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21세기에 거듭난 우리 고전의 맛

  • 글: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medius@naver.com

    입력2003-03-25 1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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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에 거듭난 우리 고전의 맛
    우리 고전과 전통문화에 오늘날의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작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들어 그런 작업의 성과물이라 할 만한 책들이 도서시장에 자주 등장하면서 독자들의 반응도 전에 없이 좋다. 일찍이 우리 고전 번역서와 전통문화 관련 도서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선보인 책들은 예전의 그것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인문학의 측면에서 학문 활동의 튼튼한 인프라가 되는 번역,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성찰과 지혜의 보고가 되는 번역. 우리는 이런 고전 번역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이 물음에 비춰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김영두 옮김, 소나무)가 지니는 의미는 범상치 않다. 마치 오늘날의 어느 필자가 쓴 듯한 번역, 언어·습속·환경이 많이 다른 지역의 텍스트임에도 본래부터 현대어로 쓰여진 텍스트를 읽는 느낌이 드는 번역, 요컨대 각각 동시성(同時性)과 동소성(同所性)이라는 고전 번역의 이상에 접근한 책이기 때문이다.

    퇴계와 고봉의 서신 왕래는 과거에 막 급제한 젊은 기대승이 상경해서 퇴계를 처음 만나던 해인 명종 13년(1558년)부터 퇴계가 세상을 떠난 선조 3년(1570년)까지 13년간 계속됐다. 이 책은 그들이 주고받은 100여 통의 편지를 일상의 편지들과 학문을 논한 편지들로 나눠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편지를 시기별로 정리했으면서도 ‘영혼의 교류가 시작되다’ ‘처세의 어려움을 나누며’ 등과 같이 각 시기별 편지의 중심 테마를 소제목으로 설정하고, 다시 각 편지에 대해서도 ‘시대를 위해 더욱 자신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진실한 공부를 방해하는 세 가지’ ‘봄 얼음을 밟는 것같이 두려운 마음으로’ 등과 같이 적절한 제목을 붙였다.

    고봉은 술을 즐겼던 모양이다. 후학 고봉을 무척 아꼈던 퇴계의 충고가 없을 수 없다. 고봉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술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근래에 병이 잦았기 때문에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몸을 기르고 덕을 기르는 데 모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정말로 굳게 절제하여 술에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들뻘의 전도유망한 선비 고봉과 이미 조선 최고 유학자의 반열에 오른 퇴계 사이의 살가운 정은 옛 선비들이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학문과 덕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사귀고 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전통 유교문화는 나이를 이유로 연소자를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풍토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사실 퇴계와 고봉의 편지는 성리학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문제를 놓고 주고받은 학문적 내용의 편지를 중심으로 이미 번역,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김영두씨(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학문적 편지가 터잡고 있는 보다 넓은 배경, 즉 퇴계와 고봉의 인간적 교류와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편지에서 발견하고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선 중기의 선비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보물 제260호)를 재구성한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정창권 지음, 사계절)도 빼놓을 수 없다.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개인 일기로는 가장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미암일기’를 관직생활, 살림살이, 나들이, 재산증식, 갈등, 노후생활 등 일상의 여러 범주로 나눠 풀이했다. 각 장의 주제를 소설 형식을 빌려 극화한 부분도 실려 있다.

    이 책의 독서 포인트는 조선 중기 사대부 집안의 일상생활, 여성의 지위, 그리고 흥미로운 에피소드 등에 있다. 미암이 전라감사 시절 성병의 일종인 임질에 걸려 아내인 덕봉에게까지 옮기게 된 모양이다. 미암은 의원을 불러 ‘순행(巡行)을 할 때 오랫동안 오줌을 못 누고 참았기 때문에 걸린 병’이라고 둘러댄다.

    한편 미암은 덕봉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울로 올라와 관직생활을 하면서 홀로 지낸 지 서너 달. 그간 일절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은 줄 아시오.’ 덕봉의 답장은 압권이다. ‘군자가 행실을 닦고 마음을 다스림은 당연한 일인데, 어찌하여 겨우 몇 달 독숙(獨宿)했다고 고결한 체하며 은혜를 베풀었다고 하시오. 당신은 아무래도 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병폐가 있는 듯하오.’

    덕봉은 매달 한두 번 부녀모임을 가졌고, 산대놀이나 임금 행차 등 나라에 특별한 구경거리가 있을 때마다 구경했다. 조선시대 양반 여성이 집에만 틀어박힌 채 외출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는 것은 적어도 16세기 전엔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더욱이 3남2녀 중 막내인 덕봉은 친정 부모의 제사도 직접 지냈다. 당시 조상의 제사는 자녀들이 돌아가며 지내는 윤회봉사(輪回奉祀)가 관행이었고, 재산도 남녀차별 없이 균등하게 나눴으며, 남자가 처가에서 혼례를 올리고 그대로 눌러 사는 처가살이가 유행했다.

