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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美 자금 추적 피하려 국정원과 대북송금 루트 협의했다”

특검 조사받은 백성기 전 외환은행 외환사업부장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美 자금 추적 피하려 국정원과 대북송금 루트 협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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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자금 추적 피하려 국정원과  대북송금 루트 협의했다”

송두환 특별검사팀은 백성기 전 부장에 대한 조사 이후 수사를 급진전시켰다. 기자들에게 수사 상황을 설명하는 송 특별검사.

-국정원과 어떤 것을 협의했습니까.

“아시다시피 북한은 테러 지원국 리스트에 올라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자금 추적을 할 수 있는 경로로 북한에 송금하면 바로 몰수됩니다. 따라서 북한에 돈을 보내려면 송금 루트를 잡아주는 것-이걸 ‘라우팅(routing)’이라고 하는데-이 가장 중요합니다. 극히 조심하지 않으면 드러나거든요. 이처럼 보안을 유지하면서 송금하는 것, 상대방이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정확하게 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원화로 가져온 돈을 미국 달러로 맞추는 것 등에 관해 협의했습니다. 소소한 송금 절차가 아니라 이런 큰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조언을 한 거죠.”

주목할 만한 발언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과 국내 최고 수준의 외환거래 전문가가 ‘혈맹’ 미국의 자금 추적 감시망을 뚫고 ‘테러 지원국’을 지원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냈다는 얘기 아닌가. 상식 밖의 일이지만, 상식만으로 통하지 않는 게 남북관계다. 현실은 아이러니다.

-국정원이 왜 외환은행을 대북송금 파트너로 골랐을까요.

“라우팅 때문이죠. 외국 은행들 간에는 돈을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국내 은행들 간에 타행환이 가능한 것은 금융결제원이 중간에서 거래를 연결시켜주기 때문이죠. 외국 은행간 거래에선 그런 기능을 하는 곳이 없어요. 그래서 정산기관을 거쳐서 보내거나 아니면 양쪽 은행 모두에 계좌가 있어야 합니다.



외환은행의 경우 세계 6000여 개 은행에 계좌가 있습니다. 해외 지점도 많고요. 그만큼 송금 루트가 많아 라우팅의 폭이 넓다는 얘기죠. 국내 한 시중은행의 경우 해외 은행 계좌가 100여 개에 불과한데, 이런 은행은 자기들이 처리할 수 없는 해외 송금 요청이 들어오면 외환은행에 의뢰합니다. 반면에 외환은행은 고객이 원하는 곳 어디로든지 다른 은행에 의뢰하지 않고 직접 송금할 수 있어요. 외화 현찰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직원들도 이 분야 전문가들입니다. 그러니 국정원도 외환은행을 통해 송금하는 게 유익하고 안전하다고 판단했겠죠.

이런 사정 때문에 비단 국정원뿐 아니라 정부 부처 대부분이 외환은행과 거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재계 고위층이 관련된 외화 밀반출 사건 같은 게 터지면 외환은행이 다 덮어쓰곤 하죠. 아마 북한도 외환은행의 이런 특성을 잘 알 테니 우리와 일하는 게 편했을 겁니다.”

수취인 명의는 무의미

-국정원의 송금 정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그건 제가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는 국정원에서 협의만 했고, 송금은 우리 영업점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러니 그건 영업부장 소관이죠. 당시엔 저도 구체적인 송금 과정을 몰랐어요. 나중에 이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관련부서 등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알게 됐습니다. 특검이 없었으면 저는 드러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업무 협의에 가서 말만 하고 왔기 때문에 흔적을 남긴 게 없거든요.”

-어느 계좌로 돈이 입금됐는지 아시죠?

“알지만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북한 아태평화위가 관리하는 ‘조광무역’ 명의의 중국은행(Bank of China) 마카오지점 계좌가 문제의 계좌로 거론돼왔는데, 백 전부장이 특검 조사 후 “조광무역 계좌는 아니다”고 해서 구구한 억측을 낳았습니다.

“조광무역은 1990년대에 북한이 대외적으로 종합상사 기능을 맡기려고 만들었는데,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어요. 그후 북한의 무역과 대외 거래가 늘면서 ‘금강산’ 등 옛 조광무역 같은 곳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조광무역 계좌는 아니라고 한 거예요. 누군가는 그게 법인 계좌냐 기관 계좌냐고 묻던데, 사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북한에 법인이 있을 리 없죠. 다 기관들이에요.”

-대북송금이 이뤄진 2000년 6월9일 이전에도 국정원이 문제의 계좌로 돈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보는 계좌였어요. 하지만 수취인 계좌의 명의가 누구로 돼 있느냐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계좌야 어디에 어떤 이름으로 열어놓든 무의미해요. 그 뒤에서 자금을 관리하는 사람하고만 입을 맞추면 되니까. 가령 똑같은 사람이 어제는 마카오에 조광무역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은 홍콩에 금강산이라는 이름으로 계좌를 열어 돈을 보내라고 할 수도 있죠. 송금하는 은행은 돈을 보내는 사람의 신원만 확인하지, 받는 사람에 관한 정보는 알지도 못하고 확인할 수도 없어요.”

-임동원 전원장이 북한으로 돈을 보냈다고 한 날은 6월9일인데,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아 외환은행에 입금한 2235억원을 6월10일에 출금했습니다. 그래서 ‘국정원이 북한과 합의한 송금 날짜를 맞추기 위해 급한 대로 국정원 돈을 보내고 나중에 현대상선 돈으로 메웠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송금 당시엔 그게 현대상선 돈인지 누구 돈인지 알지 못했어요. 현대상선이나 국정원 계좌를 통해 송금한 것이 아니라 국정원의 해외 송금 관행대로 직접 들고 온 수표 26장을 환전해서 보낸 거니까요. 그게 누구의 돈이냐, 송금이 먼저냐 출금이 먼저냐 하는 것은 특검에서 이미 파악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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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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