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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 파괴, 일탈 욕망의 대리만족

여고생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 돌풍과 10대들의 감성코드

  • 글: 장은수 문학평론가

금기 파괴, 일탈 욕망의 대리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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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 파괴, 일탈 욕망의 대리만족
셋째, 이영도와 귀여니 두 사람 모두 판타지, 로맨스 등 장르 문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 ‘장르 문학’은 무협, 밀리터리, 추리, SF, 판타지, 스릴러, 호러, 로맨스 등의 문학 양식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처럼 인물, 배경, 지식 등 특정한 코드 또는 세계관을 여러 작가가 공유하면서도 작가 특유의 덧붙임 또는 지움에 의해 새롭게 읽히는 문학을 말한다.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는 서양 중세의 기사 이야기에서 기원한 판타지 장르에 기대고 있으며,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는 ‘어느 날 벼락처럼 다가오는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근대적 사랑 담론이 만들어낸 로맨스 장르에 업혀 있다.

이러한 장르 문학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들도 같은 세계를 공유한다는 점, 세계 자체의 변화라는 거시적 차이보다는 이야기 전개의 박진성이나 에피소드의 새로움 같은 미시적 차이에서 문학적 성과가 갈린다는 점, 작가와 독자가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와 작가의 위치 뒤바꿈 현상(생산 소비자 현상: 생산자가 소비자가 되고, 소비자가 곧 생산자가 되는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는 점,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동류의 문화 상품들(영화, 연극, 게임, 만화 등)로 전환되기 쉽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드래곤 라자’와 ‘그놈은 멋있었다’ 사이에는 이러한 유사성을 넘어서는 두 가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PC통신 세대와 인터넷 세대의 차이기도 하고, 어쩌면 1970년대 생과 1980년대 생의 차이기도 하다.

첫째, ‘드래곤 라자’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문단 소설과 커다란 차이가 없는 교과서적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놈은 멋있었다’는 교과서적 문장만을 구사하는 사람들은 읽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한 탈교과서적인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두 소설의 첫 부분 몇 문장을 들여다보면 분명해진다.



(A) 드래곤이야! 정말 화이트 드래곤이야! 우와, 멋있어!

(B) 나는 피식 웃었다. 제미니는 펄쩍 뛰면서 누가 들을세라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계집애. 뱀을 밟았으면 밟았지 왜 그렇게 덥석 안겨?

(C) 그. 런. 데.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ㅇ_ㅇ 엥? 머야. 살며시 고개를 들자 그 노란머리가 날 노려보고 있었다. -_- 엄마야!! 럴수럴수, 이럴 수가!

(D) ㅇㅏ! 다모임! 마지막으로 떠오른 나의 다크호스, 다모임! ^o^ 하지만 여고라 그런지 글도 잘 안 올라온다. -ㄷ- 게시판에 글이 한 개도 없길래 방명록을 클릭 했다. ㅇ_ㅇ 어 예~!

(A)와 (B)는 ‘드래곤 라자’에서 인용한 것이다. (A)는 감탄을 드러내는 형식이고, (B)는 보통의 지문이다. ‘정말’ ‘우와’ ‘피식’ ‘펄쩍’ ‘덥석’ 등 부사어를 다소 많이 쓰는 경향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가벼워 보이기는 하지만 교과서적인 문장에서 별로 벗어나 있지 않다. 이 작품에서 보통의 소설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은 화이트 드래곤, 제미니 등 서양에 기원을 둔 것이 분명한 이름들뿐이다.

그러나 ‘그놈은 멋있었다’에서 뽑은 (C)와 (D)는 완전히 다르다. (C)의 앞부분 ‘그. 런. 데.’에서부터 이른바 언어 파괴(아마 이 소설의 주 독자층인 10대의 입장에서 보면 언어의 창조일지도 모른다)가 눈에 튄다. 게다가 감정을 표현하는 부호인 이모티콘(emoticon)의 전면적인 등장(ㅇ_ㅇ, -_-, ^o^, -ㄷ- 등), 느낌표의 엄청난 남발(소설의 아무 쪽이나 펼쳐도 10여 개는 눈에 띈다), ‘럴수럴수’ ‘ㅇㅏ!’ 등 일부러 맞춤법 틀리게 쓰기 등 교과서적 문장에서 무의식적으로 멀어지고 있다.

그러기에 작가 귀여니는 한 인터뷰에서 “언어라는 건 결국 부호가 아닌가요?”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기성세대와는 다른 문화적 토양에서 싹튼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드래곤 라자’는 ‘부호’가 아니라 ‘언어’의 범주에서, ‘그놈은 멋있었다’는 ‘언어’가 아니라 ‘부호’의 범주에서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둘째, ‘드래곤 라자’는 판타지라는 낯선 형식을 통해 자기와 타자, 인간과 자연, 한 종족과 다른 종족 사이의 소통 문제라는 거대 담론을 중심에 두고 있다. 쉽게 말하면 이영도는 수많은 선배 문인이 수만 가지 형태로 다루어온 주제를 판타지라는 새로운 문학의 형태로 풀어낸 것이며, 장르 문학일지라도 작가의 강조점은 어디까지나 ‘문학’에 찍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놈은 멋있었다’는 10대들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온갖 부호를 다 동원해서 아주 재미있게 쓴 ‘10대들의 상큼한 사랑이야기’일 뿐 주제의식 같은 것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사이버 문학에 오랫동안 관심을 두어 온 한 후배는 이 소설을 두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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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은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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