    이상의 두 책은 일단 제목부터 예전의 고전 번역서와 다르다. 고전 텍스트의 본래 한자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한자 제목을 직역해 제목으로 사용하던 것에 비하면, 두 책의 제목은 동시성 측면에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오기에 충분하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두 책 모두 고전을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껴라”

    전통예술 분야에서는 조선 미술사의 주요 화가와 작품을 해설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오주석 지음, 솔)이 주목 대상이다.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인 저자는 다년간의 일반인 상대 강의에서 쌓은 내공을 유감없이 풀어놓는다. 강의 현장의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려 어투도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경어체로 돼 있고, 저자가 강의 도중 보인 동작도 일종의 지문처럼 실려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옛 그림 감상의 요령이 눈길을 끈다.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그림을 볼 때는 세로쓰기를 사용했던 옛사람의 눈에 맞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보라는 것. 서양화를 감상할 때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움직이면 그림의 중심 구도와 X자 꼴로 부딪치게 되며, 여러 폭의 병풍이라면 이야기를 마지막부터 거슬러 읽어나가는 꼴이 된다.

    저자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이자 초국보급 걸작이라 평한다. 하지만 그 그림을 박물관에서 직접 보면 그렇게 쩨쩨해 보일 수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저자는 일본식으로 요란하게 만든 표구 때문이라고 개탄한다. ‘조선 사람이 기모노를 입은 꼴’이 됐다는 것이다. 기모노(표구)를 벗기고 그림만 보면 기막힌 걸작이 되는데 말이다.

    김홍도의 풍속화첩엔 틀린 그림들이 숨어 있다고 한다. 예컨대 ‘씨름’을 보면 오른쪽 맨아래에 뒤로 자빠질 듯한 자세로 구경하고 있는 인물의 두 손이 거꾸로 붙어 있다. 왼팔에 오른손이, 오른팔에 왼손이 붙어 있는 꼴이다. ‘벼타작’ 그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김홍도가 실수로 그렇게 그린 걸까?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보는 사람들 재밌으라고 장난을 친 것입니다. 속았지 메롱! 하고 즐거워하는 화가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까?’ 풍속화첩은 서민들을 수요층으로 해 쓱쓱 속성으로 그려냈던 작품들이기 때문에, 김홍도는 그림 중 한 부분을 일부러 틀리게 그려 옥의 티를 찾는 재미를 선사한 것이다.

    우리 옛것은 본래 어려운 것?

    고전이나 전통문화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동아대) 강영조씨의 ‘풍경에 다가서기’(효형출판)는 옛사람들이 풍경을 만났던 방식을 옛 시와 산수화 등을 되짚어가며 들려준다. 예컨대 소백산을 구경하고 ‘유소백산록’을 썼던 퇴계 이황의 풍경 체험법은 ‘건강과 볼거리에 맞추어 탐승 경로를 정하라’ ‘가능한 한 다양한 이동수단을 이용하라’ ‘다양한 자세로 풍경을 감상하라’ ‘인상적인 풍경에 이름을 붙여줘라’ 등이다.

    저자는 또 조선 중기 유학자 김인후가 전남 담양의 소쇄원을 읊은 ‘소쇄원 48영’을 예로 들면서, 우리 선인들은 시선의 미동과 회전(시각), 자연과 협음하는 인공의 소리를 선별하는 예민한 귀(청각), 전신으로 감지하는 경물들의 감촉(촉각), 때에 따라 다르게 전해오는 풍경의 냄새(후각), 풍경과 어울리는 음식물을 가려내는(미각) 등 오감을 모두 동원해 풍경을 감상했다고 설명한다.

    혹시 예전의 한국학 관련 도서 대부분이 일반 독자들에게서 우리 고전과 전통문화를 유리시키는 데 도리어 일조했던 건 아닐까?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은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글쓰기로 ‘우리 옛것은 본래 어려운 것’이란 선입견을 강화해온 건 아닐까? 옛것을 알아야 한다는 당위론만 내세우고 그에 따른 전략과 구체적 실천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앞서 소개한 네 권의 책들은 학문 연구 성과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보다 많은 일반 독자들과 만나려는 바람을 감추지 않는다. 고무적인 것은 독자들이 그런 바람에 호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출판분야에서 우리 고전과 전통문화의 르네상스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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