회에서 검찰 수뇌부에 대한 불신을 확실하게 드러내자 곧바로 사표를 던졌다.

    김총장은 이날 법무부에 사표를 제출하면서 “강장관은 거짓말 장관”이라며 강장관을 격렬히 비난했다. 그는 “강장관이 노대통령과 평검사와의 토론회에서 검찰총장과 충분히 협의했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장관 취임 이후 3일 밤 서울 시내 모처에서 처음으로 만나 1시간 반 가량 대화를 나눴다”며 “이 자리에서 내가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 41명에 대해 한명 한명 장단점을 설명했을 뿐 인사 협의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총장에 따르면 3일 밤 강장관은 김총장과 헤어지면서 “5일 중 (검찰 간부 인선안에 대해) 협의하겠다”고 말해놓고도 5일엔 “내일 연락 드리겠다”고 했고 정작 6일에 와서는 전화로 고검장 승진자 명단을 일방적으로 불러줬다는 것.

    김총장이 이처럼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을 언론에 털어놓게 된 데는 강장관이 ‘밀실 인사’라는 평검사들의 공격을 모면하기 위해 자신과의 만남을 활용하려 했다는 강한 의구심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검찰총장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를 마쳤는데 무슨 밀실 인사냐”라는 식의 강장관 발언에 김총장은 검찰 조직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해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강장관이 김총장의 인사 의견을 무시한 데 대한 불만의 표출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김총장이 고검장 승진 대상자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검찰 간부 4명은 이번 인사에서 모두 좌천됐다.

    유창종 서울검사장이 후배가 있던 대검 마약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심지어 부산 출신인 김영진 대구지검장도 전주지검장으로 보임됐다 결국 사표를 냈다. 사시 15회의 김규섭 수원지검장과 박종렬 법무부 법무실장도 각각 부산고검 차장, 대검 공판송무부장으로 좌천됐다. 김검사장도 11일 법무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번 인사 과정에서 검찰을 떠났거나 좌천된 검찰 간부들은 한결같이 이번 인사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명노승(明魯昇) 법무차관은 11일 퇴임식에서 “이번 검찰 인사 파동은 ‘밀실 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강장관을 겨냥했다.

    김학재(金鶴在) 대검차장은 12일 검찰을 떠나면서 “타율에 의한 개혁은 실패할 위험성이 높다”며 “검찰 개혁은 검찰조직원 모두가 동참한 가운데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검찰에 관한 일은 검찰에 맡기는 것”이라며 청와대가 앞장서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법무부 검찰국장에서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된 장윤석 검사장은 13일 퇴임에 앞서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후배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이번 인사는 특정 후배 기수를 검찰요직에 끌어올리기 위해 선배 기수의 검사장들을 합당한 원칙과 기준 없이 무분별하게 축출한 무리한 처사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부임한 뒤 사직하는 것은 불합리한 인사를 검찰 정사에 공식적으로 기록함으로써 후배들에게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사건으로 기억하게 하고 역사적 평가를 위한 공식자료로 남기고자 함”이라며 “오늘 사퇴는 후배를 위한 용퇴가 아니라 인사조치의 총탄에 맞아 죽어나가는 전사(戰死)”라고 강조했다.

    명법무차관이나 김대검차장처럼 곧바로 옷을 벗지 않은 사람도 많다. 정충수 사법연수원 부원장이나 유창종 대검 마약부장은 애초 곧바로 사표를 내려 했으나 불합리한 인사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당분간 검찰에 남기로 했다. 김진환 법무연수원 기획부장도 마찬가지다.

    검찰 간부들의 이같은 강렬한 반발에도 평검사들은 일단 집단행동을 접었다. 노대통령이 앞으로는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와 중간 간부, 평검사 별로 검찰인사위원회를 만들어 투명하게 인사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총장은 제대로 뽑았지만…”

    그러나 이는 토론회 이후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과 집단행동에 따른 부담 때문이지 노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가시거나 의혹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니다. 이번에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평검사는 “노대통령이 토론회에서 보여준 것은 협량(狹量)함”이라고 말해 노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여전함을 드러냈다.

    새로 요직에 부임한 검찰 간부들은 벌써부터 노대통령의 시국관에 맞게 검찰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검찰 고위 간부들은 검찰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과격했던 이번 인사를 통해 어떻게 행동해야 살아날 수 있을지를 뼈저리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검사들 가운데 일부는 민변 소속 변호사 사무실을 기웃거리는 등 ‘정치권 줄대기’가 이미 시작됐다는 말도 들린다. 따라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송광수 총장 체제가 이미 노무현 대통령에게 장악됐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송 총장내정자와 함께 일해본 검찰의 한 원로는 그를 “공사가 분명하고 의리 있고 심지가 굳은, 한마디로 똑부러지는 검사”라고 평가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총장만은 제대로 뽑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선배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소신파로 수사와 사건 처리에서 ‘공정성’을 복무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다. 올초 4000억원 대북(對北)지원 의혹과 관련, 노무현 당시 대통령당선자가 “처리방식을 국회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하며 사실상 검찰 수사 유보에 방향타를 제시했지만 그는 당시 검찰의 수사 유보 조치를 강력히 비판했다. 게다가 평검사들은 “이번에야말로 권력 핵심에 제대로 칼을 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벼르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검찰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 등 권력 핵심과 검찰과의 관계이며 막강한 권력을 지닌 양자가 투명하면서도 건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때 달성된다. 특히 그동안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이뤄지지 않은 데는 검찰의 책임도 있지만 그보다는 권력 핵심의 잘못이 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개혁은 ‘참여 정부’의 화두다. 특히 검찰 개혁은 국민 대다수가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노대통령의 국정 과제다. 노무현 정부가 검찰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수사조직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노대통령이 이 점을 특히 유념해야 할 것 같다.

    평검사들, 각본대로 나가다  노대통령에 역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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