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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박수룡의 화필기행 붓 따라 길 따라

산과 강, 계곡에 숨은 전쟁의 상흔 강원 철원

산과 강, 계곡에 숨은 전쟁의 상흔 강원 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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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올라보니 비무장지대 안 곳곳에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북쪽에서 발생한 산불이 능선과 계곡을 타고 남쪽으로 넘어오고 있지만 불을 끌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안내원은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이 나면 보통 한달 가까이 탄다”며 “노루 고라니 멧돼지 꿩 등 야생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한다”며 걱정했다.

전망대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산은 유명한 ‘피의 500능선’이다. 철원평야 공방전 때 북한군 3만 명, 국군과 유엔군 1만5000명이 전사한 곳으로 비 오는 날이면 그들의 피로 능선이 붉게 물들었다 해서 섬뜩한 이름을 얻었다. 피의 능선 뒤편엔 높이 780m의 고암산이 북측 지역 전망을 가로막는다. 김일성이 거기서 직접 철원전투를 지휘했으나 끝내 백마고지를 빼앗기자 사흘 동안 통곡했다 해서 김일성고지란 이름이 붙었다 했다.

백마고지나 피의 능선, 또는 저격 능선처럼 으스스한 이름은 아니지만 아이스크림 고지 역시 참혹한 과거를 안고 있다. 해발 223m의 이 고지는 철원평야 공방전 중 양측의 무차별 포격으로 산이 3m가량 정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바람에 그런 이름을 얻었다. 지금은 둥글둥글한 고지에 하얀 띠가 둘러쳐진 예쁜 모양을 갖췄지만 전쟁중엔 이글거리는 포열을 견디지 못해 울부짖듯 흘러내렸던 모양이다.

전쟁 없는 피안이어라



고지 능선과 땅굴까지 돌아보고 민통선 밖으로 나오면 먼저 마주치는 곳이 옛 노동당사 건물이다. 1946년 북한이 철원 평강 김화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지은 이 건물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데다 구석구석에 팬 탄흔들로 전쟁과 시대의 아픔을 뚜렷이 각인시킨다. 우익인사들을 감금 고문했다는 방공호에서는 썰렁한 찬바람이 밀려나오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철원 여행은 우울하며 섬뜩한 감상여행이다. 한국의 그랜드 캐년이라는 한탄강 계곡의 빼어난 절경, 두루미 기러기 독수리 등 겨울 철새들이 빠짐없이 찾아오는 천혜의 자연이 자랑스러운 곳이기도 하지만 그곳의 강과 산 계곡마다엔 빠짐없이 전쟁의 상흔이 똬리를 틀고 있다.

통일신라 도선국사가,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과 같은 곳이라 하여 절을 짓고 도피안사(到彼岸寺)라고 명명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철원에서 처절한 전쟁의 상처를 마주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철원을 나와 경기도 포천에 이르렀을 때 라디오에서는 바그다드가 미·영 연합군에 함락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동아 200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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