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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적

동성애 살인이냐 미군 보호용 희생양이냐

이태원 美 여대생 살인사건

  • 글: 이정훈 hoon@donga.com

동성애 살인이냐 미군 보호용 희생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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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은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 헌팅턴시에 있는 M대학교 초등학생교육과에 입학해 다니다가 2001년 3월1일 대구에 있는 K대학교 2학년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었다. 1학기 동안만 수업받고 방학이 되면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 예정 체한(滯韓) 기간은 6월 중순까지의 3개월 남짓이었다.

카렌보다 두 살이 많았던 제시카는 미국 P대학 아시아지역학과를 다니다 2001년 3월3일 역시 교환학생으로 K대 2학년에 오게 되었다. 두 여학생은 이웃한 주에 살았지만, 한국에 오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K대학에는 카렌과 제시카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온 교환학생들이 있었다. 체한 기간이 3개월 남짓이었으므로 이들은 K대 기숙사에서 한국인 룸메이트와 2인 1실로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더 잘 모이는 법. 개강 직후 얼굴을 익힌 교환학생들은 서울 구경을 해보자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한다. 서울 구경에 동의한 학생은 모두 일곱 명으로 미국인인 카렌(여)과 제시카(여), 핀란드에서 온 A(남·당시 22세)와 B(여·당시 22세), 네덜란드 출신인 C(남·당시 22세)와 D(여·당시 23세), 그리고 러시아에서 온 F(여·당시 25세)였다.

국적은 넷이지만 성별로는 남자 두 명에 여자 다섯 명인 이들이 서울 구경을 가기로 한 것은 3월16일 금요일이었다. 그런데 러시아 여학생 F는 수업이 있어서 하루 늦게 서울에 올라가기로 했다. 3월16일 오후 F를 제외하고 서울역에 도착한 여섯 명은 이태원으로 이동해 방 하나에 3만원씩 주기로 하고 K모텔에 방 세 개를 얻었다.

K모텔은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사고가 난 후 경찰이 조사했을 때도 대부분의 방에는 미국인·나이지리아인 등 여러 나라 사람이 묵고 있었다. 사람은 여섯인데 방은 세 개이니 한 방에 두 사람씩 들어가야 한다. 세 나라의, 남자 둘에 여자 넷인 이들은 어떻게 방을 배정했을까.



핀란드 출신의 남녀 학생 A와 B는 스스럼없이 102호에 함께 들어가겠다고 했다. 이어 제시카는 그새 네덜란드 출신의 여학생 D와 친해졌는지 같이 한 방을 쓰자며 103호를 선택했다. 그래서 카렌은 네덜란드 출신의 남학생 C와 104호에 들어가게 되었다. 102호에는 핀란드인 남녀 학생, 103호에는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온 여학생 두 명, 그리고 104호에는 미국인 여학생과 네덜란드인 남학생이 투숙하게 된 것이다.

다음날인 3월17일(토) 이들은 남대문 시장과 서울 타워·남산 한옥마을 등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관광 도중 서울역에서 러시아 여학생 F를 만나 합류하게 되었다. 일곱 명으로 불어난 다국적 학생 여행단은 서울 관광을 계속하다 오후 4시30분쯤 K모텔로 돌아왔다. 러시아 여학생은 101호를 빌려 혼자 투숙하게 되었다.

聖 패트릭 데이

오후 5시쯤 이들은 몸이 좋지 않다고 한 핀란드 여학생을 남기고 모텔을 나와 부근의 인도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비는 한 친구가 신용카드로 계산한 후, 다른 친구들이 이 친구에게 각자의 식비를 내는 ‘더치 페이’로 해결했다. 3월17일은 한국인에게는 그저 그런 주말에 불과하겠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성인인 패트릭(385~461년)을 기리는 ‘성(聖) 패트릭 데이’로, 서양에서는 이 날을 축일로 여긴다.

K모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이들은 성 패트릭 데이를 즐기기 위해 저녁 9시쯤 다시 모텔 밖으로 나서게 되었다. 이때 103호의 열쇠를 갖고 나온 것은 제시카였다고 한다(한 방을 쓴 네덜란드 여학생 진술 근거). 그런데 102호에 있던 핀란드 출신의 남녀 학생은 피곤하다며 빠졌다(그러나 이들도 9시35분쯤 모텔 밖으로 나와 둘이서 피자를 사먹고 진저 바와 디스코 테크에서 맥주 한 병씩을 마시고 밤 12시쯤 모텔로 돌아왔다).

다섯 명의 교환학생들은 이태원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 ‘N’자로 시작되는 간판을 단 바(이하 N바)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N바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 있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기분이 좋으면 플로어에서 춤도 추는 전형적인 서양식 선술집이다. 미 8군이 인접해 있었기에 당연히 미국인과 미국 군인들이 많이 와 있었다. 두 미국 여학생은 이곳에서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이들에 둘러싸여 춤을 추기도 하였다.

성 패트릭 데이가 지나고 3월18일 새벽 1시45분이 되었을 때쯤 두 미국 여학생을 제외한 세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시카와 한 방을 쓰는 네덜란드인 여학생, 카렌과 한 방에서 지내는 네덜란드인 남학생,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러시아 여학생이 피곤하다며 숙소로 돌아간 것이다. 이들이 떠난 후에도 카렌과 제시카는 바에서 만난 손님들과 어울려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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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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